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90년대부터 수소폭탄 개발"

"북한, 90년대부터 수소폭탄 개발"

2016.01.07. 오후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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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앵커]
북한이 이미 1990년대부터 수소폭탄을 개발하고 있었다라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 증언이 다른 사람도 아니라 북한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이미 2007년에 국내에서 한 강연에서 아주 구체적인 정황들을 얘기하면서 한 증언입니다. 오늘 황장엽 비서를 8년 동안 보좌했던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그리고 북한전문가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두 분을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우선 황장엽 비서가 이미 북한 수소폭탄 개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는 내용, 그걸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죠.

[인터뷰]
2007년뿐만 아니라 2008년, 2009년 그때 당시에 매주 토요일마다 탈북자동지회에서 북한 인권 관련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황장엽 선생님께서는 핵이라든가 북핵이라든가 수소폭탄, 중성자 폭탄. 그때는 저희도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는데요, 설마 그랬는데 구체적인 수치, 숫자까지 언급을 하시면서 말씀을 하셨죠. 90년대 중반부터. 정확히 제 기억으로는 94년도부터 북한이 핵실험과 함께 수소폭탄 제작에 착수하고 있다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앵커]
1차 북핵 위기가 있었던 것이 1993년 NPT탈퇴하면서잖아요. 93년. 그리고 그 이듬해인 94년부터는 이미 원자폭탄 준비뿐만 아니라 거의 동시에 수소폭탄 제조 준비를 그때부터 했다는 얘기군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런데 황장엽 비서의 그당시 말씀이 이미 15년이면 성공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10년이 지났는데 그러니까 본인이 우리쪽으로 온 지가 10년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라고 했으니까 이미 20년 넘게 지금 수소폭탄을 개발하고 있었다.

[인터뷰]
그러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게 1억 5000도씨 정도의 높은 열 속에서 융합반응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걸 하려면 자석으로 그 물체를 싸서 아주 과학적이면서도 엄청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한데 이걸 지금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우려의 말씀을 하셨고요.

그리고 그때 당시부터 수소폭탄을 만들어냈다 그러면 황장엽 비서가 그 관련 분야거든요. 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 이후에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이것을 어떻게 발표할 것인가를 가지고 그때부터 고심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를 테면 북한 당국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이것을 쓰려고 할 것이다라는 등의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하면서 아주 답답해하셨죠. 왜 사실 정보 당국자도 그렇고 지금도 생생한데 미국의 CSI 는 뭐하냐고 이런 일이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그때마다 덮어두고 막상 핵실험을 하면 했다고 소리를 치지, 그 이후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다, 이걸로 아주 가슴아파하셨습니다.

[앵커]
1차 핵실험이 일어난 이듬해쯤인데요. 저도 그때 강연하신 내용을 오늘 읽어봤는데 보니까 굉장히 기술적으로 아주 전문적인 내용들까지 이미 숙지를 하고 계신 상태더라고요. 그당시 이미 북한의 권력핵심들 속에서는 그런 것들이 상식처럼 기본적인 핵무기 개발 원리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렇게 숙지된 것이 아닌가,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인터뷰]
아닙니다. 황장엽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죠. 자기가 국제비서기는 하지만 그때 당시에 북한은 아마 9명의 당중앙위 비서가 있었을 겁니다. 북한의 최고권력자들이죠. 그것과 관련해서는 자신은 빠졌다. 하지만 몇 번 참가해서 들은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때 당시 핵을 담당했던 비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핵사찰 들어온다고 하는데 핵은 아무리 지하 깊숙이 감춰놔도 그 주변에 핵물체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드러난다. 여기에 대한 대응 같은 데에 자신이 참가를 했었다라고 했습니다.

[앵커]
북한이 이미 90년대부터 수소폭탄을 개발했다는 황장엽 비서의 증언에 대해서 신빙성,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인터뷰]
무기를 개발할 때는 개념연구가 있고 그 개념연구가 진행이 된다면 실제로 제작을 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본다고 한다면 원자폭탄은 이제 고속으로 분열할 수 있는 핵물질들을 분열시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수소폭탄 같은 경우는 핵을 융합을, 그러니까 수소핵끼리 융합을 시키면 그 사이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을 합니다. 그런데 수소핵을 융합시키기 위해서는 1억 5000만도 이상의 고열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면 고열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쉽게 말하면 기폭제죠. 원자폭탄이 완성이 돼야만 실제적으로 제작이 가능한 것이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지금 북한이 원폭 기술이 완벽하게 지금 개발이 됐다고 보기에는 판단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무기화 단계까지 갔다고 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원자폭탄을 만들고도 수소폭탄에 들어갈 정도로 소형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게 기폭장치가 되거든요. 그러면 원폭 무기도 완벽한 무기화단계까지 실전배치가 안 된 상태에서 수소폭탄을 개발하기는 어렵죠. 그렇다고 본다면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시점에 이미 수소폭탄 개념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에 수소폭탄 실험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 같고요.

원자폭탄에다가 수소폭탄에서 사용하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수소융합기술을 결합시키면 원자폭탄보다 서너 배 정도의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폭탄을 만드는 게 그게 바로 증폭핵분열탄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이번의 경우는 증폭핵분열탄을 시도를 한 것 같고요. 그것도 완벽한 성공이라고 보기에는 이번에 6킬로톤 정도의 폭발력이 감지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미지수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그래픽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원자폭탄과 지금 말씀을 하신 증폭핵분열탄, 원폭과 수폭의 중간 정도의 단계. 어떻게 말하면 초기 단계의 수소폭탄이라고 억지로 말하자면 말할 수가 있는.

[인터뷰]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융합기술이 들어갔으니까.

[앵커]
그리고 그다음 수소탄 단계인데요. 그러니까 북한은 90년대부터 이것을 거의 동시에, 그러니까 연구를, 개념 연구들을 진행해 왔던 것 같고 황장엽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원자탄은 히로시마 때 경우에 그때는 아주 원초적인 단계, 낮은 단계였습니다마는 버섯구름의 높이가 6km까지 올라가고요. 위력이 15킬로톤. 1킬로톤은 TNT 1000킬로톤 위력입니다. 그리고 증폭핵분열탄은 위력이 40에서 150킬로톤 이상. 그리고 수소탄이 되면 버섯구름의 높이가 40km까지 치솟고요. 원자폭탄의 6배, 7배 되는. 그리고 위력은 15메가톤인가요?

[인터뷰]
1메가톤은 TNT 100만톤의 위력이 있습니다.

[앵커]
그 정도의 비교할 수 없는, 완전히 단계를 뛰어넘어버리는, 그런 수소탄. 지금 조 박사님의 분석은 증폭핵분열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수소폭탄의 아주 초기단계, 이 정도인 것 같다.

[인터뷰]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 지금까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수소폭탄 실험을 구소련이 1961년에 했는데요. 그 이름이 차르봄바라고 하는 것입니다. 차르는 황제라는 뜻이고 봄바는 폭탄이라는 뜻인데요. 이게 50메가톤이었습니다. 50메가톤이면 TNT 5000만톤이죠. 그러니까 지금 여러 가지 그 당시증언을 보면 쉽게 말해서 서울에서 터졌을 때 천안에서도 뜨거운 열기를 느낄 정도의 폭발력이거든요. 이런 표현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차르봄바가서울 상공에 터진다고 하면 서울은 없어지죠. 그 정도의 위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만약에 북한이 이번에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고 하면 6 TNT 6000톤 정도의 폭발력을 낼 수는 없습니다.

[앵커]
증폭핵분열탄은 어떻습니까? 만약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가정을 해서 서울 상공에서 터진다, 증폭핵분열탄이. 그러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까요?

[인터뷰]
보통 히로시마에는 15킬로톤 정도가 사용이 됐고요. 원자폭탄은 구조상 폭발력을 무한히 키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략 20킬로톤 정도로 잡거든요. 그러면 히로시마에서 즉사했던 사망자가 8만에서 16만 정도로 추정이 되거든요. 만약 북한이 증폭핵분열탄을 서울에 쏜다고 그러면 거의 100만 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가 있죠.

[앵커]
끔찍한 일입니다, 끔찍한 가정입니다. 현실이 돼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 증폭핵분열탄에 대해서도 이미 지난해 9월에 증폭핵분열탄을 우리가 개발을 했다고 시사하는, 지금 와서 돌아보니까 그렇게 해석이 되는 그런 언급을 했다라는 저희 YTN 김주환 정치안보 전문기자의 취재가 있었습니다. 김주환 기자의 리포트를 잠깐 보시겠습니다.

[기자]
[조선중앙TV : 우리는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증하였으며...]

정보 당국은 북한이 4차 핵실험 사실을 발표하면서 '새롭게 개발된'이라는 표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호영 / 국회 정보위원장 :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이라고 발표해서 통상적인 수소폭탄이 아닐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표현을 (국가정보원이) 썼습니다.]

일반적인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중간 단계로 '증폭 핵분열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증폭핵분열탄은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으로 둘러싸인 원자폭탄의 중심부에 삼중수소와 중수소 또는 '리튬6'를 넣어 폭발력을 높인 핵무기를 말합니다.

소규모 핵융합을 위해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필요한데,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중수소는 리튬6에 중성자를 대량으로 조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자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주목받는 부분이 "영변 핵발전소 내 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 변경됐으며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는 지난해 9월 15일 북한 원자력연구원장의 발언입니다.

플루토늄 생산에서 삼중수소 생산으로의 조절 변경됐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수소폭탄으로 언급한 것도 이 증폭핵분열탄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1990년대부터 핵기술 확보를 일관되게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 1차 핵실험 직후 "지하 핵실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평가했고, 2009년 2차 핵실험 때에는 "폭발력과 조종기술에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진행됐다"고 밝혔고, 2013년 3차 핵실험이 끝난 후에는 "소형화·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고 했고, 이번 4차 핵실험 직후에는 "핵무력 발전의 보다 높은 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이 5번째 핵실험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만큼 대응체계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YTN 김주환입니다.

[앵커]
만약에 이게 정말 핵증폭분열탄이었다면 90년대부터 연구가 돼 왔었던 것이니까요. 그리고 점점 기술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그 주기도 3년이 아니라 더 좁아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금 수소폭탄을 전세계 중 가지고 있는 나라는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인지 보시죠.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공식확인됐고 이밖에 의심이 되는 나라들이 조금 더 있다고요?

[인터뷰]
수소폭탄은 저 나라들이 확실하고요. 다만 원자폭탄을 가진 나라들이 이제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정도는 거의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그때도 수소폭탄을 실험했다는 의심을...

[인터뷰]
일부 그런 징후는 있는데요. 전력화했다는 부분은 아직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앵커]
조 박사님께서 어제 저희 YTN에 출연하셔서 말씀을 하셨던 작년 12월 10일부터 1월 6일까지의 그 일정을 주목을 해야 한다, 주시해야 한다라는 말씀. 그리고 김양건의 암살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 어제와 오늘 회자가 많이 됐습니다. 그 말씀, 북한 핵실험 이후에 북한 주민들한테 들려오는 반응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접하신 게 있으십니까? 대표님?

[인터뷰]
양강도를 중심으로 해서 풍계리 지역을 둘러싼 지역들이 있습니다. 백암, 길주, 그리고 연암 이런 지역들인데 이쪽 지역에서 자북한방송에서 전화가 오기를 첫번째는 통신이 잘 안 된다. 중국이 막는 모양이다, 북한이 막는 모양이다, 혹은 북한이 막는 모양이다 이런 소리를 했고요. 북한 주민들이 새해 첫 출근을 해야 되고 첫 일정이 있는데 평양의 특급열차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암에서 길주로 가는 지역에 난데없는 헌병들이 북한 말로 하면 경호가 나와서 군으로 군으로 넘어가면 통제를 안 하는데. 단속을 하고 장사꾼들이 마음대로 거동을 못하고 그랬다가 12시 반에 핵 실험을 했다는 걸 북한 주민들이 그때 알게 됐습니다.
그때 저희들이 바로 들은 반응은 미친짓이다였습니다. 북한 주민들한테요. 실제 거기에서 나름대로 사람들이 뭐하는 짓이냐. 다시 국제사회로부터 이런 저들 나름대로 원성이 터져나왔고요. 그다음에 저희들이 조선중앙TV을 자세히 봤더니 평양시를 비롯한 그 위성도시에 기본적인 북한 군중이라고 해야 되겠죠, 체제를 수호하는 이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우리 탈북자이지만.

[앵커]
어느 정도 연출이 된 것입니까, 아니면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겁니까?

[인터뷰]
학습효과에서 비롯이 된 것인데. 북한 당국은 늘 우리가 조국통일을 해야 된다고 하고요. 민주주의 식민지 하에 있는 남조선이 해방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비록 굶어죽고 배고픈 사람들이 있어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대포와 탱크를 만들어야 된다, 핵미사일 만들어야 된다. 이 체제수호의 기본 핵심사안이기 때문에 많이 학습이 돼 있죠. 이번에 4차 핵실험을 해서 수소폭탄까지 만들었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당국이 말하는게 만세를 부르고 환호를 부르고 조국통일도 눈앞에 왔다. 북한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조국통일이 그냥 통일이 아니고 남조선 그게 다 우리 것이 되겠구나,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겠다고 하는 생각까지 합쳐서 만세가 되는 것이죠.

[앵커]
이춘희 아나운서가 오랜만에 등장했다고 보도가 됐는데요. 북한 주민들이 다 아는 아나운서입니까, 리춘희 아나운서가요?

[인터뷰]
당연히 알죠. 저처럼 부디 작가가 아니어도 대부분 북한의 주민들은 인텔리들은 리춘희가 나오면 큰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과거 핵실험을 했을 때도 리춘희가 안 나왔죠. 그 톤도 훨씬 낮습니다. 설명을 하듯이 그리고 해설을 하듯이 했다, 했다. 이번에 환희와 격정이 넘쳐서 외치는 게 이게 지금 당국으로서 임무를 받고 과감하게 선포하라 이 정도의 명령을 받아서 하는 톤으로 그렇게 봤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한동안 안 나와서 은퇴했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그러니까 어제 나와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12월 10일부터의 그 일정들에 주목해야 된다. 김양건도 암살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서는 김양건이 사고를 당한 시간이 아침 6시인데 암살됐을 가능성은 낮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거든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인터뷰]
일단은 김양건의 사망시간은 아무도 모르죠. 그러니까 북한 당국이 발표한 시간일 뿐이 것이고요. 또 하나는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북한의 당비서들이 가장 핵심실세거든요. 그러면 대남담당비서가 있고 대외 담당 비서가 있습니다. 그러면 국제 담당비서는 강석주고 대남 담당비서는 김양건인데 지금 강석주는 와병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양건이 국제, 대남을 모두 총괄해 왔거든요. 그러면 사실 국제적으로는 최근에 친중, 북중 관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남북 개선의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핵실험은 두 가지를 모두 중단시키고 강경모드로 전환을 하는 것이거든요. 사실은 이렇게 전환하는 과정에 김양건이 현 상태의 국면에 책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게 왜 신년사가 온건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라고 말을 하는데 보통 신년사는 12월 이전에 다 완성됩니다. 상황이 급격하게 전환된 거는 12월 이후라고 보고 발표된 신년사는 그동안의 상황을 반영 못한 것이죠. 그러니까 12월 10일에 김정은이 처음으로 수소폭탄 발언을 하고요. 11일에 남북차관급회담이 열려서 12일에 결렬이 됩니다. 그리고 12일에 모란봉악단이 북경에서 급거 귀국하고 15일에 김정은이 핵실험 준비를 지시하죠. 그리고 29일에 김양건이 사망하고 1월 3일에 핵실험 최종 서명을 하고 6일에 실험이 실시되거든요.

그렇게 본다고 한다면 모란봉악단의 중국 방문과정에서 북핵문제에 대해서 중국과 북한과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것 같고요. 거기에 대한 반발로 제가 보기에는 빠른 조기에 준비되어 있던 핵실험을 단행한 것 같고요. 김양건은 최근에 대화모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어떤 강경세력에 의해서 제거된 게 아니냐는 것은 제 추론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미국의 전략무기들, 전략자산들을 한반도에 배치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북한에서는 어떤 정도의 압박이 위협이 될 수가 있는지 그걸 마지막으로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실질적으로 압박이 됩니다. 그것은 확장억제라고 하는데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핵억제력을 확장해서 한국에 배치를 하는 것인데요. 일단은 핵우산이죠. 전술핵무기를 국내에 투입할 수가 있고요. 그다음에 북한의 요소요소를 타격할 수 있는 B-52 장거리 폭격기, 또 B-22 스텔스 전투기 그다음에 핵잠수함이 동해상에 있을 수 있고 또 항공모함전대가 동북아 지역에 상시 배치가 된다고 그러면 북한은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 압박이고요. 문제는 그 압박이 중국까지 파급효과가 가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현안으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저런 무기들이 실제로 북한을 타격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정찰하거나 그런 것인데 그게 직접적인 압박이 될 수 있을까요?

[인터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한반도에 전개배치가 되면 북한의 주요 목표물에 대한 타격훈련이 시뮬레이션이 가동이 됩니다. 그러니까 수시로 정찰비행이나 아니면 전진배치되어 있다가 그냥 단추만 누르면 실제로 넘어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B-21 스텔스 폭격기나 아니면 B-52 전략폭격기 핵무기를 싣고 한반도 상공을 지나가면 김정은은 사실 지하벙커로 들어가요.

[앵커]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인터뷰]
그렇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됩니다.

[앵커]
실제로 저런 무기들이 과거에도 미군의 첨단무기들이 배치가 됐다고 하면 북한 내부에서 일반 주민들한테도 어떤 반응이 있습니까?

[인터뷰]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김정은의 광기를 보게 될 확률이 높죠. 미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김정은의 광기가 주민들에게까지 확산될 확률도 있습니다. 문제는 정말 그 무시무시한 미국의 전력이 한반도에 온다는 것. 이거는 김정은이 확실히 캐치하도록 하는 것이 먼저라고 보고요. 정말 김정은이 그걸 다 할까라고 하는 이런 걱정도 되고요. 과거 김일성, 김정일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얘기했던 거는 한반도에서는 미군 핵을 빼기 위해서 했던 얘기였거든요. 지금 저희들이 핵을 가지고 있고요. 북한을 향해서 정말 다시 미군 핵을 들여오든지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을 하든지 아니면 정말 무시무시한 미군의 전력이 한반도에 상주하고 있으면서 정말 너희들의 도발에 대해서 우리가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두 분 분석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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