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라이브] 55년간 무료 결혼식 '1만 부부의 천사'...이제는 아들이

[뉴스라이브] 55년간 무료 결혼식 '1만 부부의 천사'...이제는 아들이

2023.05.10. 오전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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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호준석 앵커
■ 출연 : 백남문 신신예식장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라이브]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오는 21일은 부부의 날이기도 하죠. 그래서 오늘 저희가 이분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사진 보시겠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55년 동안 예식장을 운영하면서 1만 4000쌍의 부부에게 무료로 결혼을 시켜준 분입니다.

언론에 많이 지난달에 보도가 됐죠.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입니다. 지난달 별세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희가 이 백낙삼 대표의 아드님입니다. 일을 이어받아서 하고 있는 백남문 아드님, 그리고 부인입니다. 대표님의 부인, 최필순 여사. 두 분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거리가 멀어서 마산에 계시기 때문에 화상으로 연결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백남문]
안녕하세요?

[앵커]
반갑습니다. 아드님이시고 어머님이시고. 말씀하십시오.

[최필순]
안녕하세요? 최필순입니다.

[앵커]
굉장히 정정하시고 젊어 보이시고 미인이시고 그렇습니다. 지금 거기가 신신예식장이군요?

[최필순]
네.

[앵커]
아드님이 지금은 그 일을 이어받아서 하고 계시다고요?

[백남문]
제가 지금 예식장을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계속 이어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앵커]
55년 동안 무료 결혼식을 거기서 해 주셨다고 하는데 그 예식장에서 계속 하시는 겁니까?

[백남문]
네, 저희는 이 자리에서 55년째 계속 무료 예식을 올려드리고 있고요.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앵커]
아버님께서 어떤 계기가 있었길래 그런 일을 시작하시게 된 것일까요?

[백남문]
아버지께서는 원래 사진사로 일을 하고 계셨는데 형편이 어려우셔서 결혼식을 못 올리고 계셨다가 나중에 나처럼 결혼식을 못 올리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고 이런 분들이 결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되겠다 그래서 결혼식장을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그게 1년에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몇 년 동안 하신 것도 아니고. 55년 동안 하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망설여질 때도 있을 것이고 생계는 괜찮은가 그런 걱정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백남문]
저희 아버지께서 운영하실 때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께서 결혼식을 마치시고 너무 보람된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고요. 저도 직접 해보니까 신랑, 신부님들께서 결혼식 마치고 너무 행복해하시고 또 차후에 잘 살고 있다고 연락이 오고 하는 걸 직접 느껴보니까 저도 보람차고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게 되었고요. 저희가 받는 사진값만 가지고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해서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습니다.

[앵커]
아버님이 나중에 은퇴하시면 무료로 결혼한 부부들 전국 다니면서 만나보고 싶다, 그런 말씀하셨었다면서요?

[백남문]
아버지가 100세까지 결혼식장을 운영하시고 그때는 은퇴하셔서 전국일주를 해보고 싶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하셨고요. 그 꿈을 이어받아서 제가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앵커]
지금 아버님 사진 보니까 표정이 굉장히 밝으시고 마치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느낌도 나는데 저렇게 평생 남을 도우셔서 그런가요. 그렇게 행복해 보이십니다.

[백남문]
네, 아버지는 항상 청춘이셨고요. 항상 즐겁게 일을 하셨고요. 항상 길을 다니시거나 이럴 때 아시는 분 만나면 너무 반갑게 웃으면서 얘기하셨고요. 그렇게 행복하게 사셨습니다.

[앵커]
그래서 결혼을 한 부분들이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하거나 이렇게 연락을 해온 분들이 많았습니까?

[백남문]
꾸준히 있으셨고요. 최근에 돌아가시고 나서 연락도 많이 오셨고요. 같이 슬픔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앵커]
아버님 곁에 안 계셔서 많이 허전하시죠?

[백남문]
아버지가 투병을 하시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해왔지만 또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빈자리가 참 크다는 게 새삼스럽게 계속 느껴지고 있습니다.

[앵커]
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시고 또 배울 수 있는 어른이시고 그런 아버님이셨기 때문에 아마도 더 그러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전 훈장 모습도 봤는데. 1990년대에도 대통령 포장을 받으셨고 2019년에는 훈장을 받으셨고. 그래서 훈장 받으신 다음에는 그나마 받던 사진값도 아예 안 받으셨다면서요?

[백남문]
그건 일시적인 이벤트 형식으로 완전 무료로 20쌍 정도 결혼식을 올려드렸고요. 지금은 사진값을 받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앵커]
아까 흑백사진 봤거든요.아버님 흑백사진. 이 사진 잠깐 보여드릴까요. 신신예식장을 마산합포구에 1967년에 개업하셨고 지금 오른쪽이 아버님이신가요?

[백남문]
네, 키가 크신 분이 저희 아버님이고요. 왼쪽에 계신 키가 작으신 분이 저희 큰아버지셨고요.

[앵커]
그래서 신신예식장을 196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운영하시면서 지금도 무료 예식을 올려주고 계십니다. 지금도 이렇게 형편이 어려워서 무료 예식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까?

[백남문]
형편이 어려우셔서 결혼식을 못 올리시는 분들 많이 계시고요. 사실 결혼식을 올리려면 굉장히 많은 돈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 존재의 이유가 아버지의 꿈이 그런 분들이 부담 없이 결혼식을 올리시고 한을 푸시는 게 그런 뜻이 있으셨고. 제가 그 뜻을 받들어서 계속 운영하는 게 아들의 도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한참 많을 때는 하루에 16건 결혼식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면서요?

[백남문]
그건 아주 오래 전의 얘기고요. 아버지가 젊었을 때, 제가 어렸을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운영을 해왔었고. 최근에는 그렇게 많이 하지는 못하고 있고요. 그래도 꾸준히 문의가 오고 꾸준히 결혼식을 올리시고 계셔서 저희가 운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앵커]
아버님이 무료 결혼식이라고 하더라도 값싸 보이게 하지 않겠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예식장들하고 비슷하게 모든 서비스들이나 시설이나 이런 것들을 그렇게 유지하시겠다, 그렇게 말씀하셨다면서요?

[백남문]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또 최선을 다해서 추억에 남는 그런 결혼식을 올려드리려고 노력해 왔고요. 저희가 건물이 60년이 되고 또 시설이 55년이 됐습니다. 많이 노후가 돼서 앞으로는 여유가 될 때마다 조금씩 고쳐나가면서 오시는 분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그렇게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직접 청소도 하시고 1인 다역을 하시면서 이 예식장을 운영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머님, 지금 아직 계시죠?

[최필순]
네.

[앵커]
어머님, 결혼식을 아버님하고 어머님도 못 올리셨다는 얘기를 지금 아드님이 하셨는데. 그때 결혼식 못하신 것이 많이 마음에 남으셨던 모양이죠?

[최필순]
네, 가정형편이 조금 어려우신 분들이 저희 예식장을 많이 찾아오세요. 그런 분들 경제적으로 도움을 조금 드릴까 해서 많이 노력을 해 왔습니다, 여태까지. 그래서 그 당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못 살았는데 지금은 잘 살게 됐다고 돈도 보내오고 그런 분이 여러 분이 계세요.

[앵커]
지금 사진 보니까 나중에 결혼식을 신신예식장에서 치르신 것 같은데 저때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최필순]
옛날에 시골에서 주례선생님 없이 구식으로 한복 입고 족두리 쓰고 그렇게 간단하게 식을 했습니다. 그것도 우리 친척집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방을 못 구해서 친정에 놔두자 해서 아버지가 1년 동안 결혼식을 올리고 시집을 못 오고 친정에서 1년 동안 살았습니다.

조그마한 방 하나를 얻어놨다고 하면서 데리러 왔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시집 오는데 차가 너무 버스가 안 다녀서, 시골에서. 그래서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 와가지고 도로 들어갔습니다, 친정으로. 들어가서 하룻밤을 더 자고 그 이튿날 시집을 오는데. 많이 울었더니 가기 싫어서 우느냐고 우리 신랑님이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게 아니고 왜 여자들은 시집을 가야 되느냐, 여기 살면 안 되냐고 하니까 가야 된다고. 우리 아저씨가 데리러 와서 하룻밤을 자고 그렇게 왔습니다. 그런데도 와보니까 조만한 골방을 하나 얻어놨는데 너무 기가 차서 살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고생이 돼도 우리 아저씨가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어서 오면 나한테 돈을 다 주세요, 그날 번 거다 하면서. 한푼한푼 모아가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앵커]
어머니,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해서 열심히 노력하셔서 돈을 벌어서 드디어 예식장을 만드셨는데. 그걸로 돈을 좀 벌고 하셔야 되는데. 그런데 무료로 그렇게 결혼식을 올려준다고 하셨을 때 그게 망설여지시지 않으셨습니까?

[최필순]
5년을 카메라맨을 해서 돈을 모아서 조만한 건물 한 개 샀어요. 사서 증축을 했어요. 이 건물로 증축을 해서 이거 살 때 돈이 부족해서 주인보고 한꺼번에 다 지불 못하고 벌어서 조금씩 지불로 하자고 약속을 해서 그렇게 샀어요.

[앵커]
아까 두 분 사진 보니까 참 의가 좋으시다는 게 느껴지고 두 분 얼굴만 봐도 어떤 마음으로 살았다고 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부부의 날이나 결혼기념일 때는 꼭 손으로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부인께 발송을 하셨다면서요, 대표님께서?

[최필순]
1년에 부부의 날 한 장하고 생일날 한 장하고. 편지를 써서 우리 결혼기념일날 하고 그렇게 편지를 써서 직접 주면 될 텐데 그걸 마산시를 한 바퀴 돌려서 우체통에 넣어서 시를 한 바퀴 돌려서 직접 전해 주라고 하면서 그렇게 편지 받아서 모아놓은 게 많이 있습니다.

[앵커]
뭐라고 편지를 구구절절하게 그 사연을 보내셨을까요?

[최필순]
맨날 당신을 사랑해요. 금쪽 같고 보배 같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구절에 그렇게 맨날 넣어서 편지를 써서 주고 항상 자기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앵커]
아버님 많이 그리우시죠?

[최필순]
네. 병원에 입원해서 계실 때 면회를 갔다오는 그날 밤에는 잠을 못 자요. 맨날 저만 보면 면회 갔을 때 보면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하고. 이번에는 데리고 갈 거냐고 물어보고 그래요. 그리고 말씀도 하시고. 누워서 계시면서 편지를 써서 주세요.

[앵커]
어머님, 결혼식장에서도 1만 4000쌍. 그러니까 2만 8000명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했고. 또 젊은이들을 위해서 평생 그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는데 젊은이들한테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당부하고 싶은 것이나 그런 말씀이 있으십니까?

[최필순]
항상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고, 결혼식을 마치고 나면 가실 때 내가 한마디씩 해 줍니다. 신랑, 신부 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느냐. 부부 간에 싸울 일이 있어도 져주세요 합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하고 항상 져주세요 하고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 신부들이 나는 지금도 지고 있는데요. 그런 말씀을 하시고.

[앵커]
어머니, 져주는 게 참 쉽지 않거든요. 그게 막상 현실로 들어가면 그게 쉽지 않거든요. 어머니도 계속 져주시면서 사셨습니까? 아니면 아버님이 많이 져주셨습니까?

[최필순]
화낼 일이 있어서 화를 내시면 저는 말을 안 해요. 화가 났구나 해서 참아줍니다. 내가 져줍니다. 져주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가면 여보,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했더라. 그래서 내가 지는 게 아니고 이기는 거더라고요.

그걸 경험을 해서 우리 집에서 결혼식하시는 분들에게는 항상 말을 합니다. 싸울 일이 있어서 싸우면 져주세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앵커]
아드님 잠깐 바꿔주십시오.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하실 것인지. 그리고 쉽지 않은 순간들이 또 올 수도 있는데 어떤 각오이신지 마지막으로 말씀 듣겠습니다.

[백남문]
지금처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격려를 해 주시는데 실망을 끼쳐드리지 않도록 저희 최선을 다해서 가업을 이어갈 것이고요. 아버지의 꿈이, 아버지의 영혼이 여기 남아 있기 때문에 제가 그걸 이어받아서 열심히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오늘 신신예식장의 아름다운 가족들을 만나봤습니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많은 시청자들을 대신해서 제가 대표해서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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