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9일] 이한열 사건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사건

2010.06.09.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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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오늘!

연세대 학생 천여 명이 이튿날로 예정된 6.10국민평화대행진에 출정하기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를 마친 뒤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대통령직선제를 위한 개헌과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다 전경들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군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상태에 빠졌고 7월 5일 심폐기능이 정지돼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묻혔다.

이한열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지 얼마 안 있어 발생한 일이어서 파장이 매우 컸다.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여 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른바 6월 항쟁의 불길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는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결국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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