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오르고' 성장률은 '꺾이고'...밀려오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와이파일]

물가는 '오르고' 성장률은 '꺾이고'...밀려오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와이파일]

2026.04.12. 오후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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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는 '오르고' 성장률은 '꺾이고'...밀려오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와이파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주유소 <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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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향한 21시간이 결국 빈손으로 끝났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4월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역사적인 직접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 없이 막을 내렸습니다. 협상을 이끈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란이 우리의 최종적이고 최선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밝혔고, 한 달 넘게 이어진 전쟁의 재확전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1979년 이란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 최고 수준의 미·이란 직접 대화였지만, 두 나라는 단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는 결론만 남겼습니다.

협상의 핵심 걸림돌은 분명했습니다. 이란 측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 문제와 핵물질 제거 요구가 지나치다며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습니다. 이란 의회 의장 갈리바프는 미국이 이란 대표단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고 직격했습니다. 이제 공은 이란 쪽에 넘어갔지만, 밴스 부통령이 "미국의 최종 제안"이라고 못 박은 만큼, 추가 협상이 열리려면 이란이 먼저 입장을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협상 결렬이 단순한 지정학적 불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전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협상 결렬 이후에도 사실상 봉쇄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협상 결렬 소식에 유가는 다시 반등했고, 전 세계 경제는 다시 숨을 죽였습니다. 시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닙니다. 성장은 꺾이고,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수십 년 만에 이 단어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숫자가 먼저 말했다!

이번 전쟁이 경제에 남긴 상처는 이미 통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했습니다. 에너지 비용이 10.9% 급등한 것이 주요인이었습니다. 특히 휘발유 가격은 3월 한 달 만에 21.2% 치솟았는데, 이는 1967년 이후 가장 큰 월간 상승폭입니다. 2월 인플레이션율이 2.4%였던 것을 감안하면, 단 한 달 만에 물가 흐름이 완전히 바뀐 셈입니다.

전쟁 직전 배럴당 73달러였던 브렌트유는 현재 96달러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가장 먼저 지갑을 때렸고, 충격은 시차를 두고 다른 품목으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4월 17일부터 물류 비용 상승을 이유로 서드파티 판매자들에게 연료 및 물류 할증료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UPS, 페덱스 등 주요 택배사들도 전쟁 개시 이후 유류 할증료를 올렸습니다.

성장 전망 역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Now 모델이 4월 2일 기준으로 추정한 1분기 GDP 성장률은 1.6%로, 3월 초 3% 이상이었던 것에서 크게 낮아졌습니다. 연준은 3월 회의에서 2026년 금리 인하를 1회로 전망하면서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상향 조정했습니다. 다만 다음 해인 2027년에는 물가가 뚜렷하게 내려올 것이라는 조건부 낙관론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경제학자 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응답자들은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연초의 2.2%에서 2.0%로 낮춰 잡았고, 연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6%에서 3.2%로 높였습니다. 향후 12개월 내 경기침체 확률은 1월의 27%에서 33%로 올랐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어디까지 왔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경기 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입니다. 물가가 오를 때는 경기가 좋고, 경기가 나쁠 때는 물가가 안정되는 게 경제의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이 두 가지 나쁜 조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교과서가 가장 다루기 싫어하는 상황입니다.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는 현 상황을 "가벼운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규정했습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피어스도 이란 전쟁이 성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물가를 자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을 가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한발 물러서 있습니다. 파월은 "스태그플레이션은 실업률이 두 자릿수이고 인플레이션도 두 자릿수였던 1970년대의 용어"라면서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실제로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2월 기준 4.4%이고 인플레이션은 3.3%로, 1970년대 말의 수치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파월 자신도 관세 충격, 팬데믹, 그리고 이번 에너지 충격까지 반복되는 공급 충격의 누적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혔습니다. 단어를 빌리지 않으면서도 개념은 인정하는 셈입니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오스탄 굴스비는 에너지 시장 충격이 고용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방향의 충격이야말로 "중앙은행이 다뤄야 할 최악의 상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금리를 올리면 되고, 경기침체 국면에서는 금리를 내리면 되지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벌어지면 명확한 해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연준이 처한 딜레마의 본질입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유지하거나 올려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 방향의 압력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파월은 "금리 전망은 경제 성과에 달려 있으며, 물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금리 인하도 없다"고 못 박으면서, 동시에 중동 사태가 통화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자신도 "정말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AP/연합뉴스>



지금과 1970년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1970년대가 소환됩니다. 1973년 아랍 산유국의 석유 금수 조치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미국 경제를 10년 가까이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14%에 육박했으며 실업률도 두 자릿수를 오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번 전쟁도, 1973년의 아랍 석유 금수 조치도, 핵심 원인은 에너지 공급의 갑작스러운 차단이었습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남긴 핵심 교훈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한번 고착화되면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은 가격을 더 자주 올리는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연준은 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리는 이른바 '볼커 쇼크'를 감행했고, 그 부작용으로 극심한 불황이 찾아왔습니다.

차이점도 분명합니다. 당시에는 에너지 공급 충격만으로도 두 자릿수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했지만, 지금의 미국 경제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셰일오일 등 국내 생산 기반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인플레이션 기대는 아직 '고착화'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1970년대의 충격은 에너지 공급 차단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충격은 복합적입니다. 관세 정책으로 인한 무역 혼란, 이민 정책 변화로 인한 노동 공급 축소,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KPMG의 다이앤 스웡크가 "단순한 유가 충격을 넘어선다"고 말한 것도 이 맥락에서입니다. 파월 의장이 반복되는 충격의 누적을 우려한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호르무즈가 막히면, 한국 경제가 멈춘다

이란 전쟁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 하나로 설명됩니다. 우리나라는 도입 원유의 95% 이상, LNG의 20% 이상을 중동에서 조달합니다. 이 물량의 사실상 전부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전쟁 초기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을 때의 충격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두바이유는 한때 배럴당 157달러 이상까지 폭등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돌파했고, 코스피는 7.24% 급락했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란 분쟁 이후 한국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은 비교전 국가가 없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CSIS는 향후 2~6개월 동안 운송, 물류, 석유화학, 농업, 식음료 전반에 걸쳐 물가 상승 압력이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기관들의 수치 전망도 엄중합니다. OECD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낮췄는데, 이 하락폭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큽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쟁이 전면전으로 장기화될 경우 GDP 성장률이 0.8%포인트 추가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2.9%포인트 상승하며, 경상수지는 767억 달러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산업연구원은 호르무즈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전쟁이 조기에 끝나더라도 국제 유가가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조기 종전 시에도 배럴당 90달러, 봉쇄 장기화 시에는 117달러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중동 전쟁으로 물가의 상방 압력과 성장의 하방 압력이 함께 증대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큰 만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소비 위축으로 대미 수출이 감소하고, 에너지 수입 비용은 늘고, 원화 약세로 수입물가는 더 오르는 삼중 압박이 한국은행을 옥죄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약 208일분의 비축유를 보유 중이며,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한 상태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르무즈를 경유하지 않는 대체 공급선을 신속히 발굴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UPI/연합뉴스>

경제학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두려운 이유는 해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해법들이 서로를 막기 때문입니다. 물가를 잡는 도구는 성장을 꺾고, 성장을 살리는 도구는 물가를 자극합니다. 중앙은행은 한 방향만 바라보고 달릴 수 없는 상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은 결렬됐고, 호르무즈는 여전히 막혀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가 얼마나 더 오래 불확실성 속에 갇혀 있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합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버나드 야로스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 전망에서 핵심 변수는 이란 전쟁의 기간과 강도이며, 이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남긴 진짜 교훈은 '충격의 크기'가 아니라 '대응의 타이밍'에 있었습니다. 볼커 의장이 금리를 너무 늦게, 너무 가파르게 올린 결과 경기침체라는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지금의 연준과 한국은행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불확실성 속에서도 선명한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번 전쟁이 일으킨 경제적 파장은, 총성이 멈춘 뒤에도 훨씬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습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치르게 될 긴 대가의 첫 장일 수 있습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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