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있저] 원작자가 말하는 '남산의 부장들'

[뉴있저] 원작자가 말하는 '남산의 부장들'

2020.01.23. 오후 8:33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진행 : 변상욱 앵커
■ 출연 : 김충식 / 가천대학교 대외부총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가 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의 민낯을 파헤친 동명 기사가 사실 원작입니다. 원작자, 가천대 김충식 부총장이 자리에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저게 기획기사로 남산 중앙정보부 부장들을 쭉 그리셨고 그게 나중에 또 두꺼운 책이 돼서 나왔고. 다시 영화가 됐습니다. 요새 지나가시면서 남산을 보시거나 남산의 부장들 영화 포스터를 보시면 감회가 어떠십니까?

[김충식]
남산 1호터널 앞에 영화 광고가 있어서 굉장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사실 그 1호 터널 옆에서 취조실에서 제가 3박 4일 동안 당한 바가 있습니다.

[앵커]
직접 들어갔다 나오셨으니까... 그런데 원작자하고 영화제작자가 있는데 어떻게 만들지 상의하다 보면 원작자는 이게 더 맞는 것 같은데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쪽으로 가야 될 것 같고. 특별히 의견이 충돌하거나 아니면 이걸 꼭 해달라 당부하신 게 있으십니까?

[김충식]
그게 영화적 상상이 있어서 다큐 기자로서는 굉장히 거부감이 있었는데 결국은 영화의 세계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미건조한 기사를 썼을 뿐인데 거기에 영화적 상상을 가미하고 또 인사이트를 넣어서 찍어서 지금 하루에 25만씩 보는 것을 보고 저도 굉장히 놀랐습니다.

[앵커]
그런데 거기에 어쩔 수 없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 가명을 썼습니다. 예를 들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김규평, 이렇게 되는 거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냥 박통으로만 표현이 나온 것 같습니다.

[김충식]
그것은 영화사나 감독 측에서 1차적으로 명예훼손이라든가 사자 명예훼손 등을 아마 고려해서 혹시라도 무슨 가처분이 있으면 또 그걸 이겨내야 되니까 그런 문제를 생각했던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면의 세계를 그렸기 때문에 사자라든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내면을 감독이 실명으로 헤아려서 말하기에는 굉장히 좀 문제가 있었다.

[앵커]
영화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욕도 나오는군요. 그런데 영화의 시작은 김형욱에서 시작을 합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극중에서는 박용각 이렇게 되어 있던데요. 4대 중앙정보부장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충성을 다하다가 어느 날. 배신이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일단 마음을 바꿨고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쫓겼고 그러다가 잡혀서 죽었다, 이렇게만 저희는 알고 있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되더라고요. 실제로 어디까지 취재가 되고 어디까지가 밝혀진 사실입니까?

[김충식]
그래서 이번에 제가 영화감독에 대해서 굉장히 경탄했던 것은 기자인 제 입장에서는 79년 10월 초 김형욱 실종사건 이후에 불과 20여일 만에 박 대통령이 시해당한다는 것은 사실은 기록상으로는 느끼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차마 못 했거든요. 왜냐하면 계속 일들이 쫓겨서 진행이 됐고 또 12.12다, 5.18이다 이렇게 되는 새로운 사건들에 쫓겼는데. 지금 보니까 감독은 기자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상상의 세계를 갖고 있어서 아, 이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보고 영화를 찍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까 제가 깜짝 놀랐어요. 아, 다큐의 맹점을 감독은 또 다른 측면에서 커버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그러면 실제로 자기의 전임자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우리는 실종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내부에서 어떻게 처리됐는가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알고 있었다는 것에서...

[김충식]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재판 과정에서도 변호인들한테 나는 그거 모른다, 나하고는 관계없다. 이렇게 끝까지 무덤까지 끌고 갔는데. 사실 지금 보니까 중앙정보부 역사상 어떻게 보면 가장 완벽한 작전을 수행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왜냐하면 79년 10월에 그러한 암살을 저질렀는데 그 자체가 우선 기획단계부터 실행단계까지 위험요소가 굉장히 많은 것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72년에 김대중 납치 때도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그런데 파리에서 살해한다는 계획이 섰더라도 미국에서 끌어오는, 유인하는 방법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앵커]
김형욱을...

[김충식]
그리고 현지에서 킬러를 고용해서 움직이는 것 자체도 굉장히 여러 사람을 고용해야 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것을 79년 10월에 완수하고 2005년에국정원과거사진상조사위가 발표할 때까지 통째로 묻혀 있었다는 말이죠. 예를 들면 김경재 씨가 김형욱 회고록을 썼는데 그분도 매년 비밀에서 해제되는 CIA 기록을 계속 봤다는 거예요, 미국 국무성 기록을. 그런데 거기에도 전혀 안 나왔다는 거예요. 그만큼 미국의 CIA나 국무성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완전범죄를 25년동안 했다는 것은 대단한 김재규의...

[앵커]
그러고 보니까 김대중도 대통령이 되기 전입니다마는 김대중 납치사건 때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들켜서.

[김충식]
그 주체가 KCIA죠.

[앵커] 중앙정보부가 그랬는데... 김형욱 때는 깜쪽같이 완전범죄를 한 거죠.

[김충식]
완전범죄를 한 거죠.

[앵커]
김재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박 대통령한테 총을 겨누고 결국 저격을 한 건데. 충성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인데 이 사건에서 평가는 좀 엇갈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인물로 보십니까?

[김충식]
정의감과 프라이드가 강한 사나이 기질이 강했던 사람인데. 김형욱 암살 사건하고 관계가 깊어요. 왜냐하면 우선 김재규로서는 당시에 10월 초 행위가 거의 퍼펙트한 임무 완수를 한 거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박 대통령의 큰 짐을 덜었다. 나는 이제 미국 문제, 김형욱의 청문회 문제, 그리고 최태민 문제 그리고 국내적으로 김영삼 총재 세 명 문제가 걸려 있는데 바깥의 큰 문제 중에서 가장 난해한 김형욱 문제를 원천적으로 제거했다는 우쭐함이 있었을 거예요.

[앵커]
예를 들면 미국 하원에서 증언을 한다거나 고발을 하면 더 크니까.

[김충식]
그렇습니다. 회고록도 끊어질 것이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인데 그 점을 대통령이 평가하지 아니하고 김재규의 관점에서는 좀 더 소극적이 아니라 대국적인 정치가 벌어지기를 기대했는데 그와는 역방향으로 오히려 차지철 편을 들고 또 무슨 계엄령이라든가 발포명령은 내가 한다든가 이런 것들이 겹쳐서 최악의 사태로 치달았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가끔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그때 육군본부로 가서 헤메다가 거기서 끝나버리지 않고 중앙정보부로 다시 가서 다 불러모아서 자기가 휘두르고...

[김충식]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가 먹다 이렇게 또 하나 준 과자를 독약이 든 줄 알고 슬그머니 의자 밑에 버렸다고 하는 진술이 본인 입에서 나와요.

[앵커]
차 안에 둘이 같이 도망가면서?

[김충식]
그렇죠. 정승화 총장도 엉겁결에 생긴 거사에 대해서 책임지고 동조할 의사가 이만큼도 없는 거예요. 그만큼 김재규를 경계했고 또 하나는 18년 동안 쌓아올린 군 내부에서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하루아침에 시해범한테 쏠려서 돌아오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2~3일이 걸렸지는 모르지만 결국 김재규의 운명은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장성들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그 이후에 김재규가 자기가 혁명을 위해서, 뭔가 대의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된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까, 갈수록 강해지는 겁니까?

[김충식]
재판 과정에서 민주회복의 투사였다고 본인이 강변하는 건 제가 보기에는 100%는 아니고요. 한 30% 정도는 유혈사태라든가 차지철 발상으로 노쇠한 대통령이 움직이게 되면 반드시 피할 수 없는 어떤 악몽 같은 일이 생길 거라는 건 상정을 했고 그걸 막기 위해서 자기는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앵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여쭤보면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서 남산의 부장들, 사실 권력의 최고 핵심이자 실세인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써야겠다고 했는데 취재를 어떤 식으로 하셨습니까?

[김충식]
밤에 늦게 침입하고 새벽 일찍 쫓아다니는 형식으로 기자의 직분을 다한 것이죠.

[앵커]
그런데 안 만나줄 거 아닙니까? 아니면 경호도 꽤 있을 수도 있고.

[김충식]
그래서 결국은 밤 10시에 가서 새벽 1시에 문 열기도 하고.

[앵커]
알겠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이 사람들한테 다시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이 책을 이런 쪽으로 읽어봐 주십시오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짧게 부탁드립니다.

[김충식]
저는 그 책이 자동차로 치면 백미러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강하게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위해서는 백미러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백미러를 계속 들여다 보고 있어도 문제지만 보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 또 AI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과거에 대한 직시, 백미러에 대한 관찰은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충식]
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