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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더인터뷰] 2019년과 불매운동...역사는 뭐라 평가할까?
Posted : 2019-08-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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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노종면 앵커
■ 출연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시민 사회에서는 전에 없는 강도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정부도 경제적 상응조치를 포함한 전방위 대응에 나섰습니다.

여권에서도 전쟁, 침략 등의 표현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역사는 이 시기를 과연 뭐라고 규정할지 그리고 지금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합니다.

역사학자를 스튜디오로 초대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우용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전우용]
안녕하세요.

[앵커]
안녕하세요. 노재팬, 불매운동 시작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보면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국채보상운동, 그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던데 그 국채보상운동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어떻습니까?

[전우용]
일제강점기가 아니고 일제강점 직전이죠. 1907년부터 일어났었고요.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 또 1907년 정미7조약을 통해서 한국의 주권을 하나하나 빼앗아가는 상황에서 당시에 나라는 대한제국이었어요.

고종과 순종의 나라였죠. 일반 백성은 나라의 주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일본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그 빚으로 인해서 우리가 주권의 제약을 받는다고 판단해서 일반 백성들이 나라 빚을 나랏님 대신 갚자라고 들고 일어났던 운동이 국채보상운동이거든요.

사실 우리가 국민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도 1903년부터나 쓰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는 국민이 아니라 그냥 신민이고 백성이었죠. 그렇게 국가에 대한 책임감. 자기가 주권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들고 일어났던 운동이라서 이게 그 당시에 이른바 일반 농민들이 농촌에서 들고 일어났던 의병전쟁에 비유하자면 평화로운 의병운동이다.

그러니까 자기 나라도 아닌데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의병과 마찬가지로 주권도 없으면서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재산을 처분해서 나라 빚을 갚겠다고 일어났던 거거든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불매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주권자가 자기의 주권자로서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그때가 뭐랄까요.

격렬하고 국가의식이 더 강했다고 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다만 굳이 유사점을 찾자면. 유사점보다는 다른 점을 찾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누가 주도했는지 알아요. 예컨대 대구의 서상돈 등을 비롯한 근대 지식인들이 주도했다고 하는 것이 국채보상운동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데 지금의 불매운동은 누가 처음에 시작했는지 알 수가 없죠.

그만큼 주권의식이 모두에게 퍼져 있고 모두가 주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불매운동 초기에 선생님께서는 일본 국적인 연예인들 퇴출하자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 우려하는 글을 올렸어요. 그러니까 불매운동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죠?

[전우용]
그렇죠. 이건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시민운동이기 때문에 여기에 동의하고 말고 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반대해서 동참하지 않겠다, 이런 건 가능하겠지만 동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고요.

다만 그렇게 말씀드렸던 이유는 이 운동이 이를테면 일본과 한국 간의 국가 대 국가 또는 민족 간 민족의 문제가 아니고 일본 내에서 일본의 전략목표를 자기들 말로는 정상국가화라고 하고 주변국이 받아들이기에는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아시아 패권국가로서의 일본으로 되돌아가려는 그런 움직임에 대해서 그러니까 아시아의 시민으로서 또 직접 일본의 침략을 겪었던 나라의 시민으로서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표가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 저지라는 쪽으로 가야 하고 이것은 단지 우리 한국 민족 대 일본 민족의 대립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양심 세력 대 한국과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 세력 사이의 대립이다.

이 축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이것이 일본인 또는 일본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배격이 아니고 아베 정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초점을 좁혔으면 좋겠다. 그런 취지에서 말씀을 드렸던 거죠.

[앵커]
그런 취지가 좀 더 구체적으로 시청자들께 전해졌으면 좋겠는데요. 최근에 몸빼와 관련된 칼럼을 쓰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에 글이 좋기도 하지만요.

몸빼를 사투리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게 일본에서 유래한 거죠?

[전우용]
그렇죠. 군국주의시대, 요즘 문제가 되는 것도 징용 문제 아닙니까? 강제를 굳이 붙이는데, 사실은 징자가 들어가는 게 강제가 들어간 뜻이에요.

징병, 징발, 징집할 때의 징 자가 전부 강제로 끌고 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강조하기 위해서 강제징용이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징용이라는 것이 강제로 노동력을 끌고 간다는 뜻이었거든요.

그만큼 전쟁 상황에서 대다수의 일본 남성을 군인으로 끌고 가다 보니까 노동력 부족 현상에 직면했고 그런 상황에서 남성들이 맡던 일을 여성들한테 떠맡겨야 되는 비상 상황이다 보니까 여성용 노동복으로 일본인들은 군민복이라고 하잖아요.

심지어 이게 전쟁,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여성이 이 몸빼를 입지 않으면 대중교통 승차 거부, 관공서 출입 금지 같은 조치까지 당할 정도로 강제로 확산시켰던 옷이죠.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한국은 오히려. 일본은 철저하게 그런 전시 군국주의 문화를 문화를 맥아더 사령부가 청산했지만 우리는 곧바로 6.25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전쟁 용품들이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계속 사용되면서 현재까지도 농촌에서 여성 노동복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상당히 많죠.

[앵커]
일단은 그런 역사적 맥락을 아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몸빼처럼 부지불식간에 우리 주변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 문화, 어떤 게 대표적으로 있을까요?

[전우용]
일단 유럽 언어들, 유럽과 아시아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한 20년 이상 30년 정도 먼저 접촉을 시작했고.

또 난학이나 포르투갈과의 접촉을 따지면 몇 백 년 먼저 접촉을 시작했고 접촉하면서 먼저 문제가 됐던 것은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는 문제였어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번역의 역사가 일본은 굉장히 깁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많은 것들. 예컨대 종교라든가 철학이라든가 인문학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전부 일본인들이 번역한 말이고.

심지어 최근에 그런 이야기도 나오는데 대통령, 장관 이거 전부 일본인들이 만든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걸 우리가 안 쓸 수는 없어요.

다만 어떤 단어들의 경우에는 일부 단어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단지 서양 언어의 한자식 번역이 아니라 일본의 종교적 속성이 깊이 배어 있는 용어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은 우리가 조사해서 언론에서라도 그런 것들을 조사해서 알려주는 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호국영령. 이게 우리는 귀신은 돌아가면 사람이 죽으면 제사 지내고 감사드리는 걸로 그동안 나라를 위해서 일했다면 그걸로 끝나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나라를 지켜주는 영명한 귀신, 영험한 귀신이라는 뜻이거든요.

이게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놓은 귀신들이 일본의 호국영령들이에요. 이건 우리가 쓰지 않던 개념인데 일본 군국주의시대에 만들어져서 한국인들 사이에 익숙해진 개념이었고요.

예를 들어서 내신성적. 내신이라고 하는 것도 나중에 일본이 이른바 황국신민이라는 것을 감행할 때 상급 학교에 진행할 때 학생들의 사상을 검증하기 위해서 학교 쪽에 내밀하게 사상 정황을 보고하도록 한 게 있었어요.

그게 내신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아서 아직까지도 쓰이고 있거든요.

그런 용어들 같은 경우는 조사해서 우리가 원래 담겨 있는 철학이나 사상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겠죠.

[앵커]
그리고 저희가 한국인을 가리켜서 냄비 근성이 강하다 이런 표현을 쓰잖아요.

그 냄비 근성이 일본인이 한국인을 비하하면서 주입한 말이다라는 견해가 있던데 맞나요?

[전우용]
그렇다기보다는 저도 찾아봤어요. 찾아봤더니 1980년대 말부터 쓰이기 시작했고요, 한국인에 대해서. 그전까지는 한국인들 느리다 또는 바쁘다 바빠 같은 얘기들이 나왔었는데 냄비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우리나라에 있던 조리도구는 아니에요.

우리는 군용 조리도구로 쟁개비라고 하는 걸 썼고요. 일본에서 이것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그거랑 용도가 비슷하다고 해서 왜쟁개비라고 불렀다가 원래 일본어로는 이것이 나베거든요.

나베, 요리 이름으로 많이 잘못 알고 계신데 나베는 타바코가 담바코를 거쳐서 담배가 된 것처럼 나베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남베, 또 한동안은 남비라고 썼어요.

70년대까지는 아마 표준어가 남비였을 거예요. 그랬다가 말이 변해서 냄비가 된 거거든요.

그런데 한국 조리도구는 아니었고 한국인들은 60년대, 70년대까지도 자기들의 기질이 이건 저는 이런 민족성, 민족 기질이라는 단어 자체가 꼭 적합하지는 않다고 보는 편입니다마는 은근과 끈기 또는 뚝배기 기질, 이렇게 얘기를 해 왔었어요.

이런 식의 민족성 기질을 붙여놓고 하는 문화 자체가 그런 관행 자체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부정적인 민족성으로 스스로를 묘사하는.

조금 전에도 브리핑이 있었습니다마는 한국인은 저열하다라든가 한국인은 도덕성이 없다든가 이런 식의 사고방식 자체가 다분히 일본적이다.

그러니까 식민지 시대에 식민통치자의 눈으로, 또는 식민통치자에 빌붙었던 식민지 엘리트의 눈으로 자민족을 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폄하 단어라고 할 수 있겠죠.

[앵커]
앞서서 말씀해 주실 때 현재 불매운동이 일본 문화의 전면적인 거부나 또는 일본인 대 한국인의 대결구도로 가는 것을 지양하고 일본 내 그런 군국주의 부활 세력에 목표가 맞춰져야 된다고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일본 문화를 존중하는 것과 또 배격해야 되는 어떤 잔재. 어떻게 구별할 수 있죠?

[전우용]
그러니까 일본 문화도 굉장히 길죠. 길고 일본이 자기들 스스로는 그렇게 얘기를 해요.

20세기, 19세기 최 말기부터 20세기 초반기까지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자기들 말이죠. 우리처럼 왜구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받았던 그런 쪽에서는 납득하기가 좀 어렵지만 공식적으로 대외 침략을 한 적이 없다.

침략을 받은 적도 없다. 가장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라고 자기가 얘기를 해요.

그런데 왜구의 문제를 제외하면 일본이 섬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외 활동들이 있기는 했지만 국가 대 국가 전쟁으로 나간 사례는 사실 많지 않았죠, 20세기 전까지.

그렇게 놓고 보자면 일본이 가지고 있는 그런 전통적인 문화 요소 잔재가 문제가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거쳐서 일본 군국주의가 만들어냈던 문화적 또는 이민족에 대한 차별관, 자민족 우월주의, 이런 것들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아베를 비롯한 일본 자민당 우파 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도 과거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우리는 역사를 역사로서 그 시대를 그쳐온 사람들이 볼 때는 일본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고 침략 과정에서 주변 민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주었고 그러니 반성하라고 요구하는데 일본의 우파들은 그것을 반성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로서는 가장 자랑스러웠던 시대였다.

일본이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대였다라고 거꾸로 기억하고 반성을 하지 않겠다. 반성하는 역사관을 스스로 자학사관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지 한 30년 가까이 됐어요.

그래서 자학사관 극복, 뒤 이어서 일본을 정상국가화, 이런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이 꺼내드는 것이 군국주의 시대의 사고방식이거든요.

그게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혐한 의식이고요, 일본 내에서. 일본 민족 우월의식이고. 이것에 대한 대응이 중요한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구별할 것이냐.

일본의 무슨 신또라든가 고유문화가 갖고 있는 문화들까지 차별하고 적대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오히려 군국주의 시대 이후로 일본이 만들어놓은 근대적 의식 중에서 이웃 아시아 각국 국민들을 괴롭혔던, 그런 철학들과 그런 사상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야 되는데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서 일본인들이 내면화했던 그런 사상, 군국주의 잔재들이 일본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로부터 교육받았던 식민지 엘리트들에게도 굉장히 뿌리 깊게 자리 잡아왔고 그것이 식민지 엘리트가 또 교육을 통해서 전승하면서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의 엘리트 집단 내에서는 한국인의 눈으로 자국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우파 엘리트의 눈으로 자국민을 보는 시각이 남아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일본 내에서 청산을 요구해야 될 군국주의 잔재가 있고 또 한국인들 스스로 우리 내부에서 청산해야 할 군국주의 잔재 역시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앵커]
기준은 군국주의군요. 끝으로 한 가지 질문만 더 드리겠습니다. 최근 한국 내 정치권, 야권에서요, 특히. 정부의 대응을 구한말, 조선 말의 쇄국정책에 비유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오늘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고요.

척화비를 더 이상 세우지 마라. 비교 가능한 상황인가요?

[전우용]
일단 척화비 내용을 한번 읽어보죠. 죄송합니다. 양이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빌붙는 짓이다. 끝에 화는 보통 화친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그때 화는 빌붙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빌붙자고 주장하는 건 매국이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이렇게 12글자였어요. 이건 보편적으로 일반론으로서는 누가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어요?

남이 침범해 들어오는데 거기서 곧바로 항복하자고 하는 것은 매국이다, 이건 언제나 맞는 얘기예요.

다만 조선 말기 대원군 시대의 척화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 문명사적 전환기에 세계 정세에 눈이 어두운 상태에서 맞섰다, 이걸 가지고 나중에 문제삼는 거거든요.

지금 우리가 그 상황이냐. 오히려 자유무역시대에 경제를 가지고, 즉 자유무역 틀을 흔들면서 한국 배척 또는 한국 공격을 하고 있는 일본이 사실은 이 당시에 쇄국정책을 펴는 것과 비슷하고요, 굳이 보자면.

그다음에 우리가 그만큼 세계 정세에 어둡고 그만큼 절대적인 열세에 있고 이런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원군 시대의 척화비를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시대 착오적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일본이 오히려 쇄국하고 있다, 이렇게 비판하는 게 오히려 더 합리적이겠네요. 알겠습니다.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우용]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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