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의출발새아침] 전우용 “나경원, ‘반민특위’로 국민통합 이뤄”

[김호성의출발새아침] 전우용 “나경원, ‘반민특위’로 국민통합 이뤄”

2019.03.21. 오전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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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의출발새아침] 전우용 “나경원, ‘반민특위’로 국민통합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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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 출연자 : 전우용 역사학자






◇ 김호성 앵커(이하 김호성): 목요일마다 역사의 향기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분이죠.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님 나오셨습니다. 박사님, 어서 오십시오.

◆ 전우용 역사학자(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김호성: 오늘 오디오 칼럼 제목이 무엇인가요?

◆ 전우용: ‘안 보이는 표석,’ 또는 ‘사라진 표석’입니다.

◇ 김호성: 안 보이는 표석이 어디 있다는 얘기죠?

◆ 전우용: 을지로 롯데백화점 동편 쪽으로 길 건너서 한국전력 옛 사옥 남쪽으로 얼마 전에 이게 리모델링해서 호텔로 바뀌고 있는데요. 국민은행 본점이 있었죠.

◇ 김호성: 롯데백화점 맞은편이요?

◆ 전우용: 네. 국민은행 본점이 있었고, 그 옆 골목. 사람들이 잘 안 다니고, 눈에도 잘 띄지 않은 곳에 사제 표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사제 표석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이 역사 도시라고 국제적으로 표방하면서도 역사적 유물이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설이나 인물의 탄생지와 같은 곳에 서울시에서 표석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매년 조금씩 표석을 세워서 지금도 시내를 다니다 보면, 큰 돌에다가 여기가 무슨 태화관 터니, 3.1 운동 발상지니, 이런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서울시에서 세운 것이 아니고, 민족문제연구소라고 하는 기관에서 민간단체죠. 거기에서 임의로 처음에 세운 작은 표석이 바로 국민은행 옆 골목에 있었어요.

◇ 김호성: 어떤 표석이죠?

◆ 전우용: 그 표석이 반민특위 터라는 표석이었습니다.

◇ 김호성: 그 자리에 반민특위가 있었던 건가요?

◆ 전우용: 반민특위가 1948년 9월에 반민법이 공표되고, 10월에 결성됐고, 이듬해 6월에 거의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정부의 공격과 특히 수사 대상이 되었던 친일 경찰들의 공격으로 인해서 와해되지 않았습니까?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웠던 표석이 바로 그 국민은행 옆에 있었고요. 그 자리가 바로 반민특위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 김호성: 최근에 정치권에서 반민특위 관련한 발언들이 많이 나왔어요. 나경원 원내대표도 있었고, 또 엊그제는 총리가 직접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 일단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을 들어보실까요?

◆ 나경원: “우리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또 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 김호성: 반민특위가 분열로 이어졌다는 발언이었는데요. 역사학계에서는 관련해서 성명도 나오고 그랬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전우용: 광복회, 항일운동단체 연합, 또 역사학계, 저 발언으로 인해서 국민 통합이 이루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만큼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했다는 말 자체에 분노하는, 또 잘못됐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봐야겠죠. 실제로 잘 아시다시피 초대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이었고, 이 법률을 초대 국회에서 시급히 제정했던 이유는 당시 국민의 일반적인 열망이 반민족 행위자들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었거든요. 당시 반민특위 위원장이었던, 김상덕 선생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2.8 독립선언 때 서명했던 분이기도 하고, 평생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기도 하니까요. 김상덕 선생이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어떻게 동족의 뼈를 바르고, 뼈를 뭉개고, 살을 찢고, 고춧가루를 들이붓고, 손톱에 대못을 박고, 이랬던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이들을 용서하고서 어떻게 새 나라를 만들 수 있는가, 그렇게 얘기를 했고요. 실제로 그래서 반민특위가 좌절함으로써, 좌절했다는 것은 과거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무너뜨려 버렸다는 얘기잖아요. 한 사회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가 사실 그게 분열의 원인이거든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웠어야 하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친일파도 괜찮다, 반민족 행위자도 괜찮다, 친일경찰도 괜찮다, 일본 밀정이어도 괜찮다, 이런 식의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도대체 어디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잡고 국민이 통합을 할 수 있겠는가를 거꾸로 보자면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한 것이 아니라 반민특위가 와해됐기 때문에 그 이후에 올바른 가치관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역사적 해석으로 보자면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해야겠죠.

◇ 김호성: 그러니까 반민특위 때문이 아니라 반민특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는 말씀이신 거잖아요?

◆ 전우용: 반민특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몰아갔기 때문에, 와해시켰기 때문이라는 거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금 반민특위 표석조차 없어요. 없고. 그것을 새로 세우려고 해도 지주. 지금 국민은행 뒤에 건물을 매입해서 호텔로, 오피스텔로 리모델링하고 있는데요. 듣기로는 건물주가 여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올 것인데, 그 앞에 반민특위 표석을 세우면 어떻게 하느냐, 세울 수 없다고 반대를 해서 반민특위 표석이 지금 원래 있던 자리에 놓이지 못하게 되어 버렸어요. 지금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이라고 전혀 관계없는 청파동에 있는 작은 박물관 안에 옮겨져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인 거죠. 반민특위에 대한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고, 반민특위에 대한 기억조차 보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일부 있어요. 돈 때문에. 그런 게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 김호성: 이낙연 국무총리는 반민특위 무산으로 인해서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 했고, 그 못한 것이 곧 우리 사회의 많은 왜곡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전우용: 친일 청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닌 거죠. 작게 보면 그 문제지만, 사실은 뭐가 옳고, 뭐가 그런 것인가에 대해서 기준을 세우지 못 했다.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만든 법이죠. 그게 어떤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라기보다는 새로 만들어진 나라가 어떤 정신에 입각해서 유지되어야 하느냐. 그래서 제헌헌법에 그렇게 넣었거든요. 정의, 인도, 동포에 입각하여 민족적으로 단결을 공고히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행위가 정의와 인도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헌법적 가치를 수립하기 위해서도 반민특위의 활동이 제대로 결실을 맺었어야 했거든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 가치도 구현되지 못했고, 또 국민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갖지 못하고 사익에 따라서 분열하는 현상을 낳아버렸던 거죠.

◇ 김호성: 사익에 따라서 분열한다고 하는데, 흔히 말하는 우리가 국론이 분열한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과연 그렇게 바라보는 것과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존중이라든가, 이렇게 오가는데요. 중심을 잡으면서 논의를 진행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전우용: 말씀대로 민주 국가에서 국론 통일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어불성설이죠.

◇ 김호성: 그렇죠. 독재 국가가 아닌 이상에야.

◆ 전우용: 또 다른 의견이 나올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의견에서 학생들이 싸울 때도, 자기들끼리 다툴 때도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다투지 않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누가 승복을 하든, 아니면 사과를 하든, 이러면서 서로 더 친해지고,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이게 서로 토론과 대화가 되는 식의 분열이 아니고, 서로 적대하는 그런 분열이 되어 버린 거죠. 반민특위 문제는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국론이 통일된다고 하는 목표를 세울 수는 없어요. 그런데 다만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그런 식의 국론의 다양한 존재이냐,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서로 아무 기준 없이,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식의 분열이냐, 이것을 따져봐야 할 것이고요. 그래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라져버리면,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해져요.

◇ 김호성: 그런데 해방 후의 사회상이 그랬다고 했는데, 이것이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 아닌가요?

◆ 전우용: 여전이 그런 문제들이 남아있는 거죠. 최근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권력과 결부된 범죄, 또는 어떤 특정한 범죄들이 권력에 의해서 축소, 왜곡되었다는 의혹들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이게 정당하지 못하다는 거죠. 정당하지 못한 것인데, 그런 것이 통용되어 왔던 것은 힘이 있으면 부정의해도 덮을 수 있다. 그것의 최초 실례를 보여준 것이 반민특위였다고 생각해요. 무력을 가지고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경찰이었고, 경찰로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사람들이 자기들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오자 총을 들고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서 법으로 만든 기관인데요. 사람들을 구타하고, 연행하고, 고문하고, 이러면서 와해시켰던 거잖아요. 그런 현상이 1948년에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예컨대 몇몇 사건에서 보듯 검찰이 그랬느니, 경찰이 그랬느니,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사건 자체를 축소, 은폐하고, 덮어버리려고 들고, 이런 양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우리 첫 단추에서 잘못 끼웠다는 것,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하는 식의 역사적 선례를 남겼다는 것. 이 점에서 반민특위 와해를 굉장히 뼈 아프게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 김호성: 반면교사를 삼아서 그러면 앞으로 어떠한 방식의 사회적인 갈등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전우용: 일단 기준이 중요하죠. 반민특위 역시 기준이었어요. 통합을 위해서 모두 용서하고, 이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나 반민특위를 와해시켰던 사람들의 주장이에요.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서 모두 단결해서 나아가자, 이런 식의 이야기였거든요. 잘잘못을 따지고 뭐하겠느냐.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지금도 늘 나와요.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일상생활에서도 나와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고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죠. 그러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독립운동하다가 친일 경찰에 고문당했던 사람들이 다시 경찰한테 끌려가서 조사를 받는데, 과거 고문했던 사람이 그대로 있고, 자기를 조사한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 국가에 대해서 애정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신뢰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이것이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깨버리는 배경이 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과거의 잘잘못을 덮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을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해요.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직시하고,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책임지게 하고, 이런 관행을 만들어나가야 과거와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죠.

◇ 김호성: 흔히 나치 전범들에 대한 프랑스식의 해법.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능했다면, 지금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 전우용: 카뮈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 과거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는 진실처럼 되어 있는 상식이잖아요. 우리가 과거사, 과거사, 이런 것에 대해서 매달려서 미래를 못 본다고 얘기하는데, 과거사를, 역사학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과거사를 직시하고, 정리할 것을 정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가장 올바른 미래를 개척하는 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호성: 그것이 오늘에 주는 교훈이라고 한다면, 빨리 반민특위 표석을 어떻게 갖다놔야겠어요.

◆ 전우용: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새로 만들어서. 공공에서.

◇ 김호성: 구체적으로 크기가 어느 정도 됐길래 그렇죠?

◆ 전우용: 지금 만들어진 것은 태블릿 PC보다 조금 큰 정도로만 만들어놨었어요. 왜냐하면, 사지이고,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그리고 길에서 안 보이는 곳에 놓고요. 큰길가 쪽으로 해서 서울시의 기본 표석 사이즈가 있어요. 80cm, 60cm 높이 정도될 겁니다. 그 정도 되는 사이즈로 세워놓고,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김호성: 기억을 할 수 있게,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게, 그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감사합니다.

◇ 김호성: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님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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