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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은 이란을 상대로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보호하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48시간 만에 작전이 중단됐습니다.
미국의 70년 동맹,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이었습니다.
사우디가 미군에 자국 영공 사용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겁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 연속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국무장관, 중동 특사 위트코프에 사위 쿠슈너까지 설득에 나섰지만,
왕세자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한 미국과 사우디 갈등의 내막입니다.
가장 가까운 동맹 사우디는 왜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100일 넘게 이어진 이란 전쟁이 미국에 남긴 뜻밖의 청구서와 마주하게 됩니다.
[본론1. 100일 전쟁의 결산서]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전격 공격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이란의 위협을 끝내고 중동을 바꿀 조치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예비 휴전이 성사됐고, 양해각서가 뒤따랐습니다.
문서를 뜯어보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첫째, 전쟁의 명분이었던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제거되지 않았고, 처리는 향후 협상으로 미뤄졌습니다.
둘째,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합의문에 아예 담기지 않았습니다. 셋째, 헤즈볼라 등 역내 무장세력 문제도 빠졌습니다.
이란 정권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사망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 지도부를 세우고 존속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란이 적지 않은 부분을 손에 쥐었습니다.
미 해군의 봉쇄 해제, 걸프 국가들이 조성하는 3천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과 동결 자산 반환, 그리고 모든 미국 제재의 종료. 여기에 미군이 30일 안에 이란 '인접 지역'에서 물러난다는 조항까지 포함됐습니다.
중동 대사를 지낸 로버트 포드는 “도대체 언제부터 미군 배치 문제를 이란과 협상하게 됐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호르무즈입니다.
합의는 2개월간 선박의 자유 통항을 보장하면서도, 이란의 해협 통제력을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이란은 통과 선박에 수수료를 물리는 방안까지 거론합니다. 전쟁 전에는 없던 카드입니다.
협상 대표였던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국영방송에서 이렇게 자평했습니다.
한 번도 꺼내 쓴 적 없던 잠재적 능력을, 적들이 스스로 현실로 만들어줬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한 번도 꺼내 쓴 적 없던 잠재적 능력이란 ‘호르무즈 해협의 무기화’를 말하는 겁니다.
페르시아만 안보를 연구해 온 MIT의 케이틀린 탈매지 교수의 진단은 냉정합니다.
이번 합의는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입증돼서 나온 게 아니라, 감당할 수준 이상으로 일을 벌인 미국이 확전을 피하려는 현실에서 나왔다는 분석입니다.
[본론2. 사우디는 왜 등을 돌렸나]
다시 사우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빈 살만 왕세자의 궤적입니다. 개전 전까지 빈 살만은 트럼프에게 이란을 무력화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란이 예상 밖의 반격 능력을 보이자 태도를 바꿔 휴전을 촉구했습니다. 미국의 호르무즈 작전이 어렵게 성사된 휴전을 깨고 전쟁을 다시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무엇보다 영공을 열어주면 이란의 더 강한 보복이 사우디를 향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불신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2019년,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이 사우디 석유 시설을 타격했습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우디의 미국 불신은 그때 싹텄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입니다.
미국을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된 사우디는 보험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했던 중국과 밀착하고, 파키스탄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외무장관은 최근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사우디가 이란과 직접 대화 채널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의제는 호르무즈 해협과 탄도미사일, 그리고 무장 민병대. 사우디 지도부는 이 세 가지를 이란의 핵보다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우선순위와는 다른 계산법입니다.
사우디와 미국의 균열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최근 걸프 순방에서 바레인과 쿠웨이트, UAE를 돌면서 사우디는 건너뛰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중 사우디가 후원한 마이애미 투자 포럼에서 왕세자가 결국 자신에게 아부하게 될 줄은 몰랐을 거라고 공개 석상에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본론3. 승자 없는 손익계산서]
그렇다면 이란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걸까요. 이란의 승리 서사 뒤에는 혹독한 대가가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의 민간인 사망자는 1,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최고지도자와 수십 명의 군 지휘부를 잃었고, 방공망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재건에는 수천억 달러가 필요하고, 물가 급등과 실업은 사회 불안의 불씨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권의 관점에서는 '버텨냈다'는 사실 자체가 자산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총공세를 견디고 협상 테이블로 상대를 끌어냈다는 서사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국의 손익 계산서는 더 복잡합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란 침공이라는 금기를 깨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무기를 소진했다고 지적합니다.
'무력을 쓸 수 있다'는 위협 그 자체입니다. 실제로 무력을 썼는데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란은 학습했습니다. 미국의 다음 위협은 그만큼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이란이 역내 미군 기지들을 타격해 피해를 입히면서, 미군 기지는 건드릴 수 없는 공간이라는 오랜 인식도 함께 깨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손익 계산서는 더 어둡습니다.
한 세대 동안 이란의 위협을 지우겠다며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정작 합의 과정에서 미국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합의는 이스라엘의 핵심 목표를 담지 않았고, 레바논에서의 군사 행동까지 제약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를 여러 차례 공개 비판했습니다.
이란을 담당했던 전직 이스라엘 정보장교는 이번 합의를 두고, 이란을 상대해 온 이스라엘의 전략 전체가 무너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레바논이 있습니다. 분석가들이 이번 합의의 가장 약한 고리로 꼽는 곳입니다.
레바논 보건부 집계로 올해에만 민간인 4천 명 가까이 숨졌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헤즈볼라의 군사력 복원에 나서고 있고, 이란이 받을 재건 자금 일부가 헤즈볼라로 흘러갈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본론4. 그래도 동맹은 굴러간다]
물론 균열만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과 사우디는 사우디의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을 놓고 수개월째 협의 중입니다.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육상 운송로도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여전히 미국산 무기의 최대 구매국입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역내 파트너의 의견을 중요하게 듣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합의를 옹호하는 논리도 있습니다. 밴스 부통령은 이번 합의가 미국에 새로운 지렛대를 준다고 주장합니다. 경제적 보상이라는 수도꼭지를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겁니다.
이란이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어떤 혜택도 얻지 못할 것이고,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않느냐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이번 합의의 야심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어져 온 적대 관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 있습니다.
걸프 지역에서는 아예 이란과 경제적으로 얽히자는 이른바 '황금의 다리' 구상도 나옵니다.
서로 투자하고 이해관계가 얽히면, 이란도 전쟁으로 잃을 것이 많아져 쉽게 총구를 겨누지 못한다는 논리입니다.
쿠웨이트대학의 한 역사학자는 쿠웨이트시에 이란 기업의 공장이 있다면 이란도 공격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회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폴 살렘은 길고 파괴적인 전쟁 끝에 나온 결과치고는 사실상 내용이 없는 합의라고 혹평했습니다.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의 카림 하가그는 중동의 전쟁은 급진화를 줄이기보다 키워왔다며, 전후의 중동이 더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우디는 왜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을까요?
답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미국이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2019년 자국 석유 시설이 불탈 때 미국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사전 협의도 없이 사우디의 하늘부터 쓰려 했습니다. 70년 넘게 이어져 온 두 나라 동맹의 공식은 '석유와 안보의 교환'이었습니다.
그 공식이 흔들리자 사우디는 계산법을 바꿨습니다. 중국과 손잡고, 이란과 마주 앉고, 그러면서도 미국산 무기는 계속 사들이는.
하나의 후견국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모든 문을 열어두는 전략입니다.
물론 두 나라는 여전히 원자력 협력을 논의하고 새 운송로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입니다.
하지만 동맹과 거래는 다릅니다. 동맹은 위기의 순간 조건 없이 하늘을 열어주지만, 거래는 바로 그 순간 조건부터 따집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확인한 것이 바로 그 차이였습니다. 다음 위기가 왔을 때 미국이 다시 사우디의 영공을 두드린다면, 그 문이 열릴지는 이제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방이슈 김재형입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최지혜(wlgp1241@ytn.co.kr)
참고 기사 : 뉴욕타임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최지혜 (wlgp124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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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보호하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48시간 만에 작전이 중단됐습니다.
미국의 70년 동맹,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이었습니다.
사우디가 미군에 자국 영공 사용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겁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 연속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국무장관, 중동 특사 위트코프에 사위 쿠슈너까지 설득에 나섰지만,
왕세자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한 미국과 사우디 갈등의 내막입니다.
가장 가까운 동맹 사우디는 왜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100일 넘게 이어진 이란 전쟁이 미국에 남긴 뜻밖의 청구서와 마주하게 됩니다.
[본론1. 100일 전쟁의 결산서]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전격 공격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이란의 위협을 끝내고 중동을 바꿀 조치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예비 휴전이 성사됐고, 양해각서가 뒤따랐습니다.
문서를 뜯어보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첫째, 전쟁의 명분이었던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제거되지 않았고, 처리는 향후 협상으로 미뤄졌습니다.
둘째,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합의문에 아예 담기지 않았습니다. 셋째, 헤즈볼라 등 역내 무장세력 문제도 빠졌습니다.
이란 정권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사망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 지도부를 세우고 존속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란이 적지 않은 부분을 손에 쥐었습니다.
미 해군의 봉쇄 해제, 걸프 국가들이 조성하는 3천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과 동결 자산 반환, 그리고 모든 미국 제재의 종료. 여기에 미군이 30일 안에 이란 '인접 지역'에서 물러난다는 조항까지 포함됐습니다.
중동 대사를 지낸 로버트 포드는 “도대체 언제부터 미군 배치 문제를 이란과 협상하게 됐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호르무즈입니다.
합의는 2개월간 선박의 자유 통항을 보장하면서도, 이란의 해협 통제력을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이란은 통과 선박에 수수료를 물리는 방안까지 거론합니다. 전쟁 전에는 없던 카드입니다.
협상 대표였던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국영방송에서 이렇게 자평했습니다.
한 번도 꺼내 쓴 적 없던 잠재적 능력을, 적들이 스스로 현실로 만들어줬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한 번도 꺼내 쓴 적 없던 잠재적 능력이란 ‘호르무즈 해협의 무기화’를 말하는 겁니다.
페르시아만 안보를 연구해 온 MIT의 케이틀린 탈매지 교수의 진단은 냉정합니다.
이번 합의는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입증돼서 나온 게 아니라, 감당할 수준 이상으로 일을 벌인 미국이 확전을 피하려는 현실에서 나왔다는 분석입니다.
[본론2. 사우디는 왜 등을 돌렸나]
다시 사우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빈 살만 왕세자의 궤적입니다. 개전 전까지 빈 살만은 트럼프에게 이란을 무력화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란이 예상 밖의 반격 능력을 보이자 태도를 바꿔 휴전을 촉구했습니다. 미국의 호르무즈 작전이 어렵게 성사된 휴전을 깨고 전쟁을 다시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무엇보다 영공을 열어주면 이란의 더 강한 보복이 사우디를 향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불신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2019년,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이 사우디 석유 시설을 타격했습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우디의 미국 불신은 그때 싹텄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입니다.
미국을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된 사우디는 보험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했던 중국과 밀착하고, 파키스탄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외무장관은 최근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사우디가 이란과 직접 대화 채널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의제는 호르무즈 해협과 탄도미사일, 그리고 무장 민병대. 사우디 지도부는 이 세 가지를 이란의 핵보다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우선순위와는 다른 계산법입니다.
사우디와 미국의 균열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최근 걸프 순방에서 바레인과 쿠웨이트, UAE를 돌면서 사우디는 건너뛰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중 사우디가 후원한 마이애미 투자 포럼에서 왕세자가 결국 자신에게 아부하게 될 줄은 몰랐을 거라고 공개 석상에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본론3. 승자 없는 손익계산서]
그렇다면 이란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걸까요. 이란의 승리 서사 뒤에는 혹독한 대가가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의 민간인 사망자는 1,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최고지도자와 수십 명의 군 지휘부를 잃었고, 방공망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재건에는 수천억 달러가 필요하고, 물가 급등과 실업은 사회 불안의 불씨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권의 관점에서는 '버텨냈다'는 사실 자체가 자산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총공세를 견디고 협상 테이블로 상대를 끌어냈다는 서사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국의 손익 계산서는 더 복잡합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란 침공이라는 금기를 깨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무기를 소진했다고 지적합니다.
'무력을 쓸 수 있다'는 위협 그 자체입니다. 실제로 무력을 썼는데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란은 학습했습니다. 미국의 다음 위협은 그만큼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이란이 역내 미군 기지들을 타격해 피해를 입히면서, 미군 기지는 건드릴 수 없는 공간이라는 오랜 인식도 함께 깨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손익 계산서는 더 어둡습니다.
한 세대 동안 이란의 위협을 지우겠다며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정작 합의 과정에서 미국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합의는 이스라엘의 핵심 목표를 담지 않았고, 레바논에서의 군사 행동까지 제약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를 여러 차례 공개 비판했습니다.
이란을 담당했던 전직 이스라엘 정보장교는 이번 합의를 두고, 이란을 상대해 온 이스라엘의 전략 전체가 무너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레바논이 있습니다. 분석가들이 이번 합의의 가장 약한 고리로 꼽는 곳입니다.
레바논 보건부 집계로 올해에만 민간인 4천 명 가까이 숨졌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헤즈볼라의 군사력 복원에 나서고 있고, 이란이 받을 재건 자금 일부가 헤즈볼라로 흘러갈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본론4. 그래도 동맹은 굴러간다]
물론 균열만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과 사우디는 사우디의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을 놓고 수개월째 협의 중입니다.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육상 운송로도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여전히 미국산 무기의 최대 구매국입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역내 파트너의 의견을 중요하게 듣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합의를 옹호하는 논리도 있습니다. 밴스 부통령은 이번 합의가 미국에 새로운 지렛대를 준다고 주장합니다. 경제적 보상이라는 수도꼭지를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겁니다.
이란이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어떤 혜택도 얻지 못할 것이고,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않느냐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이번 합의의 야심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어져 온 적대 관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 있습니다.
걸프 지역에서는 아예 이란과 경제적으로 얽히자는 이른바 '황금의 다리' 구상도 나옵니다.
서로 투자하고 이해관계가 얽히면, 이란도 전쟁으로 잃을 것이 많아져 쉽게 총구를 겨누지 못한다는 논리입니다.
쿠웨이트대학의 한 역사학자는 쿠웨이트시에 이란 기업의 공장이 있다면 이란도 공격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회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폴 살렘은 길고 파괴적인 전쟁 끝에 나온 결과치고는 사실상 내용이 없는 합의라고 혹평했습니다.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의 카림 하가그는 중동의 전쟁은 급진화를 줄이기보다 키워왔다며, 전후의 중동이 더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우디는 왜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을까요?
답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미국이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2019년 자국 석유 시설이 불탈 때 미국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사전 협의도 없이 사우디의 하늘부터 쓰려 했습니다. 70년 넘게 이어져 온 두 나라 동맹의 공식은 '석유와 안보의 교환'이었습니다.
그 공식이 흔들리자 사우디는 계산법을 바꿨습니다. 중국과 손잡고, 이란과 마주 앉고, 그러면서도 미국산 무기는 계속 사들이는.
하나의 후견국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모든 문을 열어두는 전략입니다.
물론 두 나라는 여전히 원자력 협력을 논의하고 새 운송로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입니다.
하지만 동맹과 거래는 다릅니다. 동맹은 위기의 순간 조건 없이 하늘을 열어주지만, 거래는 바로 그 순간 조건부터 따집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확인한 것이 바로 그 차이였습니다. 다음 위기가 왔을 때 미국이 다시 사우디의 영공을 두드린다면, 그 문이 열릴지는 이제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방이슈 김재형입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최지혜(wlgp1241@ytn.co.kr)
참고 기사 : 뉴욕타임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최지혜 (wlgp124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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