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독일 전차, 떠나는 미군... 나토 77년, 최대의 개조가 시작됐다 [한방이슈]

돌아온 독일 전차, 떠나는 미군... 나토 77년, 최대의 개조가 시작됐다 [한방이슈]

2026.07.24. 오후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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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습니다.

폐막 선언문 첫 줄에는 이런 문장이 담겼습니다.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이며, 우리는 철통같이 함께 싸운다." 나토 헌장 5조, 집단방위 원칙입니다. 사실 이 문장은 매년 선언문에 들어가던 관용구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이 문장이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가 됐습니다.

미국이 유럽에서 전투기와 군함, 폭격기를 단계적으로 빼겠다고 공식화한 상황에서, 당연했던 약속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겁니다.

게다가 이번 회의는 이례적으로 다음 정상회의 개최 약속조차 하지 않은 채 끝났습니다.

미국이 뒤로 물러난 자리, 그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 지금 유럽의 동쪽 끝, 리투아니아의 숲속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리투아니아에서 진행된 독일군의 훈련 현장을 보도했습니다.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이곳에서 독일 제45기갑여단은 한 달간 '프리덤 실드'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훈련의 목표는 단 하나, "오늘 밤이라도 즉시 싸울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겁니다. 레오파르트 전차에는 적 드론의 정찰을 피하기 위해 이끼와 위장망을 뒤집어씌웠습니다. 실전을 전제로 한 훈련이라는 뜻입니다.

주목할 점은 훈련이 끝나도 이들이 독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독일이 해외에 상설 전투부대를 배치한 겁니다. 현재 1,600명 규모인 이 여단은 2027년 말까지 5,000명으로 세 배 이상 늘어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극적인 장면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폴란드와 발트 3국을 짓밟았습니다. 80년 전 이 땅을 폐허로 만들었던 독일 전차가, 이번에는 지키러 돌아온 겁니다.

독일의 변신은 병력 배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독일은 나토가 제시한 'GDP 3.5% 국방비' 목표를 시한인 2035년보다 6년 앞당겨 2029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2030년 무렵 독일의 국방비는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규모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반면 같은 지역의 미군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리투아니아에서 훈련하던 미 육군 전차부대는 지난달 폴란드 주둔 여단과 함께 철수했고, 이들을 대체할 부대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토의 초대 사무총장 이즈메이 경은 나토의 존재 이유를 한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러시아는 밖으로, 미국은 안으로, 독일은 아래로."

러시아를 막고, 미국을 유럽에 붙잡아두고, 독일의 재무장을 억제한다는 냉전의 공식입니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유지돼 온 공식이 지금 뿌리째 뒤집히고 있습니다.

이번 앙카라 정상회의에서 나토는 새로운 역할 분담, 이른바 '나토 3.0'을 사실상 공식화했습니다.

재래식 방어는 유럽과 캐나다가 주도하고, 미국은 핵우산과 유사시 증원에 집중한다는 구상입니다.

실제로 유럽 주둔 미군은 약 10만 명에서 8만 명 수준으로 줄었고, 미 국방부는 전쟁 발발 시 유럽에 보내기로 했던 폭격기와 항공모함, 공격형 잠수함 같은 신속대응 전력도 축소했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란 전쟁을 비판하자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철수를 돌연 발표했습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개막과 동시에 그린란드 병합 위협을 다시 꺼냈고, 귀국 직후에는 "유럽 주둔 미군 규모는 그린란드와 이란 문제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동맹의 안보를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신호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이 마주할 수 있는 트럼프의 얼굴을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유럽을 압박하면서도 최악의 순간에는 지켜주는 '엄격한 보호자'가, 반대쪽 끝에는 러시아와 함께 유럽을 양쪽에서 위협하는 '포식자'가 있습니다. 나토 현장의 군인들은 아직까지는 미국을 '엄격한 보호자'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린란드 발언에서 보듯, 반대쪽 끝의 그림자도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유럽 방어의 최대 급소는 '수바우키 회랑'입니다.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 사이, 가장 좁은 곳의 폭이 65km에 불과한 이 통로는 발트 3국과 유럽 본토를 잇는 유일한 육로입니다. 러시아가 발트 3국을 침공한다면 나토의 증원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이곳을 차단하려 들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발트 3국은 사이버 공격과 영공 침범, 해저 케이블 파손 같은 러시아의 이른바 '회색지대' 도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나토는 전략을 바꿨습니다. 과거에는 일단 후퇴했다가 증원군으로 영토를 탈환하는 시나리오였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동부 전선의 전투단은 4개에서 9개로 늘었고, 발트 3국과 폴란드의 국방비는 올해 모두 GDP 5%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미국 없이도 유럽은 싸울 수 있을까.
런던의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 IISS는 미국을 나토의 '운영체제'에 비유합니다. 유럽 군대가 병력과 장비에서 러시아를 따라잡고 있지만, 정보와 위성, 장거리 타격, 전략 수송 같은 핵심 기능은 여전히 미국이 돌리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이 빠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병력이 아니라 '통합성'입니다. 조기 경보가 늦어지고 통신의 신뢰성이 떨어지면, 공군과 지상군은 사실상 따로 싸우게 됩니다. IISS는 그 전쟁이 속도전이 아니라 "거부와 소모, 인내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한 나토 고위 장교의 표현은 더 직설적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전장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장과 훨씬 더 비슷한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지난해 독일 일간지 디 벨트가 후원한 워게임은 이 우려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러시아가 수바우키 회랑을 점령하는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5조 발동을 거부했고, 독일 여단은 러시아 드론이 도로에 기뢰를 뿌리는 바람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리투아니아군의 저항을 배제한 한계가 있는 시뮬레이션이었지만, 미국 없는 나토의 취약점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은 어떤 대답을 내놓고 있을까요. 이번 정상회의의 성적표를 보면 방향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헤이그 정상회의 이후 유럽 회원국과 캐나다의 국방 투자는 1,390억 달러 늘었고, 앙카라에서는 500억 달러 규모의 방산 계약이 새로 발표됐습니다.

특히 노후한 미국산 E-3 조기경보기를 스웨덴제 '글로벌아이'로 교체하기로 한 결정은 상징적입니다. 하늘의 '눈'까지 미국산에서 유럽산으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지원도 구체화됐습니다. 올해 700억 유로 규모의 군사 지원이 약속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라이선스 생산하는 방안까지 언급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오래 붙잡아둘수록 유럽은 그만큼 대비할 시간을 법니다.

하지만 돈으로 메울 수 없는 공백이 두 가지 남아 있습니다.

첫째는 앞서 본 통합성입니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는 유럽 나토 회원국들이 이미 미국을 제외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도, 군사작전의 전 과정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둘째는 핵우산입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보유한 핵탄두는 각각 200여 기, 미국과 러시아의 5,000여 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의 아르투르 카츠프지크는 이렇게 묻습니다. "미국이 재래식 병력조차 보내기 싫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핵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고 어떻게 믿겠는가."

애틀랜틱카운슬은 이번 정상회의 결과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더 강한 유럽, 그러나 더 약한 나토." 유럽의 재무장이 나토의 결속 약화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남은 변수는 시간입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에서 전투가 끝나거나 줄어든 뒤 몇 년 안에 러시아가 회원국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독일은 2029년을 대비 시한으로 잡았고, 폴란드는 그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폴란드의 시코르스키 외무장관은 유럽의 과제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유럽은 미국만큼 강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푸틴보다 잘하면 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시험이 언제 닥칠지는 유럽은 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 만날 날짜조차 정하지 못하고 헤어진 동맹.

앙카라에 모였던 32개국 정상들에게, 시간은 유럽의 편이 아닙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손민성(smis93@ytn.co.kr)
김현수(kimhs4364@ytn.co.kr)
참고 기사: 이코노미스트, 애틀랜틱카운슬, 블룸버그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손민성 (smis9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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