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도 기준으로 산지전용 허가...산림 보존은 뒷전

경사도 기준으로 산지전용 허가...산림 보존은 뒷전

2019.12.06. 오후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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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숲의 나무를 베고, 개발하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죠.

이 때 가장 중요한 허가 잣대 중 하나가 산지의 경사도인데, 그 기준치가 허술해 산림 훼손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데이터저널리즘팀 함형건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경기도 여주의 한 야산.

밤이 되자 길 한가운데 어디선가 새 한마리가 나타나 차 앞을 가로 막고 섭니다.

취재진이 국립생태원에 문의한 결과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로 판정됐습니다.

[북내면 주민 : 어둡기 전에 벌써 4시, 5시면 울어요. 5시부터 울기 시작해요. (부엉이가요?) 그럼. 새벽에도 울고.]

수리 부엉이 서식지 앞을 가보니, 숲을 밀어버리고 산비탈을 깎아냈습니다.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기 위한 공사입니다.

수리부엉이 서식지를 보존해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졌지만 여주시청에서는 산지 전용 허가를 내줬습니다.

[김성기 / 여주시청 개발민원팀장 : (한강환경유역청에서) 그분들이 수리부엉이인지 뭔지 동영상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해서….]

전국적인 태양광 발전 설비 설치 바람은 수도권까지 확산되어,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산자락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니 태양광 패널이 여기 저기 산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의 택지개발 현장.

계단식으로 산비탈을 깎은 채 공사가 한창입니다.

타운하우스형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을 업고 수도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입니다.

나무를 베고 높은 옹벽을 쌓아 집을 짓다보니 폭우나 지진이 발생하면 대형재난의 위험마저 있습니다.

[최병성 / 前 용인시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 기준이 좀 더 강화되어 산지를 보호하고 재해에 안전한 집을 짓도록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옹벽도 굉장히 높죠. 급한 산지에다가 5m, 10m가 넘는 옹벽을 만들어 집을 짓고 있다.]

현재 당국이 산지의 전용 개발 허가를 낼 때는, 면적과 경관 등 외에, 경사도와 표고, 숲의 밀도 등을 고려합니다. 그 중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요 잣대는 경사도입니다.

너무 경사가 급한 곳을 개발할 경우 산사태가 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 기준인데, 거꾸로 얘기하면 일정 경사도 이하는 허가가 날 가능성이 높은 셈입니다.

야트막한 산지가 많은 지역인데 산지 전용허가시에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더 높은 경사도 기준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산지 훼손은 더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경기도는 북동부 지역에 산이 많고, 남부와 서부는 비교적 얕은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군구가 조례로 정한 개발 허가 경사도 기준을 보면, 평야가 많은 지역에서도 기준이 20도를 넘거나 산지관리법이 허용하는 최대 각도인 25도인 경우도 눈에 띕니다.

용인시에서 보전해야할 산지가 가장 많은 처인구는 오히려 경사도 기준이 제일 약한데, 얼마 전까지 경사도 기준이 25도였고 현재는 20도입니다.

경기도 여주를 조사해 봤습니다.

경사도 25도 이상인 곳은 1.17%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9%의 영역에 대해 현행 경사도 기준 25도는 있으나 마나한 잣대인 셈입니다.

실제로 산지 전용허가를 받은 3,189건 중, 경사도가 20도가 넘는 지역은 8개 지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평탄한 지점과 급경사 지점을 포함한 전체 평균 경사도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산비탈의 개발이 쉬워집니다.

[김기철 / 산림청 산지청책과 사무관 : 산지관리법도 산림법에서 나왔고 제정된 지 오래됐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올해 내년에 각종 기준이 적절한지 검토해보려고 하는 있는 단계입니다.어떻게 딱 하겠다 이렇게 잡은 게 아니고….]

생태와 경관 보존은 뒷전이고 허술한 경사도 기준이 개발 허가의 주요 잣대로 활용되는 현실에서 산림 난개발 논란은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YTN 함형건[hkhah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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