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인천공항 노숙자들,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시간

[반나절] 인천공항 노숙자들,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시간

2019.07.06.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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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인천공항 노숙자들,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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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PLUS가 기획한 '반나절' 시리즈는 우리 삶을 둘러싼 공간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기획 기사입니다. 반나절 시리즈 3회는 늦은 오후부터 자정까지 인천공항에서 4시간을 보내며 공항 내 노숙자들을 관찰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반나절] 인천공항 노숙자들,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시간

"에이 뭐 노숙이나 하다 타면 되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숙이 자연스러운 장소, 인천공항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설레는 여행 전 비행기를 기다리며, 잠시 다리를 뻗는 이들 사이로 노숙 생활이 일상인 사람들이 있다. 지난 3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0시까지 인천공항에 둥지를 튼 이들의 생활을 지켜봤다.

■ 8시

형형색색의 캐리어와 함께 양손 가득 짐을 든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공항철도를 타고 도착한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은 여행객들의 분주한 발걸음 사이로 한껏 상기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름을 맞아 인천공항으로 '피서'를 즐기러 오는 노숙자들이 많다는 제보를 떠올리며, 주위를 유심히 살펴봤지만 모두가 여행객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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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터미널 1층 1번과 14번 출입구를 비롯해 4층 식당가 내 정자에서 노숙자들을 볼 수 있다는 공항 직원들의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곧장 식당가로 올라갔다. 공항 활주로가 내려다보이는 비선루에는 약 7명이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나 차림새만으로 노숙자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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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잠시 앉아 찬찬히 들여다보니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남성이 있었다. 슬리퍼 속 맨발은 한 눈으로 봐도 오랜 시간을 바깥에서 보낸 것처럼 보였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지만, 계절과는 맞지 않게 긴 팔 티셔츠에 얇은 바람막이 점퍼까지 입고 있었다. 수레 위 얼기설기 쌓여 있는 짐은 때가 묻어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한자리에 앉아있는 법이 없었다. 수레를 끌고 4층 식당가를 하염없이 배회했다. 1시간가량을 따라다니며 먼발치에서 지켜보았지만, 그는 가끔 자리에 멈춰서 창밖을 바라보거나 비선루로 돌아와 다시 몸을 뉠 뿐이었다. 정처 없이 걷던 그는 이내 승강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사라졌다.

■ 9시

1층 14번 출입구에 중국인 노숙자와 한국인 노숙자들이 뒤엉켜 있다는 제보를 토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천공항에는 동서양 가리지 않고 다양한 국적의 노숙자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특히 백발의 한 중국인 노숙자는 공항에 둥지를 튼 지 오래돼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인사로 통하고 있었다.

문제의 14번 출입구는 멀리서 보아도 다른 곳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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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인해였던 중앙과 달리 12번 출입구부터 14번 출입구까지는 인파의 물결을 느낄 수 없었다. 14번 출입구 뒤로 24개의 벤치에는 약 13명의 사람이 누워있었고, 이들 중 대여섯 명은 담요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2명의 공항 안전 요원이 바로 앞에 상주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TV와 시원한 에어컨, 한적한 인파와 바로 앞 편의점까지. 이들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약 3~4m 거리였지만 낯선 체취가 강하게 느껴졌다. 다시 1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깊은 잠에 빠진 것인지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마치 박제된 하나의 풍경과 같았다.

■ 10시

막막한 마음에 공항 내 환경미화원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지하 1층 H 은행 앞 흰 모자를 쓴 여성, 몇 년 동안 지하 1층 동편에 머물며 살림살이를 차렸다는 한 중년 남성, 제2여객터미널에 가면 볼 수 있다는 '망태기 할머니'까지. 온갖 목격담이 쏟아졌다. 유독 지목하는 이들이 많았던 지하 1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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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모자를 쓴 여성 노숙자는 발견할 수 없었지만, 거대한 짐을 두고 살림살이를 차렸다는 남성 노숙자의 흔적은 발견할 수 있었다. 수레 위에는 여행 가방 3개를 비롯해 담요, 페트병, 담요 등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고 그 위로 '사우나 중 010-xxxx-xxxx'라는 안내문까지 붙어있었다.

오랜 시간을 같은 장소에서 머물러 온 흔적은 곳곳에서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수레 뒤 구석으로 음식을 담은 일회용 용기와 작은 연고통, 잡동사니를 담은 쇼핑백 3개가 나란히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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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둘러보니 같은 층에는 찜질방과 샤워실, 휴게실을 갖추고 24시간 운영되는 스파숍이 있었다. 이곳의 직원들은 "자주 찾는 노숙자가 3명 정도 있다"며 이들이 대개 이틀에 한 번꼴로 이곳을 찾아 샤워한 뒤 말끔한 모습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짐의 주인이 현재 이곳에서 샤워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직원은 "노숙자들이 1만 원에 4시간 동안 샤워와 찜질까지 할 수 있는 코스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또한 "이들 모두 비용을 정상적으로 지불하고 있으며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사우나를 하러 갔다는 이 노숙자는 이날 12시까지 자신의 짐수레로 돌아오지 않았다.

■ 11시

11시가 되니 공항 내 일부 지역은 소등하며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지하 1층 곳곳에 노숙자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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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 노숙자가 쓰레기통에 손을 넣어 재빠르게 무언가 낚아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수레 위에는 작은 가방 두 개 이외에 짐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지만, 과자와 치킨 무, 반쯤 남은 음료수 2병이 함께 올려져 있었다.

곧 편의점으로 들어간 그는 볶음 컵라면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조리를 시작했다. 이내 전자레인지의 종소리가 울리자 그는 컵라면을 들고 인적이 드믄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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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허공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혼잣말하며 라면을 끼니 삼았다. 음식이 매운지 중간중간 물과 함께 치킨 무를 먹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포도로 보이는 작은 과일을 먹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괜히 배탈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없으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인근 편의점 직원은 노숙자들이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등 편의점에서 발생하는 음식 폐기물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지만 원칙상 줄 수 없어 난감한 상황도 생긴다고 말했다.

근무하며 매일 같이 노숙자들과 마주한다는 그는 "노숙자들이 난동을 부리거나 큰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서 공항에서도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며 "공항 내에 거주하는 노숙자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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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시

"공항 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자리가 있어서 뺏기면 싸움도 나지. 다 규칙이 있어 여기도" 자정이 가까워지자 환경미화원의 말처럼 모두가 익숙하게 각자만의 잠자리를 꾸렸다. 잠자리라고 해도 넓게 펼친 여행 책자나 신문, 담요를 덮는 게 전부였다.

노숙자들로 인해 공항 상주 직원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는 없을까?

"들어가면 물이 한강이야, 한강. 진짜 골치 아파" 이날 만나 얘기를 나눈 15명의 공항 환경미화원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화장실 문제를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적고 공간이 넓은 장애인 화장실에서 노숙자들이 빨래와 샤워 등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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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확인하고 점검표에 사인해야 하는 환경미화원 입장에서는 문을 잠그고 오랜 시간 화장실을 사용하는 이들과의 문제가 해묵은 갈등 중 하나였다. "손님보다 대하는 게 더 어렵죠. 빨리 나오라고 하면 자기 무시했다고 휴지로 일부러 변기를 막히게 만들어요. 화장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식으로 해코지 하는 거죠"

환경미화원들은 하나 같이 "화장실을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제발 깨끗하게 사용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인천국제공항 관계자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항 내 노숙자에 대한 대략적인 통계는 가지고 있으나 거대한 터미널에서 전수조사가 어려울뿐더러, 편차가 심한 탓에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항 측에서 이들을 관리할 의무나 권한이 없고, 현실적으로 노숙자 유입을 막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여행객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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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노숙자에 대한 통계는 지난 2016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노숙자는 약 1만1340명이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가 집계한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내 노숙자는 3,478명에 달한다. 현재 노숙자가 몇 명인지, 이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인천공항에 머무르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짧은 4시간의 관찰 시간 내내 이들 대부분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누워있거나 끊임없이 돌아다닐 뿐 다른 움직임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모두가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곳에서 떠날 수도 없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바로 앞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이들은 마치 공항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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