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연예인 꿈꿨던 한류팬...어쩌다 '김정남 킬러' 됐나?

[취재N팩트] 연예인 꿈꿨던 한류팬...어쩌다 '김정남 킬러' 됐나?

2017.02.24. 오전 12:01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취재N팩트] 연예인 꿈꿨던 한류팬...어쩌다 '김정남 킬러' 됐나?
AD
[앵커]
김정남을 독살한 베트남 여성의 지난 행적이 속속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연예인 지망생으로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정황이 있어서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취재 기자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강정규 기자!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 범행 전 우리나라에 들렀던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죠?

[기자]
여러 가지 설이 많은데요.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것은 흐엉이 지난해 11월 제주도에 3박 4일 동안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당시 20대 한국인 남성이 신원보증인 역할을 하면서 편의를 봐준 정황이 우리 수사 당국에 포착됐는데요.

흐엉의 것으로 추정되는 SNS 계정에도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어서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 계정엔 범행 당시 입었던 'LOL'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우리의 비빔밥이나 한류 스타의 사진을 올려놨고 SNS 친구의 3분의 1 정도가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을 좋아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흐엉의 SNS로 추정되는 2개의 계정 모두 본명이 아닌 별명을 사용하고 있어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앵커]
SNS 계정이 맞다면 한류를 참 좋아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흐엉이 연예인 지망생이었다는 얘기도 있죠?

[기자]
흐엉으로 보이는 여성이 베트남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영상이 공개됐는데요.

당시 화면을 보면 이 여성은 노래를 몇소절 부르지도 못하고 탈락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가창력이나 음악에 대한 열정 보다는 얼굴을 알리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다른 인터넷 방송 영상에도 등장하는 등 유명세에 목마른 여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흐엉은 김정남 암살 직후 도주할 때 탔던 택시의 운전기사에게도 자신을 인터넷 스타라고 소개했던 걸로 알려졌죠.

현지 경찰도 흐엉이 베트남의 연예기획사에 고용된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흐엉의 지난 행적을 보면 김정남 독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요.

어쩌다가 북한 공작원들에게 포섭됐을까요?

[기자]
흐엉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은 살인인지 모르고 이번 일에 가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패러디 영상 즉, 몰래카메라 같은 것을 찍는 줄 알았다는 건데요.

또 다른 용의자인 인도네시아 여성도 북한 남성들이 코미디 TV 프로그램의 제작진인 줄 알았다며 비슷한 진술을 했습니다.

이런 말 대로라면, 북한 공작원들은 두 여성에게 몰래 카메라 영상을 찍자며 접근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예계에 진출하고 싶었던 여성과 정치적 암살 사건의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말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들로서는 남북한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공작원들이 흐엉의 한류에 대한 애정을 역이용해서 김정남 암살에 포섭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김정남 암살의 남한 기획설을 주장하고 있는 북한이 우리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한국과 이런 저런 연을 맺고 있는 흐엉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앵커]
오늘 말레시이아 경찰이 김정남의 시신에서 독극물인 VX가 검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흐엉은 이 독극물을 맨손에 발라 직접 김정남에게 묻힌 용의자로 알려졌는데요.

치명적인 독극물에 노출되고도 왜 흐엉만 무사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도 바로 이점을 근거로 독극물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독약이 사용됐다면 왜 김정남만 죽고 베트남 여성은 멀쩡히 살아 있느냐는 건데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VX가 피부에 닿는 것과 체내에 직접 흡수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범행 당시 CCTV 화면을 보면 흐엉은 독을 바른 손으로 김정남의 눈가를 비빈 것으로 보이는데요.

신경계 독성 물질인 VX가 점막을 통해 체내에 훨씬 더 빨리 흡수된다는 겁니다.

공항 의무실에서 쓰러진 김정남의 사진에도 눈주위가 부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흐엉의 경우 맨손에 독을 발랐지만, 범행 직후 바로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정황이 경찰 수사로 드러나기도 했죠.

잠시 피부에 노출된 정도로는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 독극물의 양이나 농도를 미리 조절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다만, 단순히 피부에 노출됐더라고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흐엉도 경찰 조사에서 손에 통증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훈련 받은 공작원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외국인 여성들에게 살인을 청부했던 속셈은 무엇일까요?

[기자]
앞서 말씀드렸듯이 흐엉은 살인인줄 모르고 이번일에 가담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흐엉이 정말로 인터넷 패러디 영상물을 찍자는 북한 공작원들의 말에 속은 거라면 북한 입장에서는 배후를 차단하기 더 쉬울 겁니다.

이번 사건의 배후를 알고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정말 모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겠죠.

직접 살인 행위를 하지 않고 살해를 청부한 북한의 남성 용의자 4명은 이미 평양으로 도망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수사의 공정성에 시비를 걸며 신병 인도와 같은 수사 협조를 거부하고 있죠.

만약에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이 배후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흐엉을 비롯한 여성 2명은 속아서 살인 사건에 휘말린 반쪽짜리 용의자 또는 피해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는 영구 미제 사건으로 만들려는 것, 이것이 북한의 노림수로 보입니다.

강정규 [live@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