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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승민 앵커, 박석원 앵커
■ 출연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아 온 배우 최불암 씨가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사반장'부터 '전원일기'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우리 시대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배우였는데요. 67년에 걸친 연기 인생과 고인이 대중문화계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겠습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앵커]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거고 그리고 참 안타까워하는 추모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어젯밤에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건강이 안 좋다고 알려지기는 했었는데 어떤 상황이었던 건가요?
[김헌식]
사실 지난해 3월 같은 경우 허리 디스크 때문에 수술을 받게 됐다면서 오랫동안 진행했던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하차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의 밥상 같은 경우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야외 활동을 하다 보니까 디스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지난 6월달에 병문안 온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특유의 환한 웃음을 보여주셔서 결국에는 돌아오실 거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갑작스럽게 비보를 전하게 된 거죠. 아무래도 향년 87세다 보니까 만 85세는 초고령 나이에 속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환절기에는 참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데 이런 요인들이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공식적인 병명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생전 병상에서 퇴원 후에 막걸리 한 잔을 곧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고 돌아오시지 않으셔서 많은 국민들이 슬픔,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고 계십니다.
[앵커]
고인이 대중문화계에 남긴 발자취도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처음 배우로 첫발을 내디딘 과정부터 짚어볼까요.
[김헌식]
드라마 같은 경우 130여 편 하셨고요. 또 영화도 90여 편이나 됩니다. 그리고 연극도 55편 정도 이렇게 남기셨는데요. 서라벌예대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거치면서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요. 원래는 연출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역을 맡게 되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1959년에 연극 햄릿으로 정식 데뷔를 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햄릿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연기력을 평가받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만 20살이니까 최연소로 햄릿을 맡아서 굉장히 인기를 끌었고 연기력을 일단 인정받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1965년부터 국립극단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마는 국립극단은 연기력이 출중한 최고의 배우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요.
그리고 1969년, 1979년에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아서 연기자로서의 연극배우의 기량도 충분히 보여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가 미디어가 바뀌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1967년에 서울중앙방송, 지금의 KBS 탤런트라는 이름을 그때 사용했잖아요. 6기로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데뷔하게 되는 그런 순으로 가게 됐습니다.
[앵커]
처음부터 연기를 꿈꿨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작부터 상당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해 주셨는데 1967년 방송계에 진출한 이후에 다양한 연기들을 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20대 젊은 나이에 노년의 김종서 역할을 맡았다라는 점이 당시에도 상당히 화제가 됐었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20대에 노년의 역할을 맡았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했다, 이런 평가들을 받았었죠?
[김헌식]
그렇죠. 사실 전원일기에서 일용 엄니가 할머니 역할을 해서 화제가 됐지만 사실은 최불암 선생님 같은 경우에도 28살에 김종서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 김종서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있지 않습니까, 나잇대별로. 그런데 계유정난을 생각하시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나이대인데 그때는 김종서가 굉장히 노년이었습니다. 그 역할을 28살짜리가 했다는 거죠. 사실 햄릿도 어린 나이에 하기에는 굉장히 인기력이 출중해야 되거든요. 마찬가지로 김종서도 그런 입장에서 보시면 되겠고. 그리고 이후에 1980년에 제1공화국에서 이승만 대통령 연기를 하거든요. 이승만 대통령이 그 당시에 80세였어요. 그런데 최불암 선생님이 41살이었거든요. 거의 40년을 넘어서면서 그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요. 그렇지만 주로 주연배우만 하신 건 아니에요. 그래서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여옥의 아버지 역할로 독립운동가 역할도 했었지 않습니까? 그 외에도 영웅시대, 식객 같은 다양한 작품에서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보여줬다. 그건 제가 봤을 때는 아무래도 연극배우들은 특히 기본적으로 주, 조연 따지지 않거든요. 자기가 필요한 인기력에 맞춰서 연기를 하기 때문에 그 정신이 드라마 연기나 영화 연기에도 계속 이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진정한 연기자셨군요. 그런 구력이 쌓여서였겠죠. 수사반장, 전원일기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알 만큼 신뢰와 친근함의 대명사가 됐었는데 그런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헌식]
일단 대표적인 작품이 수사반장하고 전원일기를 떠올릴 수 있는데요. 장르는 다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한 편은 수사드라마고 한 편은 농촌 드라마잖아요. 그런데 일맥상통한 게 있습니다. 뭐냐하면 당시에 결핍된 부분들을 채워줬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수사반장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인간적인 반장으로 나와요. 당시에는 사실 경찰이나 수사관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수사하면서도 범죄자를 절대 악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시대적 모순에 따라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휴머니즘의 측면을 보여주고 수사 종결하고 나서 담배 한 개피를 주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그런 공권력이 어땠으면 좋았을까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보고요. 전원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촌향도라고 해서 우리나라가 수도권과 도시화 집중하는 측면이 있었고 산업화에 따라서 고향을 떠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엄격하면서도 속심이 있는 자식을 생각하는 그런 아버지, 시골에 있을 것 같은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니까 참 고향을 떠나오신 분들이 전원일기를 20년 이상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아버지상을 보여줬다는 것이죠. 특히나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주연 많이 맡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잘생기고 멋지고 키도 크고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최불암 선생은 그런 쪽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서민의 이미지를 통해서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를 평생 보여줬기 때문에 이렇게 한국인의 아버지 역할로서 사랑을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이렇게 연기력이 너무나도 출중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모두가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국민 배우신데 그런데 최불암 선생 같은 경우에는 사실 연기만 한 게 아니라 유머적인 면에서도 많은 화제가 됐었고 특유의 웃음소리도 화제가 됐었고 여러 가지 캐릭터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실 파 하는 웃음을 흉내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수사반장이나 그리고 전원일기에서의 모습을 첫 번째 보면 주름살이 가득한 고뇌하는 어른의 모습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기침하듯이 파 웃음소리를 터뜨린단 말이죠. 이런 부분들이 반전의 웃음 캐릭터로서의 표현이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친근함과 소탈함을 같이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죠. 더구나 따뜻하고 중후한 연기를 통해서 보여주는 내면 연기에다가 목소리도 거기에 굉장히 부합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한국적인 연기 내면 세계들을 잘 보여준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리고 최불암 시리즈를 통해서 젊은 층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어서 전 국민들에게 정말 국민 아버지 그리고 친근한 배우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었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까지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 최불암 배우의 연기 인생 그리고 발자취 들어봤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YTN 오동건 (odk79829@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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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아 온 배우 최불암 씨가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사반장'부터 '전원일기'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우리 시대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배우였는데요. 67년에 걸친 연기 인생과 고인이 대중문화계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겠습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앵커]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거고 그리고 참 안타까워하는 추모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어젯밤에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건강이 안 좋다고 알려지기는 했었는데 어떤 상황이었던 건가요?
[김헌식]
사실 지난해 3월 같은 경우 허리 디스크 때문에 수술을 받게 됐다면서 오랫동안 진행했던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하차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의 밥상 같은 경우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야외 활동을 하다 보니까 디스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지난 6월달에 병문안 온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특유의 환한 웃음을 보여주셔서 결국에는 돌아오실 거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갑작스럽게 비보를 전하게 된 거죠. 아무래도 향년 87세다 보니까 만 85세는 초고령 나이에 속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환절기에는 참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데 이런 요인들이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공식적인 병명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생전 병상에서 퇴원 후에 막걸리 한 잔을 곧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고 돌아오시지 않으셔서 많은 국민들이 슬픔,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고 계십니다.
[앵커]
고인이 대중문화계에 남긴 발자취도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처음 배우로 첫발을 내디딘 과정부터 짚어볼까요.
[김헌식]
드라마 같은 경우 130여 편 하셨고요. 또 영화도 90여 편이나 됩니다. 그리고 연극도 55편 정도 이렇게 남기셨는데요. 서라벌예대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거치면서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요. 원래는 연출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역을 맡게 되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1959년에 연극 햄릿으로 정식 데뷔를 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햄릿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연기력을 평가받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만 20살이니까 최연소로 햄릿을 맡아서 굉장히 인기를 끌었고 연기력을 일단 인정받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1965년부터 국립극단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마는 국립극단은 연기력이 출중한 최고의 배우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요.
그리고 1969년, 1979년에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아서 연기자로서의 연극배우의 기량도 충분히 보여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가 미디어가 바뀌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1967년에 서울중앙방송, 지금의 KBS 탤런트라는 이름을 그때 사용했잖아요. 6기로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데뷔하게 되는 그런 순으로 가게 됐습니다.
[앵커]
처음부터 연기를 꿈꿨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작부터 상당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해 주셨는데 1967년 방송계에 진출한 이후에 다양한 연기들을 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20대 젊은 나이에 노년의 김종서 역할을 맡았다라는 점이 당시에도 상당히 화제가 됐었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20대에 노년의 역할을 맡았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했다, 이런 평가들을 받았었죠?
[김헌식]
그렇죠. 사실 전원일기에서 일용 엄니가 할머니 역할을 해서 화제가 됐지만 사실은 최불암 선생님 같은 경우에도 28살에 김종서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 김종서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있지 않습니까, 나잇대별로. 그런데 계유정난을 생각하시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나이대인데 그때는 김종서가 굉장히 노년이었습니다. 그 역할을 28살짜리가 했다는 거죠. 사실 햄릿도 어린 나이에 하기에는 굉장히 인기력이 출중해야 되거든요. 마찬가지로 김종서도 그런 입장에서 보시면 되겠고. 그리고 이후에 1980년에 제1공화국에서 이승만 대통령 연기를 하거든요. 이승만 대통령이 그 당시에 80세였어요. 그런데 최불암 선생님이 41살이었거든요. 거의 40년을 넘어서면서 그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요. 그렇지만 주로 주연배우만 하신 건 아니에요. 그래서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여옥의 아버지 역할로 독립운동가 역할도 했었지 않습니까? 그 외에도 영웅시대, 식객 같은 다양한 작품에서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보여줬다. 그건 제가 봤을 때는 아무래도 연극배우들은 특히 기본적으로 주, 조연 따지지 않거든요. 자기가 필요한 인기력에 맞춰서 연기를 하기 때문에 그 정신이 드라마 연기나 영화 연기에도 계속 이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진정한 연기자셨군요. 그런 구력이 쌓여서였겠죠. 수사반장, 전원일기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알 만큼 신뢰와 친근함의 대명사가 됐었는데 그런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헌식]
일단 대표적인 작품이 수사반장하고 전원일기를 떠올릴 수 있는데요. 장르는 다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한 편은 수사드라마고 한 편은 농촌 드라마잖아요. 그런데 일맥상통한 게 있습니다. 뭐냐하면 당시에 결핍된 부분들을 채워줬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수사반장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인간적인 반장으로 나와요. 당시에는 사실 경찰이나 수사관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수사하면서도 범죄자를 절대 악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시대적 모순에 따라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휴머니즘의 측면을 보여주고 수사 종결하고 나서 담배 한 개피를 주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그런 공권력이 어땠으면 좋았을까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보고요. 전원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촌향도라고 해서 우리나라가 수도권과 도시화 집중하는 측면이 있었고 산업화에 따라서 고향을 떠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엄격하면서도 속심이 있는 자식을 생각하는 그런 아버지, 시골에 있을 것 같은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니까 참 고향을 떠나오신 분들이 전원일기를 20년 이상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아버지상을 보여줬다는 것이죠. 특히나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주연 많이 맡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잘생기고 멋지고 키도 크고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최불암 선생은 그런 쪽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서민의 이미지를 통해서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를 평생 보여줬기 때문에 이렇게 한국인의 아버지 역할로서 사랑을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이렇게 연기력이 너무나도 출중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모두가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국민 배우신데 그런데 최불암 선생 같은 경우에는 사실 연기만 한 게 아니라 유머적인 면에서도 많은 화제가 됐었고 특유의 웃음소리도 화제가 됐었고 여러 가지 캐릭터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실 파 하는 웃음을 흉내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수사반장이나 그리고 전원일기에서의 모습을 첫 번째 보면 주름살이 가득한 고뇌하는 어른의 모습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기침하듯이 파 웃음소리를 터뜨린단 말이죠. 이런 부분들이 반전의 웃음 캐릭터로서의 표현이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친근함과 소탈함을 같이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죠. 더구나 따뜻하고 중후한 연기를 통해서 보여주는 내면 연기에다가 목소리도 거기에 굉장히 부합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한국적인 연기 내면 세계들을 잘 보여준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리고 최불암 시리즈를 통해서 젊은 층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어서 전 국민들에게 정말 국민 아버지 그리고 친근한 배우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었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까지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 최불암 배우의 연기 인생 그리고 발자취 들어봤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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