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 21일 사북항쟁...국가폭력 종합 전시장

1980년 4월 21일 사북항쟁...국가폭력 종합 전시장

2021.04.21. 오후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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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이 4월 21일이죠.

전혀 모르는 분도 많겠지만, 1980년 오늘 강원도 정선 탄광 지역에서는 광부들을 중심으로 '사북항쟁'이 발생했습니다.

'사북항쟁'은 그동안 노사 갈등과 주민 난동 정도로 치부된 경향이 있었는데, 조사해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물고문, 성고문 등 국가 폭력이 자행됐습니다.

취재 기자 연결해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지환 기자!

워낙 오래된 일이라 사북항쟁을 잘 모르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기자]
사북은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읍 단위 지역입니다.

80년대 국내 석탄 생산량의 10% 정도를 생산하던 민영 탄광, 동원탄좌가 있던 곳인데요.

광부들과 가족들이 주로 살고 있었습니다.

사북 항쟁은 41년 전인 1980년 4월 21일.

광부들과 가족 수천 명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사북읍을 점거한 사건을 말합니다.

노동자들은 노조지부장 부정선거 무효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자 했는데, 경찰이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충돌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주민과 경찰 등 80여 명이 다쳤습니다.

결국, 계엄 당국과 대치하던 광부들은 나흘 뒤인 4월 24일 합의 후 해산했지만, 5월 들어 전두환 신군부가 이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연행과 끔찍한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앵커]
처음엔 경찰과 충돌이 있었군요.

그런데 노사문제에 갑자기 지역 주민 수천 명이 참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서요?

[기자]
맞습니다.

일단 화면을 보겠습니다.

뒤집힌 지프 차 사진이 보이는데요.

당시 사복 경찰관들이 타고 도주하던 경찰 차량입니다.

사건 초기, 그러니까 노사 내부 문제가 한참 격렬해지던 4월 21일 오후 3시쯤 이른바 정보형사로 불리던 당시 정선경찰서 소속 사복경찰관 3명이 회사 내부에 있었습니다.

노조원 동향을 감시하는 불법 사찰 중이었는데, 적발됐습니다.

이후 경찰관들은 현장에서 도주했는데요.

막아선 광부들에게 이 지프 차를 타고 그대로 돌진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조사한 황인욱 소장 인터뷰 보시죠.

[황인욱 / 정선지역사회연구소 : 노조 사무실에서 사복 경찰 3명이 동향 탐지하다가 광부들에 의해 지목을 받고 호통을 들으니까 도망가면서 지프 차로 노동자 서너 명을 깔아뭉갠 거죠.]

서너 명을 깔아뭉갰는데 특히 1명은 현장에서 숨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크게 다쳤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를 단순 교통사고로 발표했는데요.

흥분한 광부들과 주민들의 분노가 사건 초기 유독 경찰을 향했던 이유였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앞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5월 들어 상황이 완전히 바뀌죠? 대대적인 연행과 고문이 있었다고요?

[기자]
지금이야 '사북항쟁'으로 불리지만 당시는 공권력에 도전한 광부 집단 난동 사태로 통했습니다.

5월 6일 전두환 신군부는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단을 정선 사북에 파견했는데요.

4월 24일 해산 당시 합의를 깨고 200여 명을 연행한 뒤 끔찍한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장소는 정선경찰서 임시조사실인데요.

피해자 증언을 종합하면 강당 벽을 따라 칸칸이 만들어진 돼지우리 같은 공간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물고문, 성고문을 포함해 피해자들은 남녀 구분도 없었는데요.

임신 4개월에 유산한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망하신 피해자 이명득 씨 증언을 보시겠습니다.

[故 이명득 / 사북 항쟁 고문 피해자 : 곤봉대를 가지고 음부 쪽을 후려 때리고 이만큼 팬티가 내려가면 이놈도 만지고 저놈도 만지고.]

또 하나 밝혀진 게 있습니다.

조사가 장시간 이어지면서 당시 광주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계엄사 수사단은 "광주를 봐라, 너희도 마찬가지 빨갱이다"라면서 고문과 구타를 자행했다고 합니다.

수사단은 이후 80여 명을 폭도로 몰아 계엄 포고령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7명은 실형, 21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물론 실형을 선고받은 분들 가운데 일부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이런 사실이 어떻게 알려졌고,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기자]
사북항쟁 41주년을 맞아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한 정선지역사회연구소와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 피해자 구술과 문건을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사북 항쟁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국가 폭력의 종합 전시장"이라고 결론 내렸는데요.

그동안 어용노조를 둘러싼 갈등과 난동쯤으로 치부된 경향이 있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 고문을 당할 당시 주민들은 이웃과 동료 이름을 고발해야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웃들이 서로 원망하며 지역 공동체가 파괴됐고, 성고문 등으로 인한 가정 파괴도 숱하게 발생했습니다.

불법 연행과 고문 피해를 입은 사람은 200여 명인데, 기록은 150여 명밖에 없고 그나마 피해 조사를 받은 건 50여 명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미 많은 분이 숨졌고요.

앞서 지난 2008년, 이 문제를 조사한 진실 화해 위원회가 사북 항쟁에 대한 국가 사과를 권고했습니다.

조사 단체들은 이번 보고서를 인권위원회나 과거사정리위원회, UN 등에 보내고 다시 한 번 정부 차원의 조사와 사과를 요구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YTN 지환[haji@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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