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미사일 배경으로 웨딩 파티?...'이란-이스라엘' 관전하는 아랍의 달라진 현실

밤하늘 미사일 배경으로 웨딩 파티?...'이란-이스라엘' 관전하는 아랍의 달라진 현실

2025.06.18. 오후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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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 시민들이 휴대폰을 들고 밤하늘을 촬영합니다. 이란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레바논 상공을 가로지르며 이스라엘을 향해 날아가는 순간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공포 대신 호기심이, 긴장 대신 여유가 스며 있습니다. 어떤 이는 미사일 궤적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또 다른 이는 "오늘 밤 하늘 쇼가 볼 만하다"며 SNS에 영상을 올립니다. 레바논에서 유행하는 소셜미디어 트렌드입니다.

미사일을 즐길거리로 관전하는 듯한 레바논의 모습은 아랍 세계가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바라보는 근본적 태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전쟁이 더 이상 '우리(아랍)의 전쟁'이 아니라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것, 이는 중동 지정학에서 전례 없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를 떠올려보면 현재 상황의 특이함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시작된 이 전쟁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 형제국들을 지지하며 서방국가들을 상대로 오일 쇼크를 일으켰습니다. 아랍 세계는 하나로 뭉쳐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들에 맞섰고, 석유를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 충돌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합니다. 성명 한 줄 내지 않는 나라들이 태반이고, 내놓는다 해도 "자제와 대화"를 촉구하는 의례적 수준에 그칩니다.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침묵으로 보입니다

아랍 국가들의 이란에 대한 시각은 지난 20년간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을 떠받치기 위해 개입한 것, 예멘에서 후티 반군을 지원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한 것, 레바논 헤즈볼라와 이라크 민병대를 통한 대리전 확산 등이 누적되면서 아랍 세계는 이란을 '지역 안정의 파괴자'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9년 사우디 아람코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사우디는 이란의 위협을 직접 체감하면서 실용적 중립 정책으로 선회했습니다. "이란의 적은 우리의 친구"라는 단순한 논리보다는 "이란도 이스라엘도 우리에게는 위험하다"는 복합적 계산이 우선하게 된 것입니다.

시리아 내전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수니파 반정부군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개입으로 시아파 계열인 아사드 정권이 버텨냈습니다. 결과적으로 50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되었지만, 이란은 시리아에서 이스라엘까지 이어지는 '시아 초승달 벨트'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랍 국가들에게는 뼈아픈 패배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랍 세계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간인 피해는 아랍 여론의 반이스라엘 정서를 다시 자극했습니다. 2020년 UAE와 이스라엘의 수교로 시작된 관계 정상화 움직임도 사실상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복잡한 계산이 작용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약화시킨다면 아랍 국가들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 저지된다면 걸프 국가들의 안보 위협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란이 타격받기를 바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모든 아랍 국가가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타르의 경우 알자지라를 통해 여전히 이란에 우호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터키와 함께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카타르로서는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신중한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2019년 드론 공격의 트라우마와 '비전 2030'으로 상징되는 경제 개혁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분쟁에도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합니다. 현재 사우디는 이란과의 관계 개선까지 모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UAE는 이미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은 상황에서 지역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국제 금융과 물류의 허브로 발전시키려는 UAE로서는 전쟁보다는 평화가 절실합니다.

이집트는 전통적인 아랍 리더십을 유지하려 하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적극적 개입보다는 중재자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베이루트 시민들이 미사일을 구경거리로 여기는 현상은 전쟁이 일상화된 중동 지역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보여줍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간 내전을 겪었고,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2019년 경제 붕괴,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등을 연이어 경험한 레바논 사람들에게 전쟁은 더 이상 충격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체념과 "이번에는 우리 문제가 아니다"는 안도감이 뒤섞인 것이 현재의 정서입니다. 더 나아가 "이란도 이스라엘도 우리를 괴롭혔으니 서로 싸우라"는 냉소적 태도까지 나타납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동 지정학의 근본적 재편을 시사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대 아랍 세계'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란 대 이스라엘을 지켜보는 아랍 세계'라는 삼각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더 이상 종파적 연대나 이념적 대립보다는 실용적 국익을 우선시합니다. 특히 걸프 국가들의 경우 석유 수익을 바탕으로 한 경제 다각화와 국가 발전 전략이 지역 분쟁 개입보다 우선순위에 놓여 있습니다.

현재의 '전략적 침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만약 이란 정권이 붕괴하거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압도적으로 제압한다면, 아랍 국가들의 계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중동 정책 변화나 중국의 중동 진출 확대 등 외부 변수들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랍 세계가 더 이상 감정이나 이념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21세기 중동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보다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택하고 있습니다. 어느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모든 옵션을 열어두는 전략적 모호성, 이것이 바로 현재 아랍 세계가 택한 길입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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