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 언론을 묻다 1부 암살자(들) vs 현실 [이부영 동아투위원장 인터뷰] 여기잇슈

그 시대, 언론을 묻다 1부 암살자(들) vs 현실 [이부영 동아투위원장 인터뷰] 여기잇슈

2026.10.22. 오전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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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의 시대, 언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 시절을 온몸으로 버텨낸 해직 기자의 증언을 현재와 미래로 이어질 기록으로 남깁니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고된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입니다.


1부. 암살자(들) vs 현실

▷(한동오 기자)
위원장님은 영화에 등장하는 동성일보 기자들의 실제 모델이 되는 시대를 사셨는데요. 50여 년 만에 그때 기자들이 영화로 등장했는데, 어떤 기분이셨나요?

▶이부영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동아일보 해직기자 / 이하 동아투위 위원장)
그걸 보면서 원래 주제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관련된 이런 건 줄 알고 갔는데. 거의 그것이 자유언론운동의 맥을 같이 하는 그런 것으로 만들어져서. 그 긴박한 분위기나 그런 걸 보고 굉장히 뭉클한 감정을 느꼈어요.

▷(한동오 기자)
어떤 장면이 그렇게 뭉클하셨어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기자들이 기사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별별 일을 다 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일본에도 출장을 가고 국내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진실을 얘기하려는 경찰관 출신 이런 사람도 만나서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시절이 떠올랐던 거죠.

▷(한동오 기자)
영화에서 박해일 배우가 연기하는 사회부장은 중정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기사를 썼었는데 당시에도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있었나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 당시에는 정부에서 발표하고 이러는 거에 대해서
토를 붙이질 못했어요.

▷(한동오 기자)
토를 못 달았나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예. 못 달았어요. 발표하는 거 그대로 받아쓰라 이 말이에요. 그때는 유신체제고 긴급조치가 발동된 시대였거든. 더더구나 국가원수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그 국가원수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그러니까 반공 궐기대회가 계속 일어나고 뭐라고 얘기 조금만 했다간 그 사람들한테 맞아 죽을 그런 분위기였다고.

▷(한동오 기자)
영화에는 중앙정보부 기관원이 신문사에 들어와서 언론인을 협박하고 폭행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도 신문사 내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런데요. 이런 점은 지금도 우리가 독재정권이라도 그 진상을 알아야 되는 게 신문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굉장히 급수가 높은, 특히 동아일보에 나오는 사람은 급수가 높은 정보기관원 조정자들이었어요. 우연치 않게 그 정보기관 책임자 이름이 방준필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방주필'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절대로 언사를, 과격 언사를 쓰지 않아요. 자기들이 와서 조정을 해서 목표를 이루질 못하고 그런데 그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경우일 경우는 '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질 겁니다', ' 참 어려움이 따를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간접화법을 써요. 그러고 일단 정보부로 끌려가면 그때부터 분위기 달라지는 거예요. 그 안에 들어가면 폭력도 쓰고 온갖 협박을 다하고 그렇게 바꿔놓는. 그러니까 역할 분담이죠. 여기 밖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쪽 사람들하고 계속 일을 해야 되니까 언론사하고 일을 해야 되니까 그렇게 폭압적이고 거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일단 그쪽으로 끌려간 사람에게는 중앙정보부 내부는 전혀 다른 얼굴이 완전히 야수의 얼굴로 변하는 거예요.

▷(한동오 기자)
'굿캅, 배드캅'처럼 착한 경찰, 나쁜 경찰로 역할을 나눠갖고 했나 보네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것은 독재정권 시대의 정보기관, 언론을 다루는
기관들의 한결같은 모습이 그런 거였어요.

▷(한동오 기자)
위원장님도 혹시 그때 중정에 불려 가시거나 아니면은 주변에 불려가시는 걸 보시거나 하셨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내가 구류 같은 건 많이 살고 또 징역도 내가 한 7년 반을 살았어요. 그러면서 4번을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가고 한 번을 계엄포고령으로 잡혀갔는데. 일단은 끌려갈 때는 그냥 끌려가더라도 거기 들어가면 우선 기죽이려고 매타작부터 하는 거죠. 그런 걸 많이 당했어요.

▷(한동오 기자)
실제로도 맞으셨던 거예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럼. 그런데 전기고문 같은 건 안 당했다고.

▷(한동오 기자)
뭐로 맞으셨어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거기 가면 매를 때리는데 군대에 가면 곡괭이라는 게 있죠, 곡괭이. 곡괭이를 이렇게 나무를, 나무 자루를 뺐다 끼웠다 할 수 있게 해놨어요. 맨 끝에는 이렇게
곡괭이가 빠지지 않게 해 놓고 그 밑에는 이렇게 몽둥이가 이만한 건데 아주 단단한 몽둥이잖아요. 곡괭이 자루라고 그러잖아요. 그런 걸로 보통 때린다고.

▷(한동오 기자)
어디를 그렇게 때리는 거예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이런 옆에도 때리고 등도 때리고 주로 때리는 게 엉덩짝하고 허벅지를 많이 때리죠.

▷(한동오 기자)
엄청 아프셨겠어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어... 많이 아프지. 멍도 들고. 그런데 그때는 그런
걸 또 견딜 정도로 마음이 돼 있다고.

▷(한동오 기자)
그때 맞으셨던 거는 위원장님께서 기사 때문에 갔던 건 아니었고 다른 것 때문에 가셨던 건가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주로 내가 그들한테 가장 밉보인 것은 외신 기자들, 동아의 광고 해약 사태나 동아일보의 언론 자유를 취재하러 온 외신 기자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 굉장히 동경의 지국장들이 주로 와서 취재를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나 영국의 더 타임즈나 가디언이라든지 프랑스의 르몽드나 리베라시옹 같은 그런 잡지들(신문들). 동경특파원 내지 서울에 주재하는 아사히신문, 요미우리 신문, 마이니치 신문 이런 사람들 인터뷰를 많이 하니까 그 사람들이 그 신문들, 방송들은 중앙정보부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대외적으로 굉장히 역량이 컸다고 말이에요. 외신들, 외국의 신문방송 이런데. 그런 쪽에 언론에 제일 많이 나가니까 아주 제일 미워했지. 제일 미워했어요. 그리고 내가 또 노동조합의 섭외부장이라는 걸 하고. 또 노동조합에 이어진 자유언론운동 거기에 또 대변인이었다고. 대변인이어서 그런 걸 맡았단 말이에요. 좀 끌고 갔을 때는 국가보안법, 반공법, 긴급조치 이런 걸로. 근데 대학 동기였던 성유보 씨라고 그 친구는 조직부장이었고. 그래서 나하고 성유보를 제일 먼저 잡아갔어요. 국가보안법 보고 긴급조치로.

▷(한동오 기자)
기자 생활을 하시다가 사실상 기사 쓰는 것 관련해서 중정에 끌려가셨던 거네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취재원이 돼서 간 거지. 그러니까 내가 글을 쓰는 것보다 글을 쓰도록 만들고 그런 걸 널리 알리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성유보 씨는 내부에서 조직 관리하고 이랬다는 것 때문에 잡혀간 거죠.

▷(한동오 기자)
1974년 8월 15일에 육영수 여사가 피격을 당했었는데 위원장님께서는 그때 어디에 계셨고, 또 동아일보 편집국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었나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내가 그땐 문화부에서 근무를 했어요. 근데 그때는 뭐 짐작하겠지만 긴급조치하고 이렇기 때문에.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에서는 정부에서 발표되는 거 이외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그래서. 문화부가 그나마 좀 나왔던 거예요. 종교계나 또 법조계 또 학계 이런 데를 취재하잖아요. 이 사람들이 문화부에서 담당해서 취재하는데, 그 학자들이나 종교인들, 시인, 소설가 이런 사람들은 얘기를 좀 해서 문화부가 기사를 꽤 많이 쓸 수가 있었어요. 대학 취재를 하고 이러니까. 그날도 내가 74년 8월 15일 오전에 문화부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데. 지금 기자가 앉아있는 그런 쪽에 그쪽에 사진부가 있었어요. 사진부의 캐비닛 위에 텔레비전이 있어서 내가 그걸 항상 보고 기사를 쓰고 그랬는데. 그날은 국립극장에서 8.15 기념식, 실황중계가 있었단 말이에요. 대통령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고 그러는데 총소리가 나면서 대통령이 숨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니까, 아! 하고 전부 다들 놀라서 그러니까 편집국에 있던 사람들이 부차장,
국장할 것 없이 전부 이 텔레비전에 있는 데로 몰려왔다고. 내가 앉아있는 뒤쪽에 다 서서 보고. 그런데 그때 육영수 여사가 오른쪽으로 이렇게 기울어져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하여튼 그렇게 넘어져 있는 광경이 보이면서 바로 그 경호실장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총을 또 쏘는 이런 장면이 벌어진 것. 신문 만들다가 전부 다 한참 그때 바쁠 게 아니에요. (오전) 9시 반 이때가. 빨리 또 사회부장이나 이런 사람들은 경찰 기자나 이런 사람들에 지시해서 기사 어떻게 하자. 그때부터 딴 건 다 중단되고 그 하나에만 전부 다 신경을 쓰고 분위기가 변했는데.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거예요. 무슨 충격을 받았냐면 보통 사람들 같으면 부인이 총격을 받아서 그렇게 숨졌는 게 거의 확실할 텐데. 그런데 어떻게 나와서 또 금방 얘기를 해요. 나머지 경축사 일과 같은 건 나와서 또 읽었단 말이에요. 그런 거 보고 일부 사람들은 혀를 차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같다는 이런. 그때 동아일보 안의 분위기는 참 반박정희 분위기가 강했어요.

▷(한동오 기자)
보수적인 사람들은 또 그 모습을 보고 저렇게 의연하고 굳건하게 광복절 경축사를 이어갔다 이렇게 평가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뭐 그랬을 수 있죠. 그랬을 수 있는데 역시 독재자는 독재자다, 이런 평가가 더 우세했어요.

▷(한동오 기자)
당시 수사당국은 문세광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발표를 했었는데 그때 당시 기자들은 정부 발표를 믿는 분위기였나요, 아니면 좀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였나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때는 정부 발표에 아까 얘기했듯이 토를 못 따는 시대였다고. 무슨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럴 수가 없는 시대였어요. 그때가 바로 어떤 때였냐면 73년에 김대중 씨가 죽을 뻔하다가 납치를 당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일 때문에 일본 쪽에서 박정희 정부에 굉장히 항의를 거세게 할 때예요. 왜냐하면 문세광이 일본 사람 여권으로 왔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김대중 사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던 때라고. 그런데 이 문세광 사건이 있은 다음에 김대중 사건에 대한 일본의 책임 추궁이 거꾸로 박정희 정부가 육영수 여사 사망에 대해서 일본에다 책임 추궁을 하는 이런 형국이 되면서 서로 이렇게 그냥 적당히 수습을 하고 끝내는 그런 분위기로 이렇게 전환이 됐던 것 같아요. 어찌됐건 부인은 사망을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난 건 틀림없죠.

▷(한동오 기자)
그럼 영화에서는 중정에서 발표를 하는데 의문을 제기하는 장면도 살짝 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분위기..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는 분위기예요. 바깥에서는 지금 뭐 막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반공 궐기대회를 하고 일본을 뭐 어떻게 뭐 뭘 해야 된다 이러고. 북을 무슨 뭐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자, 북에서 조총련에 지령을 해서 조총련 지령을 받은 문세광이 와서 총격을 가했다, 이렇게 보도가 됐었거든요.

▷(한동오 기자)
사실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게 논란이 되는 건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그 탄환, 탄두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던 건데, 그때도 기자들이 이 탄두, 탄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었나요, 아니면 그런 분위기가 없었었나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먼저 그 의문 제기가 살짝 됐던 게 그 무학여고 학생도, 합창단 학생도 문세광이가 쏜 총으로 죽었다라는 식의 발표를 했단 말이에요.

▷(한동오 기자)
처음에 그랬죠.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런데 각도로 봐서 문세광이가 그쪽으로 총을 쏠 위치에도 있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분명히 그거는 경호원들이 쏜 총에 죽었거나 그랬을 건데. 그 뒤에도 의문 제기된 거는 문세광 총에서 네 발이 발사됐고 하나가 불발이 됐고. 그리고 총 소리는 여섯 방이 났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한동오 기자)
한 발이 없죠.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한 발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육 여사 머리에 맞은 총알이 관통을 해서 회수가 돼서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 이런 말만 나오고 끝. 그리고 그 뒤에 나중에 그것이 중앙정보부에 보관되어 있다 이런 말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끝. 그 뒤엔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사라지고 없다, 이렇게 된 거예요.

▷(한동오 기자)
지금 같으면 백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질문하고 했을 텐데 아예 질문할 수 없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할 수가 없었죠.


(2부.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어집니다)


YTN 한동오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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