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軍 성폭력 피해에 "죽고 싶다" 했지만..."내일 전화하세요"

단독 軍 성폭력 피해에 "죽고 싶다" 했지만..."내일 전화하세요"

2021.06.11. 오전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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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공군 여성 장교가 자신의 성범죄 피해 후유증을 진료해 준 국군수도병원 의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식, 어제 전해드렸는데요.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한 피해자는 국방부의 자살예방 상담센터인 '국방헬프콜'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죽고 싶다고 울며 호소했지만, 상담관은 내일 다시 전화하란 답변만 반복했습니다.

신준명 기자입니다.

[앵커]
성폭력을 당한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던 공군 대위 A 씨는 국방헬프콜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다"고 호소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지정된 상담관이 퇴근했으니 내일 다시 전화하라는 말이었습니다.

[A 씨 / 전 공군 대위 : 저 때문이잖아요. 그 사람이 나한테 네가 그런 여자애라서 그런 거라고.]

[상담관 : 예전 상담사와 통화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31일에 다시 한 번 전화 주세요.]

[A 씨 : 저는 지금 죽고 싶은데요. 말을 할 데가 없는데, 말을 할 곳이 여기밖에 없어요. 여기다가 전화를 했는데, 내일까지 기다려서 다시 전화하라고.]

[상담관 : 그래서 어떤 도움을 드려야 하는지….]

피해자에게 무슨 도움을 원하는 거냐며 오히려 반문했던 상담관.

모든 건 본인의 선택과 결정이라며 따지듯이 피해자를 몰아붙였습니다.

[A 씨 : 그럼 알아서 다들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해요?]

[상담관 : 그렇죠.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A 씨 : 그럼 제가 죽고 싶으면 죽어도 돼요, 그냥?]

[상담관 :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담관이 어떻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실 거예요? 그동안 상담했던 상담관하고 내일 통화하는 게 바람직하겠다….]

통화를 마친 A 씨는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서 버려졌단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한 사람.

성추행 피해를 신고했다가 조직적인 은폐와 회유, 압박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모 중사였습니다.

[A 씨 / 전 공군 대위 : 버림받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이제 혼자다, 내 일은 나만의 문제다, 그런 생각이 들고. 중사님 사건을 보니까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 같아요. 얘기해도 아무도 내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까.]

YTN 신준명[shinjm7529@ytn.co.kr]입니다.

[앵커]
공군 장교는 결국 사건 발생 7개월 만에 전역했지만 공군 인사 기록엔, 성폭력 피해자라는 낙인이 남았습니다.

성폭력 피해 휴직을 명시한 법 조항과 이에 따른 군 인사제도 때문입니다.

신준명 기자가 계속해서 보도합니다.

[기자]
성폭력의 충격으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탓에 휴직을 신청했던 공군 대위 A 씨.

성폭력 피해 사실은 최소 인원만 알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공군 본부와 소속 부대의 성고충전문상담센터는 휴직 신청 때 내야 하는 진단서에서 민감한 내용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피해자의 이름도 익명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내부망인 인트라넷의 인사 기록엔 군 인사법 제48조 1항 4조에 따른 휴직이란 기록이 남았습니다.

해당 조항은 성폭력을 당해 치료를 위한 휴직을 신청했을 때, 이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낙인이 찍혀 2차 가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A 씨 / 전 공군 대위 : 전역을 해서 검색을 해야만 볼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라고 하셨지만, 그건 남일 일 때 얘기지, 본인 일이 되면 한 명이라도 볼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게 힘든 일이잖아요.]

당시 공군 본부 인사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휴직 조항인 48조까지만 남길 수 있는지도 검토했지만, 현행 인사 관리 제도에서는 이를 수정할 수 없다"고 A 씨에게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법률 개정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는 만큼 국방부 장관의 명령으로 해당 기록들을 즉각 삭제 조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임태훈 / 군인권센터 소장 : 인사 기록에 피해자임을 드러내는 조항을 붙이는 것은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장관이 즉시 없애야 하고]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으로 불거진 군 성폭력 실태.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조사와 함께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YTN 신준명[shinjm7529@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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