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영웅을 만나다②] "조금만 늦었어도"…불탄 버스 뛰어든 백의의 천사, 그 뒷 이야기

[시민영웅을 만나다②] "조금만 늦었어도"…불탄 버스 뛰어든 백의의 천사, 그 뒷 이야기

2019.10.11. 오후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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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영웅을 만나다②] "조금만 늦었어도"…불탄 버스 뛰어든 백의의 천사, 그 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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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가까이서 빛과 소금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시민영웅을 만나다’ 시리즈는 시민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져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했던 ‘시민영웅’들을 차례로 되짚어본다. 두 번째 주인공은 지난 2016년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버스 기사를 구해낸 간호사 김혜민 씨다.

지난 2016년 5월,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 인근에서 울산행 고속버스가 앞서 가던 화물차와 충돌했고, 사고 직후 버스 뒷부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정작 기사는 충돌 때문에 밀린 운전대에 끼어 빠져나올 수 없었다.

불길이 점점 번지는 급박한 순간, 한 여성이 손수건에 물을 뿌려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또 다른 시민들과 지나가던 견인차량의 도움으로 버스기사는 무사히 구출됐고, 버스 기사가 빠져나온 뒤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버스는 완전히 불에 탔다.

이같은 현장 모습은 한 시민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겨 YTN 제보로 이어졌고, 특히 가녀린 체구의 여성이 불타는 버스로 뛰어드는 모습은 더욱 화제를 모았다.

해당 여성이 간호사로 재직중인 김혜민 씨라는 게 알려지면서, 많은 시민들은 의료인의 본분을 다하고자 위험을 감수하고 기사를 응급 조치했던 김 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김 씨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고, 시구자로 나서는 등 주목을 받기도 했다.

3년이 흐른 현재, 김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울산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여전히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 씨를 만났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아버지 조언으로 곧장 뛰어들어”

김혜민 씨는 “3년 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사고 직후 버스 기사님이 승객들부터 먼저 대피시켰지만, 정작 기사님은 사고로 운전대가 밀리면서 갇혀있었고, 버스 뒤에서 불이 붙기 시작한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버스에 붙은 불 때문에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버스 기사를 모른체 할 수 없었던 김 씨.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던 김 씨는 우선 가족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다.

김 씨는 “아버지와 통화를 했고, 상황을 전해들은 아버지께서 구급대원들이 도착할 때 기사님 상태가 어떤 지 전해줄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옆에서 도와드리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말씀에 용기를 얻은 김 씨는 곧장 손수건을 물에 적셔 버스로 뛰어들어 버스 기사의 상태를 살피고 응급 처치를 했다.

김 씨는 “직업이 간호사인 만큼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상 버스로 뛰어든 다음에는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나머지 승객들과 지나가던 시민들 역시 버스 기사를 구조하기 위해 버스 안으로 뛰어들거나 버스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상황을 해결하는 데 힘을 모았다“며 ”버스 뒤에 붙은 불부터 끄기 위해 소화기를 구하러 다니는 분들부터 근처를 지나가다 소화기를 건네준 분도 계셨고, 직접 소화 작업에 나선 분들 진행하던 분들도 있었다. 앞에서는 버스 기사를 버스 밖으로 구출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애쓰셨다”고 설명했다.

때마침 인근에 있던 견인차량의 도움으로 시민들은 쇠줄을 운전대에 걸어 잡아당길 수 있었고, 다행히 운전대가 들리면서 버스기사는 무사히 구출됐다.


“영상 촬영해준 분, 제보해준 분 모두 감사해”

[시민영웅을 만나다②] "조금만 늦었어도"…불탄 버스 뛰어든 백의의 천사, 그 뒷 이야기

김 씨와 시민들의 이 같은 활약상이 담긴 영상은 며칠 뒤 온라인에서 커다란 화제가 됐다.

당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해있던 김 씨는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던 지인들의 연락을 받고서 영상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영상 속 주인공이 저라는 걸 크게 실감하지 못 하고,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제보 시스템과 미디어의 파급력도 절실히 느끼게 됐다. 사실 살면서 이런 기회가 흔한 건 아니지 않나. 좋은 일로 뉴스에 나온다는 게. 그래서 영상을 찍어준 분과 영상을 제보해준 분에게도 감사하다.”

김 간호사의 말대로 누군가 해당 현장을 영상으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훈훈한 사례는 묻혔을 터. 다행히 김 간호사의 도움으로 당시 영상을 촬영했던 김수민 씨와 연락이 닿았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였던 숨은 시민 영웅들

김수민 씨는 “버스에 불이 붙고 연기가 자욱하던 그 상황에서 자칫 본인이 위험해질 수 있는데도 용감하게 버스에 뛰어들어 본인의 옷가지를 이용해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에 깊이 감명 받아 카메라를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시민 영웅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처음 경찰에 신고할 때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 위치를 확인하러 갔다 오셨던 아주머니, 어느 샌가 독수리 오형제처럼 나타나 현장 수습에 도움을 주셨던 분들, 버스 앞쪽 유리가 모두 깨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운전대를 들어올리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들, 지나다가 소화기를 건네주신 분들까지 많은 분들이 저마다 도움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김 씨는 “지금 떠올려도 참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인데, 아쉽게도 영상을 촬영하진 못 했다”면서 “숨은 영웅들에게도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영상을 제보할 생각까진 못 했었는데, 다음에 이런 순간을 포착하게 된다면 영상으로 남기고, 제보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말했다.


김혜민 씨 “아들에게 존경받는 엄마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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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민 씨는 시민들에게 누군가 위험에 처해서 도움을 주는 순간이 온다면 우선 자신의 안전부터 살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씨는 “돌이켜보면 참 무서운 순간이었지만 의료계 종사자로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무작정 뛰어드는 것보다는 침착한 대처로 모두의 안전을 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또 “18개월 된 아들이 있는데, 나중에라도 아들이 (당시 영상을 보면서) 자랑스러워하길 바라고, 앞으로도 존경받는 엄마가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획 : 서정호 PD(hoseo@ytn.co.kr)
촬영 : 강재연 PD(jaeyeon91@ytnplus.co.kr)
취재 : 강승민 기자(happyjournalist@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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