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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친일 관변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안상호의 아들 안정호가 해방 이후 지역 발전에 기여한 행적까지 알려지면서 하영 집안의 가족사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소개했습니다.
하영은 당시 “당대 한양에서 서양 의학 전문 의원을 가장 먼저 여신 분 중 한 분”이라며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과거 하영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온 내용이 재조명됐고,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온라인에서 제기됐습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논란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안상호는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친목회를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정친목회는 내선 융화를 내세우면서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단체로 평가됩니다.
안상호는 이완용 등과 함께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했으며, 1927년 발간된 이완용 추모록 ‘일당기사’에는 이재명 의사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안상호가 완쾌할 때까지 매일 찾아가 진료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안상호의 가족이 일본인과 생활하며 ‘일선동화’를 실천한 사례로 소개된 기록도 있습니다.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정황으로 ‘안상호 전의 송덕비’도 확인됐습니다.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는 해당 송덕비가 친일문화잔재로 공식 분류돼 있습니다.
이 송덕비는 당시 시흥군 안양리, 현재 안양시 일대 시장에 세워졌으며 안상호 소유 토지의 소작인들이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기도는 역사전문가팀을 통해 이를 조사·분류하고 안내판을 설치했습니다.
안상호의 아들 안정호의 해방 이후 행적도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안정호는 1912년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 치과를 졸업한 뒤 현재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에 치과의원을 개원해 의료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는 안양에 전기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앞장섰고, 광복 이후에는 경제계에 진출해 조선파이프공장장을 지냈습니다.
안정호는 지역 교육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1947년 안양시 안양3동 소재 약 10만여 평의 토지를 희사해 안양중학교와 안양공업고등학교 설립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평화보육원에도 1만5천여 평을 기부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비산대교에서 한국제지에 이르는 안양천 제방을 자비로 축조하는 등 전후 안양 지역 발전에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정호의 묘는 현재 군포시 금정동에 있었으나 산본신도시 개발로 1990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당목리로 이장됐습니다.
이처럼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과 아들 안정호의 해방 이후 행적이 함께 알려지면서 하영 집안의 역사적 배경을 둘러싼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0일 안상호의 친일 행적 등 온라인상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관련 역사 기록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소속사는 하루 만인 11일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했습니다.
같은 날 하영의 부친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안상호가 의친왕의 권유로 귀국을 결심했고 한성의사회 초대회장을 지냈다는 등의 설명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친일합방’이라고 표현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논란은 하영이 방송에서 증조부의 의사 경력을 가문의 역사로 소개하면서 시작됐지만, 이후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관련 사료가 확인되면서 역사적 평가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과거 안양시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0년 광복 75주년을 맞아 안양시 공식 블로그 시민기자단이 작성한 ‘광복 75주년, 안양시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라는 글에 안상호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이 글은 비공개 처리 되었으며, 해당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확산하고 있습니다.
오디오ㅣAI앵커
제작ㅣ이미영
#지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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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소개했습니다.
하영은 당시 “당대 한양에서 서양 의학 전문 의원을 가장 먼저 여신 분 중 한 분”이라며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과거 하영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온 내용이 재조명됐고,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온라인에서 제기됐습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논란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안상호는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친목회를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정친목회는 내선 융화를 내세우면서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단체로 평가됩니다.
안상호는 이완용 등과 함께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했으며, 1927년 발간된 이완용 추모록 ‘일당기사’에는 이재명 의사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안상호가 완쾌할 때까지 매일 찾아가 진료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안상호의 가족이 일본인과 생활하며 ‘일선동화’를 실천한 사례로 소개된 기록도 있습니다.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정황으로 ‘안상호 전의 송덕비’도 확인됐습니다.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는 해당 송덕비가 친일문화잔재로 공식 분류돼 있습니다.
이 송덕비는 당시 시흥군 안양리, 현재 안양시 일대 시장에 세워졌으며 안상호 소유 토지의 소작인들이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기도는 역사전문가팀을 통해 이를 조사·분류하고 안내판을 설치했습니다.
안상호의 아들 안정호의 해방 이후 행적도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안정호는 1912년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 치과를 졸업한 뒤 현재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에 치과의원을 개원해 의료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는 안양에 전기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앞장섰고, 광복 이후에는 경제계에 진출해 조선파이프공장장을 지냈습니다.
안정호는 지역 교육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1947년 안양시 안양3동 소재 약 10만여 평의 토지를 희사해 안양중학교와 안양공업고등학교 설립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평화보육원에도 1만5천여 평을 기부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비산대교에서 한국제지에 이르는 안양천 제방을 자비로 축조하는 등 전후 안양 지역 발전에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정호의 묘는 현재 군포시 금정동에 있었으나 산본신도시 개발로 1990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당목리로 이장됐습니다.
이처럼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과 아들 안정호의 해방 이후 행적이 함께 알려지면서 하영 집안의 역사적 배경을 둘러싼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0일 안상호의 친일 행적 등 온라인상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관련 역사 기록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소속사는 하루 만인 11일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했습니다.
같은 날 하영의 부친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안상호가 의친왕의 권유로 귀국을 결심했고 한성의사회 초대회장을 지냈다는 등의 설명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친일합방’이라고 표현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논란은 하영이 방송에서 증조부의 의사 경력을 가문의 역사로 소개하면서 시작됐지만, 이후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관련 사료가 확인되면서 역사적 평가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과거 안양시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0년 광복 75주년을 맞아 안양시 공식 블로그 시민기자단이 작성한 ‘광복 75주년, 안양시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라는 글에 안상호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이 글은 비공개 처리 되었으며, 해당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확산하고 있습니다.
오디오ㅣAI앵커
제작ㅣ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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