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안보이야기-16] 북핵과 체호프의 법칙

[김주환의 안보이야기-16] 북핵과 체호프의 법칙

2017.08.10. 오후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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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의 안보이야기-16] 북핵과 체호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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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50년 6월 12일, 인민군이 38선 일대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 북한의 전면 남침이 시작됐고, 사흘 만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함락됐다. 그러나 ‘9·28 서울 수복’으로 알려진 제2차 서울 전투를 통해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이 이뤄졌지만 이듬해 1월 4일 공산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하게 된다. 그러자 1951년 2월부터 유엔군은 제1~2차 킬러 및 리퍼 작전이라는 대공세를 통해 3월 14일 서울을 되찾는다. 서울 재탈환은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공산세력과의 ’세력균형‘이 이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자 그해 6월 23일 소련의 휴전회담 제안에 대해 미국이 수용함으로써 무려 159차례에 달하는 휴전회담이 진행됐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협정을 통해 불안하지만 지금의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정전체제라고 부른다.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는 그 이면에는 바로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추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균세(均勢)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균형이 북한의 핵·미사일 독주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문호의 이름을 빌려온 '체호프의 법칙'이란 게 있다.이 법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는 것인데, “지난 역사에서 왕과 황제들은 새로운 무기들을 획득하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제1차 세계대전 말인 1917년 독일은 연합군의 해상봉쇄로 고통이 커지자 이른바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나선다. 이 작전을 주창했던 티르피츠 제독은 “우리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더 이상 정당성도, 군사적 근거도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 영국을 패배시키는데 적합한 무기라면 무조건 가차 없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빌헬름 황제는 1917년 2월 1일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승인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참전을 초래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 김정은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니 “통일 조선의 국보이자, 만능의 보검”이라는 핵무기를 한번 쯤 사용해 보고 싶은 욕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와 비슷한 사례가 바로 2017년 8월 7일 벌어졌다. 북한 김락겸 전략군 사령관이 괌을 화성-12형 탄도미사일로 포위사격하겠다고 위협한 뒤, “화성-12형은 일본의 시마네현, 히로시마현, 고치현 상공을 통과하게 되며 사거리 3천356.7㎞를 1천65초(17분 45초)간 비행한 후 괌도 주변 30∼40㎞ 해상 수역에 탄착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감의 발로였을까?

어찌됐든,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질주에 대해 “어떠한 제재라도 ICBM을 가지려는 북한 정권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비관 섞인 우려가 제기되곤 한다. 북한은 지난 2005년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이후, 핵무기가 자위력의 핵심 수단임을 밝혔다. 이어 2012년 3월 2일 전략로켓트사령부를 창설하여 핵무기가 방어적 억제력이 아닌 선제타격임을 분명히 하는 핵 교리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2014년 2월 전략군사령부로 승격하여 핵 선제타격을 중요한 교리로 정착시켰다. 2013년 3월 5일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으며,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 핵무기를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2012년 개정 헌법에서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2013년 3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 회의에서 김정은은 “제국주의가 남아있고, 핵 위협이 존재하는 한 핵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고, 민족의 생명, 통일 조선의 국보이자 만능의 보검”이라고 밝혔다.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법령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때 대하여’를 채택, 핵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핵 위협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비대칭 공포감을 주는 ‘공포의 불균형’적인 상황이 조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핵 공갈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핵 보유 사실을 공표하거나 위협을 가함으로써 상대국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이를 통해 주종적 관계를 형성, 주도권을 쥐려는 행동을 뜻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3축 체계의 조기 구축과 미국의 확장억제 방법이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확장억제 제공은 현실적 한계가 없지 않다. 지난 2016년 9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했을 때 미국의 ‘전천후’ 폭격기인 B-1B랜서 폭격기가 ‘바람이 불어’ 괌 공항을 이륙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민들은 확장억지력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졌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도 한반도 밖에 배치된 미국의 전략핵무기는 한국에 상시 배치가 가능한 전술핵무기에 비해 위협의 체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타이완에 관한 한, 미국은 지리적 불리와 의지의 비대칭이라는 약점이 있다. 중국은 타이완을 위해 전면전을 감수할 의지가 있지만, 미국에게는 어쩌면 핵 대결로 비화될지 모를 전면전을 감수할 만큼 타이완이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미국은 타이완 문제를 놓고 중국과 정면 대결하느니 타이완을 포기하고 말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세이머가 지난 2014년에 쓴 『America Unhinged』(미국을 미치게 만드는 것)에서 주장한 말이다. 이것이 현재 한반도 정세에 시사하는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런 안보딜레마를 극복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 질주를 멈추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맞대응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전술핵무기의 상시 배치를 꼽을 수 있다. 즉, 남북한 사이에 ‘안정된 공포의 균형(Stable Balance of Terror)’을 통해 역설적으로 북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상호 불균형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형성하지만 상호 균형은 협력을 촉진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세력균형이다. 그래야 북한의 무모한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 다시 불안하나마 균등한 평화를 위한 조치인지도 모른다.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김주환[kim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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