日에 "독도는 조선 땅" 문서 받아낸 백성 안용복을 아십니까

日에 "독도는 조선 땅" 문서 받아낸 백성 안용복을 아십니까

2019.09.20. 오후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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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에 "독도는 조선 땅" 문서 받아낸 백성 안용복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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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9월 20일 (금요일)
■ 대담 : 전민식 소설 <강치>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동형의뉴스정면승부] 日에 "독도는 조선 땅" 문서 받아낸 백성 안용복을 아십니까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매주 이 시간은 초대석 인터뷰 시간입니다. 오늘 모신 분은 소설가 전민식 작가입니다. 안용복이라는 인물,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인물로 알려져 있죠. 일본에 끌려가서도 독도는 조선 땅이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는데요. 이 안용복의 투쟁기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 출간됐습니다. ‘강치’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강치’는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독도에서 씨가 마른 동물이라고 하는데, 책 제목이 ‘강치’인 것도 뭔가 의미가 담겨 있는 거 같습니다. 전민식 작가로부터 설명 들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전민식 소설 <강치> 작가(이하 전민식)>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강치, 지금은 그러면 멸종됐습니까?

◆ 전민식> 네, 공식적으로 멸종된 동물이고요. 희한하게 강치라는 동물이 독도에서만 서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독도 하면 강치라는 동물로 상징화되기가 잘 어울려서 책 제목을 강치로 정하게 됐습니다.

◇ 이동형> 울릉도에도 없었고, 독도에서만 있었습니까?

◆ 전민식> 네, 그렇습니다. 울릉도에도 없었고, 독도에서만 있었다고 알려져 있고. 조금씩은 거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왔다 갔다 하기는 하겠지만, 주로 독도의 가재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주로 그 부근에서 강치들이 휴식도 취하고, 그랬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 이동형> 강치가 어떤 동물인지 잘 몰라서.

◆ 전민식> 바다사자, 물개, 그 모양새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 이동형> 그러면 바다사자, 물개, 그런 건데 우리가 이름만 강치라고 부르는 겁니까? 아니면 종이 다른 겁니까?

◆ 전민식> 종은 같습니다. 바다사자 과고, 우리 쪽에서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다사자보다는 덩치가 작고요. 그리고 그 종류를 우리 고유의 이름으로 강치라고 부르게 된 것이고요. ‘치’ 자가 들어가는 여러 가지 바다 생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강치라고 불렀더라고요.

◇ 이동형> 일본인들은 강치를 남획해서 어디에 썼습니까?

◆ 전민식> 아시다시피 고래를 포획하면 전신을 다 활용하니까 강치도 그런 식으로 가죽은 가죽대로, 살은 살대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름으로 많이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작가님 프로필을 보니까 등단이 늦으셨네요?

◆ 전민식> 네, 늦었습니다.

◇ 이동형> 늦게 이렇게 소설가로 데뷔할 마음은 어떻게 드셨을까요?

◆ 전민식> 원래 문학에 오래 전부터 문창이었고요. 문창이었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늦게 등단한 사람들은 꾸준히,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 하는 신호들을 받으니까. 쉽게 말해서 무엇 상에 응모를 했는데, 그 상에서 최종심에서 두 명이 남았는데, 다른 사람이 붙고, 저는 떨어지고, 그러면 이듬해에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두자고 하는데, 또 그런 사태가 빚어지고. 그런데 그런 과정이 한 20년 정도. 20년 정도 맨 마지막에 가서 둘 중에 하나든, 셋 중에 하나든, 거기서 떨어지니까 이게 아주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는 내가 이듬해만 해보자, 해서 아무런 신호가 없으면 포기하겠다. 그런데 이듬해 또 신호가 오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 긴 세월을 그렇게 버텨왔죠.

◇ 이동형> 등단하기 전까지 다양한 직업군을 거치면서 글도 쓰고, 하셨겠네요?

◆ 전민식> 아무래도 먹고살려면.

◇ 이동형> 대필작가도 많이 하셨네요?

◆ 전민식> 네, 많이 했습니다. 정치인들도 많이 했고요.

◇ 이동형> 저한테도 많이 요청이 왔었습니다. 예전에 저도. 그래요. 여러 가지 일을 하셨는데, 이런 많은 경험이 작가로서 글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되겠죠?

◆ 전민식> 많이 되죠. 실제로 제가 쓰는 작품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런 경험 속에서 만났던 인물들이 상당히 많이 있고요. 대표적으로 한 인물이라고 하면 제가 20대 중후반 때 이삿짐을 나르러 다셨는데, 그것을 꽤 오래 했습니다. 같이 일하던 분 중에 별명이 삼손이라는 분이 계세요. 그런데 그 인물이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에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그런데 성서에 나오는 인물처럼 굉장히 힘이 강해요. 그런데 그분이 삼손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이삿짐센터에서 일하기 전에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잃어요. 오른손에. 그래서 오른손에 손가락이 세 개만 남았는데, 그래서 별명이 삼손이. 그렇게 생활에서 만났던 분들을 제가 약간 저의 허구적 상상력을 보태서 새로운 인물로 만들곤 하죠.

◇ 이동형> 슬픈 이야기네요. 손가락이 두 개가 없어서 삼손이다. 알겠습니다. 강치 이야기해볼 텐데요. 책 제목은 강치입니만 내용은 안용복 이야기죠?

◆ 전민식>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안용복 장군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만.

◆ 전민식> 그렇지는 않고요. 안용복이라는 인물은 지금 역사적 기록 자체가 많이 없는 편이고. 많이 부족합니다. 이 내용이 소설적 내용에서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인물은 100여 년 전에 집안 가문 자체가 역적의 집안으로 몰리면서 삼족이 멸한 그런 불운을 겪은 집안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어쨌든 역적의 집안 자손들이 대부분 천민으로 전락하는 시대니까 안용복도 이미 100년 전에 자기 선조들이 저지른 상황 때문에, 저질렀다는 표현은 그렇지만, 새로운 왕을 옹립하려고 했던 사실 때문에 천민으로 전락했고. 그래서 장군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고요. 이미 10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까 평민과 천민의 신분으로 삶을 살고 있었던 인물이고. 그래도 굉장히 외국어에 능했던 인물이고.

◇ 이동형> 외국어라고 하면 일본어입니까?

◆ 전민식> 네, 일본어입니다. 그다음에 기록상으로는 굉장히 키가 큰 인물입니다. 우리 지금 현재로 치면 185 정도? 그 당시 일본인들의 키가 굉장히 작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들에 비하면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키가 컸기 때문에 위협적인 존재셨을 것 같아요.

◇ 이동형> 방금 천민이라고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러면 어부의 신분으로 일본으로 넘어간 겁니까?

◆ 전민식> 그렇죠. 처음에는 사실은 자기 자의로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납치되어서 가기는 하지만, 이 양반이 일본과 소통할 수 있는 조선 땅의 유일한 통로가 부산의 초량 왜관에 있었는데, 거기서 무역 일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을 근거로 해서 상상력을 보탠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 전에 배 노를 젓는 노군이었습니다. 주로 전쟁을 하는 수군의 배를 젓는, 그것을 능노군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어떤 인물을 통해서 그 인물은 구체적으로 기록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마 초량 왜관에서 무역 일을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본인 스스로도 이 창구 자체가 일본하고의 무역이 거래되는 곳이니까 의도적으로 자기가 일본어를 공부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최근에 어떤 학자가 안용복은 어부가 아니다. 조선의 밀사로 일본을 찾은 거다. 납치를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요.

◆ 전민식> 그런 주장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어쨌든 조선 수군의 한 병사였고, 능노군이었기는 하지만. 그다음에 일부분 능노군이면서도 그 능노군들을 지휘하는 하급 지휘자기는 하지만, 그런 직책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 이동형>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처음 일본에 납치됐을 때 일본의 태도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납치해놓고는 굉장히 예우를 갖췄다. 그건 왜 그럴까요? 너무 덩치가 커서 그렇습니까?

◆ 전민식> 그렇지는 않고요. 당시 조선에서는 일본 배들이 어업을 나왔다가 풍랑을 맞거나 해서 조선의 한 지역에 잠깐 피양을 하게 되면, 최대 예우를 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게 조선과 일본의 일정 정도의 약속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고요. 그러니까 공식적인 인물들이 상대국의 피양을 하러 갔거나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정박을 하게 되면 최대의 사신으로 대우를 해주면서 그런 과정의 일환이었던 거지 안용복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특별하게 위협을 느끼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요. 관례였던 겁니다. 그 시절에는.

◇ 이동형> 성호사설로 유명한 이익. 자신의 책에서 안용복을 영웅호걸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이유로 영웅호걸이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 전민식>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는 아시겠지만, 당파적 이유 때문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중요한 우리나라 땅에 대해서, 조선의 땅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그게 필요하다는 언급을 하는 인물들이 없었던 시절이죠. 자기들의 이권만 생각했던 시절이었고. 그런데 유일하게 평민이었던 한 인물이 일본에 납치되어서 가든, 두 번째는 자기가 의도적으로 갔다고 해석하든 간에 조선 땅에 대해서 주장을 했던.

◇ 이동형> 조선 땅이라고 하는 게 독도를 말씀하시는 거죠?

◆ 전민식> 네, 그렇죠. 그렇게 주장했던 인물이어서 당시 내로라하는 지식인이나 장군이나 그런 분들도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한 일반적인 평민이 일본 땅에 가서 그런 주장을 했다는 사실로 아마 이익이라는 분이 영웅호걸이라고 칭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그러면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서 독도는 조선의 땅이다, 이 말을 듣고 온 겁니까? 문서로 받아온 겁니까? 어떻게 한 겁니까?

◆ 전민식> 그 문서로 받아온 기록이 있습니다.

◇ 이동형> 일본에서 준 문서?

◆ 전민식> 일본에서 쇼군이 준 문서죠.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천황제고, 당시도 천황제였고, 하지만 실질적 권력은 쇼군한테 있었고요. 쇼군으로부터 문서를 받는 게 사실상 일본 당시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받은 인정일 수 있는 거죠.

◇ 이동형> 이게 시대적으로 17세기입니까?

◆ 전민식> 1693년이니까 그렇죠.

◇ 이동형> 그러면 17세기부터 일본이 인정을 한 거네요?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 전민식> 그렇죠. 그리고 그 내용 중에, 그때 당시에 쇼군의 권력지가 에도로 변경됩니다. 지금 현재 도쿄로. 그것을 에도막부라고 하는데요. 그 에도막부에서 울릉도와 독도 부근에 조업을 못 하도록 합니다. 일본 어부들에게. 그 금지령을 내린 문서들이 있고, 그다음에 안용복한테 써준 울릉도 일대 부속 섬들은 일본의 섬이 아니니까. 어업 금지령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울릉도 포함한 부속 섬들은 일본의 섬이 아니니까 어업 하러 나가지 말라고 하는 문서가 현존해있죠.

◇ 이동형> 그렇게 문서로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일본으로부터 받아와서. 받아왔으면 굉장히 큰일을 한 건데, 그런데 정작 와서 옥살이를 했다? 유배를 당했다? 이거 왜 그렇습니까?

◆ 전민식> 역사가들 그래왔듯이 승자의 기록이고, 그다음에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그때까지 알려져 있기로는 역적 가문의 자손인데다가 그런 거겠죠.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고위 관료들은 정작 그런 일들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일반적인 평민이나 천민이 그런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대한 일정 정도의 반감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그런 문제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당시에 당파적으로 국가로써는 국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되는데요. 그때는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를, 납치가 되었건 아니면 울릉도에서 조업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안용복 입장에서는 국법을 어긴 거거든요. 그 국법을 어겼으니까 그것에 따라서 그 죄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요.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들은 아니다,나가서 일본까지 가서 우리가 소외시켜 왔던 그 땅들, 섬들에 대해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고 왔으니 기특한 거 아니냐.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유배를 가게 됩니다. 곤장을 거의 100대를 맞고. 어쨌든 국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그분들은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죠.

◇ 이동형> 결국은 정치에 희생을 당한 거네요?

◆ 전민식> 네, 그렇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죠.

◇ 이동형> 유배 이후의 삶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는데.

◆ 전민식> 네,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이동형> 이 책에서는 작가님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셨습니까?

◆ 전민식> 저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쓰기는 했는데. 역사적으로 미스테리한 인물이 한 3명 정도 늘 궁금했던 분들이 있는데요. 안용복이라는 인물도 그렇고, 조선시대 때 사라진 과학자 장영실, 그분도 어느 날 역사 속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렸고요. 그다음에 조선 말에 홍종우라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홍종우라는 인물은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기로는 중국 상해에 가서 김옥균을 살해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요. 고종의 밀서를 받고 김옥균을 살해한 그런 이야기인데요. 그 인물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요. 그래서 제 생각이라면 그냥 평범한 어부로,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워낙 영웅적 기질이 강한 인물이라 평범한 어부로 살아갔을 것 같지는 않고, 특히 자신의 능력과 기질을 잘 인정해준 어느 나라에 가지 않았을까. 홍종우라는 인물이나 장영실이라는 인물은, 장영실은 이탈리아로 넘어갔다고 추정을 하고 있고, 홍종우라는 인물은 고종으로부터 어떠한,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종으로부터 그런 밀서를 받았다고 추측하기 이전에 이미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온 인물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로 가지 않았을까.

◇ 이동형> 안용복도 일본어를 잘한다고 하니까 일본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알겠습니다. 지금 ‘강치’라는 책, 우리가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영화화하기로 했다고요?

◆ 전민식> 원래 이게 영화 시나리오가 바탕이 돼서 쓴 소설이고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내년 봄쯤에 들어가지 않을까. 만약 내년 봄쯤에 크랭크인 들어가면 내년 말쯤에는 볼 수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이 작품 이후로 또 생각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구상하고 계신 작품?

◆ 전민식> 나올 작품이 한 3개 정도 더 있고요. 앞으로 계속 글 쓰는 게 저의 업이니까 열심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8353님, “일본은 강치 멸종을 어떻게 주장합니까?” 일본 측 이야기도 있습니까?

◆ 전민식> 네, 있습니다. 있는데, 얼마 전에 뉴스 보도 상에 강치 잡이를 일본 사람들이 제한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한했던 목적이나 이면을 보니까 우리가 옛날부터 강치를 잡아왔다, 독도 인근에서. 그러니까 너희들은 강치를 잡지 않았는데, 우리가 강치를 잡아왔으니까 거기는 우리 섬이 아니냐, 그런 퍼포먼스를 했던 게 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오늘 전민식 작가님과의 대담, 조금 더 하고 싶습니다만, 시간이 여기까지밖에 안 되네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전민식>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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