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에 구속돼도 "내가 위원장"...조합원들 분통

횡령에 구속돼도 "내가 위원장"...조합원들 분통

2023.01.31. 오전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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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억대 횡령이 적발된 노조 위원장들이 수사를 받거나 심지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도 여전히 조합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위 위원장을 몰아낼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서라는데, 조합원들의 호소를 이준엽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기자]
7억 원대 노조비를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조 위원장.

구속된 지 반년이 넘었고 지난해 11월엔 임기도 끝났지만 진 씨는 차기 위원장이 정해지지 않아 본인이 여전히 위원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옥중에서 돌연 '사퇴 철회'를 선언한 진 씨가 측근인 대의원들을 동원해 후임 위원장 선출 절차 돌입 자체를 막은 탓입니다.

건산노조 정상화를 요구하던 한국노총은 이렇게 진 씨가 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자, 결국 노조를 제명했습니다.

[양용기 / 전국건설산업노조원 : 어떠한 안건이나 이런 부분들을 중앙집행위원들이 해야 하는데 최측근들을 앉혀서 안건 상정조차 못 하고… 임기가 만료됐어도 측근들을 통해서 긴급사무처리 권한을 현재도 행사하는 상황입니다.]

만5천여 명이 가입한 한국노총 한국연합건설산업노조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이승조 위원장이 수십억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문턱까지 갔다가, 빼돌린 돈을 되돌려놨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된 뒤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애초 문제를 제기했던 산하 본부는 되레 방출됐고, 이 위원장은 현장을 돌아다니며 해당 본부에 일감을 주지 말라고 건설사들에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전수호 / 한국노총 전국연합노련 한국연합건설산업노동조합원 : 총 60개가 넘는 팀 중 40팀이 쉬고 있어요. 이승조 위원장이 채용하지 말라고 했대요. 업체에다가 직접.]

조합원들은 이 과정에서 노조가 노동자 권익 수호라는 본래 목적을 잃고, 위원장 사조직으로 전락했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노조 위원장들이 이렇게 끄떡없는 모습을 보이는 건 비리를 저질러도 퇴출할 법적 장치가 마땅찮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법은 임원 해임을 총회나 대의원대회에서 의결하도록 하는데, 보통 총회를 갈음하는 대의원대회는 위원장 측근들이 장악하는 경우가 많아서 해임안 통과가 쉽지 않은 겁니다.

[김영일 / 한국노총 전국연합노련 한국연합건설산업노동조합원 : (위원장의 횡령 혐의가 불거지고) 대의원대회를 개최해서 돈을 쓴 목적이나 그런 것들을 대의원대회에서 다 승인한 것처럼 (의결했어요.) (대의원) 중엔 가족도 있었고, 동네 지인, 친인척도 있었고.]

위원장의 비리가 명백할 때 법원에 해임을 청구해서 공정한 판단을 받아보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학계와 노동계에선, 해임청구권 도입이 노조원의 자정을 돕는 제도적 장치가 될 거란 의견과,

노조 내부 분쟁을 사법기관에 맡기면 노조가 사측이나 외부 개입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섭니다.

[차진아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노조 집행부의 부패나 이런 것들을 구성원인 노조원들이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그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진 /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 과도한 사법화 우려가 있고요. 법률의 다툼을 따지는 것보다는 노동조합의 민주적 절차 과정의 요건을 개선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선 부정행위나 중대한 법령 위반이 있는데도 위원장 등 임원의 해임이 총회에서 부결되면 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준비 중입니다.

YTN 이준엽입니다.



YTN 이준엽 (leej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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