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역사...'남한산성' 김훈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남한산성' 김훈

2017.10.13. 오후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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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훈 / 소설 '남한산성' 작가

[앵커]
역사는 종종 영화 그리고 소설의 중요한 소재가 되죠.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신생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청나라에 과연 우리가, 조선이 굴복을 할 것인가, 끝까지 싸울 것인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결국 고립무원이 됐던 남한산성 안에서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그 47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남한산성입니다.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은 남한산성의 원작자이신 김훈 작가와 함께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반갑습니다. 지난번에 칼의 노래 때...

[인터뷰]
아주 오래전에 뵌 것 같습니다.

[앵커]
인터뷰 한번 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영화 일단 보셨습니까?

[인터뷰]
봤습니다.

[앵커]
어때요, 원작자 입장에서 보시니까?

[인터뷰]
시사회 때 가서 제가 봤는데 제가 미처 소설에 담지 못한 영상들을 감독이 만들어서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서 그러면서 원작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평소에 영화를 좋아하세요?

[인터뷰]
나는 평소에 영화를 잘 안 봐요. 영화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저희 세대가, 제가 올해 70살인데 영상에 대한 훈련이 전혀 없었어요. 우리는 책과 음악과 그걸 중심으로 문화를 받아들인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영상 체험이라는 것은 우리 조국의 산수, 산천 풍경, 저녁 노을 이런 거였죠. 인공영상에 대한 훈련이 잘 안 돼 있었고 제가 또 깜깜한 데 들어가는 것을 안 좋아해요. 결국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지 제가 영화를 특별히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앵커]
혹시 소설을 쓰실 때 이게 영화로 된다면 어떤 장면이겠다 이런 상상도 하시나요?

[인터뷰]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어쨌든 영화와 관련이 없이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이미지나 글에 리듬을 넣어서 독자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떠오르게 해야겠다 하는 그런 전략을 제가 가지고 있죠.

[앵커]
알겠습니다. 다른 우리의 역사 이야기도 많이 쓰시지 않습니까? 지난번 칼의 노래 같은 경우는 이순신 장군의 얘기였는데 우리가 사실은 치욕적인 역사 아닙니까, 남한산성과 관련된 얘기는. 그 소재를 잡은 이유는 어디 있을까요?

[인터뷰]
영화에도 그런 게 잘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 인간의 역사라는 것이 영광이나 자존만으로 형성될 수 없는 거죠. 거기에는 항상 치욕과 패배와 굴욕의 역사,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역사를 자존과 영광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고 또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남한산성 같은 역사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가 매우 불편해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소설을 썼는데 많은 독자가 따라붙을 것이라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에도 관객이 많이 오고 소설 독자도 많은 것을 보니까 역시 독자들의, 국민들의 이해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앵커]
남한산성의 배경이 된 시절이 신생 청나라가 이제 조선에 사대 요구를 하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는 의리를 지켜야 된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앞에서. 그 내용만 얘기를 하면요. 명나라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 아니다 실리를 찾아야 한다 이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만약에 작가님이 그 시절로 돌아가신다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

[인터뷰]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시대의 고통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매우 위태롭고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그 성 안에 들어갔다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됐을까를 생각하면 참 해답이 없고 답답하기만 한 것인데 나는 아마 임금을 따라갔겠죠. 임금을 따라갔지만 그러나 영화에도 나오지만...

[앵커]
주화파 쪽 입장에 조금 가깝다?

[인터뷰]
그렇죠. 그러나 김상헌의 입장을 역시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가 비록 삼전도에 가서 머리를 숙였지만 거기에 반대하는 김상헌 같은 우뚝한 지식인이 있어야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틀은 유지가 되고 그 후세를 기약할 수 있는 거겠죠. 지금 보면 그때 김상헌과 최명길이 양극단에서 대립한 것 같지만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여유를 가지고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것이 아니었구나. 그 둘이 서로 둘 다 필요한 하나의 동일한 사태의 양 국면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앵커]
그렇군요. 사실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사실 그 조선이 대한민국이 됐고 그렇지만 지금도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강요받고 있거든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사드라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지금도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글쎄요. 그것이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은 그때 상황하고 심정적인 일치를 느낄 수 있는데 그것보다 지금 우리 문제는 몇백 배나 어려워요. 강대국도 명청 관계가 아니고 여러 러시아, 중국까지 다 개입되어 있고 일본까지. 그리고 더군다나 우리 남북이 양극단에서 대립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이것은 비교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죠.

[앵커]
고차방정식이죠, 사실.

[인터뷰]
명청 갈등하고는 차원이 다른 어려운 일인데 그때 아마 조선 지식인들은 명과 청의 대립이 이것이 순수한 세력 대 세력의 대립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것은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명은 문명이고 청은 야만이다, 오랑캐다. 우리는 절대로 청하고 타협할 수 없다. 그렇게 관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것이 모든 비극의 발단이 된 것이죠. 왜냐하면 주제학적 사고가 더 이상 전개가 안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 지도자들도 그와 유사한 관념적 허구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어떤 관념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이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죠. 그 프레임 안에 세상을 대입시켜놓고 대중을 거기에 끌어넣으려고 하는 거예요. 어떤 사태를 보면 이것이 선이냐, 악이냐. 이것이 정의냐 불의냐, 이것은 좌냐 우냐 이렇게 따지는 거예요, 프레임으로. 그리고 그런 프레임 안에서 말을 하기 때문에 정치권이 쓰는 언어를 잘 보세요. 아주 공허한 언어예요. 공허한 관념적인 언어인데 공허한 언어를 매우 격렬한 언사로 해대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이 공허할수록 격렬해지는 것이죠. 격렬해질수록 무능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오늘의 현실을 볼 때 이런 당파성의 언어 있잖아요. 당파성의 언어. 이런 노선의 언어 이걸 버리고 이제는 사실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로 돌아와야 돼요. 그래서 이 사태를 논의하기 시작해야지 지금 이걸 당파와 관념 프레임에 넣어 가지고 도대체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이죠.

[앵커]
그러니까 사드의 찬성하는 이야기 하면 친미고 사드에 반대하는 종북인 것처럼.

[인터뷰]
종북 이래 가지고 프레임 안에 가두니까 지금 프레임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생존이 중요한 거예요, 그렇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생존입니다. 그다음에 번영이나 인권이 있는 것이죠. 지금 이 문제를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생각하면 이제는 해결책이 없을 거예요. 프레임 가지고 생각을 하면 영원한 극단적인 대립과 적대하는 이념의 진영으로 갈라지는 것이죠.

[앵커]
결국 내가 서 있는 위치, 내가 좌파냐, 우파냐 이것도 프레임입니다만 그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다 나와 적이 되려는 그런 생각을...

[인터뷰]
남을 볼 때 저게 내 적이냐, 내 편이냐.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자는 내 편이 아닌 것 같은데 저자는 내 적의 적인 것 같은데 저자는 혹시 내 편이 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관철하는 한 해법은 없는 것이죠. 공허하고 관념적인 언어가 아주 격렬하게 부딪히는 거예요. 남한산성 영화에도 부딪히잖아요. 그렇게 프레임의 언어, 그걸 보면 아름답고 장엄하고 비장하게 들리는 거예요, 그게. 그런데 그게 서로 부딪혀서 가루가 되는 거죠, 가루. 가루가 된 폐허 위로 임금은 삼전도로 갈 수밖에 없는 그런 비극을 그려 넣은 거예요.

[앵커]
결국 자기 주장만 펼치는 그 끝은 가루가 된다.

[인터뷰]
언어 부딪쳐서 가루가 되고 폐허 위로 다시 삶의 길을 찾아가야 되는 것이죠.

[앵커]
그렇죠. 최근에 정치인들도 이 영화를 본 뒤에 많은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저희가 그래픽으로 준비했는데요. 몇 가지 좀 살펴보도록 하죠. 먼저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의원 묵직한 영화다라고 했는데 지금의 북핵 위기와 견주는 것은 호사가의 이야기일 뿐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 영화를 본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군주가 무능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된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도 이 영화를 봤는데요. 이분은 적화파, 주화파 최명길, 김상헌 두 사람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근본 원인은 정부의 부재였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얘기는 조금 다른 접근법 같기도 한데 그러니까 당시 명이 쇠퇴하고 청이 번영할 것이라는 정보만 있었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우리가 그런 가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글쎄요. 결국 시대 감각의 문제가 될 터인데 그때 공부하는 사대부들이 시대감이 떨어지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뛰어난 정치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데 영화를 보고 정치인들이 자기 입장에서 정치적인 입장에서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이해는 할 수 있어요. 그분들이 정치를 하니까. 그러나 영화를 영화로서 봐야 되고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 의식이 뭔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비극의 핵심적인 부분이 어디인지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자기의 입장에 맞게. 말하지만 마시고, 자꾸만 여러 가지 말할 수 있죠. 정보의 무능이다, 임금의 무능이다. 임금이 특별히 무능한 것 같지 않아요, 인조라는 임금이. 그분은 항복했지만 그분은 자기가 갈 수 있는 하나의 길로 간 거예요. 그 길밖에 갔기 때문에 간 거예요. 그 길밖에 없으니까. 그 결과가 항복이 됐지만 그 항복을 통해서 또 조선은 거기에서 망한 게 아니라 그것이 그 폐허가 다시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그런 것들의 삶의 지속성, 비극의 핵심부 그런 걸 영화를 통해서 봐주셨으면 하는 게 저의 소망입니다.

[앵커]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죠. 남한산성의 임금, 가장 고민했던 사람은 바로 인조일 것입니다. 인조의 선택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인조라면...

[인터뷰]
인조의 행동은 선택이 아니에요. 이거냐 저거냐 중에서 간 것이 아니고 그 길밖에는 없는 거예요, 그분한테는. 이미 다른 길은 다 끊어졌어요. 그러면 김상헌 대감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 척화파는. 그리고 우리 오랑캐와는 끊어야 한다. 그때로 말하자면 명과의 관계가 명에다 우리가 안보를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의 한미 동맹 같은 거예요, 말하자면. 거기에다가 기대고 사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흔들리니까 이렇게 무너지게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죠. 김상헌은 끝까지 싸우자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자살을 함으로써 야만성에 의해서 짓밟히지 않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후손한테 가르쳐주겠다고 자살을 시도하잖아요.

그런데 그분의 시도는 정말 정의롭고 올바르고 그분이야말로 조선 성리학 일련의 최고의 지식인 자손 만대 추앙을 받아야마땅한 지식인이지만 임금이 만백성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김상헌 뒤를 따라갈 수 없어요. 김상헌 대감은 결국 혼자 가셔야 돼. 혼자 가시면서 자손 만대 추앙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나 임금은, 최명길은 비록 당대 역적 소리를 듣고 비겁한 자의 소리를 듣더라도 백성을 데리고 치욕을 감당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임금은 뭘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 길로 간 거죠. 김상헌은 자기의 길로 간 거죠.

[앵커]
만약에 역사의 가정은 안 되지만 광해군은 일찌감치 실리 외교를 펼쳤잖아요. 인조반정이 없이 광해군이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인터뷰]
양다리 정책을 편 것이죠. 명과 청의 균형자로서 기회주의적인 실리 외교를 하는 거죠. 그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면 명과 청의 세력이 어느 정도 대등할 때 가능해요. 그러나 청의 세력이 더 올라와 가지고 명을 제압하기 시작할 때는 균형자라는 것은 정말 위태로운 것이죠. 그것이 인조 시대로 넘어온 거죠. 그러니까 그 광해의 정책과 인조의 정책을 비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왜냐하면 그 세력 판도가 달라져버렸는데.

[앵커]
역시 작가님이랑 역사 이야기를 하니까 재미있습니다.

[인터뷰]
저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냥 소설쓰는 사람입니다.

[앵커]
그래도 그 소설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더 많은 것들을 배워가니까요.

[인터뷰]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죠.

[앵커]
다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많은 소설의 주제가 있는데 역사 쪽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습니까?

[인터뷰]
역사 소설에, 역사에 대해서 역사라는 소재에 대해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데 내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여실히 표현할 수 있는 시대를 선택하는 거예요. 내가 그러면 그 인간의 야만과 폭력에 저항하는 것, 명분의 문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할 때는 병자호란을 쓰는 것이고 악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인간이 혼자서 세상을 헤치고 나가는 모습을 그려보겠다고 할 때는 임진왜란, 이순신 같은 주인공을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 쓰고 그러는 것이죠.

[앵커]
역사 소설의 매력이 있습니까? 역사 속의 인물을 다시 가공의 인물로 바꾸면서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가지만 한계가 또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상상도 사실을 바탕으로 해 가지고 상상을, 거기다 인격을 부여해넣는, 인품. 그러니까 내가 쓴 이순신 같은 사람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외로운 고독한 개인, 겁 많고 무섭고,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리고 두려움, 항상 배신감에 가득찬, 임금에 대한 남이 나를 배신한다는 두려움에 싸인. 그런 게 역사에는 안 나오잖아요. 역사에는 멋있는 영웅으로만 나오는데, 거기에다가 이 사람은 인간이다, 인간의 슬픔과 고뇌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이제 또 새로운 작품을 혹시 준비하고 계시는 작품이 있으십니까?

[인터뷰]
나이도 많고 해서...

[앵커]
아직... 작가로서는...

[인터뷰]
많이 안 쓰고 서너 개만 더 쓰고 끝내려고 하는데 그걸 잘 써야죠. 잘 써야 되는데 아마 당대 얘기를 계속 쓰려고 그래요. 우리가 살아온 우리 시대의 이야기. 내가 1948년에 태어나서 살았거든요. 올해 70이 되었는데.

48년에 우리가 잃어버린 정부를 최초로 세운 해죠. 1948년. 내가 태어난 해 38선 이북에서는 북조선인민공화국이 생겼었고 같은 해에 분단해서 두 정권이 생긴 거죠. 그후 6.25 전쟁을 치르고 박정희 시대를 살고 그리고 우리가 국민소득, 내가 어렸을 때 82달러였어요. 82달러 때 중학생이었어요. 3만 달러잖아요. 82달러 때부터 3만 달러의 생활 삶의 느낌 있잖아요. 나이테가 쌓여 있어요. 200달러대는 어떻게 됐고 그 느낌, 겨울의 추위가 어땠고 여름에 아이스크림 맛이 어땠고 이런 게 쌓여 있는 거죠. 이건 정말 나이테 같아요. 나이테. 어떻게 그걸 풀어서 얘기해볼까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겠죠.

[앵커]
근대사를 관통할 수 있는 사건들이 몇 가지 있잖아요.

[인터뷰]
글쎄요. 그것을 내가 말한 것을 말로 떠벌리는 대로 잘 될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앵커]
작가님은 글을 평소에 언제 쓰세요, 어떤 때가 가장 잘 써집니까?

[인터뷰]
나는 젊었을 때 밤을 너무 많이 새 가지고 나는 젊었을 때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도 잘 시간이 전혀 없구나라는 절망감을 느꼈어요.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하고 그런 날들이 계속 된 것이죠.

[앵커]
언론사 선배시잖아요.

[인터뷰]
야근에다가 특근에다가 출장가고 별짓 다했어요. 이제는 밤에는 일을 못 해요. 밤에 일을 하면 다음 날 일을 못 하니까. 더더욱이면 낮에 하죠. 저녁 때, 오전에는 내가 주로 운동해요, 나가서 운동하고. 오후 시간에 조금씩 하죠.

[앵커]
어떤 작가님들은 생각이 날 때 막 하던 일 중단하고 거기에서 막 쓰시는 분이 있고요. 어떤 분은 시간을 정해서 어떤 분량을 맞춰가는 작가가 있는데 어떤 타입이십니까?

[인터뷰]
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서 쓰거나 그런 일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영감을 받고 직관을 느껴 가지고 그걸로 쓴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갑자기 막 떠올라서. 신명들리듯이. 나는 영감이나 직관에서 쓰는 것은 없었어요. 영감이나 직관으로 글을 썼다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나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나는 노동의 긴장으로 글을 쓰는 거예요. 노동의 긴장. 노동과 시기의 적당한 조화를 갖추어 가면서 긴장도를 유지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죠. 다만 이럴 때는 있어요. 내가 어떤 사물을 보고 저걸 글로 쓰겠다는 간절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어요. 그것이 영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절박함이 저에게 있는 것이죠. 그런 절박함도 어떤 훈련된 노동의 습관이 아니면 글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부업으로 여가로 취미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앵커]
마지막으로 최근에 많은 우리 역사를 어둡게 한 몇 가지 사건이 있는데 현대사, 우리가 사는 바로 오늘의 어두운 역사 가운데 하나는 세월호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님도 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제가 들었는데 혹시 어떤 계획이나 이런 것들이 있으십니까?

[인터뷰]
세월호는 참 이야기하기가 참 어려운 것인데 더구나 글로 쓰기에는 어려운 것이죠. 여러 관련자들이 있어요. 학생도 있고 정치권력의 조작이 있고 하여튼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 감추려는 사람, 그 옆에 우는 사람, 통곡하는 사람, 통곡사 하는 사람 옆에 가서 통닭 먹는 사람도 있어요. 통닭을 먹고 잔치를 벌이는 사람도 있었죠. 다 총체적으로 보이는데.

내가 얼마 전에 안산 분향소를 갔거든요. 안산 분향소에 갔더니 학생들이 선생님께 보낸 편지가 있었어요. 졸업생이 편지를 썼는데, 돌아가신 선생님한테, 이 선생님은 돌아가셨어요. 학생은 살아서 졸업을 했고. 지난번 지방선거 때 이 학생이 처음으로 투표를 했어요, 지방선거 때. 이 선생님이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가르쳐준 선생님이래요. 학생이 처음 투표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썼어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희들한테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를 가르쳐주셨는데 오늘 처음으로 내가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이 한 표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써서 선생님 영정에 올려놨더라고요. 그걸 보고 희망은 있구나, 아직 희망은 약하지만 살아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것들로 글을 어떻게 써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물론 작가이시니까 어떤 소설을 쓰겠다는 말을 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측면은 역사 작가이시니까 일단 진실이 밝혀져야 거기에 대한 소설적 해석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인터뷰]
아니, 그렇죠. 그런데 한 가지를 가지고도 형상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앵커]
그러면 지금 떠오르는 영감이라든가...

[인터뷰]
관찰 기록에 의하면 통곡하는 자와 거기에서 통닭먹는 자들 그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떤 욕망이, 어떤 이유로 통닭을 먹을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은 영감이라기보다는 내가 그걸 봤거든요. 나는 현장을 관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많이 가봤어요. 그리고 봤죠. 여러 가지의 힘과 인간의 지향성 욕망 이런 것들이 섞여서 부글부글 끓는 꼴을 봤어요, 거기에서. 참 혼란스러운 광경이더라고요.

[앵커]
아직도 그 혼란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남한산성, 최근 개봉한 남한산성의 원작자 김훈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작가님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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