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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경직 목사가 증언한 해방 후 북한, '비밀청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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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7-08-16 15:21
해방 후 북한의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됐습니다.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비밀 청원서'입니다.

1945년 9월 26일이라는 날짜가 적혀있지요.

그 아래 '한경직'이라는 이름이 찍혀있습니다.

故 한경직 목사가 미 군정에 당시 소련 군정 하에 있던 평안북도의 상황을 알린 겁니다.

故 한경직 목사는 우리나라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지도자입니다.

신의주에서 목회하다 소련군과 공산당의 행태를 보고 있을 수 없어 '기독교사회민주당'을 만들어 활동했지만 공식 활동을 하면 기독교인들을 대량 학살할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내려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이 '비밀청원서'를 미군정에 제출한 겁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22일 북한 평양에 진주했고요.

한 목사가 있었던 평안북도 신의주엔 8월 30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소련군이 진주하자 신의주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만들었던 자치위원회는 무력화됐고 공산주의자들이 '인민정치위원회'를 통해 지역을 접수했습니다.

소련군은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었고요.

무기를 넘겨받은 공산당은 무력으로 법원 건물을 차지해 본부로 사용하고 라디오 방송국과 유일한 지역신문도 장악해 선전 선동 매체로 썼습니다.

9월 16일에는 대낮에 거리에서 반공 발언을 한 사람이 공산당원의 총을 맞고 살해됐지만, 경찰관인 이 공산당원은 바로 풀려났습니다.

압도적 다수의 주민들은 공산주의에 반대하지만 공포와 테러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 목사는 증언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소련군의 비행에 대한 상세한 증언입니다.

한 목사는 "상상을 넘어선다"며 "소련군은 은행에선 현금 강탈, 가정집에 침입해선 귀중품을 약탈하는가 하면, 부녀자를 강간한 사례도 셀 수조차 없이 많다."

이런 상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역시 38선을 넘으면서 소련군에게 약탈과 강간을 당한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산당 지배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공산 한국'을 원하지 않는다… (연합군이) 즉각 위원회를 파견해서 상황을 조사해 달라."

한경직 목사는 이런 우려를 전하며 연합군에 비밀청원서를 보내 직접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이 비밀청원서는 미국 국무부에서 남한으로 파견된 미군정 정치고문 베닝호프에게 전달됐습니다.

그리고 베닝호프는 "38도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의 정치활동에 관한 최초의 믿을 만한 목격자의 증언"이라고 평가하며 이 문서를 미국 국무부에 보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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