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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히스토리 인 뉴스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 훈민정음 해례본, 학자로서 앞에 서니 눈물 쏟아질 정도
- 배씨가 갖고 있다는 해례본 상주본, 간송본 보다 가치 더 높다고 알려져
-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 입수 경로 부적절한 경우 많아
- 배씨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긴 어려워... 간송본의 경우 가치 조 단위라는 소문도
- 관리 능력만 따져 문화재 개인 소장의 정당성 따지는 것은 옳지 않아
- 배씨가 갖고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문화재청의 감정부터 받아야
◇ 신율 앵커(이하 신율): <히스토리 인 뉴스> 시간인데요. 여러분 뉴스에서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걸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 문화재청에 이걸 헌납하는 대가로 1천억 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복잡해요. 2008년경에 상주에 사는 배 모 씨가 해례본을 가지고 있다고 공개했는데, 공개하고 며칠 뒤에 고서적 판매상 조 모 씨가 ‘해례본이 원래 내 거였는데 우리 가게에 와서 다른 서적을 사가면서 그것도 슬쩍 집어간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법정 공방을 벌였는데요. 민사에서는 소유권만을 바라봤을 때 고서적 판매상인 조 모 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을 내렸고요. 형사에서는 배 모 씨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1심에서는 유죄를 받아서 1년 정도 감옥생활을 했는데요. 어쨌든 2심에서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거든요. 어쨌든 형사사건에서는 소유권을 판단하다기 보다는, 절도냐, 아니냐? 이것을 판단했을 때 절도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건데요. 이렇게 민사는 조 모 씨에게 소유권이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지금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형사사건에서는 절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는데요.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문제, 훈민정음 해례본이 도대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얼마나 중요한지 들어보겠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 스튜디오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형사, 민사, 이게 따로따로 노니까 굉장히 복잡한데요. 먼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라고 하죠. 이게 어떤 책입니까?
◆ 전우용: 얼마 전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개관하면서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품 전시회를 했죠. 잘 안 나오는 물건들인데요. 저도 가서 봤는데, 훈민정음 해례본 앞에 섰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저게 없었으면 한글 창제의 원리와 배경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싶었고요. 저걸 찾아서 여태까지 보관해준 간송 선생이 고맙기도 하고요.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 같은 역사학자에게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정말 고마운 물건이고요. 해례본이라는 것은 해제와 예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훈민정음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게 어떤 원리에서 발음이 나고, 어떤 글자이고,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이걸 소개하고, 거기에 대한 예문을 달고, 이게 해례본인 거죠. 그래서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같은 내용인데요.
◇ 신율: 보관 상태는 더 좋다고 하던데요?
◆ 전우용: 더 좋고, 당시에 그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주석을 더 달아놨기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는 더 높다고 평가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만.
◇ 신율: 네, 그런데 판결을 보면, 절도는 아니지만 소유권은 돌아가신 조 모 씨에게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거 아닙니까? 그러면 배 씨가 지금 가지고 있긴 하지만 소유권을 주장하긴 그런 것 아니겠어요?
◆ 전우용: 판결이 서로 엇갈려 있어서 저는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훔치지는 않았는데 네 거 아니다, 네가 가지고 있지만...’ 이런 판결 같은 경우에는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판결이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 그게 문제가 된 거죠.
◇ 신율: 그런데 1천억을 내놔라, 이거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배 모 씨 집에 불이 났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소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또 요새는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그런데 1천억을 요구했다는 게 사실 좋게 보이지는 않잖아요?
◆ 전우용: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그런 부도덕성인데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가 굴곡이 심해서, 한국에서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들은, 그 중에 도덕적인 물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저명한 사립박물관들, 하다못해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에서도, 그 분이 전 재산을 들여서 문화재를 수집했지만, 전부 정당하게 시장에서 구매한 물건이냐? 이렇게 단정할 수 없거든요.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했습니다만,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도굴이라는 것이 엄청난 사업이었어요.
◇ 신율: 그렇겠죠. 이집트도 그랬잖아요?
◆ 전우용: 대다수의 유물들이 도굴을 통해서 수집되었고, 이게 시장에서 거래되었을 때 도굴품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 물건이잖아요. 그걸 사들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매입한 것이 부도덕한 건데, 그걸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문제가 사실 같은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문제와 사실 같은 거예요. 어떤 유명 사립박물관에서 국보급 문화재 수십 점을 도굴꾼으로부터 매입해서 가지고 있다가, 그걸 박물관이라고 차려서 전시를 했다, 그러면 그게 욕을 먹을 일이냐, 아니냐? 이런 판단을 내린 거죠. 그거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부분이 있을 거고요. 사실 간송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서도 두 가지 설이 있어요. 하나는 간송 선생이 스스로 직접 소장자를 찾아가서 당시 돈 만 원, 요즘으로 한 30억인데요. 비싸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입니다. 이렇게 사왔다는 설이 있고요. 하나는 한남서림이라고 지금 인사동 통문관 자리에 고서적상이 있었어요. 이 고서적 상을 통째로 산거죠. 이걸 당시에 통째로 사는데 만 원이 들었는데, 통째로 사고 나서 창고를 뒤져보니까 거기서 그게 튀어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느 게 맞는지는 모르죠. 그런데 입수 경위를 놓고 보자면 배 모 씨의 입수가 절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배 모 씨의 주장은 그렇더라고요. 배 모 씨로부터 덩어리째 사왔다, 덩어리째 사온 것이 끼어 있었다는 거고요. 조 모 씨는, 덩어리 째 사 간 것은 맞는데, 해례본은 거기에 안 끼워났었는데, 옆에서 훔쳐갔다는 건데요. 이게 무죄판결을 받은 거거든요. 그래서 이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게 맞다고 법원에서 충분히 심리를 했을 테니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문화재 취득 경위의 부도덕성 문제에 대해서는 배 모 씨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신율: 하지만 어떤 경우가 되었든, 간송 선생님 같은 경우는, 사실 그 분 아니었으면 지금 볼 수 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고, 그게 굉장한 업적 아니에요?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그러니까 사실 이 분 같은 경우엔 문화재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관심이 없을 때, 굉장히 눈이 일찍 뜨였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언제부터 가졌습니까?
◆ 전우용: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청자 수집광이었고요. 그래서 한국인들이 엄청나게 도굴해서 뇌물로 갖다 바쳤죠.
◇ 신율: 그것도 사실 전형적인 친일인데요.
◆ 전우용: 그렇죠. 그렇게 많이 구한 고려청자 중에서 몇 개를 골라서 고종한테 선물로 줬답니다. 그런데 고종이 그랬다는 거죠. ‘이게 어디 물건이냐?’, ‘당신네 나라 겁니다’, ‘아, 우리나라엔 이런 거 안 나온다’, 이랬다는 거예요. 사실 그 무렵만 해도 관심이 없다가, 사실 일본인에 의해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된 거죠. 하도 많이 사냥하듯이 훑어가니까요. 1905~6년경부터 일본인들이 비싸게 사간다는 소문이 돌아서 재산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확산되었고요. 이러다보니까 간송 선생이 나서서 매입하게 되었던 건데요. 60년대, 해방되고 나서, 사실 일제강점기에 빠져나간 문화재보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에 빠져나간 문화재가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 당시에는 도굴범들이 마구잡이로 파내고 재벌들이 마구잡이로 사들이 현상이었죠. 그래서 국보급문화재의 등록제라는 것이 60년대 말에 가서야 나옵니다. 그 전에는 개인들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었기 때문에, 간송 선생의 경우에는 그분이 어떤 식으로 매입했든 간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60년대 이후의 콜렉터들에게는 그 정도의 도덕의식이나 선각자적 의식을 이야기하기 어렵죠. 지금 배 모 씨의 이런 태도는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도굴문화재나 갑작스럽게 발견된 문화재에 대한 부도덕한 태도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죠.
◇ 신율: 그런데 제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배 모 씨네 집이 불이 났어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말 가지고 있는 거냐?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의문이 제기되는 것과 별도로, 이렇게 정말 귀중한 문화재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니까 불이 나고, 이게 안탔을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예를 들어서 서고에 가면 온도, 습도도 다 관리를 하는데 개인이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 전우용: 그러니까 이게 문제죠. 돈이 많은 사람이 소장해서, 자기가 이런 시설을 해서 보관하면 정당한 거고, 그 정도로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 보관하면 부당한 건가? 이런 관점이 과연 올바른 건가, 이것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거든요. 그게 문제인 거죠. 예컨대 60년대 도굴품을 매입했거나 직접 도굴 조직을 운영했다가 걸린 재벌도 있고 그랬어요. 그렇게 해서 국보급 문화재를 확보해놓고 잘 보관하고 있으면 온당한 거고, 그런 걸 못해놓았으면 보관할 자격이 없다, 내놔라, 이거 자체가 온당한 건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요. 기준은 같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잘 보존 할 것이냐? 이걸 따진다면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그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처사는 아니겠죠.
◇ 신율: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일단 법원의 판결은, 소유권은 조 모 씨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배 모 씨는 소유권이 없다는 것인데요. 이런 경우 강제 환수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만일 소유권마저 법원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면 뺐을 수 없는 거잖아요?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그러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외국으로 빼돌린다든지, 그런 것도 상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전우용: 지금 국보급 문화재의 외국반출은 금지되어 있고요.
◇ 신율: 아, 소유권과 무관하게요?
◆ 전우용: 그렇죠. 그리고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먼저 시급한 것이, 이 사람도 말로 그럴 것이 아니고, 일단 문화재청의 정식 감정과 조사를 거쳐야 해요.
◇ 신율: 아, 아직 보지도 못했군요?
◆ 전우용: 한 번 보기는 했는데, 자세히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문화재 전문가들도 털썩 주저앉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 신율: 놀라서요?
◆ 전우용: 너무 대단한 거니까요. 저도 해례본을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화재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보면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나고 그러죠. 그런 거라면 먼저 국보지정을 하는 것이 우선이고요. 법적인 처리가 안 된다면 교섭을 통해서 국가가 정당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가격이 문제거든요. 일반 시민들은 1천 억 불렀다고 하니까 아주 분개를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간송 소장 해례본 같은 경우에, 국보는 가격을 매길 수 없죠.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 하죠. 그래도 가격을 매길 필요는 있어요. 예를 들어서 간송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을 때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보험을 들 때 산정가액이 있어요. 저도 정확하게 내막은 모르지만, 풍문으로 듣기에는 조 단위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사실 1천억도 우리 마음속의 가치로 보면 많은 가치는 아니죠. 아마 법원의 판결이나 이런 것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건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애초에는 1백억을 불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1천억으로 올린 것인데요. 물론 여기에 공분을 살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 신율: 더군다나 이 분은 1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절도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억울하다는 것도 있고, 가족들도 이것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그래서 이 정도를 받으면 주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거 만일 정부에서 못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 전우용: 사실 해방 직후에 콜렉터들 중에서 잘못 관리해서 6.25 전쟁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김구 선생이 살았던 경교장의 원래 주인이 최창학이라고 하는 재벌이었어요. 광산주였는데요. 이 사람도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서 국보급 청자를 여러 점 가지고 있었는데 본인 실수로 몇 개를 깨트려 버렸어요. 그런데 6.25 전쟁 중에 망가진 게 굉장히 많습니다.
◇ 신율: 그렇군요.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되겠죠.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감사합니다.
◇ 신율: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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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인 뉴스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 훈민정음 해례본, 학자로서 앞에 서니 눈물 쏟아질 정도
- 배씨가 갖고 있다는 해례본 상주본, 간송본 보다 가치 더 높다고 알려져
-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 입수 경로 부적절한 경우 많아
- 배씨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긴 어려워... 간송본의 경우 가치 조 단위라는 소문도
- 관리 능력만 따져 문화재 개인 소장의 정당성 따지는 것은 옳지 않아
- 배씨가 갖고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문화재청의 감정부터 받아야
◇ 신율 앵커(이하 신율): <히스토리 인 뉴스> 시간인데요. 여러분 뉴스에서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걸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 문화재청에 이걸 헌납하는 대가로 1천억 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복잡해요. 2008년경에 상주에 사는 배 모 씨가 해례본을 가지고 있다고 공개했는데, 공개하고 며칠 뒤에 고서적 판매상 조 모 씨가 ‘해례본이 원래 내 거였는데 우리 가게에 와서 다른 서적을 사가면서 그것도 슬쩍 집어간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법정 공방을 벌였는데요. 민사에서는 소유권만을 바라봤을 때 고서적 판매상인 조 모 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을 내렸고요. 형사에서는 배 모 씨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1심에서는 유죄를 받아서 1년 정도 감옥생활을 했는데요. 어쨌든 2심에서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거든요. 어쨌든 형사사건에서는 소유권을 판단하다기 보다는, 절도냐, 아니냐? 이것을 판단했을 때 절도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건데요. 이렇게 민사는 조 모 씨에게 소유권이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지금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형사사건에서는 절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는데요.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문제, 훈민정음 해례본이 도대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얼마나 중요한지 들어보겠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 스튜디오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형사, 민사, 이게 따로따로 노니까 굉장히 복잡한데요. 먼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라고 하죠. 이게 어떤 책입니까?
◆ 전우용: 얼마 전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개관하면서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품 전시회를 했죠. 잘 안 나오는 물건들인데요. 저도 가서 봤는데, 훈민정음 해례본 앞에 섰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저게 없었으면 한글 창제의 원리와 배경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싶었고요. 저걸 찾아서 여태까지 보관해준 간송 선생이 고맙기도 하고요.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 같은 역사학자에게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정말 고마운 물건이고요. 해례본이라는 것은 해제와 예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훈민정음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게 어떤 원리에서 발음이 나고, 어떤 글자이고,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이걸 소개하고, 거기에 대한 예문을 달고, 이게 해례본인 거죠. 그래서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같은 내용인데요.
◇ 신율: 보관 상태는 더 좋다고 하던데요?
◆ 전우용: 더 좋고, 당시에 그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주석을 더 달아놨기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는 더 높다고 평가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만.
◇ 신율: 네, 그런데 판결을 보면, 절도는 아니지만 소유권은 돌아가신 조 모 씨에게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거 아닙니까? 그러면 배 씨가 지금 가지고 있긴 하지만 소유권을 주장하긴 그런 것 아니겠어요?
◆ 전우용: 판결이 서로 엇갈려 있어서 저는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훔치지는 않았는데 네 거 아니다, 네가 가지고 있지만...’ 이런 판결 같은 경우에는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판결이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 그게 문제가 된 거죠.
◇ 신율: 그런데 1천억을 내놔라, 이거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배 모 씨 집에 불이 났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소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또 요새는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그런데 1천억을 요구했다는 게 사실 좋게 보이지는 않잖아요?
◆ 전우용: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그런 부도덕성인데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가 굴곡이 심해서, 한국에서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들은, 그 중에 도덕적인 물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저명한 사립박물관들, 하다못해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에서도, 그 분이 전 재산을 들여서 문화재를 수집했지만, 전부 정당하게 시장에서 구매한 물건이냐? 이렇게 단정할 수 없거든요.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했습니다만,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도굴이라는 것이 엄청난 사업이었어요.
◇ 신율: 그렇겠죠. 이집트도 그랬잖아요?
◆ 전우용: 대다수의 유물들이 도굴을 통해서 수집되었고, 이게 시장에서 거래되었을 때 도굴품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 물건이잖아요. 그걸 사들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매입한 것이 부도덕한 건데, 그걸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문제가 사실 같은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문제와 사실 같은 거예요. 어떤 유명 사립박물관에서 국보급 문화재 수십 점을 도굴꾼으로부터 매입해서 가지고 있다가, 그걸 박물관이라고 차려서 전시를 했다, 그러면 그게 욕을 먹을 일이냐, 아니냐? 이런 판단을 내린 거죠. 그거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부분이 있을 거고요. 사실 간송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서도 두 가지 설이 있어요. 하나는 간송 선생이 스스로 직접 소장자를 찾아가서 당시 돈 만 원, 요즘으로 한 30억인데요. 비싸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입니다. 이렇게 사왔다는 설이 있고요. 하나는 한남서림이라고 지금 인사동 통문관 자리에 고서적상이 있었어요. 이 고서적 상을 통째로 산거죠. 이걸 당시에 통째로 사는데 만 원이 들었는데, 통째로 사고 나서 창고를 뒤져보니까 거기서 그게 튀어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느 게 맞는지는 모르죠. 그런데 입수 경위를 놓고 보자면 배 모 씨의 입수가 절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배 모 씨의 주장은 그렇더라고요. 배 모 씨로부터 덩어리째 사왔다, 덩어리째 사온 것이 끼어 있었다는 거고요. 조 모 씨는, 덩어리 째 사 간 것은 맞는데, 해례본은 거기에 안 끼워났었는데, 옆에서 훔쳐갔다는 건데요. 이게 무죄판결을 받은 거거든요. 그래서 이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게 맞다고 법원에서 충분히 심리를 했을 테니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문화재 취득 경위의 부도덕성 문제에 대해서는 배 모 씨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신율: 하지만 어떤 경우가 되었든, 간송 선생님 같은 경우는, 사실 그 분 아니었으면 지금 볼 수 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고, 그게 굉장한 업적 아니에요?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그러니까 사실 이 분 같은 경우엔 문화재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관심이 없을 때, 굉장히 눈이 일찍 뜨였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언제부터 가졌습니까?
◆ 전우용: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청자 수집광이었고요. 그래서 한국인들이 엄청나게 도굴해서 뇌물로 갖다 바쳤죠.
◇ 신율: 그것도 사실 전형적인 친일인데요.
◆ 전우용: 그렇죠. 그렇게 많이 구한 고려청자 중에서 몇 개를 골라서 고종한테 선물로 줬답니다. 그런데 고종이 그랬다는 거죠. ‘이게 어디 물건이냐?’, ‘당신네 나라 겁니다’, ‘아, 우리나라엔 이런 거 안 나온다’, 이랬다는 거예요. 사실 그 무렵만 해도 관심이 없다가, 사실 일본인에 의해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된 거죠. 하도 많이 사냥하듯이 훑어가니까요. 1905~6년경부터 일본인들이 비싸게 사간다는 소문이 돌아서 재산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확산되었고요. 이러다보니까 간송 선생이 나서서 매입하게 되었던 건데요. 60년대, 해방되고 나서, 사실 일제강점기에 빠져나간 문화재보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에 빠져나간 문화재가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 당시에는 도굴범들이 마구잡이로 파내고 재벌들이 마구잡이로 사들이 현상이었죠. 그래서 국보급문화재의 등록제라는 것이 60년대 말에 가서야 나옵니다. 그 전에는 개인들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었기 때문에, 간송 선생의 경우에는 그분이 어떤 식으로 매입했든 간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60년대 이후의 콜렉터들에게는 그 정도의 도덕의식이나 선각자적 의식을 이야기하기 어렵죠. 지금 배 모 씨의 이런 태도는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도굴문화재나 갑작스럽게 발견된 문화재에 대한 부도덕한 태도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죠.
◇ 신율: 그런데 제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배 모 씨네 집이 불이 났어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말 가지고 있는 거냐?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의문이 제기되는 것과 별도로, 이렇게 정말 귀중한 문화재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니까 불이 나고, 이게 안탔을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예를 들어서 서고에 가면 온도, 습도도 다 관리를 하는데 개인이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 전우용: 그러니까 이게 문제죠. 돈이 많은 사람이 소장해서, 자기가 이런 시설을 해서 보관하면 정당한 거고, 그 정도로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 보관하면 부당한 건가? 이런 관점이 과연 올바른 건가, 이것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거든요. 그게 문제인 거죠. 예컨대 60년대 도굴품을 매입했거나 직접 도굴 조직을 운영했다가 걸린 재벌도 있고 그랬어요. 그렇게 해서 국보급 문화재를 확보해놓고 잘 보관하고 있으면 온당한 거고, 그런 걸 못해놓았으면 보관할 자격이 없다, 내놔라, 이거 자체가 온당한 건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요. 기준은 같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잘 보존 할 것이냐? 이걸 따진다면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그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처사는 아니겠죠.
◇ 신율: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일단 법원의 판결은, 소유권은 조 모 씨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배 모 씨는 소유권이 없다는 것인데요. 이런 경우 강제 환수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만일 소유권마저 법원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면 뺐을 수 없는 거잖아요?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그러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외국으로 빼돌린다든지, 그런 것도 상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전우용: 지금 국보급 문화재의 외국반출은 금지되어 있고요.
◇ 신율: 아, 소유권과 무관하게요?
◆ 전우용: 그렇죠. 그리고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먼저 시급한 것이, 이 사람도 말로 그럴 것이 아니고, 일단 문화재청의 정식 감정과 조사를 거쳐야 해요.
◇ 신율: 아, 아직 보지도 못했군요?
◆ 전우용: 한 번 보기는 했는데, 자세히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문화재 전문가들도 털썩 주저앉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 신율: 놀라서요?
◆ 전우용: 너무 대단한 거니까요. 저도 해례본을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화재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보면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나고 그러죠. 그런 거라면 먼저 국보지정을 하는 것이 우선이고요. 법적인 처리가 안 된다면 교섭을 통해서 국가가 정당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가격이 문제거든요. 일반 시민들은 1천 억 불렀다고 하니까 아주 분개를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간송 소장 해례본 같은 경우에, 국보는 가격을 매길 수 없죠.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 하죠. 그래도 가격을 매길 필요는 있어요. 예를 들어서 간송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을 때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보험을 들 때 산정가액이 있어요. 저도 정확하게 내막은 모르지만, 풍문으로 듣기에는 조 단위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사실 1천억도 우리 마음속의 가치로 보면 많은 가치는 아니죠. 아마 법원의 판결이나 이런 것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건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애초에는 1백억을 불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1천억으로 올린 것인데요. 물론 여기에 공분을 살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 신율: 더군다나 이 분은 1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절도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억울하다는 것도 있고, 가족들도 이것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그래서 이 정도를 받으면 주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거 만일 정부에서 못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 전우용: 사실 해방 직후에 콜렉터들 중에서 잘못 관리해서 6.25 전쟁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김구 선생이 살았던 경교장의 원래 주인이 최창학이라고 하는 재벌이었어요. 광산주였는데요. 이 사람도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서 국보급 청자를 여러 점 가지고 있었는데 본인 실수로 몇 개를 깨트려 버렸어요. 그런데 6.25 전쟁 중에 망가진 게 굉장히 많습니다.
◇ 신율: 그렇군요.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되겠죠.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감사합니다.
◇ 신율: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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