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아닌 이란…트럼프가 마주한 '권력의 정글' [한방이슈]

하나가 아닌 이란…트럼프가 마주한 '권력의 정글' [한방이슈]

2026.04.25. 오후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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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미국과 이란은 본격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담장에 들어선 이란 대표단의 규모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려 80여 명, 이 가운데 '의사결정권자'로 소개된 인물만 약 30명이었습니다.

보통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에 소수 정예 대표단을 파견해 왔습니다.

규율이 엄격했고, 사전 조율도 철저했습니다.

이번엔 달랐습니다.

협상장 한쪽에는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핵합의 실무를 다듬는 데 참여했던 노련한 외교관이 앉았습니다.
 
그 맞은편에는 미국을 '사악한 누런 개'라고 부르며 어떠한 합의도 항복에 불과하다고 공개 조롱하는 강경파가 있었습니다.

협상이 시작되자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마주 앉아 협상하는 시간보다, 이란 대표들끼리 언쟁을 벌이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파키스탄 중재자들은 미국과 이란 사이보다 이란과 이란 사이를 말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습니다.

결국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주최 측은 회담을 중단시켰습니다.

이 장면은 지금 이란이 처한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이 상대하고 있는 이란은, 더 이상 하나의 이란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사라진 머리'…47년 만의 두 번째 권력 공백

지금 이란의 혼란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부재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1989년부터 37년간 이란을 통치해 온 절대 권력자 하메네이는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 공습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두 달이 지났지만, 이란은 아직 장례 날짜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최고지도자의 자리가 이렇게 오래 공석으로 남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혁명 직후의 '대혼란기'였습니다.

즉, 이란은 47년 만에 다시 혁명 초기의 무질서한 상태로 돌아간 셈입니다.

후계자로 지명한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폭격 여파로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아버지의 권위를 이어받기에는 정치적 체급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측통들은 지금 테헤란을 이렇게 부릅니다.

"권력의 정글"

형식적 권한은 최고국가안보회의에 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정보·안보 수장들로 구성된 기구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입니다.

실질 권력은 여러 갈래로 쪼개진 채 서로 다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한 대표단, 두 개의 이란…협상장에서 드러난 파열음

이란의 분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곳이 바로 이슬라마바드 협상장이었습니다.

이란의 수석 협상가로 나선 인물은 국회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가 그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현실주의 노선입니다.

"제재를 풀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민족주의 성향의 협상파입니다.

반면, 협상 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혁명수비대, IRGC입니다.
 
약 19만 명의 병력을 거느린 혁명수비대 조직은 이슬람공화국의 이념과 혁명 정신을 지키는 '수호자'를 자처해 왔습니다.

이 두 세력이 이슬라마바드 협상장에 함께 앉은 것입니다.

결과는 혼란이었습니다.

협상장 바깥의 이란도 달라졌습니다.

혁명수비대와 연결된 조직망이 매일 밤 동원하는 친정권 집회, 이 자리에서 협상을 이끄는 갈리바프와 아라그치의 실명이 공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성직자의 설교 자리에는 군복 차림의 군 대변인이 올라섭니다.

얼마 전 한 집회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구호를 선창했습니다.

여성이 남성 앞에서 단독으로 노래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것을 금기시해 온 40년의 관행이 한순간에 깨진 것입니다.

혁명수비대 연계 매체들은 "5월 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연기하자"는 주장까지 꺼내 들었습니다.
 
최근의 모든 징후는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군부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이 지점에서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혁명수비대는 왜 이토록 강경한 것일까요?

단지 이념 때문일까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시합니다.

지난 수년간 이란에는 독특한 경제 계층이 형성되었습니다.

바로 '장군 출신 제재 우회 세력'입니다.

미국이 이란에 가하는 강력한 경제 제재.

이를 피해 석유를 밀수출하고, 금을 몰래 거래하고, 암시장을 굴리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제재는 재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독점적인 수익원입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측근과 갈리바프 주변 네트워크가 해외에 막대한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과 이란이 합의에 이르러 제재가 풀리면 어떻게 될까요?

지하 경제로 흐르던 돈이 정상 경제로 나오게 됩니다.

밀수 프리미엄은 사라지겠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돈을 만지던 장군들의 시대가 저무는 것입니다.

즉, 이들에게 평화는 번영이 아니라 파산입니다.

혁명수비대의 강경 노선 뒤에는 이념뿐 아니라 거대한 '밥그릇'이 얽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려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트럼프의 '간 보기'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상대방의 헤드, 즉 최고 권력자와 직접 거래한다"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동', 시진핑과의 '관세 담판', 푸틴과의 '우크라이나 협상' 모두 '헤드 투 헤드'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상대의 '헤드'가 없습니다.
 
테헤란의 권좌는 비어 있고, 이란 내부에서도 누가 실권자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의 대응이 흥미롭습니다.

지난 4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재개"를 발표했습니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이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혁명수비대 계열 매체들이 "아라그치가 해협 개방의 조건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공개 비판했습니다.

다음 날인 4월 18일, 이란 군 대변인은 "해협이 다시 폐쇄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여러 선박이 통과를 시도하다 공격을 받았습니다.

하루 사이에 외교 메시지가 완전히 뒤집힌 것입니다.

트럼프는 이 상황을 조롱하듯 받아쳤습니다.

"미국이 시행 중인 봉쇄만으로도 이미 이란 선박은 통항할 수 없다"

4월 20일, 트럼프는 미 해군이 이란 화물선에 발포한 뒤 승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바로 전날에는 미국 대표단이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 추가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이란 민간 인프라 폭격 위협"도 거듭했습니다.

협상과 폭격, 대화와 봉쇄, 양보와 최후통첩이 하루 간격으로 번갈아 나오고 있습니다.
 
단순한 변덕일까요?
 
이란 내부에 여러 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일종의 '간 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민간 인프라 폭격을 위협하면 누가 물러서는가?"

"화물선을 압류하면 누가 반발하는가?"

"협상 재개를 제안하면 누가 응답하는가?"

각 카드에 대한 이란 각 세력의 반응을 통해 누가 실권을 쥐고 있는지, 누가 어떤 이익에 매달려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전략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메시지가 이란 내부의 분열을 오히려 더 키우고 있습니다.

협상파가 한 발 나설 때마다 강경파의 공격이 거세지고, 강경파가 목소리를 키울 때마다 협상파의 입지가 좁아집니다.

거래할 '헤드'가 없다는 것은, 거래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 개의 쟁점, 세 개의 분열선

이란 내부의 민족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는 협상의 모든 핵심 쟁점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있습니다.

첫째, 핵 프로그램입니다.

민족주의자들에게 핵 무장 시도는 공격을 자초하는 자폭 행위입니다.

하메네이가 이미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핵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대가로 제재 해제를 받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이슬람주의자들은 정반대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핵이 없었기 때문에 공격당한 것이다"
 
이들은 북한식 모델을 지향합니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순간 체제는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둘째, 역내 대리세력입니다.
 
이란은 그동안 헤즈볼라, 후티 반군, 이라크 시아 민병대 등 중동 전역에 광범위한 영향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습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이 네트워크를 '거래 카드'로 봅니다.

"대리세력 지원을 줄이는 대가로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반면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를 '저항의 척추'라고 부릅니다.

결코 "내놓을 수 없는 혁명의 본질"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 호르무즈 해협입니다.
 
세계 원유의 약 20%가 지나는 이 해협을 두고 양측 입장이 엇갈립니다.

현실주의자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UAE 같은 아랍 걸프 국가들과의 광범위한 안보 협정을 끌어낼 지렛대입니다.

이념주의자들에게는 이란이 통제권을 놓지 않고 있는 '수익성 높은 통행세 징수소'입니다.

어떤 쟁점에서도 이란은 한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북한 모델의 그림자…중동 '핵 도미노'의 방아쇠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란 강경파가 주장하는 '북한식 모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란 내부의 논쟁을 넘어 중동 전체의 핵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방아쇠입니다.
 
이미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란이 핵을 가진다면 우리도 지체 없이 같은 길을 갈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습니다.

UAE, 튀르키예, 이집트 역시 비슷한 잠재력을 가진 국가들입니다.

UAE는 이미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 바라카 원전을 가동 중이며, 튀르키예는 기술력과 과학 인력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는 '핵 없는 질서'라는 암묵적 균형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비공식 핵 보유는 예외로 두고, 역내 다른 국가들은 핵무기 개발을 자제해 온 것입니다.

이란이 이 레드 라인을 넘는 순간, 중동 핵 도미노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대리세력 문제'에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어도, '핵'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트럼프가 민간 인프라 폭격까지 거론하며 이란을 압박하는 배경에는 "이란 내부의 '북한파'를 꺾지 못하면 중동 전체가 핵 시대로 접어든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700억 달러의 무게…파키스탄의 중재, 그리고 남은 질문

지난 4월 15일,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심 무니르가 테헤란을 방문했습니다.

목적은 "이란 내 서로 다른 세력들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란 정권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번 전쟁의 피해액은 약 2,7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90조 원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경제 붕괴는 이미 현실입니다.

이 숫자가 강경파의 고집을 흔들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압박입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냉정한 전망을 내놓습니다.

"설령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는다 해도, 대표단 내부의 깊은 분열 때문에 합의 자체가 어렵고, 어떤 합의가 도출되더라도 곧바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협상은 두 나라 사이에서 이루어지기 전에, 이란 내부에서 먼저 끝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란의 지금 상황은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닙니다.

47년 만에 맞이하는 최고지도자의 공백, 혁명 이념과 현실주의가 부딪히는 오래된 단층선, 제재라는 이름의 경제 질서에 깊숙이 뿌리내린 이권 구조, 북한식 핵 무장이라는 유혹.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풀어헤쳐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방의 '헤드'와 거래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지금 '테헤란의 헤드'는 비어 있습니다.

미국 협상단이 이슬라마바드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들이 마주할 이란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입니다.

각자 다른 이해관계, 다른 이념, 다른 손익 계산서를 들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세계 원유의 20%, 중동 전체의 핵 질서, 미국 외교의 거래 기술 그리고 이란 국민의 미래.

이 모든 것이 지금 테헤란의 권력 공백 위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상대하고 있는 이란은, 하나의 이란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외면하는 한, 어떤 협상도 진정한 평화로 이어지지 못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참고 기사 : 이코노미스트·뉴욕타임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digital 이형근 (yihan305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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