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살려준 언니, 죽기 전 꼭 한 번 만난다면"...또 무산된 추석 이산상봉

"날 살려준 언니, 죽기 전 꼭 한 번 만난다면"...또 무산된 추석 이산상봉

2020.09.30. 오전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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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내에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수는 5만여 명.

하지만 이들 모두 고령인 데다, 2년 전 상봉장 시계가 멈추면서 그리운 북녘의 가족을 만날 날은 기약이 없습니다.

상봉 행사 때마다 지원하고도 번번이 떨어진 애끓는 이산가족을 황혜경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이현선 / 이산가족-서울 도곡동 : 이현숙. 저는 이현선. 언니가 살아 계신다면 아마 91세쯤 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올해 82세인 이현선 씨는 70년 전 황해도 해주 앞바다에서 큰 언니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서울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작은 언니, 남동생과 함께 38선을 건넜는데, 당시 갓 결혼한 큰 언니는 군에 징집된 남편 대신 시부모를 모셔야 한다며 북에 남기로 한 겁니다.

동생들을 안전하게 부모님 품으로 보내기 위해 갓 20살 문턱을 넘은 언니가 감당했던 고통을 떠올리면 이 씨의 마음은 미어집니다.

[이현선 / 이산가족 : 제가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언니를 찾아서 그 은혜를 조금만이라도 갚아야 할 것 같은 그 마음이 지금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어릴 적 남다른 그림 솜씨에 '너는 화가가 되면 좋겠다'고 했던 언니의 말이 뇌리에 남아서일까.

이 씨는 실제로 화가가 됐고, 그리운 큰 언니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현선 / 이산가족 : 때때로 언니를 생각하면서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저 혼자 있을 때는 울적해서 눈물이 나고 언니를 본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서….]

이 씨처럼 북녘에 가족을 둔 이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5만 5백여 명.

올해만 해도 벌써 2천2백여 명이 북측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채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전면적인 생사 확인과 화상 상봉만이라도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입니다.

[이인영 / 통일부 장관(지난 16일) : 마음만 먹으면 화상 상봉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북측에서 호응만 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그런 상태로 준비돼있다….]

하지만 북측의 무응답으로 2018년 8월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은 올해 추석 계기에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이현선 / 이산가족 : 언니…. 정말, 언니가 보고 싶어요. 살아계시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YTN 황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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