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①두 달 일하고 10억...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

[와이파일]①두 달 일하고 10억...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

2019.09.21.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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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①두 달 일하고 10억...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
예산 부족으로 해단한 ATEC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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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

[와이파일]①두 달 일하고 10억...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외국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원한다면 두 번 이상도 가능합니다. 해외 출장 형식을 빌면 됩니다. 평소 관심 있었던 업체를 둘러보거나 콘퍼런스에 참관할 기회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성과는 딱히 없어도 됩니다. 책임급 간부 10여 명이 3년 반 동안 쓴 해외 출장비만 해도 5억 원에 육박합니다. 이만한 외유가 어디 있을까요?

국내도 수시로 갈 수 있습니다. 당일 출장이면 별다른 증빙 없이도 돈이 나옵니다. 당일에 다녀오기 어려우면 차 말고, 기차나 비행기를 이용하면 됩니다. 거리에 상관없이 기차나 비행기를 탔다고만 하면 교통비가 나옵니다. 책임급 간부가 부산에서 서울 한번 다녀왔다고 하고는 21만 원을 넘게 가져갑니다. 가장 많았을 때도 60명 정도였던 회사에서 3년 반 동안 1,800건이 넘는 출장을 갔습니다. 모두 개인 돈 한 푼 안 들어갔습니다.
그럼 어떤 일을 하면 되냐고요? 돈을 쓰면 됩니다. 장비나 프로그램 사들이는 겁니다. 내 돈 아니니 굳이 좀 더 싸게 사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업체가 웃돈을 요구하면 그냥 더 주고 비싸게 사고, 업체 사람 만나 밥 먹고 술 먹느라 돈이 좀 들었으면, 그 비용까지 슬쩍 넣으면 됩니다. 프로그램 1년 쓰자고 1억 넘게 주기도 합니다. 5년 동안 장비 구입이나 임대에 쓴 돈이 100억 원이 넘었습니다. 모두 나랏돈입니다.

사업단 지휘부에만 밉보이지 않으면, 밥도 술도 나랏돈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인원수만 채우면 됩니다. 나도 밥, 술 얻어먹으니 내가 안 간 자리에 내 이름 써넣어주기도 합니다. 그럼 다른 직원이나 상급자가 더 많이 먹을 수도 있지요. 모두 회계 처리만 잘하면 됩니다.


도대체 이런 직장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요? 실제로 있었습니다.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과학기술원 부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설립한 해양플랜트엔지니어링사업단, ATEC 입니다. 결국 예산 부족으로 애초 목표를 1년 못 채우고 올해 해단했습니다.



#2. 두 달 일하고 10억 벌었는데…

[와이파일]①두 달 일하고 10억...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

젊은 시절 이민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하던 해양플랜트 엔지니어 일을 외국에서도 15년 넘게 했습니다. 연봉 3억 원을 넘게 받는 이른바 전문가가 됐지요. 그런데 ATEC 사업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연봉 맞춰주고 정년도 보장할 테니 노년에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한번 해보잡니다. 그래서 외국 생활 접고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사업단 와보니 일은 안 하고 흥청망청 돈만 씁니다. 일 좀 해보자 했더니 시키는 것만 하랍니다. 그래도 내가 전문가인데, 이건 아니다 싶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국내 R&D 사업은 원래 그렇답니다. 앉아서 돈 쓰면 되는데 '로또' 맞았다 생각하랍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 상위 기관에 문제 제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나가랍니다. 두 달 만에 해고당했습니다.


뭐 그동안 돈 번 것도 있고 다시 외국 나가도 되니 아쉬울 것 없지만, 정년 보장해준다고 해외 생활까지 접고 들어왔는데 어처구니도 없고 화도 납니다. 15년 만에 돌아온 우리나라 현실이 이런 것도 서글픕니다. 그래, 불의가 이기는지 한번 보자, 부당 해고 진정을 냈습니다. 그랬더니 산업스파이랍니다. 상위 기관이 경찰에 고발까지 했습니다. 이제 오기가 생깁니다. 끝까지 가보자. 2년 넘게 소송전 했습니다. 승소했습니다. 부당 해고당했으니 그동안 못 받은 임금 다 받으랍니다. 10억에 육박합니다.


그러자 사업단이 소속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에서 찾아왔습니다. 축하드린답니다. 밀린 임금도 줍니다. 두 달 일하고 10억 벌었으니, 손해 본 건 없습니다. 경찰에 고발당한 것도 혐의를 벗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 나라 위해 일해보려고 들어왔는데, 뭐 하나 기여도 못 한 거 같아 씁쓸합니다.


#3.흥청망청 국책사업단…'나 몰라라' 산업부

5년 동안 6백억 원을 이렇게 썼습니다. 사업단을 만든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성과가 있었다 말합니다. 예산은 좀 헤프게 썼을 수 있지만, 장비 샀으니 활용도를 늘리면 되지 않냐 합니다. 제발 그래주길 바랍니다. 국민 혈세 수백억 원이 관계자 몇 명 배불리는데 쓰이진 않아야죠.

[와이파일]①두 달 일하고 10억...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


예산 배정해준 곳은 산업통상자원부입니다. 하지만 한 마디로 '나 몰라라'입니다. 정상적으로 공모 절차를 거쳐서 사업 선정했고, 해마다 평가 거쳐서 예산 집행한다는 겁니다. 평가 관리 기관은 산업부 산하 산업기술진흥원입니다. 5년짜리 국책사업을 중간에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일단 1년 차에 돈이 들어갔으니 어떻게든 이어갔어야 한다는 겁니다. 평가 결과 문제 있는 돈은 다시 돌려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서류를 맞춰놨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리 지역에 사업단이 들어오면 엄청나게 좋아질 줄 알고 시비 투입해 건물까지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부산시 얘기입니다. 아직 건물도 안 지었는데, 사업단은 예산 다 썼다며 조기 해단했습니다. 이거 뭔가 사기당한 것 같습니다. 연구소에서는 뭔가 계속 해 본다고 하는데, 왠지 활성화 방안을 시에서 찾아줘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내부에선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퇴직자들의 노후 대책으로 지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흘러나옵니다. 의도야 어떻든 이미 짓고 있는 건물에 관련 업체들 많이 들어와 해양플랜트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해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정미[smiling3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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