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35년 만에 정부 공식 인정

"형제복지원,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35년 만에 정부 공식 인정

2022.08.24. 오후 5:08.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 사태가 국가 공권력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정부 기관을 통해 35년 만에 공식 인정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1년 3개월 조사 끝에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건데요.

부모가 있는 아이들까지 납치해 강제수용하거나 반항하는 수용자에게 향정신성 약물을 투여한 사실 등도 사실이 새로 드러났습니다.

윤성훈 기자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정부 기관이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처음 인정했군요?

[기자]
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6년까지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이 부산에 있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강제 노역과 성폭력, 사망 등 인권 침해를 당한 사건입니다.

1987년에 수용자들이 집단 탈출해 실태를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당시 검찰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요.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정부 기관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건데, 오늘 발표 내용 직접 들어보시죠.

[정근식 /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 국가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정을 묵살했고, 사실을 인지했으나 조치하지 않았으며,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축소 왜곡해 실체적 사실관계에 따른 합당한 법적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진실화해위가 이같이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형제복지원 설치와 운영 과정에서 국가의 개입이 있었다는 정부 자료를 확인했기 때문인데요.

우선 부랑인을 무차별적으로 단속해 형제복지원에 수용하는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위헌·위법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일단 부랑인으로 지목되면 아무런 형사 절차도 거치지 않고 정해진 기한도 없이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해 적법 절차나 영장주의 원칙 등에 모두 어긋난다는 겁니다.

또 국가보안법 위반 등 공안사범 15명을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뒤 보안사 요원을 투입해 감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을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 때문에 재소자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곳"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인권침해 실상을 파악하고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공안사범 관리에 활용했던 겁니다.

특히 안기부 주재로 정부 기관들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 회의를 열었던 사실도 문건을 통해 처음 확인됐습니다.

당시 부산시가 소송을 제기하려는 입소자들에게 소송을 철회하라며 회유와 압박을 한 사실도 이번 조사를 통해 인정됐습니다.

[앵커]
형제복지원에서 숨진 수용자만 수백 명에 달하는 거로 알려졌는데, 피해자 규모는 얼마나 되는 겁니까?

[기자]
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형제복지원에 입소한 사람들은 3만8천여 명에 달하는 거로 파악됐습니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수용해 관리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됐는데요.

실상은 일반 시민, 공안사범, 고아 등의 사람들이 강제로 수용돼 구금됐습니다.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내무부 훈령 제410조 때문에 가능했는데요.

진실화해위는 관련 훈령이 명확성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 등을 모두 위반한 위법적인 규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강제 구금된 이들이 강제 노역, 폭행, 가혹 행위, 성폭력 등을 당한 사실도 인정됐습니다.

지금까지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수용자는 552명으로 알려졌었는데, 실제론 이보다 많은 657명이 사망한 거로 파악됐는데요.

의문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고, 일부는 사망진단서가 조작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앵커]
이번 조사 과정에서 수용자들이 일상적으로 학대나 부당행위를 당한 구체적인 사례들도 확인됐다고요?

[기자]
네, 먼저 과거 신문 기사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지난 1975년 12월 부산 지역신문에 나온 기사인데요.

형제복지원 수용자 30여 명이 민간인과 경찰관을 폭행하고 2시간여 동안 대치했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15살이었던 A 씨는 원장 일가의 사적 보복에 동원됐다고 증언했습니다.

박인근 원장의 동생인 박중근 총무가 이 같은 일을 지시했다는 겁니다.

또, 원장 일가의 사적 보복 동원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면 폭행을 당해야 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A 씨 / 형제복지원 수용 피해자 : (수용자) 20∼30명을 모아서…. 모이니까 총무라고 하시는 분이 무조건 가서 잡으라면 잡고 때리라면 때리고 감금시켜라…. 그렇게 지시가 떨어졌어요.]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은 생활 환경도 말할 수 없이 열악했습니다.

1985년 12월 기준으로 수용 정원이 5백 명이었지만, 실제 인원은 2천631명으로 5배를 넘었고, 한 개 내무반에 90여 명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낚시공장, 장난감공장, 봉제공장 등 각종 노역에도 동원됐는데 대가는 적금으로 넣어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전국적으로 부랑인 수용시설을 건축하기로 하고 형제복지원처럼 수용자들을 강제노역시켜 건축 예산을 절감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강제 구금된 수용자들도 가만있지만은 않았을 거 같은데, 반항하는 이들에겐 향정신성 약물을 투여했다고요?

[기자]
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이 과다 투약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당시 형제복지원엔 정신요양원이 있었는데요.

조현병과 간질, 불면증 등에 사용되는 향정신성 약품이 1986년 집중적으로 구매됐습니다.

특히 클로르프로마진, 이건 조현병 환자의 증세를 완화할 때 사용하는 약품인데 25만 정이나 구매됐습니다.

정신요양원에 수용됐던 340여 명이 매일 2회씩 복용할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러나 수용자들은 멀쩡한 사람에게 정신과 약을 강제로 먹여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어 통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전문의 처방 없이 형제복지원 관계자가 약물을 임의로 투약해 온 정황도 포착했는데요.

반항하는 수용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향정신성 약품을 투여한 거로 판단했습니다.

[앵커]
형제복지원이 아이를 납치한 뒤 가족들이 찾지 못하도록 신상정보를 조작한 사실도 확인됐죠?

[기자]
네, YTN 취재진이 당시 6살의 나이로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설수영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설수영 씨는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형제복지원 관계자들에게 납치됐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설수영 /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 묻지도 않고 짐짝 던지듯이 저를 (탑차에) 던져버린 겁니다. 수도 쇠 파이프를 가지고 와 엎드리게 하더니 내가 그만할 때까지 쳐라. 쟤를 갖다가….]

설 씨가 사라진 뒤 설 씨의 부모는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형제복지원까지 찾았지만, 아들이 입소한 기록을 찾지 못하고 끝내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형제복지원엔 다른 이름이 등록돼 있었습니다.

설수영 씨의 원래 본명이 설수용인데 설수영으로 바꿔놓은 겁니다.

이름뿐 아니라 생년월일과 주소까지 모두 엉뚱하게 바꿔 기록해놓은 건데요.

진실화해위는 부모가 아이를 찾지 못하도록 형제복지원이 꾸민 거로 판단했습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설수영 씨는 무려 48년 만에 우연히 동생을 만나 가족과 다시 상봉할 수 있었는데요.

설 씨 동생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설수철 /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동생 : (형제복지원 출신) 아는 목사님을 통해서 형의 연락처를 받았어요. 형이 문자를 보내온 거예요. 어떻게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 철이를 잊을 수 있겠느냐….]

[앵커]
드러난 사항 하나하나가 충격적입니다.

정부 차원의 사과도 필요할 거 같은데요?

[기자]
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에서 총체적인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국가가 사과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또 각종 수용시설 운영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국회에는 지난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하라고도 권고했습니다.

다만 진실화해위는 사과를 해야 할 정부 주체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는데요.

관련 논의를 진행한 뒤 발표하겠다는 답을 내놨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정근식 /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및 치유방안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재작년 12월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1호 사건입니다.

지난해 5월 조사를 시작해 1년 3개월 만에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이번이 1차 진실규명이고, 신청자 191명에 대한 조사만 마쳤다며 남은 신청자 353명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다음 조사에서는 형제복지원 아동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해외에 입양됐다는 의혹 등을 조사할 방침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사회1부 윤성훈 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YTN 윤성훈 (ysh02@ytn.co.k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