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뉴스 더콕] 몬트리올에서 서울까지...'올림픽 보이콧'의 역사

[더뉴스 더콕] 몬트리올에서 서울까지...'올림픽 보이콧'의 역사

2019.08.09. 오후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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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우려로 내년에 열릴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오늘 더콕에서는 올림픽 집단 보이콧 사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최초의 집단 보이콧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때 일어났습니다.

당시 남아공은 인종차별정책을 편다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가 금지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뉴질랜드 럭비팀이 남아공과 친선 경기를 치른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에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막아달라고 요구했고 수용되지 않자 집단으로 보이콧을 결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100개국이 넘던 올림픽 참가국 수가 92개국, 두자릿수로 줄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는 보이콧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66개국이 불참해 반쪽 대회라는 오명을 얻게 됐습니다.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친소 쿠데타 지원을 문제 삼아 미국의 지미카터 행정부가 보이콧을 주도했습니다.

미국은 이듬해 3월 불참을 공식화했고 한국도 5월 불참을 확정했습니다.

한국이 올림픽 불참을 결정한 날은 전두환 정권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5월 17일이었습니다.

쿠데타 세력이 쿠데타에 항의해 올림픽 불참을 결정한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4년 뒤 열린 LA올림픽 때는 모스크바 보이콧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 상당수가 불참했습니다.

미국 내에 만연한 반소련 정서, 선수단의 신변 안전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소련이 주도한 보이콧에 15개국이 동조했고 다른 사유로 인한 불참국까지 더해 모두 18개국이 불참했습니다.

북한과 베트남, 쿠바 등은 보이콧에 동조했지만 중국은 선수단을 보냈습니다.

88 서울올림픽에서도 규모는 작았지만 보이콧이 있었습니다.

북한과 가까운 나라 등 7개국이 참가를 포기했습니다.

이들은 6월 항쟁을 겪은 한국의 정국 불안을 우려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북한의 참가를 성사시켜 참가국을 늘리려 했지만 북한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88올림픽 이후에는 냉전 종식 등의 영향으로 이렇다 할 집단 보이콧 사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년 도쿄올림픽은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어서 이른바 '방사능 올림픽'에 대한 우려가 세계 곳곳에서 제기됩니다.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통해 후쿠시마 사태 극복과 재건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보이면서 보이콧 움직임은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국내 여론도 보이콧 지지가 높습니다.

지난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추가 안전 조치가 없으면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 해야 한다는 응답이 거의 70%였습니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환경 문제로 인한 보이콧이 현실화 될지 여부는 남은 1년 개최지의 안전성 평가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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