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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12월 5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박민희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원화 : 식당을 운영하던 A 씨는 그날 아침, 가게 근처 쓰레기 무단투기장 한 켠에 놓여있던 이상한 물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또 누가 이렇게 갖다 버린 거야’ 화도 났지만, 생전 본 적 없는 모양새에 호기심이 일었다고 하죠. 사람 한 명은 족히 들어갈 만한 대형 비닐봉지, 거칠게 여러 겹으로 감싼 뒤, 노끈으로 칭칭 묶여져있던 그것. 그 속에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한 여성의 시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여성은 전날, 남편이 ‘아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며 실종신고가 돼있던 주부였죠. 이 사건이 발생하기 5개월 전,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쌀포대 같은 봉지에, 노끈, 질식사까지, 수법이 너무나도 유사했죠. 하지만 당시 용의자를 전혀 특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수법, 장소, 범행 패턴까지...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신정동 일대 주민들은 말 그대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심지어 이듬해, 일대에서 납치미수 사건까지 발생하며 ‘세 번째 희생자가’가 나올 뻔했단 추측이 돌기도 했죠. 그렇게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나 싶었지만, 충격적이게도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세 사건을 연결할 결정적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드디어 연쇄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난 건데요. 도대체 어떻게 이 오래된 사건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던 걸까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X파일>, 이원홥니다. 오늘은 로엘 법무법인, 박민희 변호사와 함께 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박민희 : 네,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박민희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이 뉴스 전해지고, ‘어떻게 1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았던 사건의 용의자가 지금 와서 잡히냐, 대단하다’ 이런 반응들,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미제사건 다룰 때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완전범죄란 건 없다’, 이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해낸 그런 케이스 아닌가 싶은데. 어떤 사건이었는지부터 차근히 살펴볼까요.
◆ 박민희 : 이 사건은 2005년 6월 6일 전날 실종신고가 되어 있던 20대 여성 A 씨가 쓰레기 무단투기장에서 발견되면서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A 씨는 귀가하던 중 범인에게 붙잡혀 금품 갈취와 성폭행을 당한 뒤, 양손으로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인은 시신을 쌀 포대에 넣어 노끈으로 칭칭 묶은 뒤 유기하는 엽기적인 수법도 보여 사회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었죠.
◇ 이원화 : 당시 용의자는 전혀 특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나요?
◆ 박민희 : 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범인의 흔적만 남았을 뿐, 용의자를 특정 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게 이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죠. 그런데 첫 번째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불과 5개월 뒤, 같은 해 11월 신정동에서 40대 여성의 시신이 돗자리와 노끈에 싸인 채 또 다시 발견됩니다. 경찰은 두 번째 사건 현장에서 아주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 이원화 :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던 거죠?
◆ 박민희 : 두 사건의 범행 수법이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두 피해자 모두 노끈으로 묶여 유기되었고, 두 사건 시신 모두 주거지 인근의 쓰레기 무단투기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두 피해자 모두 성폭행 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두 사건에서 동일범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범인의 실체를 잡지 못하면서 수사망은 좁혀지지 못했습니다. 수사 초기에 두 사건 현장에서 범인으로 단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 탐문 수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용의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를 특정할만한 DNA나 족적, 지문 등의 증거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을 뻔하다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바로 이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잇따라 터지던 바로 그 시기에, 그 지역에서 '납치를 당했다가 간신히 도망쳐 나온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알려지면서입니다. 이 세 번째 피해자가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증언하면서, 경찰은 ‘두 살인 사건의 범인이 이 납치 미수 사건의 범인과 동일할 것’이라는 강력한 추정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수사팀에게는 큰 충격을 준 동시에 사건의 실마리를 잡게 해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바로 '엽기토끼 사건'으로 알려진 납치 미수 사건입니다.
◇ 이원화 : 피해자가 몸을 숨겼다는 범인 윗집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알려지기도 했고요. 현장에서 노끈이 발견됐었다 이런 얘기들도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래서 일명 ‘엽기토끼 사건’이라고 불려왔었는데, 10년이 다 돼 가도록 범인을 못 잡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드디어 용의자가 특정이 됐다고 들었는데요?
◆ 박민희 : 네, 그렇습니다. 이른바 ‘엽기토끼 사건’으로 묶여 불려오던 신정동 사건의 실체가, 사건 발생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비로소 드러났습니다.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한 뒤 경찰은 증거물을 다시 들여다보고,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DNA 대조를 반복하는 장기 재수사를 이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사건 현장 인근 빌딩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B 씨가 결정적인 용의자로 특정됐습니다. 특히 B 씨가 병원에 남겨 놓았던 조직 검체 DNA를 재감정한 결과, 현장에서 나온 DNA와 완전히 일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실상 범인이 규명된 셈입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B 씨는 이미 2015년에 사망해 화장된 상태라서, 법적으로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입니다.
◇ 이원화 : 이제라도 범인을 특정했다는 점은 정말 다행입니다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없다는 건 정말 허탈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이번 사건, 용의자 사후 특정이라는 아주 특수한 형태인건데, 이런 경우, 형사재판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입니다만 유족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든지, 다른 법적 절차, 생각해볼만한 게 없을까요?
◆ 박민희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실적으로 유족이 취할 수 있는 추가 법적 절차는 거의 없습니다. 형사절차가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민사에서도 가해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 손해배상 청구는 실질적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2006년 ‘엽기토끼’ 납치 미수 사건은 아직 사건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B 씨는 이미 수감 중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특정된 연쇄살인범과는 물리적으로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 이원화 : 그러면 그 납치미수 사건은 여전히 미제라고 봐야겠네요?
◆ 박민희 : 네, 그렇습니다. 그 사건은 지금도 미제로 분류됩니다. 당시 피해자의 진술로 인해 연쇄살인 사건과 동일범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번 수사 결과를 통해 두 사건은 전혀 연결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습니다. 문제는, 그 납치미수 사건 자체는 범인이 특정되지 못한 채 공소시효도 이미 도과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수사나 처벌을 더 이상 이어갈 법적 근거가 없고, 사건은 그대로 미제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 이원화 : 찾아보니, 2025년 11월 기준, 전국에 남아있는 살인 관련 미제사건이 275건이나 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공소시효가 폐지되기 전에 발생한 오래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다지만, 숫자만 보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아직도 사회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미제 사건 가운데 변호사님은 혹시 어떤 사건이 떠오르시나요?
◆ 박민희 :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 중에 기억이 남는 것은 ‘개구리 소년사건’과 ‘이형호 군 유괴살인사건’입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의 한 초등학교 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된 대규모 실종 수사였음에도, 11년 6개월 만에 와룡산에서 유골로 발견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실종될 당시에는 과학수사가 발전되기 전이라 증거확보에 어려움이 컸고, 여전히 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또, 이형호 군 유괴 살인사건은 1991년 1월 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초등학생인 이형호군이 유괴된 후 44일 만에 한강 고수부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입니다. 유괴범이 무려 70여 차례에 걸쳐 부모에게 협박 전화와 편지를 보내면서 단서를 남겼음에도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해 국민적 공분이 매우 컸던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 이원화 : 유족 분들 입장에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래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과학기술, 수사기법의 발전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다룬 신정동 연쇄살인 역시 그런 케이스기도 하고요. 실제 오랜 시간 미제로 남았다가 해결된 사건들이 제법 많죠?
◆ 박민희 : 네, 그렇습니다.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의 경우 용의자 2명이 21년 만에 붙잡혔습니다. 이 사건은 2001년 12월 21일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용의자들이 현금수송차량 속 현금 3억 원이 들어있던 가방을 챙겨 달아나던 중 은행직원을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인데요. 경찰은 끈질긴 수사를 통해 사건 당시 현장에 남아있던 DNA와 이들의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찾아내 용의자로 특정했고 대법원은 2023년 이들에게 무기징역형을 확정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역시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으로 33년 만에 용의자를 특정했습니다. 1986년 9월 15일 화성시 태안읍의 한 목초지에서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사건으로, 이후 10여건의 살인사건이 차례로 발생하는 동안 경찰은 범인 검거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으로 2019년 증거물에서 용의자의 DNA를 검출하는데 성공했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찰의 미제사건 전담팀과 과학수사를 통한 꾸준한 노력이 우리의 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있는 셈이죠.
◇ 이원화 : 혹시 미제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법적,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없을까요?
◆ 박민희 : 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핵심적인 제도적 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현재 경찰청에 '미제사건 전담팀'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는 정규 부서가 아닌 임시 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제사건 전담팀이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규조직으로 격상하고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배치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DNA 신원확인 정보관리 시스템을 더욱 효율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DNA 채취 대상 범죄가 한정적인데, DNA 채취 대상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문제일 텐데요. 2015년 일명 ‘태완이법’을 통해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살인 이외에 강간치상, 강도치사 등 다른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소시효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에서도 과학적 증거가 남아있다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것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 이원화 : <사건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엑스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양원 (newsfm0945@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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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박민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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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화 : 식당을 운영하던 A 씨는 그날 아침, 가게 근처 쓰레기 무단투기장 한 켠에 놓여있던 이상한 물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또 누가 이렇게 갖다 버린 거야’ 화도 났지만, 생전 본 적 없는 모양새에 호기심이 일었다고 하죠. 사람 한 명은 족히 들어갈 만한 대형 비닐봉지, 거칠게 여러 겹으로 감싼 뒤, 노끈으로 칭칭 묶여져있던 그것. 그 속에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한 여성의 시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여성은 전날, 남편이 ‘아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며 실종신고가 돼있던 주부였죠. 이 사건이 발생하기 5개월 전,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쌀포대 같은 봉지에, 노끈, 질식사까지, 수법이 너무나도 유사했죠. 하지만 당시 용의자를 전혀 특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수법, 장소, 범행 패턴까지...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신정동 일대 주민들은 말 그대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심지어 이듬해, 일대에서 납치미수 사건까지 발생하며 ‘세 번째 희생자가’가 나올 뻔했단 추측이 돌기도 했죠. 그렇게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나 싶었지만, 충격적이게도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세 사건을 연결할 결정적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드디어 연쇄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난 건데요. 도대체 어떻게 이 오래된 사건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던 걸까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X파일>, 이원홥니다. 오늘은 로엘 법무법인, 박민희 변호사와 함께 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박민희 : 네,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박민희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이 뉴스 전해지고, ‘어떻게 1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았던 사건의 용의자가 지금 와서 잡히냐, 대단하다’ 이런 반응들,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미제사건 다룰 때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완전범죄란 건 없다’, 이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해낸 그런 케이스 아닌가 싶은데. 어떤 사건이었는지부터 차근히 살펴볼까요.
◆ 박민희 : 이 사건은 2005년 6월 6일 전날 실종신고가 되어 있던 20대 여성 A 씨가 쓰레기 무단투기장에서 발견되면서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A 씨는 귀가하던 중 범인에게 붙잡혀 금품 갈취와 성폭행을 당한 뒤, 양손으로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인은 시신을 쌀 포대에 넣어 노끈으로 칭칭 묶은 뒤 유기하는 엽기적인 수법도 보여 사회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었죠.
◇ 이원화 : 당시 용의자는 전혀 특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나요?
◆ 박민희 : 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범인의 흔적만 남았을 뿐, 용의자를 특정 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게 이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죠. 그런데 첫 번째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불과 5개월 뒤, 같은 해 11월 신정동에서 40대 여성의 시신이 돗자리와 노끈에 싸인 채 또 다시 발견됩니다. 경찰은 두 번째 사건 현장에서 아주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 이원화 :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던 거죠?
◆ 박민희 : 두 사건의 범행 수법이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두 피해자 모두 노끈으로 묶여 유기되었고, 두 사건 시신 모두 주거지 인근의 쓰레기 무단투기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두 피해자 모두 성폭행 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두 사건에서 동일범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범인의 실체를 잡지 못하면서 수사망은 좁혀지지 못했습니다. 수사 초기에 두 사건 현장에서 범인으로 단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 탐문 수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용의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를 특정할만한 DNA나 족적, 지문 등의 증거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을 뻔하다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바로 이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잇따라 터지던 바로 그 시기에, 그 지역에서 '납치를 당했다가 간신히 도망쳐 나온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알려지면서입니다. 이 세 번째 피해자가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증언하면서, 경찰은 ‘두 살인 사건의 범인이 이 납치 미수 사건의 범인과 동일할 것’이라는 강력한 추정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수사팀에게는 큰 충격을 준 동시에 사건의 실마리를 잡게 해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바로 '엽기토끼 사건'으로 알려진 납치 미수 사건입니다.
◇ 이원화 : 피해자가 몸을 숨겼다는 범인 윗집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알려지기도 했고요. 현장에서 노끈이 발견됐었다 이런 얘기들도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래서 일명 ‘엽기토끼 사건’이라고 불려왔었는데, 10년이 다 돼 가도록 범인을 못 잡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드디어 용의자가 특정이 됐다고 들었는데요?
◆ 박민희 : 네, 그렇습니다. 이른바 ‘엽기토끼 사건’으로 묶여 불려오던 신정동 사건의 실체가, 사건 발생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비로소 드러났습니다.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한 뒤 경찰은 증거물을 다시 들여다보고,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DNA 대조를 반복하는 장기 재수사를 이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사건 현장 인근 빌딩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B 씨가 결정적인 용의자로 특정됐습니다. 특히 B 씨가 병원에 남겨 놓았던 조직 검체 DNA를 재감정한 결과, 현장에서 나온 DNA와 완전히 일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실상 범인이 규명된 셈입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B 씨는 이미 2015년에 사망해 화장된 상태라서, 법적으로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입니다.
◇ 이원화 : 이제라도 범인을 특정했다는 점은 정말 다행입니다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없다는 건 정말 허탈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이번 사건, 용의자 사후 특정이라는 아주 특수한 형태인건데, 이런 경우, 형사재판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입니다만 유족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든지, 다른 법적 절차, 생각해볼만한 게 없을까요?
◆ 박민희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실적으로 유족이 취할 수 있는 추가 법적 절차는 거의 없습니다. 형사절차가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민사에서도 가해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 손해배상 청구는 실질적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2006년 ‘엽기토끼’ 납치 미수 사건은 아직 사건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B 씨는 이미 수감 중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특정된 연쇄살인범과는 물리적으로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 이원화 : 그러면 그 납치미수 사건은 여전히 미제라고 봐야겠네요?
◆ 박민희 : 네, 그렇습니다. 그 사건은 지금도 미제로 분류됩니다. 당시 피해자의 진술로 인해 연쇄살인 사건과 동일범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번 수사 결과를 통해 두 사건은 전혀 연결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습니다. 문제는, 그 납치미수 사건 자체는 범인이 특정되지 못한 채 공소시효도 이미 도과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수사나 처벌을 더 이상 이어갈 법적 근거가 없고, 사건은 그대로 미제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 이원화 : 찾아보니, 2025년 11월 기준, 전국에 남아있는 살인 관련 미제사건이 275건이나 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공소시효가 폐지되기 전에 발생한 오래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다지만, 숫자만 보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아직도 사회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미제 사건 가운데 변호사님은 혹시 어떤 사건이 떠오르시나요?
◆ 박민희 :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 중에 기억이 남는 것은 ‘개구리 소년사건’과 ‘이형호 군 유괴살인사건’입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의 한 초등학교 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된 대규모 실종 수사였음에도, 11년 6개월 만에 와룡산에서 유골로 발견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실종될 당시에는 과학수사가 발전되기 전이라 증거확보에 어려움이 컸고, 여전히 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또, 이형호 군 유괴 살인사건은 1991년 1월 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초등학생인 이형호군이 유괴된 후 44일 만에 한강 고수부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입니다. 유괴범이 무려 70여 차례에 걸쳐 부모에게 협박 전화와 편지를 보내면서 단서를 남겼음에도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해 국민적 공분이 매우 컸던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 이원화 : 유족 분들 입장에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래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과학기술, 수사기법의 발전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다룬 신정동 연쇄살인 역시 그런 케이스기도 하고요. 실제 오랜 시간 미제로 남았다가 해결된 사건들이 제법 많죠?
◆ 박민희 : 네, 그렇습니다.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의 경우 용의자 2명이 21년 만에 붙잡혔습니다. 이 사건은 2001년 12월 21일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용의자들이 현금수송차량 속 현금 3억 원이 들어있던 가방을 챙겨 달아나던 중 은행직원을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인데요. 경찰은 끈질긴 수사를 통해 사건 당시 현장에 남아있던 DNA와 이들의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찾아내 용의자로 특정했고 대법원은 2023년 이들에게 무기징역형을 확정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역시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으로 33년 만에 용의자를 특정했습니다. 1986년 9월 15일 화성시 태안읍의 한 목초지에서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사건으로, 이후 10여건의 살인사건이 차례로 발생하는 동안 경찰은 범인 검거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으로 2019년 증거물에서 용의자의 DNA를 검출하는데 성공했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찰의 미제사건 전담팀과 과학수사를 통한 꾸준한 노력이 우리의 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있는 셈이죠.
◇ 이원화 : 혹시 미제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법적,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없을까요?
◆ 박민희 : 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핵심적인 제도적 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현재 경찰청에 '미제사건 전담팀'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는 정규 부서가 아닌 임시 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제사건 전담팀이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규조직으로 격상하고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배치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DNA 신원확인 정보관리 시스템을 더욱 효율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DNA 채취 대상 범죄가 한정적인데, DNA 채취 대상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문제일 텐데요. 2015년 일명 ‘태완이법’을 통해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살인 이외에 강간치상, 강도치사 등 다른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소시효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에서도 과학적 증거가 남아있다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것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 이원화 : <사건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엑스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양원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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