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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엄수됐습니다.
고인들은 유가족들의 오열과 통곡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해군 2함대 사령부에 나가있는 YTN 중계차 연결합니다. 임승환 기자!
공식 영결식이 끝났는데, 현재 해군 2함대 사령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중계 리포트]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마무리된 이곳 해군2함대 사령부는 이제 침묵과 정막이 흐르고 있습니다.
고인들의 부대인 이곳은 지난 34일 동안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남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이곳 해군2함대 사령부는 오열과 통곡이 가득했습니다.
시신 조차 찾지 못한 6명의 장병은 결국 유품으로 장례를 치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자랑스런 천안함 46명 용사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고한석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오늘 오전에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엄수됐는데, 어떤 분위기에서 치러졌습니까?
[답변]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공식 영결식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1시간 4분 가량 진행됐습니다.
영결식은 그 어느때보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치러졌습니다.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 남편의 영정 앞에서 매말랐던 눈물을 다시 한번 쏟아내면서 오열했습니다.
희생 장병들의 친지와 친구, 정부 관계자들도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천안함 46 용사들의 영현은 고인들의 부대인 해군2함대 사령부를 돌면서 마지막 추억을 남겼습니다.
[질문]
천안함 희생 용사 46명의 마지막 영결식은 어떤 순서로 진행됐습니까?
[답변]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희생 장병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경위 설명과 46명 전원에 대한 화랑무공훈장 추서가 이어졌습니다.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조사에 이어 천안함 생존 장병인 김현래 중사가 전우들을 먼저 보낸 비통한 심정을 담아 추도사를 했습니다.
그 뒤에는 종교의식과 헌화, 분향이 이어졌습니다.
유가족들은 영전 앞에 꽃을 바치는 모습을 보며 슬픔을 가누지 못해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의장대가 조총을 5초 간격으로 세번 발사하면서 영결식은 끝이 났고, 운구가 시작됐습니다.
[질문]
조사와 추도사도 상당히 애끓는 내용이 었는데, 어떤 내용이 담겼습니까?
[답변]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숨진 해군 장병들을 기렸습니다.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추도사는 전우를 먼저 보낸 애절한 마음이 담겼습니다.
'사랑하는 전우여'라는 말로 시작한 추도사에는 전우들과 나눈 우정,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안타까움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서로 만났을 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남은 생을 살며 우리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군인의 각오도 잊지 않았습니다.
[질문]
희생자 46명에게는 훈장이 추서됐는데, 화랑무공훈장이죠?
어떤 성격의 훈장입니까?
[답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입니다.
무공훈장은 말 그대로 현저한 무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입니다.
무공훈장에는 등급에 따라 태극무공훈장·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인헌무공훈장 이렇게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실종 장병을 찾아 나섰다가 숨진 고 한주호 준위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됐습니다.
화랑무공훈장이 전쟁에서 공적이 뚜렷할 경우 주어지는 훈장이라면, 충무무공훈장은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했을 경우에 주어지는 훈장입니다.
이 같은 무공훈장을 받으면 본인 뿐만 아니라 유가족도 국가 유공자로 인정됩니다.
보훈병원에서 치료비도 지원받을 수 있고 자녀교육이나 취업, 주택자금 융자에 있어서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당시 16만 2,900여 명이 무공훈장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1990년 대 이후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183명에 불과합니다.
[질문]
영결식이 마친 직후 천안함 희생 장병의 영현을 생존 장병들이 직접 들고 운구차로 향했는데, 눈물을 흘리는 생존 장병도 보였죠?
[답변]
영결식이 끝난 뒤 생존 장병들은 46명 전우들의 영정을 직접 두 손에 들고 운구차로 향했습니다.
두 손에 든 영정에는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한 배를 타고 서해 NLL을 지키며 가족처럼 지내 온 전우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했습니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 역시 침몰 사건 이후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일부는 침몰 과정에 부상을 입어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대부분은 침몰 충격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8일 저녁에는 희생 장병들의 어머니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전우를 먼저 보낸 슬픔을 나누며 오열했습니다.
생존 장병들은 지난주말부터 이어진 화장 의식에도 참여해 영정 사진을 들었고, 오늘 마지막 가는길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질문]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영현은 영결식을 마친 뒤 해군2함대 사령부 내부와 해군아파트를 돌았죠?
[답변]
이곳 2함대 사령부 바로 앞에는 해군 가족들이 사는 해군 아파트가 있습니다.
해군 가족들은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와 희생 장병들을 배웅할 준비를 했습니다.
잠시 뒤 운구행렬이 2함대사 정문들 빠져 나오면 길 양 옆에 서서 하얀 국화꽃을 뿌리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습니다.
희생 장병 가운데 고 남기훈 원사와 고 김태석 원사 등 부사관 7명이 해군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현재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고인들을 애도하는 조기가 걸려있습니다.
[질문]
앞서 권준기 기자가 전했지만, 운구 행렬이 예상보다 빨리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한 것 같은데, 그러면 안장식도 좀 빨라지는 겁니까?
[답변]
대규모 운구행렬이 순차적으로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안장식은 당초 계획대로 오후 3시에 시작됩니다.
유가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안장식을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운구행령은 오전 11 전후로 이곳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희생 장병들의 영현을 모신 운구차는 그 보다 빨리 사령부를 떠났습니다.
차량 90대가 동원된 대규모 운구행렬이었지만, 가는 길은 수월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등을 거쳐 2시간이 채 못 돼 대전국립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질문]
그러면 안장식은 어떤 절차를 통해 진행됩니까?
[답변]
국립 대전현충원에서의 합동안장식은 오후 3시부터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립니다.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헌화와 분향, 조총 발사와 묵념이 끝나면 46 용사들의 영현을 묻는 하관과 하토, 성분이 이어집니다.
하관식이 끝난 뒤에는 장병들의 이름과 계급이 새겨진 나무 비석이 세워지고, 40여 일 뒤 돌로 된 비석이 설치됩니다.
고 이창기 준위는 장교묘역에 안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천안함에서 생사를 같이 한 전우들과 함께 안장하고 싶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사병 제3묘역에 조성된 합동묘역에 안장됩니다.
[질문]
천암함 희생 장병들이 안장될 위치는 어딥니까?
천안함 침몰 후 실종 장병을 수색하다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묘소와는 가깝습니까?
[답변]
희생 장병 46명의 합동 묘역이 조성되는 이번 안장식은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46명의 용사들은 현충원 북동쪽 사병 제3묘역에 따로 마련된 특별 묘역에 안장됩니다.
평시에 특별 묘역을 설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천안함 특별묘역은 현충원 규정에 따라 장병 한명당 3.3㎡의 묘역이 배정됩니다.
희생 장병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표지석이 설치되고, 추모객들의 참배를 위한 제단도 따로 마련됩니다.
국립 현충원는 천안함 수색 작업 도중 순직한 UDT의 전설 고 한주호 준위가 먼저 안장돼 있습니다.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묘역은 고 한주호 준위 묘소 옆에 조성돼 서해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맺은 인연을 이어갑니다.
이제 천안함 46명의 용사들은 자신들이 몸담았던 이곳 해군2함대 사령부를 떠나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군 46명의 마지막 가는 길!
유가족과 온 국민은 희생 장병들이 편히 잠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고인들은 사랑하는 모든 이를 뒤로 하고 영면에 들게 됩니다.
지금까지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엄수됐습니다.
고인들은 유가족들의 오열과 통곡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해군 2함대 사령부에 나가있는 YTN 중계차 연결합니다. 임승환 기자!
공식 영결식이 끝났는데, 현재 해군 2함대 사령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중계 리포트]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마무리된 이곳 해군2함대 사령부는 이제 침묵과 정막이 흐르고 있습니다.
고인들의 부대인 이곳은 지난 34일 동안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남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이곳 해군2함대 사령부는 오열과 통곡이 가득했습니다.
시신 조차 찾지 못한 6명의 장병은 결국 유품으로 장례를 치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자랑스런 천안함 46명 용사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고한석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오늘 오전에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엄수됐는데, 어떤 분위기에서 치러졌습니까?
[답변]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공식 영결식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1시간 4분 가량 진행됐습니다.
영결식은 그 어느때보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치러졌습니다.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 남편의 영정 앞에서 매말랐던 눈물을 다시 한번 쏟아내면서 오열했습니다.
희생 장병들의 친지와 친구, 정부 관계자들도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천안함 46 용사들의 영현은 고인들의 부대인 해군2함대 사령부를 돌면서 마지막 추억을 남겼습니다.
[질문]
천안함 희생 용사 46명의 마지막 영결식은 어떤 순서로 진행됐습니까?
[답변]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희생 장병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경위 설명과 46명 전원에 대한 화랑무공훈장 추서가 이어졌습니다.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조사에 이어 천안함 생존 장병인 김현래 중사가 전우들을 먼저 보낸 비통한 심정을 담아 추도사를 했습니다.
그 뒤에는 종교의식과 헌화, 분향이 이어졌습니다.
유가족들은 영전 앞에 꽃을 바치는 모습을 보며 슬픔을 가누지 못해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의장대가 조총을 5초 간격으로 세번 발사하면서 영결식은 끝이 났고, 운구가 시작됐습니다.
[질문]
조사와 추도사도 상당히 애끓는 내용이 었는데, 어떤 내용이 담겼습니까?
[답변]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숨진 해군 장병들을 기렸습니다.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추도사는 전우를 먼저 보낸 애절한 마음이 담겼습니다.
'사랑하는 전우여'라는 말로 시작한 추도사에는 전우들과 나눈 우정,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안타까움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서로 만났을 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남은 생을 살며 우리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군인의 각오도 잊지 않았습니다.
[질문]
희생자 46명에게는 훈장이 추서됐는데, 화랑무공훈장이죠?
어떤 성격의 훈장입니까?
[답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입니다.
무공훈장은 말 그대로 현저한 무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입니다.
무공훈장에는 등급에 따라 태극무공훈장·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인헌무공훈장 이렇게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실종 장병을 찾아 나섰다가 숨진 고 한주호 준위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됐습니다.
화랑무공훈장이 전쟁에서 공적이 뚜렷할 경우 주어지는 훈장이라면, 충무무공훈장은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했을 경우에 주어지는 훈장입니다.
이 같은 무공훈장을 받으면 본인 뿐만 아니라 유가족도 국가 유공자로 인정됩니다.
보훈병원에서 치료비도 지원받을 수 있고 자녀교육이나 취업, 주택자금 융자에 있어서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당시 16만 2,900여 명이 무공훈장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1990년 대 이후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183명에 불과합니다.
[질문]
영결식이 마친 직후 천안함 희생 장병의 영현을 생존 장병들이 직접 들고 운구차로 향했는데, 눈물을 흘리는 생존 장병도 보였죠?
[답변]
영결식이 끝난 뒤 생존 장병들은 46명 전우들의 영정을 직접 두 손에 들고 운구차로 향했습니다.
두 손에 든 영정에는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한 배를 타고 서해 NLL을 지키며 가족처럼 지내 온 전우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했습니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 역시 침몰 사건 이후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일부는 침몰 과정에 부상을 입어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대부분은 침몰 충격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8일 저녁에는 희생 장병들의 어머니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전우를 먼저 보낸 슬픔을 나누며 오열했습니다.
생존 장병들은 지난주말부터 이어진 화장 의식에도 참여해 영정 사진을 들었고, 오늘 마지막 가는길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질문]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영현은 영결식을 마친 뒤 해군2함대 사령부 내부와 해군아파트를 돌았죠?
[답변]
이곳 2함대 사령부 바로 앞에는 해군 가족들이 사는 해군 아파트가 있습니다.
해군 가족들은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와 희생 장병들을 배웅할 준비를 했습니다.
잠시 뒤 운구행렬이 2함대사 정문들 빠져 나오면 길 양 옆에 서서 하얀 국화꽃을 뿌리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습니다.
희생 장병 가운데 고 남기훈 원사와 고 김태석 원사 등 부사관 7명이 해군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현재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고인들을 애도하는 조기가 걸려있습니다.
[질문]
앞서 권준기 기자가 전했지만, 운구 행렬이 예상보다 빨리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한 것 같은데, 그러면 안장식도 좀 빨라지는 겁니까?
[답변]
대규모 운구행렬이 순차적으로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안장식은 당초 계획대로 오후 3시에 시작됩니다.
유가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안장식을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운구행령은 오전 11 전후로 이곳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희생 장병들의 영현을 모신 운구차는 그 보다 빨리 사령부를 떠났습니다.
차량 90대가 동원된 대규모 운구행렬이었지만, 가는 길은 수월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등을 거쳐 2시간이 채 못 돼 대전국립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질문]
그러면 안장식은 어떤 절차를 통해 진행됩니까?
[답변]
국립 대전현충원에서의 합동안장식은 오후 3시부터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립니다.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헌화와 분향, 조총 발사와 묵념이 끝나면 46 용사들의 영현을 묻는 하관과 하토, 성분이 이어집니다.
하관식이 끝난 뒤에는 장병들의 이름과 계급이 새겨진 나무 비석이 세워지고, 40여 일 뒤 돌로 된 비석이 설치됩니다.
고 이창기 준위는 장교묘역에 안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천안함에서 생사를 같이 한 전우들과 함께 안장하고 싶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사병 제3묘역에 조성된 합동묘역에 안장됩니다.
[질문]
천암함 희생 장병들이 안장될 위치는 어딥니까?
천안함 침몰 후 실종 장병을 수색하다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묘소와는 가깝습니까?
[답변]
희생 장병 46명의 합동 묘역이 조성되는 이번 안장식은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46명의 용사들은 현충원 북동쪽 사병 제3묘역에 따로 마련된 특별 묘역에 안장됩니다.
평시에 특별 묘역을 설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천안함 특별묘역은 현충원 규정에 따라 장병 한명당 3.3㎡의 묘역이 배정됩니다.
희생 장병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표지석이 설치되고, 추모객들의 참배를 위한 제단도 따로 마련됩니다.
국립 현충원는 천안함 수색 작업 도중 순직한 UDT의 전설 고 한주호 준위가 먼저 안장돼 있습니다.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묘역은 고 한주호 준위 묘소 옆에 조성돼 서해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맺은 인연을 이어갑니다.
이제 천안함 46명의 용사들은 자신들이 몸담았던 이곳 해군2함대 사령부를 떠나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군 46명의 마지막 가는 길!
유가족과 온 국민은 희생 장병들이 편히 잠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고인들은 사랑하는 모든 이를 뒤로 하고 영면에 들게 됩니다.
지금까지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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