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남북 이산가족 눈물의 작별상봉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남북 이산가족 눈물의 작별상봉

2018.08.22. 오후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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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앵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남북 가족들은 울면 안 된다, 오래 살아 다시 만나자면서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눈물이 쏟아졌던 작별 상봉 이야기,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 오전에 짧았던 만남을 뒤로하고 작별 상봉을 했는데요. 눈물이 흘렀던 현장 모습 잠깐 좀 보시겠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매번 여러 차례 하고 있습니다마는 할 때마다 굉장히 같은 장면인 것 같으면서도 아주 애틋한 장면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기자]
사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짧은 만남, 긴 이별이죠. 긴 이별인데 계산을 해 봤어요. 70년을 헤어졌다라고 계산해 보니까 61만 3200시간 정도 됩니다.

그런데 그 정도 많은 시간을 헤어져 있다가 고작 13시간을 만났죠. 그리고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했는데 저는 이 작별 상봉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좀 잔인한 단어 같아요.

왜냐하면 작별을 위해서 상봉한다, 어폐도 있죠. 국문법을 넣어서 감성적으로 말하는데 이렇게 다시 헤어져야 하는. 그래서 오늘 작별 상봉장에 200여 명이 모였었는데. 거의 큰 소리가 없고 웃음도 없었다라고 합니다.

곳곳에서 울음소리만,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고 지금 화면에 일부 보였습니다마는 굉장히 안타까운 모습들이죠.

[앵커]
당초 오늘 작별 상봉 시간이 2시간이었는데 오전 10시로 1시간 앞당겨서 3시간 정도 만났어요. 그렇지만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을까요?

[기자]
아까 김병오 할아버지가 북한의 여동생한테 고작 3시간이다라는 표현을 자꾸 되뇌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제도 사실 개별 중식을 1시간 더 늘려서 당초 6번 만나면 11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는데 총 6번 만남에 13시간의 만남이 이뤄졌죠.

[앵커]
영상을 잠깐 보면서 석별의 정을 나눈 가족들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병오 할아버지. 여동생을 만났었는데요.

이금섬 할머니의 모습이 먼저 나오고 있네요. 피난길에 떠났다가 4살 아들과 헤어진 사연이 있죠.

[기자]
당초 상봉할 때 바로 알아봤죠. 상처라고 하면서.

[앵커]
88살 김병오 할아버지. 여동생을 만났어요. 북측의 여동생에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인데요. 오빠 울지 마, 울면 안 돼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하고요.

두 남매는 아무 말을 못한 채 아이고 하면서 탄식만 내뱉었다고 합니다. 이 두 남매, 너무 닮아서 한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기자]
그리고 굉장히 고우시죠. 젊어서 더 고우셨던 것 같은데 지금 화면에는 안 보이지만 이기순 할아버지가 북에 아들을 낳았는데 남측에서 소주 한 명을 가져갔답니다.

아들하고 술 한잔을 해서 아들에게 다짜고짜 술 잘 하냐 그래서 작별 상봉 때...

[앵커]
이기순 할아버지죠. 이기순 할아버지는 아들을 만났는데요.

[기자]
지금 소주만 말 없이 나눴다고 하죠.

[앵커]
남측에서 가져온 소주를 한 병 갖고 오늘 상봉장에 왔는데 물컵에 소주를 따라서 아들 75살 리강선 씨와 함께 말 없이 이별의 건배를 나눴습니다.

[기자]
잠깐 화면에 나갔는데 우리 소주 한 병이 보였죠. 북측에도 소주가 있습니다마는...

[앵커]
내가 가짜 아버지 아니다, 너 아버지 있어,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해요.

[앵커]
몇 마디만 하면 단번에 내 아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말도 했었죠.

아들은 건강하고 오래 사시라요, 그래야 또 만나지, 이런 언급을 했다고 하는군요. 대개 작별 인사가 건강하시고 오래 사시라는 그런 말들을 대부분 했던 것 같아요.

[기자]
오래 사시라고 그러고 지금 언제 만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주소, 전화번호, 남북한 주소 그리고 북측의 조카들한테 사촌 간 이름 다 적어라.

이렇게 해서 연락을 하고 남측 관계자 한 분은 자기 아버지를 모시고 갔던 분은 디지털카메라로 다 사진을 찍어서 카메라째로 북측 사촌들한테 전달해 줬다고 그러죠.

[앵커]
저마다의 사연이 다 눈물겹습니다마는 저는 이금섬 할머니, 4살 아들과 헤어졌다가 70년 만에 아들을 만난 모자상봉.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기자]
지금 화면에 안 보입니다마는 신재천 할아버지, 92살 북측의 남동생을 만났는데.

[앵커]
이금섬 할머니 지금 나오죠.

[기자]
지금 보이시죠?

[앵커]
모자 상봉. 아들을 만났는데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아들, 상철 씨. 71살 북측의 상철 씨가 오른쪽에 있는 모습이죠. 얼굴을 만지면서 뭔가 소근소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인데. 손을 꼭 붙들고 있군요.

첫날에 아들의 이름, 상철아 이렇게 부르면서 두 팔을 벌려서 칠순의 아들을 꼭 안았었죠. 형제 상봉 같이 이뤄진 것 같아요. 남측의 딸들도 같이 이번에 상봉을 했습니다.

[기자]
남측의 동생들이죠. 할머니가 피난올 때 막내딸만 안고 왔다고 하죠.

[앵커]
오늘 자리에서는 주소와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은 가족들도 있었는데. 언제인가 통일이 되면 서로 찾아가자, 이런 마음이었겠죠?

[기자]
지금 화면에 안 비쳤습니다마는 안타까운 소식이 신재천 할아버지가 김포에 살았는데 북에 동생을 찾아보니까 개성에 살고 있더랍니다.

직선 거리로 하면 30~40분밖에 안 걸리는 지척에 걸리는 거를 70여 년 동안 모르고 살았다는 거에 대해서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 말씀을 했고 동생분은 형님,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 한 끼 꼭 드시라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앵커]
40분 거리면 정말 가까운 거리네요. 연락처를 주고받는 모습이고요. 남북관계가 점차 좋아지면서 다시 또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를 안고 헤어졌을 것 같아요.

[기자]
그렇죠. 그래서 북측의 어떤 분은 버스에 헤어질 때 거기다가 손글씨로 조국통일이라고 썼다고 그러죠.

[앵커]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든 조금 더 관계가 좋아지면서 이런 만남들이 좀 더 자주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기자]
지금은 북측의 언니, 동생 이렇게 만나는 모습이죠.

[앵커]
어떤 말들을 가장 많이 주고받았을까요?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기자]
건강해라. 이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그래요.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앵커]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시라. 그래야 또 다시 만나지 않겠느냐, 그런 말씀들을 많이 했고요. 구체적으로는 찹쌀떡이 몸에 좋으니까 찹쌀떡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기자]
찹쌀떡 기준이 어릴 때 기준이죠. 어릴 때 기준이니까 그게 얼마나 애틋합니까? 그래서 남과 북이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 찔레꽃, 고향의 봄, 이런 노래들을 손잡고 많이 많이 불렀다고 그러죠.

[앵커]
1차 상봉은 오늘로 마무리가 됐고요. 조금 전 5시에 속초로 남측 가족들은 돌아왔고요. 2차 상봉이 또 이번 주에 예정이 되어 있는데요. 날씨 때문에 좀 걱정이라는데요.

[기자]
지금 24일부터 남측이 고향이었던 사람들이 전쟁과정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북으로 갔던 남측 가족들을 찾는 83명이 금강산에 와서 같은 방식으로 만나죠.

그래도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태풍이 올라온다고 그래서 지금 걱정들을 사실은 적십자 관계자들이나 이산가족 상봉 관계자들이 걱정을 많이 한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분들이 평양에서 원산으로 이동을 해서 도로가 있는데 도로가 좀 여의치가 않나 봐요. 그래서 평소에는 기차로 움직였는데 이런 부분이...

[앵커]
북측 가족 말씀하시는 거죠?

[기자]
그래서 원산에서 금강산 오는 그런 일정들이거든요. 일정들인데 또 24일부터 한반도를 관통해서 지나가게 되니까.

[앵커]
우리 가족들도 다니기가 불편할 것 같은데.

[기자]
마찬가지죠. 마찬가지고 버스에서 오고 내릴 때 바람이 많이 분다라고 하니까 사실은 마음 같아서는 태풍이 금강산 지역이라도 좀 비껴갔으면 하는 바람이죠.

[앵커]
정 그러면 일정을 조금 조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은데요.

[기자]
그런데 현재까지는 남과 북 그런 이야기까지는 아직 안 했는데. 앞서 풀기자들의 합동취재기자들이 남북 관계자들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시간을 좀 조정을 하자 이런 얘기들을 하는 말을 들었다고 그러는데 그것이 공식화된 것은 아니고요.

[앵커]
이번 이산가족 상봉, 앞으로 정례화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이제 아직도 만나지 못한 많은 가족들이 남아 있는데요.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기자]
그렇죠, 지금 사실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한 300만 명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적십자사에 등록하셨던 분이 1980년도부터 13만 5000여 분 되는데 그중 7만여 분이 돌아가시고 5만여 분 중에서 지금까지 21차례에 걸쳐서 만났던 분들이 했는데 정례화도 돼야 되지만 규모를 확대해야 된다.

그런데 사실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상시적으로 좀 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건 사실은 이산가족이 정례화가 되려면 남북관계가 순탄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짧은 만남, 긴 이별인데 남북관계 역시 짧은 만남, 긴 이별을 반복하고 있죠. 그래서 지금 그런 바람대로 다행히 박경서 한국적십자 총재가 내달에 평양을 방문한다고 하니까 거기서 어떤 이야기들을 할지 인도주의적 문제에 있어서 어떤 구체적으로 결실을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추가로 서울에서 상봉 행사를 추진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기자]
과거에는 그렇게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2000년 8월부터 여러 가지 북측에서 당시 기준으로는 체제 문제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그 이후에 만든 용어가 작별상봉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북측이 아이디어를 내서 그런 용어가 탄생한 거죠.

[앵커]
좀 더 자주 그리고 규모도 좀 키워서 많은 가족들이 추가로 더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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