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발언만이 아니다…민주당에 '혁신' 대신 '부담' 주는 김은경

노인 발언만이 아니다…민주당에 '혁신' 대신 '부담' 주는 김은경

2023.08.04. 오전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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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발언만이 아니다…민주당에 '혁신' 대신 '부담' 주는 김은경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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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혁신위원장이 되었나?

시작부터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이래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낙마한 뒤 열흘 동안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그리고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차기 후보군으로 거론됐는데 결국 김 교수가 혁신위원장을 맡게 됐다. 막판에 '여성'과 '참신한 인물'이란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장일치였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민주당 안에서 특정 계파나 인사들과 연계된 건 알려진 게 없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인선 배경을 설명하면서 '참신성과 개혁성을 갖춘 원칙주의자'란 점을 강조했다. '원칙주의자적인 개혁 성향의 인물'이라고 설명했는데 '원칙'과 '개혁'이라는 가치는 양립하기 어려운 데 암튼 그렇게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상법·보험법 전문가다. 문재인 정부 때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에 임명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올해 3월까지 재직했다. 굳이 여의도 쪽 이력을 찾자면 문재인 대표 때의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당무감사위원을 맡은 적이 있었다. 여기까지 보면 전 정부·청와대 인사 쪽 추천이 있었다는 얘기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이재명 대표 지지자인 이래경 초대 위원장 낙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새로운 인물을 찾으려는 일종의 강박증에 친명계와 거리가 좀 있는 인사를 찾으려는 시도가 만들어 낸 결과로 보인다.

'노인 폄하' 논란…억울해하다 고개 숙인 김은경 위원장

시작부터 여러 논란이 있었다. 가장 최근엔 노인 폄하 발언이다. 김은경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청년좌담회에서 한 말이다. 당시 발언 전체를 있는 그대로 다시 한번 짚어보자.

"둘째 아이가 20대 초반, 22살이에요.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 때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엄마,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할 때는 사람들의 평균 여명이 얼마라고 보았을 때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로부터 여명까지로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를 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말은 되게 합리적이지요.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그게 참 맞는 말이에요. 우리들의 미래가 훨씬 더 긴데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똑같이 1대 1로 표결을 하느냐는 거지요. 투표권을…"

"되게 합리적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를 주는 선거권이 있으니까 할 수가 없는 거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투표장에 청년들이, 젊은 분들이 나와야 그 의사가 표시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냈던 기억이 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부적절했다. 청년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의도는 알겠는데 이 말속에 세대 간 분열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이전 민주당 인사들이 했던 대놓고 '노인들 투표장 오지 말라'는 정도는 아니다. 정치의 순기능은 분열과 갈등을 최대한 줄이는 데 있다. 이게 시장이 못하는 분배의 영역이다. 물론 '여의도 정치'가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악용하는 전략을 쓰기도 하지만 적어도 혁신위원장이 할 일은 아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진의가 왜곡됐다고 항변할 수는 있다. 여당과 언론 대부분이 김 위원장의 긴말을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청년들과 똑같이 1대 1 표결을 하냐"로 줄여서 비판했다. 그래서 처음엔 혁신위가 대신 나서 청년의 정치참여를 촉구한 것이라며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중에 김 위원장이 "앞뒤 자르고 맥락 연결을 이상하게 해서 노인 폄하인 것처럼 말씀하는데 그럴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자리에선 "교수라서 철없이 지내서 정치 언어를 잘 모르고 깊이 숙고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며 거듭 해명했다. 이래도 논란이 계속 커지자 "어르신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에 대해 더욱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의 노인 폄하 발언으로 피해를 본 건 투표 독려 대상인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 아들과 비슷한 20대 초반이면 누가 '투표를 해라 하지 마라' 안 해도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알아서 투표한다. 20대 지지율이 떨어지는 민주당 입장에선 급할 수는 있지만 투표 참여는 말로만 독려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투표하게끔 민주당이 하면 될 일이다. 이를 말로만 독려하는 것 또한 이른바 '꼰대식 사고'다.

노인 폄하 발언과 배치된 '코로나 학생' 발언

이전에 다른 논란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 초선 의원들을 대학생 제자로 비유해 논란을 빚었다. "코로나를 겪었던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심각했는데 초선이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더라. 그래서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소통이 안된다는 건 혁신위원장으로서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일부 언론이 지적한 대로 헌법기관인 국민대표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은 과한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 위기 때 대학 생활을 해야 했던 제자들을 거론했는데 이들의 학력 저하는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세계적 재앙과 맞물려 있다. 개인이 아닌 환경 문제가 절대적이다.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대학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누리지 못한 청년들의 아픔이다. 이를 학력 곧 능력 저하의 문제로 연결하면서 민주당 초선 의원들을 비판한 게 문제다. 앞선 노인 폄하 발언에서는 청년들을 독려했는데 여기선 거꾸로 청년들의 능력 저하를 짚었다. 둘이 배치된다.

이밖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돈 봉투 사건이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사인으로서의 이야기였다"며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 제도적 쇄신안을 만들 예정"이라고 주워 담으려 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선 이낙연 전 대표를 겨냥해 "자기 계파를 살리려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러지 않으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민주당 혁신은 친명계만으로 하는 게 아닌데 일종의 갈라치기처럼 비추어질 수 있다. 이낙연 쪽 인사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윤석열 밑에서 (금융감독원 부원장) 임기를 마치는 게 치욕스러웠다"는 말도 논란인데 당장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금융감독기구를 자기 정치에 이용한다"는 금감원 직원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되면 김은경 위원장의 다음 발언은 또 뭘까?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기자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며 취재하게 된다. 혁신의 내용보단 위원장의 입만 바라보게 된다.

정치 선언에 그친 '1호 혁신안'

위원장의 여러 말이 논란이더라도 혁신위의 결과가 좋으면 달리 평가받을 수도 있다. 혁신위가 '민주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 및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내걸었는데 이렇다 할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가 나중에 '정당한 체포영장'이란 조건이 붙은 채 민주당 의총에서 통과됐다. 이후 기명 투표를 놓고도 말이 많았다. 결국 1호 혁신안은 '조건부 포기'이자 '정치 선언'의 의미가 크다.

혁신위원장으로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밖으로는 어떤 의제를 설정하고 안으론 계파 갈등을 최대한 줄일 방안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하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민심이 원하는 큰 그림이 그려지면 '청년'이든 '노인'이든 알아서 투표장에 간다. 굳이 독려하지 않아도 간다. 그게 민심이다. 김 위원장 인선 때 '원칙은 지키되 개혁적'이라고 했는데 민주당 혁신을 위해 어떤 원칙이 있는지 또 민주당을 어떤 방향으로 혁신할 것인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민주당에 있어 혁신보단 부담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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