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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의 영웅 잠들다
Posted : 2006-12-23 06:05
[앵커멘트]

일제 치하에서 강제 징용된 재일동포들의 집단 거주지로 한때 강제 철거의 위기를 겪기도 했던 우토로 마을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마을의 최고령자로 우토로 지키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던 최중규 할아버지가 90세를 일기로 별세했기 때문입니다.

교토 우토로에서 박은미 리포터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우토로의 최고령자였던 최중규 할아버지가 향년 90세의 나이로 지난 17일 숨을 거뒀습니다.

젊은 시절 강제노역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평생 꼿꼿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던 최 할아버지가 끝내 고통과 회한으로 얼룩진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난 최 할아버지는 26살 때 일본 후쿠오카의 텐도 탄광으로 강제 징용돼 혹독한 노역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인터뷰:사이토 마사키,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회원]
"생존자의 증언을 듣고 연구하는 운동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해방 이후 재일조선인 마을 우토로에 새 터전을 마련한 최중규 할아버지는 다시한번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일본 민간기업이 우토로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며 강제 철거를 요구했고 법원이 그들에게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우토로 주민들은 투쟁에 나섰고, 그 선봉에는 항상 최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인터뷰:마정웅, 사위]
"아버님께서 이 땅을 샀어요…근데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면 첨부터 살지 말라그러지…"

마이니치와 교토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역사 속 산증인의 죽음을 주요 뉴스로 전하며 고인을 애도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우토로 지키기 투쟁에서 마을의 어른으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최 할아버지의 죽음에 마을 주민들의 슬픔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김교일, 우토로 마을회장]
"마을의 큰 어른이셨던 고인은 우토로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저도 많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기자]
최 할아버지의 유골은 한국에서 온 손자의 품에 안겨 고인이 그토록 염원했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교토 우토로에서 YTN 인터내셔널 박은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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