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이틀째...개별상봉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개별상봉

2018.08.25. 오후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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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앵커]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인 둘째 날인 오늘 상봉행사의 하이라이트인 개별상봉과 함께 가족끼리 오붓하게 식사를 즐기는 객실 중식이 진행됐습니다.

잠시 뒤 오후 3시부터는 단체상봉이 다시 이뤄질 예정입니다.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2차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데 오늘 오전부터 호텔에서 개별상봉, 점심식사가 진행됐는데 현장의 화면이 지금 들어오고 있습니다.

화면부터 먼저 보시죠.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개별상봉 점식식사 오전부터 진행이 됐습니다. 우선 오늘 일정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부터 정리를 해 주시죠.

[기자]
일단 2차 상봉 이틀째죠. 아침에 남과 북 식사를 따로 식사를 하고 오전에 개별상봉을 한 차례 있었습니다.

지금 화면을 보시면 우리 측이 준비한 도시락을 각 객실에, 금강산호텔의 각 객실에 남과 북 가족들에게 전달을 하죠. 지난주 초에 1차 때는 북측이 도시락을 준비했고요.

지금 화면에 보면 우리 측에 어떤 메뉴의 도시락을 준비했는지가 아마 나올 것 같은데요. 과일이라든가.

그러니까 취재진들 접근도 없고 이른바 남과 북의 관계자들 없이 오롯하게 남과 북 가족들이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그래서 이번에 저 방식이 처음 도입이 됐는데 굉장히 1차 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응이 좋았다 그래요.

단체상봉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음악도 나오고 남북한 관계자들이남의 가족들이 있고. 사실은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는데 오롯이 남과 북의 가족들만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런 것들이 굉장히 반응이 좋았고 북한이 그동안 20차례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하면서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라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앵커]
1차 때는 북측이 도시락을 제공했고 오늘 같은 경우는 우리 측이 이렇게 도시락을 준비한 건데 북측이 보기에는 조금 생소한 메뉴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기자]
사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게 사실은 우리가 우리 일상에서도 북녘 음식을 많이 먹는 거죠. 물김치, 백김치, 족발 이런 게 다 사실은 양념이 안 들어간 담백한 음식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70년간의 분단이라는 세월 때문에 마치 이질감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우리 민족은 70년간의 분단 이전에 더 오랜 세월을 같이 산 거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양념이 많은, 다소 서구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것이 좋다, 나쁘다라는 것을 떠나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질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금 남측 가족들이 머물러 있는 방에 북측 가족들이 방문을 하는 모습. 저기까지만 촬영이 허용되는 겁니다.

[앵커]
그때그때 장소도 잘라지고 주최도 달라지고 하는 건데 도시락을 제공하는 주최도 달라지고 하는데 이런 건 어떤 이유로 그런 건가요?

[기자]
사실은 지금 북측 81가족이 남측 식구들을 만났잖아요, 가족들을. 그런데 저분들이 한국전쟁을 전후로 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북으로 간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고향이 남쪽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 쪽에서 대접을 하는 거죠. 손님 대접을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1차 때는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해서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고향이 북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북한이 손님 대접을 하는 거예요. 그런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1차 때 다과와 어제 2차 첫째 날 상봉 때 보면 다과 메뉴가 다르죠. 우리한테 낯이 익은, 우리는 그런 브랜드들을 볼 수 있었고요.

음료도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지금 오늘 장소는 금강산호텔입니다. 금강산호텔은 금강산지역에서 북한이 과거 건립했던 건물을 이번에 하면서 개보수를 했다고 그러죠.

그런데 좀 차이점이 1차 때 북측 가족들의 모습과 지금 가족들의 모습이 다르죠. 지금 2차 상봉의 특징은 북쪽에서 남측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선정합니다.

우리처럼 추첨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러다 보니까 북한 용어로 하면 북한 각 부문별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김일성종합대 교수를 지냈다든가 김책공대를 나왔다라든가 북한에서 40여 년간 기자생활을 했다는 할머니, 이런 분들이죠.

그런 분들이 남측 가족들을 만나다 보니까 지금 잠깐 화면에 비추었습니다마는 1차 때부터 선물 보따리라든가 이런 것이 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송출되는 화면을 바로바로 전해드리다 보니까 화면이 다소 고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리고요.

오늘 오전부터 진행된 개별상봉. 그리고 점심 일정은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좀 보장해 주자는 취지로 마련된 일정인 만큼 취재진의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고요.

다만 객실 밖에서의 이런저런 풍경들이 영상에 담겨서 전달이 됐고 그 모습을 지금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도시락을 호텔 안으로 넣어주는 모습을 보시고 계시고요.

아까 보니까 손에 쇼핑백 같은 것들을 저마다 들고 있더라고요. 1차 때도 북측에서 선물 보따리를 주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죠. 선물 보따리를 주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줬습니다. 우리도 되돌아갈 때 우리가 가족들이 주는 선물이 따로 있고 남북한 관계당국이 전해 주는 선물이 따로 있습니다.

전해 주고 저러는데 저 도시락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의미 있게 봐야 되는 게 사실은 과거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인해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됐지 않습니까?

전면 중단되고 2015년 10월에 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저것이 반찬을, 날씨가 덥잖아요. 그러니까 속초나 고성에서 식재료가 들어갑니다.

이건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남북관계가 좋아지거나 북미관계가 좋아지면 남북 금강산관광 재개가 될 수 있는 사전의 작은 부분이지만 예행연습 부분이다 이렇게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저 도시락이 그냥 갖는 의미가 굉장히 남다릅니다.

저것이 미리 준비할 수도 없는 거고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이 언론에는 노출이 안 되지만 그런 차량들이 지금 동해 CIQ를 통해서 드나들고 있다.

어느 정도 남과 북이 소통이 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봐야 되는 겁니다.

[앵커]
조금 전에 이산가족들의 표정을 보면 어제보다는 한결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분위기도 좀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기자]
그렇죠. 아무래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역시 고유 테이블 번호가 내 가족이 맞다라는 것을 굉장히 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 날 유복자셨는데 북으로 간 아버지를 처음 만났는데 그런 말을 했다고 해요.

아버지 나한테 미안한 감이 없냐고. 68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아버지는 묵묵부답을 했었는데 그런데 그런 것들이 회한이 쌓인 걸 어느 정도 녹아내렸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하루 자고.

그런데 과거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보면 지금 하루를 자고 나면 내일 헤어져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먼저 걱정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죠.

[앵커]
그러니까요. 이 짧은 시간이 얼마나 또 아쉽게 느껴질까요? 이산가족들 분위기도 그래도 어제보다는 한결 편해진 것 같은데 오늘 금강산 날씨도 맑게 갰다 그래요.

[기자]
그렇죠. 사실 태풍 솔릭 때문에 걱정들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좀 비껴갔고. 이번에도 날씨가 지금 서울시내 날씨도 화창하지 않습니까?

동해안 특유의 가을, 초가을 분위기가 아무래도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기가 과거에 금강산에서부터 원산만으로 이어지는 분단 이전에는 이른바 명사십리라고 해서 굉장히 풍광이 좋은 곳이거든요.

해당화도 많이 피고. 그런 도로인데 그런 천혜의 계절을 갖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래서 어제 우리 측이 주최한 환영만찬에서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 박용일 부위원장이 금강산 만 2000봉이 한 봉우리 한 봉우리해서 만 2000봉의 풍광을 이루듯이 이산가족의 작은 만남이 한민족이 하나로 될 수 있는 결실을 갖자라는 답사를 했다라고 합니다.

[앵커]
오늘 오전에 진행된 개별상봉 화면 지금 계속해서 보고 계신데요. 스케줄대로라면 금강산에서는 이제 잠시 뒤 20분 정도 뒤부터 단체상봉이 시작이 되는 거죠?

[기자]
단체상봉이 오후 5시까지 두 시간 이뤄지게 됩니다. 이뤄지게 되는데 1차 때 좀 유연성을 발휘했어요.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시간대로 안 하고 1시간씩 더 주자 그렇게 해서 오늘도 아마 그런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희망입니다마는 17시를 좀 넘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틀째 날은 아마 17시 30분부터, 오후 5시 반부터 7시까지 개별로 저녁식사를 하고 그냥 그때는 헤어져서 또 이틀째 밤을 보내야 되는 거죠.

이런 부분에 대해서 1차 때도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대감을 해 보고요.

마지막 날인 내일 역시 작별상봉이 11시부터였는데 1차 때 10시로 1시간씩 당겼죠. 그래서 시간을 좀 더 같이 있는, 미약하나마 같이 있는 시간을 보장해 줬는데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해봅니다.

[앵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만큼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저녁은 개별 식사로 진행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기자]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도 이것이 사실은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 어색하냐 하면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사실은 대대적으로 할 수 없는 그런 게 있거든요.

왜냐하면 북한 정권의 특성상 탈남자거든요. 북한의 체제 등급을 5등급으로 했을 때 최하위 등급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러니까 체제를 거부하고 체제이반자라고 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북한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하면서 대외 매체에는 사실 보도하는데 대내 매체, 조선중앙TV라든가 노동신문에는 이런 사실을 전혀 보도를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그런 측면 차원에서 식사도 결국은 어떤 개별식사할 때 북측은 사실은 교육을 좀 시킵니다.

보장성원이라는 사람들이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그런 측면이 우리가 생각하는. 왜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잤으면 좋겠는데라는 아쉬움이 아직까지는 그런 부분이 해소 안 되고.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결국은 남북 정상 간에, 최고지도자 간의 의중인데, 특히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문제거든요.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사실.

[앵커]
그런데 이번 상봉 장면을 보면서 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건 고령화가 또 진행되다 보니까 부모, 자녀 상봉은 많이 줄었어요.

[기자]
그렇죠. 거의 한국전쟁 종전을 기준으로 하면 65년이 지났죠. 거의 구순인데. 우리 기준으로 하면 북한 적십자사 컴퓨터에 등록된 신청자 13만 2000여 명 중에 한 7만 여 명이 돌아가셨어요.

5만여 명 중 구순이 넘은 분이21%되고 나머지 팔순이 넘으신 분은 고령화됐는데 이것이 세월이 지나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

왜 대책을 마련해야 되는 게 뭐냐하면 지금 현재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방식은 분단, 실향민 1세대들의 당사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개인적으로는 실향민 2세대인데 돌아가신 부모님이 다 북측에서 월남하신 분들인데 저희도 북측에 사촌이 있는 것으로 알죠. 그런데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과거 동서독이 했듯이 우리도 실향민 2세나 컴퓨터에 등록을 해서 받아둬야 된다는 거죠. 이 작업을 안 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것은 굉장히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지만 먼 훗날 통일이 되거나 했을 때 북측의 가족들을 만나야 하는. 왜 이 말씀을 거듭 드리느냐 하면 우리가 대한적십자사에 13만여 명이 신청했다라고 해서 실향민이 13만 명밖에 안 되는 구나 하는 착시현장을 일으키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런데 한국전쟁 과정에서 월남자가 300만 명입니다. 사실은 안 한 분들이 훨씬 많아요.

이런 분들을 위해서 남과 북이 이런 인도주의적 분야에서는 적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의견 일치를 봐서 등록사업을 해야지만 굉장히 나중에 찾기 쉽거든요.

북한도 호적 관리가 굉장히 잘 돼 있고요. 우리도 굉장히 잘되어 있습니다. 관계자들 얘기에 따르면 남과 북의 정치적 결정만 따르면 석 달이면 거의 다 가계도를 찾을 수 있다라고까지 이야기를 하거든요.

[앵커]
이렇게 또 정리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 이산가족 상봉의 규모와 횟수를 대폭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 아무래도 한 차례에100명 정도도 못 미치다 보니까 한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거든요.

[기자]
그게 거듭되는 지적인데 역설적으로 규모를 늘리고 횟수를 늘리자는 우리의 희망사항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앞서 얘기했죠. 체제의 특성상 이거를 늘릴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 100여 명을 선발을 해서 평양에서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북한 행정력의 한계도 있는 부분이고 북한의 체제유지 특성상도 있는 부분이고 북한 체제유지의 핵심 세력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부각시킬수록 역설이 북한 내부의 체제 이완 현상이 나타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로서는 만 명, 1000 명이 한꺼번에 만났으면 좋겠지만 북한은 그렇게 응하지 않죠. 그런데 전제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도 좋아져야 되고 북미관계도 좋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북미관계의 가장 키워드인 비핵화가 어떻게 해결이 되느냐에 따라서 남북관계가 종속변수로 따라가기 때문에 실제 인도주의 분야라고 해서 이거를 떼놓고 접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가 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얼마나 좋겠어요. 1000명, 2000명이 상봉하면.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녹록지 않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죠.

[앵커]
현실적으로 참 이런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더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게 고령이신데 생전 처음 이렇게 형제, 자매를 만나시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돌아가고 나면 후유증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기자]
굉장히 과거에 그런 사례가 많이 있었어요. 후유증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답이 없는 겁니다.

사실은 답이 없는데 그나마 이렇게 볼 수 있죠. 제 주변에 실향민분들 중에 여러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합니다. 그래도 저기 만나보신 분들은 행운아다.

그런데 2000년 8월 15일부터 올해까지 이 21차례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는데 2000명이 채 못 만났어요.

2000명이 못 만났는데 역설적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제3국을 통해서 민간 통로를 통해서 만난 분이 한 3400여 명, 서신교환도 1만 1000여 건, 제3국을 통해서 만나는 경우가 있었어요.

만나는 경우가 있었고 그런데 이번 상봉자 중에 90년대 중반 만났는데 역설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도 살고 나오신 분들도 있어요.

당시에 과거 정부들의 앞뒤가 안 맞는 정책 때문에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런 민간 라인을 남과 북이 확대할 필요도 있다, 이렇게도 보는 거죠.

[앵커]
앞으로 저희가 남북 이산가족들이 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적인 소식을 많이 전해드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금강산호텔에서 오늘 오전부터 진행된 개별상봉 영상 저희가 보여드렸고요. 현장에서 추가 화면이 들어오는 대로 이어지는 뉴스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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