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못하는 사회...참사에도 조롱·막말

공감 못하는 사회...참사에도 조롱·막말

2019.06.04. 오후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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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변상욱 앵커, 안보라 앵커
■ 출연 : 오찬호 사회학자·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참사현장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사고에 대한 어떤 아픔의 공감과 위로보다는 조롱하는 표현이 나와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어느 덧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 왜 이렇게 된 건지 오찬호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애도를 표하는데 또 우리나라에서는 더 가깝게 이 아픔을 함께 느낄 것 같은데도 이런 표현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그런 글들을 마주하는 게 굉장히 고통스럽죠. 세월호 시즌2냐, 천막시위 하겠네, 보상금 타려고 하겠네 그런 글들을 보면 약간 이런 글에도 맥락이 있을까. 이런 거를 보려고 하는 것이 굉장히 개인적으로도 고통스럽습니다.

[앵커]
아니, 저는 보면서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인데 이런 표현을 하게 되면 실제로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 혹은 더 넓게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받을 어떤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좀 들더라고요.

[인터뷰]
그런 생각을 하면 안 하겠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본인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다 쇼야. 저런 식으로 국가가 나서가지고 요란을 떠는 것을 저건 바람직하지 않은 거야. 실제로 피해자는 나인데, 평범한 내가 일상에서 보상을 못 받고 살아가는데 이렇게 무슨 분위기 때문에 보상금 높아지고 하는 거 그런 것을 굉장히 혐오하는 거죠. 그러니까 스스로의 행동이 굉장히 정의롭다고 생각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끄집어내는 말이 역차별.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실상 역차별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고통의 우선순위를 자꾸 매기는 거죠. 그래서 예를 들어서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난민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대한민국 청년들은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사실상 그 본질을 흐려버리는 그런 습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유가 있겠죠. 이게 그냥 그분들이 유전자적으로 그렇게 나쁜 생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면 우리가 이런 보도가 나오면 보상금 운운하는 언론보도들이 있고 그다음에 세월호 같은 경우에는 정당한 항의가 정치적으로 변질되었다. 그런 프레임으로 굉장히 보도된 적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성철을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앵커]
맞습니다.

[앵커]
세월호 때도 그랬지만 그랜드케니언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을 때도 자기가 잘못한 건데 자기가 책임져야지, 왜 국가가 나서서 뭐 해 주려고 하는 거 아니야? 해 줄 필요 없어. 이런 식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떠민다든가 이런 일도 봤고.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분석하시겠습니까?

[인터뷰]
넓은 의미에서는 국가 역할에 관한 논쟁일 수는 있어요. 충분히 그건 가능한데 그 경우가 그런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 어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소모해서는 안 되는 논쟁이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아픔을 대하는 태도가 좀 훈련이 안 돼 있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거냐 하면 고등학교에서 아이가 자살을 한다든가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동요되지 말고 공부해. 이런 식으로 죽음을 회피시키도록 한다는 거요. 그런데 그 앞에 굉장히 정면으로 마주해서 같이 슬퍼하고 애도하고 어떤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함께 나눠보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약간 나중에 해도 되는 논쟁을 그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 그 사람 앞에서 굉장히 즉각적으로 내뱉는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그래서 많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동요되지 말고 공부해라. 이 표현은 저도 학창시절에 들어봤습니다.

[앵커]
그런데 말씀하신 걸 들으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게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에도 지금 다뉴브강에 빠져서 산 사람이 있을 텐데 이러면서 미친 듯이 찾고 있는데 보험금 계산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기사를 써버리니까 그것도 뭐 어떻게 보면 같은 종류처럼 보이네요.

[인터뷰]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사망 확률이 높을 것이다라고 예상을 하는데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거기에 그냥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또 어떻게 보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죠. 결과는 어떤지 몰라도.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굉장히 이성적 사고로 둔갑한 사실 비이성적인 어떤 논리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앵커]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공감 능력이 좀 결여된 것 같은 표현이 문제가 된 게 이번만이 아닌 것 같은데 남녀 간의 성대결도 있었고 세대별 대결도 있었고 계층별 대결도 있었고 따지고 보면 사회 전반에 혐오 정서, 그런 적대감이 좀 퍼져있는 것 같아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이거를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맥락을 잘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표현의 자유는 약자가 강자를 향해서 말할 수 있는 어떤 권리, 풍자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건데 원래 강자가 내가 생각하던 대로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굉장히 약한 존재로 묘사해 왔어요. 그런데 어떤 여성 일이 터지면 최근에 있었던 여경 사건. 이런 걸 보면 봐. 여성이 약하니까 저런 일 벌어지는 거잖아. 또 굉장히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굉장히 혐오하는, 가난한 사람 냄새가 나, 가난한 사람 게을러. 그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가 어떤 가난한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여줬을 때, 보라고. 내가 저 사람 그냥 무작정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잖아. 이런 식으로 합리적으로 혐오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있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조금 일상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약자가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맥락에서 이용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사용되고 있지 못하죠.

[앵커]
아무튼 어떻게 보면 악성댓글을 달면서 괜히 자기의 어떤 성취감이나 이런 걸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보다는 개인의 각성도 필요하겠지만 또 사회는 사회대로 그런 사람들이 어떤 실망감 속에서 그렇게 하여튼 그늘로 몰려가서 자기들끼리의 배타적인 집단을 구성해서 남을 갖다가 역차별이라고 공격하는 이런 막말 공격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찬호 작가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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