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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1절인 오늘은 오래된 숲의 아픈 역사를 짚어보겠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엔 태고부터 이어지는 원시림이 없다고 하는데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와 제국대학이 백두대간 원시림을 수십 년간 수탈했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지 환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강점기인 1931년 당시 동경제국대학교 농학부가 발행한 '조선 강원도 연습림, 적송'이라는 문건입니다.
붉은 소나무가 가득했다는 이 숲은 과연 어디였을까?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지역.
백두대간 금강산과 설악산 중간 산줄기에서, 동해안 지역으로 빠지는 곳입니다.
일제는 이 일대 3만여 ㏊를 대학 연습림으로 지정하고 1913년부터 나무를 베어냈습니다.
식민지 산림 수탈의 전초기지로 삼은 겁니다.
잘라낸 나무는 대부분 금강소나무로 알려진 적송, 조선 왕실이 궁궐을 지을 때나 베어낼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한 나무입니다.
벌채 규모는 매년 약 4만 석(石), 지금 기준으로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2만 그루가 넘습니다.
잘라낸 나무는 동해안 장전항과 원산항을 통해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로 옮겼습니다.
[서재철 / 녹색연합 전문위원 : (대학) 연습림이라고 해놓고 실상은 원시림을 벌채, 벌목해서 수탈해가는 도구로 삼았던 거죠.]
산림 벌목 현장은 또 있습니다.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용소계곡.
녹슨 산림 철도 노반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궤도차를 이용해 아름드리 소나무를 모두 수탈해 간 겁니다.
태백산 일대도 마찬가지.
일제는 임업주재소를 설치한 뒤 중일전쟁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소나무를 베었습니다.
군수물자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는데 주재소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산림청이 만든 '벌목 기억의 비석'이 설치됐습니다.
[서재철 / 녹색연합 전문위원 : 당시 일본 사람이 베어 간 나무의 지름이 2m가량 된다는 주민의 증언이 현재 남부지방산림청 비석에 그대로 나와 있어요. (그만큼 원시림이 있었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일제는 한반도 생태 축인 백두대간 곳곳에서 수십 년간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벌채했습니다.
수백 년 이어진 한반도 원시림이 깊은 상처를 입고 한순간에 사라진 이유입니다.
YTN 지환입니다.
영상기자 : 성도현
화면제공 : 녹색연합
YTN 지환 (haji@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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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인 오늘은 오래된 숲의 아픈 역사를 짚어보겠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엔 태고부터 이어지는 원시림이 없다고 하는데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와 제국대학이 백두대간 원시림을 수십 년간 수탈했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지 환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강점기인 1931년 당시 동경제국대학교 농학부가 발행한 '조선 강원도 연습림, 적송'이라는 문건입니다.
붉은 소나무가 가득했다는 이 숲은 과연 어디였을까?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지역.
백두대간 금강산과 설악산 중간 산줄기에서, 동해안 지역으로 빠지는 곳입니다.
일제는 이 일대 3만여 ㏊를 대학 연습림으로 지정하고 1913년부터 나무를 베어냈습니다.
식민지 산림 수탈의 전초기지로 삼은 겁니다.
잘라낸 나무는 대부분 금강소나무로 알려진 적송, 조선 왕실이 궁궐을 지을 때나 베어낼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한 나무입니다.
벌채 규모는 매년 약 4만 석(石), 지금 기준으로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2만 그루가 넘습니다.
잘라낸 나무는 동해안 장전항과 원산항을 통해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로 옮겼습니다.
[서재철 / 녹색연합 전문위원 : (대학) 연습림이라고 해놓고 실상은 원시림을 벌채, 벌목해서 수탈해가는 도구로 삼았던 거죠.]
산림 벌목 현장은 또 있습니다.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용소계곡.
녹슨 산림 철도 노반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궤도차를 이용해 아름드리 소나무를 모두 수탈해 간 겁니다.
태백산 일대도 마찬가지.
일제는 임업주재소를 설치한 뒤 중일전쟁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소나무를 베었습니다.
군수물자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는데 주재소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산림청이 만든 '벌목 기억의 비석'이 설치됐습니다.
[서재철 / 녹색연합 전문위원 : 당시 일본 사람이 베어 간 나무의 지름이 2m가량 된다는 주민의 증언이 현재 남부지방산림청 비석에 그대로 나와 있어요. (그만큼 원시림이 있었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일제는 한반도 생태 축인 백두대간 곳곳에서 수십 년간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벌채했습니다.
수백 년 이어진 한반도 원시림이 깊은 상처를 입고 한순간에 사라진 이유입니다.
YTN 지환입니다.
영상기자 : 성도현
화면제공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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