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회 맞이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기 수요집회' 우리사회 긍정적 변화 가져왔다!"

"1200회 맞이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기 수요집회' 우리사회 긍정적 변화 가져왔다!"

2015.10.14. 오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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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인터뷰]1,200회 맞이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기 수요집회' 우리사회 긍정적 변화 가져왔다!-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5/10/14 (수)
■ 진 행 : 최영일 시사평론가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조금 전 2부에 중국 현지 연결해서도 전해드렸습니다만. 중국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오늘로 1,200회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1992년 첫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햇수로는 어느덧 24년을 맞은 것인데요.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만, 일본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사과 역시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고요. 잠시 후에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정면인터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전화 연결 돼있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이하 윤미향): 예. 안녕하세요.

◇최영일: 네. 벌써 24년이군요.

◆윤미향: 네. 그렇습니다.

◇최영일: 첫 수요집회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오신 거죠?

◆윤미향: 네. 그렇습니다.

◇최영일: 1,200회를 맞이한 소감 어떠신가요?

◆윤미향: 굉장히 이런 것이야말로 만감이 교차한다고 표현을 하고 싶은데요. 분노, 절규, 또 한숨.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달려왔던 1,200회였던 것 같아요. 그냥 숫자로 생각하면 1,200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한 회 한 회 진행을 할 때마다 때로는 할머니들이 부끄러워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통곡하기도 했고. 정말 대사관 앞에서 몸을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분노를 어떻게 주체하지 못해서 절규하던 그런 때도 있었어요. 그것이 1,200회를 만들어온 것이죠. 그렇게 똘똘똘 역사가 굴러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최영일: 자, 햇수로 24년. 1992년이면 제가 대학 졸업하고 막 사회 나오던 해더라고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윤미향: 저는 사실은 이 정대협에 간사로 참여를 1992년부터 시작을 했는데요. 그 전에는 역사라고 하면 역사책 속에서 글자로 된 역사, 그리고 우리 그냥 기억 속에, 생각 속에 있는 역사.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물론 그 이전에 기생 관광 문제라든가 일본 사람들 역시 한국의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러 관광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성매매 관광을 하러 온다는 소식들이 제게 굉장히 큰 분노로 자리잡고 있었고요. 그런데 때마침 1991년 8월 14일에 김막순 할머니가 최초로 ‘내가 위안부 피해자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일본 정부가 군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느냐, 민간업자가 했다고 할 수 있느냐. 너무나 억울하다’라는 절규를 제가 보고는. 아, 역사라는 것이 이렇게 생각 속의 역사가 아니구나. 기억 속에, 책 속에 있는 것이 역사가 아니구나. 바로 우리 옆의 이웃이, 특히 우리들의 할머니가 그렇게 살아있는 역사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반성하는 마음, 20대였지만 그 20대 청춘의 뜨거운 열기로 내가 이 할머니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최영일: 참 24년이면 그동안 엄청난 일들을 겪으셨을 것이라고 짐작만 해봅니다. 그런데 1,200회 수요집회를 통해서 일본은 아직도 요지부동인데요. 어떤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시겠습니까?

◆윤미향: 사실은 먼저 긍정적인 평가를 하자면, 생존자들이 가장 많은 변화를 이뤘던 것 같아요. 92년도 초기에 그 때 수요시위를 진행할 때는 할머니들이 대부분 얼굴을 피켓으로 가린다든가, TV라든가 언론들이 인터뷰하려고 하면 고개를 숙이고 계시거나 모자를 쓰거나 하신 분들도 계셨고요. 얼굴을 돌린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러니까 위안부 문제가 본인들의 부끄러운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해서 부끄러운 여자들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식이 그대로 할머니들의 삶에 투영이 되어서 할머니들 스스로도 자기 자신들이 부끄러운 여자라는, 수치스러운 여자라는 인식들이 내재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수요 시위를 거듭하고 그 수요 시위에 함께 연대하는 국제 사회에서 온 파란 눈동자의 분들, 미국에서 오신 분들, 피부가 검은 분들. 인종을 초월하고 성별을 초월하고 연령을 초월해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셔서. 당신들은 정말 영웅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전쟁을 겪고도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당당하게 그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라는 지지와 격려. 그것이 할머니들을 더 당당하게 만드셨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디를 나가도 세계 각지 어느 곳에서도 할머니들이 굉장히 당당한 목소리로 당신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증언하시고. 수요시위에서도 일본 정부가 부끄럽게, 그러니까 부끄러워야 할 대상은 바로 일본 정부라는 것. 가해자들이, 범죄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을 할머니들이 스스로 밝혀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최영일: 그렇습니다.

◆윤미향: 그 다음에는 한국 사회가 굉장히 사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대다수 국민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죠. 정말 일본 정부가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 미래 세대들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이 수요시위의 주인공이 되고있다는 것. 이미 많은 분의 피해자들이 돌아가셨지만 그 돌아가신 분들의 자리까지 청소년들이 메워가고 있다는 것. 이게 굉장히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영일: 네. 그러면요. 오늘 1,200회 수요집회가 좀 여느 때와 다르게, 특별하게 진행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점에 차이가 있었나요?

◆윤미향: 굉장히 감동이었는데요. 직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사회를 보고, 인사말을 하고, 그렇게 진행을 했어요. 그러니까 흔히 그냥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지 못하거나 이 문제를 모르는 분들은 그냥 할머니들을 불쌍한 할머니들. 그리고 뭔가 자기들의 생각을, 주장을 적극적으로 사회를 향해 내놓기 어려우신 분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요. 오늘 수요시위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면 어쩜 저렇게 할머니들이 사회도 잘 보시고, 자기들이 하고싶은 말들을 아주 요약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저렇게 말을 잘 하시나. 특히 88세 이용수 할머니께서 사회를 보셨는데요. 정말 우리들이 사회하는 그 모습으로도 감동을 받고, 또 대표 인사를 하신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90대이신데, 유럽을 돌아다니시며 해왔던 활동들을, 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여러분 힘내십시오. 여러분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머니 나비들이 정말 열심히 날아다닐 테니까 여러분들도 힘차게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우리 한반도가 통일되어서 전쟁의 분위기를 평화의 분위기로 바꿀 수 있도록 여러분들 힘내 주십시오’라고 말씀을 끝맺었었거든요.

◇최영일: 그렇군요.

◆윤미향: 모든 사람들이 힘찬 박수와 함성을 보냈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수요시위였어요.

◇최영일: 대표님 말씀으로도 그 자리에 없었던 우리, 청취자 분들 그 감동이 전해질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수요집회는 하루 빨리 없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잖아요?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보세요?

◆윤미향: 사실 이 수요시위를 처음 시작할 때,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그 때만 해더라도 100회를 넘길 것이라고 생각을 안 했고요. 500회를 넘길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왜냐하면 이 문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피해자들도 그렇게 적극적인 노력을 나서지 않을 때였고. 아직 일본군 문서들도 발견이 되지 않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발견되고 피해자들이 나서서 우리들이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하면, 일본 정부가 금방 해결할 줄 알았죠. 그런데 1,000회를 가고, 1,100회를 넘고, 1,200차가 된 것이잖아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수요시위는 계속될 것입니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셔도 그 할머니들의 빈 자리를 또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계속 할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지금 현재 47분이 다 살아계실 때 수요시위를 정말로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축하하는. 이제 비로소 할머니들이 ‘우리도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전쟁이 끝났습니다’라고 축하하고 기념하시는 마지막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해산하는. 그런 날을 만들어야죠.

◇최영일: 그렇습니다. 이게 또 우리 모두 함께 해야 되고요. 남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문제니까요.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윤미향: 네. 고맙습니다.

◇최영일: 지금까지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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