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

⑤[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

2017.09.25. 오후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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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죠? 제가 이 분야를 담당한 지 얼마 안 되서 잘 몰라서요, 그런 규정이 있나요?”

문화재 보존 문제 취재를 위해 기자가 지자체에 문의 전화를 걸었을 때, 일부 매장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이렇게 되묻곤 했다. 20년을 넘게 한 자리에 근무해 지역 사정에 통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알아야 할 기본적인 업무지식도 모르고 있는 직원도 있었다. 기초지자체의 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국내 매장문화재 행정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은… 할 수 있다. 또는 … 하여야 한다."등의 표현이 적지 않다. 일부 문화재 조사에 대해서는 시행 결정권을 지역에 위임했기 때문인데, 이때 지자체장의 권한을 사실상 행사하는 사람은 시장이나 군수가 아닌 문화재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다. 각종 건축 인허가 신청 서류에 대해 협의를 하고, 문화재 지표 조사, 입회나 표본 조사 등의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데 관여한다. 유존지역 내부에서 진행되는 공사도 이들 공무원의 일 처리에 따라 문화재 조사 여부가 뚜렷이 갈라지기도 한다. 대부분 중소 규모 건축 공사와 관련한 문화재 보존 업무가 이들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문화재 보호법대로라면 매장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고고학적 소양과 책임 의식이 필수적인 직군인 셈이다. 과연 현실은 어떨까?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문화재청에 전국 지자체의 매장문화재 담당 공무원 배치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요청했다. 각 시군구에서 매장문화재 업무를 맡는 공무원의 직군과 근무 기간 등에 대한 자료였는데, 문화재청은 관련 데이터가 없다고 답변했다. YTN은 결국 전국 200여 개 기초지자체에 대한 개별적인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 20년간의 관련 자료를 취합할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인 다음의 인터렉티브 차트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지도에서 특정 광역 지자체의 영역을 클릭하면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의 근무 현황이 오른편 점 차트에 뜬다. 붉은 점이 학예 연구직, 파란 점이 일반 행정직, 녹색 점은 기능•시설 담당직이다. 경기도 지역을 클릭해보면, 점들이 수평으로 촘촘히 붙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각 점의 위치는 신임 직원이 부임한 시점이다. 점 사이 간격이 짧을수록 잦은 주기로 교체된 것이다. YTN의 연속 보도에서 문화재 난개발 위험이 큰 곳으로 꼽힌 화성시는 2011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담당이 4번 바뀌었다. 2명은 학예연구사이고, 2명은 일반 행정직이다. 2015년 9월과 2016년 2월에 또 다른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모두 행정직 공무원이 매장문화재를 담당했다. 역시 매장문화재가 곳곳에 존재하지만, 개발 압력도 높은 평택시는 2016년 1월에 학예연구사가 부임하기 전까지 16년 동안 기능•시설직이 매장문화재 조사 업무를 담당했다.

⑤[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


전국적으로 매장문화재 담당자 인력은 대부분 전문직이 아닌 행정직 공무원이고, 근무 기간도 1년이 조금 넘는 정도에 그쳤다. 전문지식과 경험이 없는 상태로 와서, 업무를 충분히 익히기도 전에 다시 교체되는 셈이다. 지난 1998년부터 올해 7월까지 20년의 기간 동안 전국 기초지자체에서 매장문화재 업무를 맡은 공무원은 총 1,404명이었다. 그중 행정직이 860명(61%)으로 가장 많았고 학예 연구직은 329명(24%)에 그쳤다. 학예 연구직 중에 고고학이나 고고미술사학 등을 전공한 사람은 105명이었고, 나머지는 역사학이나 민속학 전공자도 적지 않았다. 매장문화재 담당 공무원 중에는 기능, 시설 담당직도 215명(15%)이 있었다. 건축이나 시설 보수 등을 담당하는 직원이 임시로 문화재 업무를 맡는 셈이다. 이 통계에는 정보공개청구에 응하지 않은 서울 강남구와 인천 부평구 등 11곳의 기초 지자체는 제외했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매장문화재 업무를 대신 맡고 있는 지역인데, 지난 20년간의 근무 현황은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단, 11곳에 포함된 경상남도 의령군은 YTN 조사 시점인 7월 이후에 매장문화재 담당 학예 연구직이 부임했지만, 이전에는 담당 직원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능•시설 직군이 매장문화재를 담당해온 지역을 추려내면, 충남 태안 (12/12, 20년간 매장문화재 업무를 담당한 관내 공무원 12명 중 12명 전원이 기능 시설직), 광주 북구(11/12), 전남 곡성 (9/11), 경북 영천(9/10), 인천 계양구(8/9)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반면에 경북 경주(9/9), 경남 김해(8/8), 경기 안성(7/8), 인천 강화군(6/7), 충남 논산(6/7) 등은 학예 연구직군이 매장문화재 업무를 담당하도록 해왔다. 문화재 조사 관련 협의 업무가 많은 경주와 김해 등은 3~4명의 학예연구사가 근무하고 있다. 일부 학예연구사는 20년이 넘게 한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사례도 있었다. (경주와 김해 등 복수의 매장문화재 담당 직원이 있는 경우는 점 차트에 일부 직원만 표시함) 반면에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일부 광역시 구청 및 대도시에는 매장문화재 업무를 주로 행정직이 맡고 있었다.

⑤[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

직군별 평균 근속연수를 비교하면 학예 연구직은 4.4년으로 가장 길었고, 기능시설이 1.9년이며, 행정직은 1.3년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근무 기간이 긴 학예 연구직이라 해도 1~2년도 안 되어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떤 학예 연구직 공무원은. "건축 인허가 관련 민원인과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라, 몇 년 일하다가 박물관 쪽으로 직장을 옮기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행정직 공무원의 평균 근무 기간 1.3년은 지역 문화재 실태에 대한 지식과 업무 노하우를 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가령 일부 공무원은 3만㎡ 미만의 소규모 공사라도 지자체가 '입회조사'(건설 공사 초기에 전문가가 참관해 매장문화재 출토 여부를 살펴보는 조사)나 '표본조사'(건설 면적 중 유존지역에 해당하는 영역의 2% 이하 범위에서 매장문화재 존재 여부를 표본 조사)를 조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잦은 인사이동이나 사직으로 인한 문화재 행정의 공백은 우려가 아닌 현실이었다.

한 지자체 문화재 전담 공무원은 "현행법은 문화재 조사와 관련해 많은 부분을 지자체가 판단하게 해놓았다면서,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내부라고 해도 지자체 공무원의 판단에 따라 소규모 공사는 아무런 문화재 조사 없이 진행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초지자체 문화재 담당 공무원 중 매장문화재법 체계를 전부 파악하고 있는 직원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업무 시간의 1/3 정도만 문화재 업무를 보고 나머지는 체육 관련 일을 하는 직원도 있다. 건축 인허가에 대해 문화재 협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공무원도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자가 접촉한 지자체의 매장문화재 담당 공무원 중에는 문화재 보호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법 제도상의 문제점과 문화재청과의 소통 문제 등을 들면서, 업무 중에 알게 모르게 겪는 제약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심지어 다른 부서의 동료 공무원에게도 너 때문에 지역 발전이 안 된다는 말까지 듣는다"면서 업무의 고충을 토로했다. 문화재 조사를 규제나 부당한 간섭으로 여기는 전반적 인식 속에, 인력과 제도의 미비점이 더해져 행정의 난맥상은 복합적인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취재 • 기사 • 데이터 분석 : 함형건 기자 [hkhahm@ytn.co.kr]
데이터 시각화 : 김노현
그래픽 디자인 : 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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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소규모 난개발의 습격…매장문화재 SOS 지도




② 방치된 백제 토성…소규모 난개발의 그늘




③ 문화재청 지도 정보 무더기 누락..."행정에 구멍"




④ 유적 발굴해놓고 나 몰라라...55% 부실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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