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노인복지관에 배달된 천만 원 수표..."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와이파일] 노인복지관에 배달된 천만 원 수표..."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2020.12.09. 오후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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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노인복지관에 배달된 천만 원 수표..."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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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강원도 춘천 한 복지시설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하얀 편지봉투에는 보내는 사람은 없고, 투박한 글씨로 받는 사람만 적혀 있었습니다.
'춘천 남부노인복지관 관장 박란이 귀하'
편지봉투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천만 원짜리 수표였습니다.

[와이파일] 노인복지관에 배달된 천만 원 수표..."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뚝 끊긴 기부금…그래서 더 의미 있고 고마워

코로나 19 여파로 경기가 꽁꽁 얼어붙은 요즘 기부금 역시 뚝 끊긴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이름 없는 천사가 보낸 천만 원 수표는 더 의미 있고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신을 알리고 싶지 않은 익명의 독지가도 아마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디에 써달라고 아무 곳에도 적어놓지 않은 겁니다. 수신인도 복지관장 앞으로 되어 있어 복지관에 보낸 것인지, 복지관장 개인에게 보낸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노인복지관 관장에게 보낸 만큼 당연히 노인복지사업에 쓰이기를 원해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혹시 누군가 잘못 보낸 것은 아닐까?
복지관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노인 복지사업에 바로 사용하는 것을 보류하고, 금고에 다시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없는 기부천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가장 먼저 우체국을 찾았습니다. 우체국은 수표가 담긴 편지는 등기 우편이 아니어서 누가 보낸 것인지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더욱이 편지 봉투에 적힌 발송 날짜는 지난 7월 22일. 무려 다섯 달 전입니다. 익명의 독지가가 과거에 사용한 편지봉투를 재사용해 직접 복지관에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어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자기앞 수표인 만큼 발행인을 찾으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해당 수표가 정상적인 아무 문제 없는 수표인 것을 확인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발행인이 누구인지 공개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서에도 문의했습니다. 도난 수표 혹은 분실 수표가 아닌 이상 수표의 주인을 찾는 것은 본인들의 소관이 아니어서 확인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복지관은 익명의 독지가를 찾기 위해 춘천시에 공고를 낼 예정입니다. 물론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노인 복지사업에 사용해도 되는지만 확인하고 익명은 그대로 유지할 계획입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알게…" 달라지는 기부 문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성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자신의 선행을 남이 모르게 하라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선행이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보든 안보든 상관없이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기부나 선행은 남이 모르게 조용히 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선행을 드러내는 것을 쑥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기부에 대한 미덕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배우 유아인 씨는 지난 2016년 7,700만 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좋은 일의 가치는 누가 그 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뜻'이 도와야 하는 곳에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유명인은 기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이 뜻깊은 일에 동참하게 하는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선행을 무조건 드러내고 주변에 알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좋은 일은 주변에 알려 기쁨을 더하고 또 그 일에 다른 이들도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벌써 20년째, 세밑 한파가 찾아올 즈음 큰 기부금을 두고 가는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 역시 자신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의 선행은 매년 방송과 신문을 통해 주변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다만 매년 기부금을 두고 가는 장소가 알려지면서 지난해 기부금을 도난당했다 되찾은 사건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부나 나눔활동과 관련된 미담은 널리 알려야 합니다. 얼굴 없는 천사 역시 자신의 기부로 주변의 동참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춘천의 얼굴 없는 천사가 이 기사를 본다면 복지관을 대신해 부탁합니다. 편지봉투에 담아 전달한 천만 원을 좋은 곳에 써달라는 편지나 전화 한 통이면 됩니다. 그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지금 바로 사용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춘천 남부노인복지관:033-241-5600

##홍성욱[hsw050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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