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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를 지낸 원로 역사학자가 70년 전의 실수를 참회하는 고백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조동걸 국민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입니다.
1945년, 서울 양정중학교 1학년 학생이던 조동걸 교수는 고향으로 가던 길에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한 여관에 머물렀는데 여관비가 없어 다음날 새벽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노인이 될 때까지 그 마음의 빚이 사라지지 않았고 뒤늦게 돈을 내기 위해 여관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고 궁리 끝에 현금 50만 원과 이 편지를 진보면 숙박업소를 위해 써 달라며 면사무소로 보낸 것입니다.
진보면은 ‘양심거울'을 제작해 지역에 있는 여관에 기증하고 누구든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2009년에도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1949년 조 교수의 아버지는 당시 고향 집의 관리인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주겠다 약속했는데 지키고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조동걸 교수는 수소문 끝에 당시 관리인의 후손을 찾아 송아지 한 마리 값인 200만 원을 보냈습니다.
56년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약속을 대신 지킨 것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조동걸 국민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입니다.
1945년, 서울 양정중학교 1학년 학생이던 조동걸 교수는 고향으로 가던 길에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한 여관에 머물렀는데 여관비가 없어 다음날 새벽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노인이 될 때까지 그 마음의 빚이 사라지지 않았고 뒤늦게 돈을 내기 위해 여관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고 궁리 끝에 현금 50만 원과 이 편지를 진보면 숙박업소를 위해 써 달라며 면사무소로 보낸 것입니다.
진보면은 ‘양심거울'을 제작해 지역에 있는 여관에 기증하고 누구든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2009년에도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1949년 조 교수의 아버지는 당시 고향 집의 관리인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주겠다 약속했는데 지키고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조동걸 교수는 수소문 끝에 당시 관리인의 후손을 찾아 송아지 한 마리 값인 200만 원을 보냈습니다.
56년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약속을 대신 지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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