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소기업 노린 '산업스파이' 잇따라 적발...기술유출 처벌 '솜방망이'

단독 중소기업 노린 '산업스파이' 잇따라 적발...기술유출 처벌 '솜방망이'

2021.02.08. 오전 08: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바다 위를 떠서 이동하는 배, 바로 '위그선'입니다.

국내 업체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핵심기술인데, 퇴직한 직원들이 기술을 빼돌렸다 우리 정보 당국에 덜미를 잡히는 등 산업 기술 유출사례기 잇따라 적발됐습니다.

대기업에 이어 이제는 중소·벤처기업까지 '산업스파이'의 표적이 되며 국내외로의 기술유출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는데요.

황혜경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 2017년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시승했던 위그선.

바다 위를 1m가량 떠서 고속이동할 수 있는 배로, 국내 업체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장 등 직원 2명이 퇴직하면서 개발 실험 데이터와 설계도면 등을 빼돌려 동종 업체를 설립하고 해외 업체와 생산을 추진하려다 우리 정보 당국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하마터면 십수 년 동안 수백억 원을 투자해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이 고스란히 경쟁국 수중에 들어갈 뻔했습니다.

[조현욱 / '위그선' 개발 업체 대표이사 : 이런 거 정도 가져간 게 뭐가 죄가 되느냐, 이게 무슨 국가핵심기술이냐 (하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것 아닌 것은 가져가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국가핵심기술은 어떤 이유가 되든지 가져가선 안 됩니다. (기업과 국가 승인 없이) 해외 유출됐을 때는 이적행위로 또 매국 행위로 엄벌에 처해야 된다는 게….]

1/1000mm 두께까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가진 이 제조업체는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유기발광다이오드, OLED의 두께 측정기를 개발해 100억 원 규모의 중국 수출을 앞둔 상황에서 소속 프로그래머가 기술을 빼돌린 겁니다.

훔친 기술로 중국에서 비슷한 장비를 만들어 저가에 판매하는 바람에 10년간 공들인 연구·개발이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국정원의 문을 두드려 유출 증거를 찾고 가해자 징역형도 이끌어 냈지만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막막합니다.

[최병곤 / 계측장비 제조업체 대표이사 : (회사에 있는 원본과) 그 친구가 유출한 거랑 1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완전히 싱크로율 100%로 나왔으니까…. (공모한 중국 교포는) 결혼할 때 '주례 좀 서 주세요' 할 정도로 저하고 굉장히 돈독한 관계였어요. 뒤에 가서 그렇게 할 거라곤 전혀 생각을 못 했죠.]

지난 2015년부터 20년까지 국정원에서 적발한 해외 기술유출 사건은 모두 130건.

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가 적발한 사건도 최근 5년간 6백 건이 넘고, 검거한 인원은 무려 천7백 명을 웃돌고 있습니다.

대부분 고액 연봉 등 금전적 이익의 유혹에 넘어간 건데, 이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 규모는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첨단 정보기술 강국인 우리나라가 산업스파이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 의식 강화와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YTN 황혜경입니다.

[앵커]
산업 기술유출범을 어렵게 붙잡아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게 현실입니다.

어렵게 개발한 첨단기술이 헐값에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면 처벌을 강화하고, 중견·벤처기업의 보안 체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도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최근 기술유출 피해는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의 산업기술 유출 사건을 보면 피해기업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입니다.

정보 당국이 적발한 해외 기술 유출 사건 중에서도 3분의 2는 중소기업이 표적이었습니다.

첨단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도 정작 보안 시스템은 허술한 점을 노리는 겁니다.

[장항배 /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 대기업에 비해서 자원이 부족하니까 상대적 우선순위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안의 체계들이 많이 소홀한 게 사실이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취약점에 노출돼있는 게 현실입니다.]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5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례를 보면, 유죄가 인정된 28명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겨우 4명입니다.

적발돼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고, 걸리지만 않으면 고액연봉으로 인생역전을 꿈꿀 수 있으니 유혹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임형주 /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영업비밀 사건은 대략 2년 정도 걸리는데요, 그에 따라서 비용도 상당히 들고, 조직 내 피로도 상당히 많이 누적이 됩니다. 그런데 막상 선고가 집행유예로 끝나버리면 허무함을 넘어서 이런 절차를 왜 했나…]

최근은 대부분의 자료가 디지털로 관리돼 한번 유출되면 회수하기 어려운 만큼, 사전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때문에 첨단기술을 가진 기업이 보안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술보호협회 등이 활동하고 있지만, 기업들을 충분히 지원하기엔 인력과 예산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첨단기술 글로벌 경쟁 시대, 기술 유출은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강화된 사전, 사후 조치가 시급합니다.

기술 유출로 입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을 더욱 높이는 등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 마련도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YTN 김도원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