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에서 무죄로 완전히 뒤집혔다...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미제사건으로 남은 이유

사형선고에서 무죄로 완전히 뒤집혔다...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미제사건으로 남은 이유

2024.05.31. 오전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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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5월 31일 (금요일)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김현준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 흔히 법의 판단을 받았다고 하면요. 정의를 이야기한다거나 진실이 가려졌다 결론짓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지금까지 수많은 법정에서 다뤄졌던 그 모든 판결들이 정말 사실대로 유죄와 무죄를 완벽히 구분해냈을까요? 지금부터 여러분께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두 가지 상황을 소개해 드릴 겁니다. 과연 이 두 가지 상황 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올바른 판단이었을까요? 여러분도 한번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적용한 혐의는 두 가지 상황 모두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사형 대 무죄 정말 극과 극이었죠. 이 사건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요. 대한민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죠. 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김현준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김현준 변호사(이하 김현준) : 안녕하세요. 김현준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 김현준 : 1995년 6월 12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입니다. 경찰과 검찰의 초동수사 실패로 미궁에 빠지면서 2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사건입니다.


◆ 이원화 : 변호인 측은 당시 의뢰인인 L씨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스위스의 법의학자까지 데려와서 증언석에 세웠다. 두 모녀는 어떻게 발견된 겁니까?


◇ 김현준 : 1995년 6월 12일 오전 8시 45분경에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미성아파트 7층에서 흰 연기가 발생했습니다. 9시 10분쯤 경비원은 화재가 난 것을 알아채고 119에 신고했고요. 이어 오전 9시 20분경 소방관들이 도착해서 10여 분 만에 화재를 진화했는데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외과 의사인 L부인과 딸이 사망한 채로 욕조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남편인 외과의사 L은 개인병원을 개원하는 날이어서 외출한 상태였는데요. 치과의사였던 배우자와 그 딸은 물이 담긴 목욕탕 욕조에서 숨져 있었습니다. 배우자는 발견 당시 상의가 벗겨지고 팬티가 반쯤 벗겨진 상태였으며, 목에는 교살의 흔적이 나타났고, 목, 팔 등에는 미세한 찰과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딸도 끈으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욕조의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로 볼 때 타살임이 명백하였고, 장롱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아 명백한 방화였습니다.


◆ 이원화 : 지금까지 상황을 들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혹시 강도라거나 성범죄는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 김현준 : 특이한 점은 현관문이 잠겨 있는 상태였고 외부로부터 침입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집 안의 현금과 귀중품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집을 뒤진 흔적도 없었고, 강간의 흔적 역시 없었습니다.


◆ 이원화 : 용의자가 나왔나요?


◇ 김현준 : 강도나 성범죄가 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보아서 수사가 진행되었고 자연스럽게 용의자로 남편이 지목되었습니다.


◆ 이원화 : 남편이요? 왜 남편이 용의자로 지목된 겁니까?


◇ 김현준 : 우선 당시 피해자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을 만한 사람들을 수사한 결과 자연스럽게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고, 내연 관계에 있던 자가 있었는데 사건 발생 시간에 다른 지역에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집안에는 제3자의 침입 흔적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남편으로 용의자가 좀 좁혀졌습니다.


◆ 이원화 : 현장에서 나온 증거들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 김현준 : 당시 경찰은 사건의 초기 정보 수집 과정에서 많은 허점을 보였는데요. 발견 당시 시체와 욕조, 물의 온도를 재는 것조차 시행하지 않아서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놓쳤고, 사건 초기에 가까운 사람이 살해하였다고 단정하면서 수사 범위를 가까운 인물들로 한정하여 중요할 수도 있는 범행 도구 같은 다른 증거 수집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살인에 이용된 도구를 제대로 찾아내지도 못했고, 범인의 지문 머리카락 역시 발견되지 않아서 간접 증거와 정황만으로 범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원화 : 최종적으로 남편이 용의자로 기소됐습니까? 혹시?


◇ 김현준 : 네 기소되었습니다.



◆ 이원화 : 어떤 혐의로 기소됐죠?



◇ 김현준 : 결국 남편은 부인과 아이를 죽이고 방화한 혐의로 살인, 현주건조물방화죄로 기소되었습니다.


◆ 이원화 : 재판부 판단은 어떻게 나왔나요?


◇ 김현준 : 1심 법원은 시반과 시간에 의한 사망 시각 감정 결과와 우유병이나 식기세척기, 현장 상황 등을 종합하여 피해자들이 6월 11일 23시 30분경부터 6월 12일 06시 30분경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보면서 유죄로 판단하여 남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는데요. 당시만 하더라도 실제 사형 집행을 하던 시기였던 지라 형이 확정된다면 사형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항소심에서 결과가 완전히 뒤집어졌죠. 사형과 무죄는 정말 극과 극이잖아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 김현준 : 항소심에서는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있던 시간대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시체 감식 부검 소견에 대해서 그 시반을 양측성 시반으로 보았으나 그와 같이 단정할 수 없고 시간의 상태에 온도가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였으며, 피해자가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경찰의 일반적인 추측을 근거로 위장 내용 검사 결과를 분석한 점 등 이러한 점에서 그 증명력에 의문이 들어서 이를 믿기 어렵고, 그밖에 여러 면에서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살인죄 유죄를 인정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 이원화 : 검찰과 변호인이 팽팽하게 맞선 쟁점을 보면 사망 추정 시간 그러니까 아내와 딸이 피고인이 출근하기 전에 사망했냐 그리고 화재 발생 시간 이거 역시 출근하기 전에 불을 내고 간 거냐 이 부분이었죠.


◇ 김현준 : 당시 남편이 오전 7시에 집을 나갔었고,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자신의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였습니다. 따라서 모녀가 7시 이전에 사망하였다면 남편이 범인으로 확정되고 이후에 사망하였다면 범인이 아님이 명확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 이원화 : 변호사님께서도 이 사건 꼼꼼히 살펴보셨겠습니다만 당시 변호인 측에서 반박 놓은 거라든지 검찰이 내놓은 주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뮬레이션 실험 같은 것들을 굉장히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 김현준 : 당시 사망 시각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툼이 있었는데 검사 측은 한국의 법의학자 3명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모두 피해자가 오전 7시 이전에 죽었다는 증언을 하면서 1심에서 남편의 사형 판결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시간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스위스의 법의학자인 토마스 크롬페어를 증언대에 세워서 피해자가 오전 7시 이후에 죽었을 수도 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검사 측은 본 건 화재가 훈소 현상이라고 하는데 불꽃 없이 타들어가는 현상이 수반된 화재로서 연소가 서서히 진행되어서 연기 냄새 등이 뒤늦게 인지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요. 변호인 측은 화재 재현 실험을 통해서 통상의 경우에 착화 1시간 40분 후에 화재가 발견되는 경우는 성립할 수 없다라는 점을 입증하면서 본 사건에서 일단 발화가 된 이상 연기가 늦게 발생하여 지연 인지된다는 것은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결국 연기가 목격된 8시 50분경 이전인 8시 30분에서 8시 40분경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아서 피고인이 없던 시점이죠. 그래서 그때 피고인은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은 무죄라는 이러한 심증을 형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 이원화 : 결론적으로는 이 사건이 어떻게 됐습니까?


◇ 김현준 :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되긴 했는데요. 그 기간이 8년이 걸렸습니다. 간단히 사건의 경과를 보면 1995년 사건이 발생하였고 1996년 2월에 1심에서 피고인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6년 9월에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1998년 11월에 대법원은 다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2001년 2월 다시 고등법원의 환송심에서는 다시 무죄를 선고, 2003년 대법원의 재상고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최종적으로 피고인의 혐의는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 이원화 : 그러면 이게 이 사람이 아니라는 건데 다른 용의자를 찾았다거나 추가적인 수사가 있었나요?


◇ 김현준 : 당시에 이제 추측이 있었고 피고인이라고 했던 그분조차도 내연남을 의심하는 정황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다른 용의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고 내연남 역시도 당시에 다른 지역에 있었다는 정황이 알리바이가 있었다는 이유로 용의자로 지명되지 않았었고, 추가적인 수사도 진행되지 않아서 현재까지도 미제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 이원화 : 청취자분들이 궁금해하실 법한 질문 추가로 드려보자면 이후에라도 강력한 증거가 나온다면 남편을 다시 기소하거나 재판에 세울 수 있습니까?


◇ 김현준 : 이미 남편에 대해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다른 증거가 나온다 하더라도 이는 유죄 확정 판결에 가능한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도 않고 2010년에 공소시효가 만료해서 기소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 이원화 : 그런데 우리가 이 사건을 계기로 생각해볼 대목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법률적인 용어로 무죄라는 게 죄가 없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죄를 입증하지 못했다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고요. 그런데 또 반대로 유죄라고 해서 무조건 죄를 지었다라고 쉽게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푼 피해자들의 이야기 많이 보도되곤 하잖아요. 변호사님 이렇게 말로 하면 정말 한 끝 차이로 보이지만 피고인과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잖아요.


◇ 김현준 : 네 맞습니다. 변호인으로 많은 의뢰인들을 만났고 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정말 억울한 상황인데도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있고, 저 역시도 이제 유죄가 아닐까 의심이 가는 의뢰인들 중에서도 증거가 부족해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판사가 신이 아닌 이상 실체적인 진실을 온전히 파악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증거법 등 절차적인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법상 대원칙 역시 만들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 사건도 누가 범인인 것인지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에 맞는 판결이 아니었는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원화 : 그리고 피고인 측 변호사가 이런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는데 이미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언론에서 한국판 O.J 심슨 사건이다라든지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무죄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무책임한 보도를 했다 이거거든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 김현준 : 본 사건의 피고인이 무죄인지 유죄인지 상관없이 재판 진행 중에도 언론에서는 마치 유죄가 확실한 듯 자극적인 보도를 이어나갔었는데 물론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쉬이 판단하고 대중의 관심을 쉽게 끌 수는 있겠지만 이로 인해서 평생 고통받고 살아가야 하는 당사자 혹은 피해자 가족들 입장 역시도 함께 고려해서 보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이 재판부도 사실 AI가 아니고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언론 보도나 여론의 영향을 아예 안 받는다 이렇게 볼 수도 없는 거잖아요.


◇ 김현준 : 실제로 언론 보도가 있는 사건에서 재판부 검사, 변호인 할 것 없이 모두 사람이기에 보통의 사건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들을 많이 느낍니다. 이 사건 진행 당시에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 해피엔드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는데요. 하필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변호인 역시 해피엔드를 보면서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사건을 또 떠올리고 대법관들이 이에 대해서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라고 회고한 적도 있었습니다.


◆ 이원화 : 아무튼 오늘 살펴본 이 사건 태완이 법이 있기도 훨씬 전이기 때문에 공소시효도 끝났고 결국 영구미제로 남게 됐습니다. 결국 범인이 누구였는가 그 진실은 끝내 밝히지 못하게 됐는데 이 사건으로 과학수사 법의학의 중요성이 굉장히 많이 부각됐죠.


◇ 김현준 : 이 사건이 과학수사와 법의학에 대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당시 최소한의 현장 보존 등 기초 수칙에 대해서조차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2000년 초기만 하더라도 법의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 전국에 30명 안팎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스위스의 법의학자까지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했던 이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과학수사 법의학의 중요성이 굉장히 부각되었고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법의학의 발전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원화 :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미제 전담반 오늘은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 짚어봤습니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안 된다. 18세기 영국의 법학자인 윌리엄 블랙스톤이 한 말이기도 한데요. 유무죄를 가르는 그 기준,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더 엄격하고 엄중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끔 하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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