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공원, 팍팍한 노량진의 작은 쉼표 하나

사육신공원, 팍팍한 노량진의 작은 쉼표 하나

2017.03.28. 오전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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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공원, 팍팍한 노량진의 작은 쉼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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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노량진은 팍팍하고 서러운 동네다.

한강변 새남터... 지금 아파트로 빽빽한 강 건너 이촌2동 지역은 조선시대에 사형장이었다고 한다.

노들나루터에서 강 건너 사형장을 바라봐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1930년대에 등장한 신민요 '노들강변'도 그렇다.

노량진 일대를 배경으로 한 이 노래, 가락은 경쾌한 느낌인데, 인생의 무상을 노래하는 가사는 애달프다.

사육신공원, 팍팍한 노량진의 작은 쉼표 하나

팍팍하고 서러운 정서는 지금도 여전하다.

정말 많은 20~30대 청춘들이 노량진에서 저마다의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이 승부에서 패배하면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다.

나이는 먹었는데 경력은 없다시피한 사람을 받아줄 일자리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투에 승리해 웃으면서 노량진을 떠나는 사람이 많으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걸 잘 알면서도, 이 절박한 전투에 배수진을 친 채 참전할 수밖에 없는 젊은 전사들의 심정은 또 어떨지.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엔 수능만 끝나면 해방인 줄 알았는데, 성인이 돼 보니 언감생심이다.

사육신공원, 팍팍한 노량진의 작은 쉼표 하나

팍팍하고 서러운 동네 노량진에는 외로운 젊은 전사들을 품어줄 곳도 참 드물다.

술값과 밥값이 저렴하고, 오락실이며 PC방이 많지만 그 뿐이다.

그나마 사육신묘가 외로운 영혼의 지친 심신을 달래줄 유일한 녹지 역할을 한다.

500년도 더 전에 서럽게 가신 조상이, 후손의 위로가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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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

이름이 불이문(不二門)이란다.

내가 모실 주군은 단 한 분 뿐이다. 뭐 이런 뜻으로 지은 건가 생각해본다.

조상들은 그랬는데, 후손들은 이럴 테지.

"모실 주군을 한 번 만나라도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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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노량진에서의 전투 준비에 지친 후손들이 불쑥 조상님들 쉬시는 곳에 찾아와 "저 너무 힘들어요. 위로해 주세요"라고 칭얼거리거나 "그래도 조상님은 녹봉이나 만져보시고 가셨잖아요. 저흰 그 녹봉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투정부리면 조상님들은 "이놈!" 하시면서 불호령을 내리실까.

아니면 껄껄 웃으시며 토닥여주실까.

불손한 생각인 걸 알면서도 괜히 한 번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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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조망명소', '사색의 공간' 등으로 소개된 포인트에 가 보니 제법 풍경이 괜찮다.

그러나 흘러가는 한강물, 달려가는 기차를 보니 스멀스멀 몰려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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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생각에 젖어있을 때 쯤, 갑자기 눈 앞에서 까치 한마리가 날아오른다.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라고 하던가.

노량진의 외로운 전사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너무 길지 않은 미래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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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IP : 사육신공원 내에는 사육신묘 뿐 아니라 사육신의 업적을 설명해놓은 전시관도 있다. 자녀들과 손잡고 역사교육 겸, 산책 겸 해서 한 번 쯤 찾아볼만하다. 전시관 1층 일부를 노량진 수험생들을 위한 공부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으니, 소음 유발은 자제하자.

사육신공원, 팍팍한 노량진의 작은 쉼표 하나

사육신공원 맞은 편 인도에는 이른바 '컵밥'을 비롯한 음식물을 만들어 파는 노점상들이 많다. 호기심에 한 번 쯤 이용하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자주 먹을 만한 먹거리는 아니다. 자주 먹으면 몸 상태가 안좋아지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트레블라이프=이재상 ever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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