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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수)<논객열전>'불평등에 맞서는 활동가'라 불리는 경제논객-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김갑수 앵커 (이하 앵커) : 자기 자신을 불평등에 맞서는 활동가 이렇게 표현하는 논객이 있습니다. 오늘 논객열전에서는 경제 논객을 모셨는데요. 팟캐스트 방송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 함께 하겠습니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 (이하 선대인)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앵커 : 저도 그 프로를 들은 적이 있는데 선띨이라고 하던데, 띨띨하다는 소립니까?
선대인 : 네, 저희가 워낙 어려운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듣는 청취자 분들 입장에서 친근하게 들으라고 선띨, 우 박사님을 우띨 이렇게 표현하고 하는 거죠.
앵커 : 논객열전이라는 분으로 다양한 분들을 초대합니다만, 자기 정체성이 논객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라고 하시는 분, 학자라고 하시는 분 이렇게 다르거든요. 선 소장님은 어떻게 정체성을 스스로 칭하면 좋을까요?
선대인 : 저도 논객이라기보다는 경제 쪽 전문가이기도 한데요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 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출발을 기자로 했고요
앵커 : 동아일보 기자 하셨죠.
선대인 : 그런데 그 안에서는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의 길을 확보하지 못했는데 나와서 저는 그런 역할을 더 충실하게 하고 있지 않나 싶고 앞으로도 그런 식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앵커 : 당을 만들어서 당수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대인 : 공식적인 법적 정당은 아니고요. 하하. 세금혁명당이라고 조세재정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모임이죠. 그 외에도 제가 몇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 정리를 해봐야겠어요. 먼저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인데요.
선대인 : 그건 저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또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씽크탱크가 대한민국에서는 부족하죠. 재벌이나 정치관료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에 그사람들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정직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선대인경제연구소라는 전문 연구기관을 만들었고요. 그 다음에 세금혁명당이라는 풀뿌리 시민들 모임이 있고.
앵커 : 세금혁명당은 당이라고 했지만 시민단체 같은...
선대인 : 그렇죠. 미국의 커피 파티, 티 파트도 있고, 무리 당에서 당이라고 하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나는 꼽사리다>라는 경제 전문 팟캐스트에 패널로 참가하고 있고, <문제는 경제다>를 비롯해서 다수 책의 저자이기도 하고 서울시를 비롯해서 몇몇 행정기관에 일부 내용에 대해서 자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고...
앵커 : 선대인 연구소 소장, 세금혁명당, 팟 캐스트에 이르는 그 과정에 이르는 역정을 돌아봐야겠습니다. 동아일보 기자로 출발하셨는데 신문기자라는 게 기득권층이 돼있죠. 그 좋은 자리를...
선대인 : 전혀 편하지가 않은 거죠. 저도 젊은 시절에 동아일보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정의의 필봉을 휘둘러보겠다고 들어갔는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동아일보가 재벌 광고주들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고, 삼성가와 사돈을 맺으면서 재벌문제, 경제 문제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많이 전달하는 것을 느꼈고요. 개인적으로도 저는 경제부는 안 있었습니다만, 정치적 이슈들에 관해서도 굉장히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불편했죠. 그래서 나왔습니다.
앵커 : 그런데 미국 유햑을 갔어요. 그런데 유학간 학교가...
선대인 : 제가 갔으니까 그렇게 대단한 학교는 아닌듯한데, 가보니까 프로그램은 좋더라고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이라고 공공정책 쪽의 학교인데 우리로 표현하면 공공영역에서의 MBA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정책 평론을 해보고 싶던 저로서는 많은 영감을 준다고 할까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접할 수 있고 분석적인 시각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하버드라는 이름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유명인사들의 통찰력을 접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뜻깊은 기간이었습니다.
앵커 : 친구가 예일에서 경제학을 하는데 돌아와서도 같이 공부한 친구들을 만나는 모양인데 의외로 숫자가 많지 않아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은 숫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혹시 아세요?
선대인 : 동문 활동은 거의 안 하거든요. 동문 모집 소집해도 거의 안 가서 정확하게 모르는데 공무원들 중에 굉장히 많고 상당히 많이 있고 최근으로 올수록 한국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이 많아서 꽤 많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 귀국해서 서울시 정책자문관을 거쳤다, 오세훈 시장을 보좌한 거죠?
선대인 : 그렇습니다.
앵커 : 그러니까 동아일보 기자, 하버드 대학, 오세훈 시장 자문, 주류의, 서울대 나오셨죠?
선대인 : 아뇨. 저는 연세대 나왔습니다.
앵커 : 어쨌든 간에 강남의 청담동 아파트에서 잘 사실 것 같은데...
선대인 : 사실 강남에 삽니다. 양평군에 사는데요. 양평군의 한강이 흐르잖아요. 그쪽에서 보면 한강 이남에 사니까 강남이죠. 전원주택에 삽니다.
앵커 : 이력을 상세히 얘기한 이유가 자기 틀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생각도 그렇게 갖게 되고 그 범위 안에서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체제 내의 얘긴데 선대인 소장 같은 경우는 재벌독점 구조에 대해 험악하게 맞서고 발언하는 모습, 그리고 민주당이든 통합진보당이든 정치적 진영 의식을 가지면서 하시는 분이 더 많아 보이는데 여야를 가리지 않더군요.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이렇게 가혹해도 되나 할 정도로...
선대인 : 제가 그래서 민주당 골수 지지당들에게 X맨 아니냐, 제가 김진표 의원보고 X맨이라고 했더니 역공을 하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제가 기본적으로 경북 경산의 포도 과수원집 아들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농사일 거들면서 가난한 사람들 또는 서민들이 얼마나 어렵게 땀 흘려 돈을 버는지를 많이 느꼈고 저도 한때는 잘나가고 싶었죠. 그런데 사회에 기여도 하면서 잘 나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는 그게 상충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자각하면서 정말 제대로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맞서는 활동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됐던 게 케네디스쿨 졸업할 때 빌게이츠가 졸업식 축사를 했습니다.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당신이 졸업 후에 직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가장 깊은 불평등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를 두고 자신의 삶을 평가해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찔리는 듯 감동을 느꼈거든요.
앵커 : 그런데 그런 말을 한 빌 게이츠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거든요.
선대인 : 상당히 문제가 있죠. 그렇게 억만장자가 태어날 수밖에 없는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도 있고 빌 게이츠가 기업을 처음 키울 때 했던 독과점 담합에 가까운 행태도 문제가 있죠. 그런데 빌 게이츠 재단을 세운 이후 자선활동을 한 이후 삶은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빌 게이츠도 스스로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앵커 : 존경해 마땅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의료인들은 빌 게이츠라고 하면 아프리카 의료기금의 대부분이 그 재단에서 다 나온다고 해요. 또 제가 눈치껏 들은 것은 현실의 어려움과 질곡을 겪어서 반작용으로 사회의식을 가진 게 아니라, 지적성찰의 과정으로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게 됐다고 들립니다. 그런데 미국의 마이클 무어라는 영화감독이 부시라는 대통령 등장과 더불어 스타 감독이 됐어요.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마이클 무어 같은 김어준 씨도 있고 그 중에 한분으로 선대인 소장이 떠오릅니다.
선대인 : 제가요? 저는 스타라고 하기는 그렇고...
앵커 : 그래서 이명박 정부 탄생이 왜 있었을까 그리고 지난 5년의 공과는 어떻게 봐야 될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선대인 :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사상최악의 불량정부라고 표현하거든요. 왜냐하면 사회정치적으로도 20년, 30년 후퇴를 시켰을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민생경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었는데 경제대통령이랍시고 나서신 분이 서민 경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망가뜨렸거든요. 그게 여러 부분이 있지만 가계부채를 잔뜩 늘리고 공공부채를 400조원 쌓아올렸다든지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라 4대강 사업 같은 시대착오적인 사업을 벌였다든지 그리고 이미 이념적인 정책으로 판명난 감세정책을 경제위기가 불거지는 시점에 도입했다는 게 굉장히 무능하면서도 부패한 그런 정권이라고 판단하거든요.
앵커 :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지만 동의하는 분들도 있어서 방송에서 공정하게 이런 얘기들을 다 담습니다. 지금 현재 경제 상황에 현안은 워낙 많지만 대선 기간이니, 지난 대선을 보면 새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뛰어넘는 계기로 해 왔단 말이죠. 이후의 경제적 측면에서 이 대선이 무엇을 쟁취하고 무엇을 극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대인 : 저는 한국 사회가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고 생각해요. 크게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후퇴한 민주주의, 인권, 대북정책의 궤도를 올리고 한 단계 발전해야 겠죠. 그런데 이 과제는 야권이 집권한다면 진전을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과 병행해서 가야될 것은 외환위기 이후 경기 사이클에 상관없이 서민 경제는 계속 악화됐거든요. 특히 국민 대다수 80% 이상의 가계의 실질 가계수지가 외환위기 이후에 오히려 뒷걸음질 쳤습니다. 소득 불평등도 굉장히 심각해졌거든요. 그런데 지금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저출산 고령화 충격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민생경제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가 있는데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그런 비전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내보이는 대선주자가 드물어 보입니다.
앵커 : 경제 민주화 얘기는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대인 :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인데요. 그걸 실제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결연한 의지가 갖춰줘야 하는데 그부분에 대해 미약하거나 부족해 보이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경제 민주화가 중요한 내용이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거죠.
앵커 : 저는 자동차가 없어서 택시 타고 다니는데 기사 분들의 한 달 소득을 들으면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사는지, 그런데 이게 택시가 아니라 중 하위 계층 전체에 번져있는데, 사람들이 그래도 살 수 있고 재산이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게 아파트 하나는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이게 붕괴 조짐을 보인다고 선대인 소장이 경고하고 있거든요. 모골이 송연해져서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 부동산 어디까지 와있고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선대인 : 2004년에 우리가 부동산 거품을 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지금 거품 빼면 일본식 경착륙이 온다, 그래서 겁먹고 못 뺐습니다. 2006년, 2007년에 부랴부랴 DTI 규제 등을 도입했지만 상당히 늦었죠. 그나마 그때라도 괜찮았는데 2008년에 세계경제위기가 닥쳐왔는데 전 세계가 거품을 뺄 때 우리는 도리어 가계부채 240조원을 더 늘렸거든요. 2009년 무렵에는 부동산 거품을 뺐어야 된다고 보는데 가계부채를 오히려 더 쌓아버린 거고, 지금은 너무 위험한 상황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위암 환자로 비교하면 위암말기 직전 상태까지 온 게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더 방치하고 연착륙이라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부동산 거품을 연기하는, 지연시키는 정책을 더 써버리면 저는 진짜 위암 말기로 간다고 봅니다. 이제 막바진데요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단계적인 부동산 거품 빼기를 해야 한다고 보는 거고요.
앵커 : 부동산 가격 하락은 감수해야 되는...
선대인 : 길게 봐야 됩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만 살 사람이 아니잖아요. 자손 대대로 살아야 하는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지금이라도 아프지만 매를 맞아야 한다, 매 맞는 것을 피하다가 2~3년 후에 왕창 맞아버리면 진짜 그때는 한국 경제가 뻗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사태는 피하자, 그래서 지금 국토부에서 DTI 규제를 해제하자는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는데 그건 정말 당장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 충격을 줄인다는 미명하에 한국 경제의 충격을 키우는 부분이다. 폭탄 돌리기는 이미 많이 했다 이제 더 이상 폭탄 돌리기 그만하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 부동산 거품의 경고에 대한 더 세부적인 이야기는 선대인 소장의 발언과 책들, 인터넷 내용을 참조하시면 사태가 어떻게 이렇게 흘렀고 우리는 뭘 해야 되는지 가슴 아프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참조하시기를 바라고요.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 논객으로 사신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대인 : 한국사회의 정보가 굉장히 왜곡돼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올바른 정보, 정직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제 인생을 바칠 생각이고요. 제 역할이 뭐가 됐든 그런 역할을 위해 살 계획입니다.
앵커 : 앞으로 많은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조갑제 선생을 불렀거든요.
선대인 : 하하.
앵커 : 이 시간의 다채로움을 아시겠죠? 그리고 선대인 소장 같은 분의 활동이 경고 메시지를 넘어서 대안적 차원으로 흐르는 때가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선대인 : 제가 대안도 많이 얘기하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 얘기하다보면 경고 쪽에 중심이 실리는데 대안도 저희 연구소 사이트에서 소개하고 있으니까 들러 주십시오.
앵커 :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선대인 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과 함께 한 논객열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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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앵커 (이하 앵커) : 자기 자신을 불평등에 맞서는 활동가 이렇게 표현하는 논객이 있습니다. 오늘 논객열전에서는 경제 논객을 모셨는데요. 팟캐스트 방송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 함께 하겠습니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 (이하 선대인)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앵커 : 저도 그 프로를 들은 적이 있는데 선띨이라고 하던데, 띨띨하다는 소립니까?
선대인 : 네, 저희가 워낙 어려운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듣는 청취자 분들 입장에서 친근하게 들으라고 선띨, 우 박사님을 우띨 이렇게 표현하고 하는 거죠.
앵커 : 논객열전이라는 분으로 다양한 분들을 초대합니다만, 자기 정체성이 논객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라고 하시는 분, 학자라고 하시는 분 이렇게 다르거든요. 선 소장님은 어떻게 정체성을 스스로 칭하면 좋을까요?
선대인 : 저도 논객이라기보다는 경제 쪽 전문가이기도 한데요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 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출발을 기자로 했고요
앵커 : 동아일보 기자 하셨죠.
선대인 : 그런데 그 안에서는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의 길을 확보하지 못했는데 나와서 저는 그런 역할을 더 충실하게 하고 있지 않나 싶고 앞으로도 그런 식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앵커 : 당을 만들어서 당수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대인 : 공식적인 법적 정당은 아니고요. 하하. 세금혁명당이라고 조세재정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모임이죠. 그 외에도 제가 몇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 정리를 해봐야겠어요. 먼저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인데요.
선대인 : 그건 저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또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씽크탱크가 대한민국에서는 부족하죠. 재벌이나 정치관료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에 그사람들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정직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선대인경제연구소라는 전문 연구기관을 만들었고요. 그 다음에 세금혁명당이라는 풀뿌리 시민들 모임이 있고.
앵커 : 세금혁명당은 당이라고 했지만 시민단체 같은...
선대인 : 그렇죠. 미국의 커피 파티, 티 파트도 있고, 무리 당에서 당이라고 하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나는 꼽사리다>라는 경제 전문 팟캐스트에 패널로 참가하고 있고, <문제는 경제다>를 비롯해서 다수 책의 저자이기도 하고 서울시를 비롯해서 몇몇 행정기관에 일부 내용에 대해서 자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고...
앵커 : 선대인 연구소 소장, 세금혁명당, 팟 캐스트에 이르는 그 과정에 이르는 역정을 돌아봐야겠습니다. 동아일보 기자로 출발하셨는데 신문기자라는 게 기득권층이 돼있죠. 그 좋은 자리를...
선대인 : 전혀 편하지가 않은 거죠. 저도 젊은 시절에 동아일보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정의의 필봉을 휘둘러보겠다고 들어갔는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동아일보가 재벌 광고주들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고, 삼성가와 사돈을 맺으면서 재벌문제, 경제 문제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많이 전달하는 것을 느꼈고요. 개인적으로도 저는 경제부는 안 있었습니다만, 정치적 이슈들에 관해서도 굉장히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불편했죠. 그래서 나왔습니다.
앵커 : 그런데 미국 유햑을 갔어요. 그런데 유학간 학교가...
선대인 : 제가 갔으니까 그렇게 대단한 학교는 아닌듯한데, 가보니까 프로그램은 좋더라고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이라고 공공정책 쪽의 학교인데 우리로 표현하면 공공영역에서의 MBA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정책 평론을 해보고 싶던 저로서는 많은 영감을 준다고 할까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접할 수 있고 분석적인 시각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하버드라는 이름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유명인사들의 통찰력을 접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뜻깊은 기간이었습니다.
앵커 : 친구가 예일에서 경제학을 하는데 돌아와서도 같이 공부한 친구들을 만나는 모양인데 의외로 숫자가 많지 않아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은 숫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혹시 아세요?
선대인 : 동문 활동은 거의 안 하거든요. 동문 모집 소집해도 거의 안 가서 정확하게 모르는데 공무원들 중에 굉장히 많고 상당히 많이 있고 최근으로 올수록 한국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이 많아서 꽤 많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 귀국해서 서울시 정책자문관을 거쳤다, 오세훈 시장을 보좌한 거죠?
선대인 : 그렇습니다.
앵커 : 그러니까 동아일보 기자, 하버드 대학, 오세훈 시장 자문, 주류의, 서울대 나오셨죠?
선대인 : 아뇨. 저는 연세대 나왔습니다.
앵커 : 어쨌든 간에 강남의 청담동 아파트에서 잘 사실 것 같은데...
선대인 : 사실 강남에 삽니다. 양평군에 사는데요. 양평군의 한강이 흐르잖아요. 그쪽에서 보면 한강 이남에 사니까 강남이죠. 전원주택에 삽니다.
앵커 : 이력을 상세히 얘기한 이유가 자기 틀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생각도 그렇게 갖게 되고 그 범위 안에서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체제 내의 얘긴데 선대인 소장 같은 경우는 재벌독점 구조에 대해 험악하게 맞서고 발언하는 모습, 그리고 민주당이든 통합진보당이든 정치적 진영 의식을 가지면서 하시는 분이 더 많아 보이는데 여야를 가리지 않더군요.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이렇게 가혹해도 되나 할 정도로...
선대인 : 제가 그래서 민주당 골수 지지당들에게 X맨 아니냐, 제가 김진표 의원보고 X맨이라고 했더니 역공을 하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제가 기본적으로 경북 경산의 포도 과수원집 아들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농사일 거들면서 가난한 사람들 또는 서민들이 얼마나 어렵게 땀 흘려 돈을 버는지를 많이 느꼈고 저도 한때는 잘나가고 싶었죠. 그런데 사회에 기여도 하면서 잘 나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는 그게 상충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자각하면서 정말 제대로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맞서는 활동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됐던 게 케네디스쿨 졸업할 때 빌게이츠가 졸업식 축사를 했습니다.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당신이 졸업 후에 직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가장 깊은 불평등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를 두고 자신의 삶을 평가해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찔리는 듯 감동을 느꼈거든요.
앵커 : 그런데 그런 말을 한 빌 게이츠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거든요.
선대인 : 상당히 문제가 있죠. 그렇게 억만장자가 태어날 수밖에 없는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도 있고 빌 게이츠가 기업을 처음 키울 때 했던 독과점 담합에 가까운 행태도 문제가 있죠. 그런데 빌 게이츠 재단을 세운 이후 자선활동을 한 이후 삶은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빌 게이츠도 스스로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앵커 : 존경해 마땅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의료인들은 빌 게이츠라고 하면 아프리카 의료기금의 대부분이 그 재단에서 다 나온다고 해요. 또 제가 눈치껏 들은 것은 현실의 어려움과 질곡을 겪어서 반작용으로 사회의식을 가진 게 아니라, 지적성찰의 과정으로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게 됐다고 들립니다. 그런데 미국의 마이클 무어라는 영화감독이 부시라는 대통령 등장과 더불어 스타 감독이 됐어요.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마이클 무어 같은 김어준 씨도 있고 그 중에 한분으로 선대인 소장이 떠오릅니다.
선대인 : 제가요? 저는 스타라고 하기는 그렇고...
앵커 : 그래서 이명박 정부 탄생이 왜 있었을까 그리고 지난 5년의 공과는 어떻게 봐야 될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선대인 :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사상최악의 불량정부라고 표현하거든요. 왜냐하면 사회정치적으로도 20년, 30년 후퇴를 시켰을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민생경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었는데 경제대통령이랍시고 나서신 분이 서민 경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망가뜨렸거든요. 그게 여러 부분이 있지만 가계부채를 잔뜩 늘리고 공공부채를 400조원 쌓아올렸다든지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라 4대강 사업 같은 시대착오적인 사업을 벌였다든지 그리고 이미 이념적인 정책으로 판명난 감세정책을 경제위기가 불거지는 시점에 도입했다는 게 굉장히 무능하면서도 부패한 그런 정권이라고 판단하거든요.
앵커 :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지만 동의하는 분들도 있어서 방송에서 공정하게 이런 얘기들을 다 담습니다. 지금 현재 경제 상황에 현안은 워낙 많지만 대선 기간이니, 지난 대선을 보면 새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뛰어넘는 계기로 해 왔단 말이죠. 이후의 경제적 측면에서 이 대선이 무엇을 쟁취하고 무엇을 극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대인 : 저는 한국 사회가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고 생각해요. 크게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후퇴한 민주주의, 인권, 대북정책의 궤도를 올리고 한 단계 발전해야 겠죠. 그런데 이 과제는 야권이 집권한다면 진전을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과 병행해서 가야될 것은 외환위기 이후 경기 사이클에 상관없이 서민 경제는 계속 악화됐거든요. 특히 국민 대다수 80% 이상의 가계의 실질 가계수지가 외환위기 이후에 오히려 뒷걸음질 쳤습니다. 소득 불평등도 굉장히 심각해졌거든요. 그런데 지금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저출산 고령화 충격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민생경제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가 있는데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그런 비전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내보이는 대선주자가 드물어 보입니다.
앵커 : 경제 민주화 얘기는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대인 :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인데요. 그걸 실제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결연한 의지가 갖춰줘야 하는데 그부분에 대해 미약하거나 부족해 보이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경제 민주화가 중요한 내용이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거죠.
앵커 : 저는 자동차가 없어서 택시 타고 다니는데 기사 분들의 한 달 소득을 들으면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사는지, 그런데 이게 택시가 아니라 중 하위 계층 전체에 번져있는데, 사람들이 그래도 살 수 있고 재산이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게 아파트 하나는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이게 붕괴 조짐을 보인다고 선대인 소장이 경고하고 있거든요. 모골이 송연해져서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 부동산 어디까지 와있고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선대인 : 2004년에 우리가 부동산 거품을 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지금 거품 빼면 일본식 경착륙이 온다, 그래서 겁먹고 못 뺐습니다. 2006년, 2007년에 부랴부랴 DTI 규제 등을 도입했지만 상당히 늦었죠. 그나마 그때라도 괜찮았는데 2008년에 세계경제위기가 닥쳐왔는데 전 세계가 거품을 뺄 때 우리는 도리어 가계부채 240조원을 더 늘렸거든요. 2009년 무렵에는 부동산 거품을 뺐어야 된다고 보는데 가계부채를 오히려 더 쌓아버린 거고, 지금은 너무 위험한 상황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위암 환자로 비교하면 위암말기 직전 상태까지 온 게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더 방치하고 연착륙이라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부동산 거품을 연기하는, 지연시키는 정책을 더 써버리면 저는 진짜 위암 말기로 간다고 봅니다. 이제 막바진데요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단계적인 부동산 거품 빼기를 해야 한다고 보는 거고요.
앵커 : 부동산 가격 하락은 감수해야 되는...
선대인 : 길게 봐야 됩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만 살 사람이 아니잖아요. 자손 대대로 살아야 하는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지금이라도 아프지만 매를 맞아야 한다, 매 맞는 것을 피하다가 2~3년 후에 왕창 맞아버리면 진짜 그때는 한국 경제가 뻗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사태는 피하자, 그래서 지금 국토부에서 DTI 규제를 해제하자는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는데 그건 정말 당장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 충격을 줄인다는 미명하에 한국 경제의 충격을 키우는 부분이다. 폭탄 돌리기는 이미 많이 했다 이제 더 이상 폭탄 돌리기 그만하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 부동산 거품의 경고에 대한 더 세부적인 이야기는 선대인 소장의 발언과 책들, 인터넷 내용을 참조하시면 사태가 어떻게 이렇게 흘렀고 우리는 뭘 해야 되는지 가슴 아프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참조하시기를 바라고요.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 논객으로 사신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대인 : 한국사회의 정보가 굉장히 왜곡돼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올바른 정보, 정직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제 인생을 바칠 생각이고요. 제 역할이 뭐가 됐든 그런 역할을 위해 살 계획입니다.
앵커 : 앞으로 많은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조갑제 선생을 불렀거든요.
선대인 : 하하.
앵커 : 이 시간의 다채로움을 아시겠죠? 그리고 선대인 소장 같은 분의 활동이 경고 메시지를 넘어서 대안적 차원으로 흐르는 때가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선대인 : 제가 대안도 많이 얘기하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 얘기하다보면 경고 쪽에 중심이 실리는데 대안도 저희 연구소 사이트에서 소개하고 있으니까 들러 주십시오.
앵커 :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선대인 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과 함께 한 논객열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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