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인가 난장판인가...나홍진 <호프> 극과 극 평가의 이유 [와이파일]

걸작인가 난장판인가...나홍진 <호프> 극과 극 평가의 이유 [와이파일]

2026.07.21. 오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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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가 난장판인가...나홍진 <호프> 극과 극 평가의 이유 [와이파일]
영화 '호프' 포스터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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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를 한 편 꼽으라면, 단연 <호프>입니다. 개봉 첫날 33만 명, 닷새 만에 200만 명. 숫자만 보면 완벽한 질주입니다. 오프닝 기준 나홍진 감독의 역대 최고 기록이자,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빠른 흥행 속도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극장 안 풍경이 묘합니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며 일어납니다. 실제로 네이버 관람객 평점을 보면 9점과 10점을 준 관객이 53%, 1점과 2점을 준 관객이 22%입니다. 평균은 7점대지만, 사실상 중간이 없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왜 이렇게 다른 답을 내놓는 걸까요

칸에서 예고된 논쟁

<호프>의 배경은 1970~80년대, 전남 해남의 외딴 어촌 호포항입니다.산불 진압에 병력이 차출되고 통신마저 끊긴,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언론이 붙인 수식어는 "한국 영화 최초의 시골 크리처물"입니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이 마을 사람들을 연기하고,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이 외계 존재 역으로 참여했습니다. 순제작비는 약 500억 원.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호프>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평단의 반응도 지금의 국내 관객과 비슷하게 갈렸습니다. "올해 영화제에서 가장 과감한 장르적 실험"이라는 찬사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공존했습니다. 논쟁은 이미 칸에서 예고돼 있었던 셈입니다.
영화 'HOPE'

무엇이 관객을 갈라놓았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극단적인 설명의 생략입니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무엇인지, 왜 마을에 나타났는지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호평하는 쪽은 이를 '시네마틱 체험'이라고 부릅니다. 관객도 극 중 주민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포를 마주하게 만들어, 극장에서만 가능한 현장감을 준다는 겁니다. 반대쪽 평가는 다릅니다. 떡밥만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는 분산된 플롯 탓에 이야기를 따라가기 피곤하고, 몰아치다 갑자기 끝나는 결말이 당혹스럽다는 지적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우주전쟁> 역시 압도적인 체험을 안기다가 허무하리만큼 갑작스럽게 끝나, 개봉 당시 결말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우주전쟁>이 20년이 지난 지금, 스필버그의 21세기 걸작 중 하나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혹평이 <호프>라는 영화의 최종 평가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논쟁에 대해서는 감독의 직접적인 답변이 있습니다.개봉 직후 이창동, 봉준호, 장재현 감독이 질문자로 나선 관객과의 대화에서였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사라는 살을 내주고, 디테일이라는 뼈를 얻으려 했다."

'한 경찰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쫓는다'는 한 줄짜리 텍스트로 한 시간을 끌고 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겁니다. 서사의 공백은 실수가 아니라 설계였다는 얘기입니다.

둘째, 톤의 문제입니다. 마을이 참극에 휩싸이는 와중에도 인물들은 묘하게 코믹한 대사를 주고받습니다. 스릴러의 묵직함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몰입을 깨는 요소입니다. 이 역시 감독이 직접 해명한 대목입니다. 대중적인 재미를 위해 웃긴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넣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감독이 의도한 유머를 다르게 읽는 관객도 있습니다. 한 관객은 이런 감상을 남겼습니다. "나홍진 스타일의 코믹인가, 아니면 진짜 인간사가 코믹인가." 끔찍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우스꽝스러움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 아니냐는 겁니다. 겁에 질려 후들거리던 황정민의 다리가, 후반부로 갈수록 과감하게 달려나가는 데서 인물의 진화를 봤다는 해석도 덧붙였습니다. 결국 논쟁의 본질은 나홍진식 유머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취향의 문제인 셈입니다.

웃을 수 없는 산수

그런데 영화의 진짜 승부처는 호불호 논쟁 바깥에 있습니다. 업계가 추정하는 <호프>의 손익분기점은 국내 관객 700만에서 800만 명 수준입니다. 한국 영화 역사에서 700만을 넘긴 작품 자체가 손에 꼽힙니다. '개봉 닷새 만에 200만'이라는 속도로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호불호가 극명한 영화는 입소문 단계에서 뒷심이 꺾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실제로 200만 돌파 이후 관객 추이는 다소 꺾인 듯 보입니다. 다만 <호프>에는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해외입니다.

<호프>는 칸에서 한국 영화 역대 최고가로 해외에 판매됐습니다.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의 절반가량을 이미 회수했다는 추정이 나옵니다. 9월로 예정된 북미 배급은 네온(Neon)이 맡았습니다. <기생충>을 시작으로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배급을 7년 연속 이어온, 아카데미 캠페인에 가장 능한 배급사입니다. 결국 <호프>의 최종 성적표는 국내 극장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쓰일 가능성이 큽니다.

변수는 하나 더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3부작 구상을 이미 준비해뒀다고 밝혔습니다. "시켜만 주신다면"이라는 단서와 함께 말입니다. 이야기의 속편이 존재할 수 있을지 역시, 지금부터의 성적표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속편이 제작된다면 서사 구조에 대한 지금의 아쉬움도 어느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홍진 감독 <사진: 연합뉴스>

나홍진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간 사회를 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구상했고, 그 형상을 외계인으로 만들어 우주적인 이야기처럼 위장시켰다."

외계인 영화라는 포장 안에, 인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숨겨놓은 셈입니다. 말하자면 시장의 계산이 아니라, 감독의 시선에서 출발한 영화라는 얘기입니다. 요즘 상업영화는 정반대 방향에서 출발합니다. 관객 조사와 시사 반응에 맞춰 모난 곳을 미리 깎아냅니다. 그런데 <호프>는 500억 원을 들이고도 그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제를 장르 뒤에 숨기고, 서사의 빈칸을 의도적으로 남겨두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극단적인 호불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함으로, 누군가에게는 한국 영화가 잃어버린 배짱으로 보일 겁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이런 논쟁을 만들어내는 영화 자체가 이제 흔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호프>가 손익분기점을 넘느냐와 별개로, "관객 각자가 결론을 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에 대한 결론 역시 극장을 나서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으로 남게 됐습니다.
배우 조인성(왼쪽부터), 나홍진 감독, 정호연, 황정민 <사진:연합뉴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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