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에 무너지는 애국심..우크라, 50만 징집 '내부 분열' [한방이슈]

부정부패에 무너지는 애국심..우크라, 50만 징집 '내부 분열' [한방이슈]

2023.12.22. 오후 6:34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미국과 유럽의 지원이 막히면서 위기에 몰린 우크라이나가 또 하나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민감한 일이 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렇게 걱정했을 정도입니다.

전장에 투입할 병력 동원 문제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내년 45~50만 명의 병력을 징집할 예정이지만 최근 상황은 간단치 않습니다.

전쟁이 길어지고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신병 모집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징병을 회피하는 각종 비리가 발생하며 우크라이나 사회의 단결력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균열은 젤렌스키와 군부의 정쟁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우크라이나 살린 애국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국민은 앞다투어 입대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군사력 절대우위, 초강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2년 가까이 버틴 우크라이나의 원동력은 이런 애국심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우크라이나 대통령 (12월) : 러시아는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사흘 안에 우크라이나 수도를 점령한다고 했었죠. 2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병사들은 잘 해냈고, (우크라이나) 국민도 잘 해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장기전에 징집 어려움...부정부패에 무너지는 애국심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남성이 징집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징집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

뇌물을 받고 징집 대상에서 제외해주거나 징집에 응하지 않고 도망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반대로 징집 대상이 아닌 장애인, 유질병자, 간병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사례가 발생합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현재 계엄령이 내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징병법 집행 과정에서 책임자의 주관적 해석과 권한남용이 발생할 위험성이 큽니다.

실제로 지난 8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징병 과정에서 뇌물 수수 정황이 드러난 지역 책임자 24명을 해임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우크라이나 대통령 (8월) : 모든 지역의 동원 담당 '군사위원장'을 해임합니다. 동원 시스템은 전쟁이 무엇인지, 전쟁 중 냉소주의와 뇌물수수가 왜 반역죄가 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운영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해임된 모병 책임자 아래 있는 공무원들이 대부분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는 그대로라고 지적합니다.

■정부와 군부의 갈등 격화...내부 분열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내년 45~50만 명 정도를 추가 동원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젤렌스키는 "매우 심각한 숫자"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공정성과 국방력, 재정에 관한 문제라며 앞으로 동원 문제는 정부 고위 관료와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 공정성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대통령이 군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지난해 말부터 제기된 젤렌스키와 군부의 갈등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 최고 사령관인 발레리 잘루즈니 장군은 젤렌스키가 군 모집국장을 해임한 것을 공개 비판했습니다.

"해임된 국장들이 전문가들이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여기 없다"며 젤렌스키를 겨냥했습니다.

지난달(11월) 잘루즈니 장군의 이코노미스트 인터뷰는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대대적 반격을 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정부 발표와 달리

"새로운 무기가 없으면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곧바로 "정치를 하지 말고 군사 업무에 충실하라"며 잘루즈니 장군을 공개질책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공개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갈등 격화 진짜 원인은 이것...잘루즈니 조사?

갈등을 격화시킨 또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이게 진짜 이유일 수 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동남부 접경지대 영토 대부분을 점령당한 상태입니다.

지난해(2022년) 2월과 3월, 즉 전쟁 초기,

러시아가 빠르게 승리를 거두며 몇 주만에 크림반도로 가는 새로운 육로를 확보한 곳입니다.

젤렌스키는 당시 군부가 전력을 다하지 않아 러시아의 진격을 사실상 도왔다고 판단합니다.

한 마디로 반역 행위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시 군 당국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지 매체는 잘루즈니 장군이 조사 대상 명단에 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은 참고인 수준이지만, 상황에 따라 피의자 전환이나 기소와 같은 더 심각한 양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젤렌스키 지지율 추락...잘루즈니는 고공 행진

젤렌스키의 움직임을 잘루즈니 장군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잘루즈니가 젤렌스키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루즈니 장군은 정치적 야망을 밝힌적도, 그렇다고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공행진을 이어간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최근 잘루즈니 장군과 대조를 이루며 급락했습니다.

지난해 12월 84%에 달하던 젤렌스키에 대한 신뢰도는 1년만인 이달(12월) 62%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잘루즈니 장군은 88%를 기록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여론조사에서도 젤렌스키에 대한 신뢰도는 32%까지 하락했습니다.

70%를 기록한 잘루즈니 장군은 장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정보국장 부다노프(45%)보다도 낮았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젤렌스키 정부의 부패 스캔들과 국가 방향성에 대한 우려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같은 여론조사에선 내년 3월 대선에서 젤렌스키가 잘루즈니와 대결한다면 패배할 것이라는 응답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 10명 중 8명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계엄령을 이유로 선거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 유엔 경제사회부 인구과. 세계 인구 전망

전쟁 발발 이전인 2021년과 전쟁 발발 이후인 2023년 우크라이나 인구를 살펴보면 약 7백만 명이 감소했습니다.

민간인 사망자와 국외로 탈출한 피난민을 포함한 수치인데 남성 비율이 여성보다 높습니다.

특히, 징집 대상자인 20세~34세까지가 180만 명에 달해 가장 많습니다.

일부는 전쟁 사망자에 포함돼 있지만, 상당수는 징집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거나 사라진 인원으로 추정됩니다.

긴병 앞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전쟁이 길어지면서 조국에 대한 효심, 즉 애국심에도 균열이 생긴 양상입니다.

전쟁 첫해, 우크라이나는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를 압도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하나로 뭉친 단결력, 여기에 미국과 유럽의 지원이 더해져 유무형의 강력한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두 번째 해, 우크라이나는 두 가지 강력한 무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현실은 불확실성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연말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단결은 전쟁 초기부터 우리를 지켜온 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우방인 유럽연합 EU조차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우크라 내부의 분열을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국가를 포함해 크고 작은 조직을 무너뜨린 공통된 요인을 역사적으로 추려보면 하나의 특징이 발견됩니다.

바로 내부 분열입니다.


기획: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손민성(smis93@ytn.co.kr)
그래픽: 김현수(kimhs4364@ytn.co.kr)
참고 기사: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손민성 (smis93@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