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육로 길 열리는 극적 장면 펼쳐질까?

판문점 육로 길 열리는 극적 장면 펼쳐질까?

2018.01.17. 오후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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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명 규모의 북한 예술단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오는 게 아니라, 걸어서 판문점을 넘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분단과 대립의 상징인 판문점에 이렇게 화합의 통로라는 의미가 더해진 일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대한뉴스 (1984년) : 대한적십자사는 판문점과 인천 부평항을 통해서 북한 적십자회가 보내온 쌀과 옷감, 의약품, 시멘트 등 이른바 수재 물자를 인수했습니다.]

판문점 육로 길이 열린 건 우리가 폭우로 엄청난 홍수를 겪었던 1984년입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쌀과 의약품 같은 수해물자를 보냈습니다.

역사적인 첫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던 1985년에도 북한의 고향방문단과 예술단 150여 명이 판문점을 통과해 걸어서 내려왔죠.

[대한뉴스 (1990년) : 분단 45년 이래 처음으로 남북한 총리 회담을 갖기 위해 9월 4일 오전 10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를 비롯한 북한 측 대표단 일행이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왔습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첫 남북 총리 회담이 이뤄졌을 때도 북측 대표단이 판문점을 통해 들어왔는데요.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를 비롯해 수행원과 기자 90명이 온 데다 환영인파까지 뒤섞여 아주 시끌벅적했습니다.

[정주영 /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1998년) : 고향 쪽을 가니까 반갑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이 장면,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20년 전인 198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소 떼 500마리를 이끌고 이 판문점을 통과하기도 했는데요.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튼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런 화해의 물결 속에, YTN 기자가 판문점에서 마이크를 잡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죠.

[김응건 / 당시 YTN 정치부 기자(1998년 6월) : 이제 이곳 판문점은 더 이상 남북 간 긴장과 대치의 현장이 아니라 남북 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평화와 협력의 장소로 탈바꿈하게 됐습니다.]

외국인이 이 판문점 길을 넘은 적도 있습니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 북한 주석 만날 때 이 판문점 육로를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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