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72] 한 사람당 쓰레기 3톤, 환경미화원과 새벽 청소 해보니

[해보니 시리즈 72] 한 사람당 쓰레기 3톤, 환경미화원과 새벽 청소 해보니

2019.03.16.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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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72] 한 사람당 쓰레기 3톤, 환경미화원과 새벽 청소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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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윽" 한의원에서 내다 놓은 봉투를 들어 올리는 순간, 무게에 놀라 단말마의 신음이 절로 나왔다. 온갖 한약재가 가득한 봉투에서 나온 액체는 장갑 사이를 적셨고, 손에서는 한약 냄새가 맴돌았다.

기세 좋게 시작한 취재였지만 쓰레기 수거를 위해 골목을 돌 때마다 자연스레 말수는 줄고 호흡은 점차 가빠졌다. 마스크 사이로 매캐한 먼지와 꿉꿉하고 숨 막히는 쓰레기 냄새가 맴돌았다. 골목마다 벌어지는 쓰레기와의 싸움은 모두가 잠든 시간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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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환경미화원들의 전쟁 같은 하루를 뒤쫓았다.

"진짜 끝까지 하실 거예요?"

환경미화원 체험을 위해 찾은 곳은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3명이 1조가 되어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종류에 따라 종량제(6조), 재활용(4조), 음식물(3조)로 나뉜다. 이날은 종량제 쓰레기를 수거하는 팀과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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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은 이날 하루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하루 최소 5만보씩 걷는다는 이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호기롭게 "할 수 있다" 답 했지만, 정신이 혼미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청소는 7시 38분, H 아파트 9개 동을 돌며 시작됐다.

"들고, 끼고, 안고"

수십, 아니 수백개의 쓰레기봉투는 트럭 뒤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어찌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환경미화원들은 쓰레기를 양손에 들고, 옆구리에 끼고, 품에 안고 내달리고 있었다. 쓰레기를 가까이 할 수록 작업은 더욱 속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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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리고, 긁히고, 베이고… 이 일 하면서 다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유리, 칼, 볼펜, 소주병, 이쑤시개 같은 거에 많이들 다치죠. 쓰레기를 양손으로만 들 수가 없으니까 옆구리에 끼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면 그때 또 다치죠" 근무 7개월 차라는 신현정(44) 환경미화원의 손도 상처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음식물은 오히려 다행"

환경미화원들 사이에서 '종량제 봉투에는 사람 빼고 다 넣는다'는 우스갯소리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터진 쓰레기봉투 사이로 깨진 유리 조각과 터진 복숭아, 정체불명의 새빨간 양념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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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쓰레기들이 환경미화원들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

"트럭에서 쓰레기를 빨아들일 때 압력에 눌려서 봉투가 풍선처럼 터져요. 봉투 안에 음식물이 들어있으면 얼굴에 전부 묻기도 하죠. 안 맞아본 사람은 그 기분 몰라요. 음식물은 오히려 다행이지 유리나 도자기 조각이 날아오면 옷이 찢기거나 코가 찢어질 때도 있어요"

때문에 트럭과는 항상 45도 방향을 유지하고 서 있어야 했다. 봉투가 터지며 어떤 쓰레기가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트럭 정면에 서있는 것은 사고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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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환경미화원으로 근무 중이라는 권 모 씨는 여름철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피부병에 걸리는 것도 예삿일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쓰레기봉투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이들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첫걸음은 시민들의 철저한 분리수거뿐이었다.

"빵빵! 빵빵! 빠아앙!"

뒤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경적을 들으니 조급함이 몰려왔다. 차량 통행이 어려운 골목길에서 움직임을 재촉하는 운전자를 만나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얼른 싣고 얼른 빠져야지 방법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시비라도 걸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서두르지 않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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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이 없어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길도 마찬가지였다. 트럭이 접근할 수 없는 골목길마다 환경미화원들이 뛰어 들어가 양손 가득 쓰레기를 낚아채 왔다. 쓰레기는커녕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주차장을 따라갔다 도랑 틈에 발목이 빠지기도 했다.

경력 13년 차의 조동화(65) 환경미화원은 이런 곳에서 사고가 자주 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쓰레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신입들은 주차장 체인에 걸려서 넘어지는 경우도 많죠. 뛰지 말라고 항상 신신당부해요" 사소한 사고가 큰 사고로 번지는 것은 한순간의 일.

우리들의 청결을 위해 이들의 안전을 담보 잡는 것은 아닐까, 마음 한 켠에 묵직한 질문이 자리잡는다.

"2시간 만에 3.74톤"

H 아파트와 L 아파트 두 단지와 대로변, 골목길을 돌아다닌 지 2시간 만에 3.74톤의 쓰레기가 모였다. 모두 잠시 앉아 짧은 휴식을 취했다. 골목길을 다시 돌며 연탄재나 스펀지처럼 소각장에 반입할 수 없는 폐기물을 모으러 다닌 뒤 소각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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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소각장에 허용된 강남구 배출 쓰레기는 총 240톤.

소각장 진입 가능 시간은 자정이었지만, 쓰레기 배출량이 제한된 탓에 11시 30분부터 약 20대의 트럭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차 안에서 쪽잠을 자는 이들도 많았다. 새벽을 견디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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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장 입장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조동화 환경미화원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을 돌아다니며 홀로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아침에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은 누군가가 달빛을 벗 삼아 뛰어다녔다는 뜻이었다.

"숨이 막히는 광경"

세상의 모든 쓰레기가 모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각장의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치솟은 쓰레기 산 사이로 비둘기가 날아다녔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풍경 사이로 길게 늘어선 트럭들이 품고 있던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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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양이 좀 적네요" 두 번째는 2.41톤, 세 번째는 2.8톤. 이날 세 차례 소각장을 방문하며 총 8.9톤의 쓰레기를 버렸다. 한 사람당 평균 3톤 정도의 쓰레기를 수거한 것. 환경미화원들이 쉬는 토요일 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평균 14톤의 쓰레기가 수거된다고 했다.

이날 강남구에서 모인 쓰레기는 197톤이었다. 평일에도 220톤인 걸 감안하면 오늘은 쓰레기가 적은 날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를 보며 언제까지 태우고 묻을 수 있을지 걱정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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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톤이라는 무게의 의미”

4시 30분까지 작업은 반복됐다. 쓰레기를 수거하여 소각장에 다녀온 뒤, 다시 쓰레기를 수거했다. 골목마다 기시감이 느껴졌지만, 소각장에 다녀오면 새로운 쓰레기는 으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숫자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 3톤이라는 무게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3~4시 사이가 제일 피곤해요. 집에 가서 아침밥 숟가락을 들다가 잠드는 경우도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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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모두 마치고 돌아간 사무실에는 분주함이 가득했다. 오전 근무를 위해 출근을 기다리는 이들은 출전을 앞둔 모습이었고, 첫차를 기다리며 퇴근을 준비하는 이들은 승전한 뒤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환경미화원과 동행하며 이들의 하루를 온전히 체험했다고 하면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의 절반, 아니 절반의 반조차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라만 보는 것과 그들 중 일부가 되는 것이 같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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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살만하구나, 괜찮은 세상이구나"

"쓰레기봉투 안에 유리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쪽지나 메모 써 붙여 놓는 분들이 계시는 데, 그렇게 배려심 있는 분들 덕분에 버티죠. 그런 메모 보면 마음이 싹 녹는 것 같아요"

"지나가는 시민 중에 응원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럴 때 보람도 느끼고 뿌듯하죠. 시민분들도 퇴근하고 쉬셔야 하는데 밤늦게 쓰레기 치우느라 시끄럽게 해서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우리 미화원들 진짜 고생 많아요. 영화 ‘극한직업’이라고 있잖아요. 이것도 하나의 극한직업이죠. 체력 좋고 힘 좋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책임감이 있고 가치관이 있어야 버틸 수 있어요. 내가 청소한 거리가 안전하고 깨끗하면 그게 제일 행복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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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영웅들의 보람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이들은 시민들의 쪽지 하나, 분리수거가 잘 된 쓰레기봉투 하나, 지나가던 초등학생의 따뜻한 인사 한마디에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5~2017년 사이 작업 도중 안전사고를 당한 환경미화원은 총 1,822명. 이중 사망한 미화원은 18명이다. 작업이나 이동 중에 넘어지는 사고가 19%, 쓰레기를 옮기던 중 발생하는 부상이 15%, 교통사고가 12%였다.

야간의 어두운 환경은 물론이고 지나치게 바쁜 업무 뒤로 쌓인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이 사고의 주 원인이었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 6일 '환경미화원 작업 안전 지침'을 통해 새벽이나 밤 대신 낮에 근무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한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도입 시기는 확정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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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만난 환경미화원들 "주간으로 가면 확실히 안전사고는 줄어들 것" "시야가 넓어져 사고는 감소할 것"이라며 대체로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출근 시간대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낮에 주택가에서 시끄러우면 민원이 들어올까 염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환경미화원들은 거리와 골목의 청결만큼이나 시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동트지 않은 새벽, 쓰레기가 있던 자리는 환경미화원의 손길이 닿고 나서야 제모습을 되찾았다. 모두가 잠든 시간 떨어지는 이들의 땀방울은 쉬이 보이지 않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고 그 일의 무게까지 가벼울 리 없었다.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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